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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랑 이어집니다


아칼리에게는 차마 말못할 비밀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감이 너무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게 뭐가 고민인가 싶겠지만, 들어보라. 성행위란 서로간의 애정을 확인하고 쾌감을 주고받는 행위지 않는가. 헌데 아칼리는 너무 쉽게 쾌감을 얻는데다가, 한번 절정에 달하고 나면 더이상 속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감대가 민감해진다. 받기만 하고 줄 수가 없게된다. 속된 말로, 조루였다.

아칼리에게 이런점은 굉장한 컴플렉스였고, 성적인 접촉을 피하다보니 여태 연애경험이 없었다. 길거리 생활을 할적에 필요하다면 여성들과 몸을 섞기도 했지만, 자신의 몸을 내어준적은 없었다. 이런 행동은 몇몇 추측과 루머를 불러일으켜 생각지도 못한 오해를 불러들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많은 여자를 울린 고고한 레쥬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조루 컴플렉스에다 연애 미경험자인 내가 팜므파탈 레쥬퀸으로 오해당하고 있다?! 마치 양산형 라노벨 제목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자기가 거짓말 친것도 아니건만, 남들이 쌓아올린 오해가 그대로 아칼리의 이미지가 되버렸다. 컴플렉스가 드러나는것이 두려워 남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연기했다. 이미지는 그대로 굳어지고, 이제와서는 도저히 벗을 수 없는 가면이 되버렸다.


아리에게 주워져서 K/DA에 들어가 멤버들과 연애관계가 되자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아칼리는 처음 만날때부터 지금까지 멤버들 앞에서 가면을 벗은적이 없었다. 계속 레즈퀸을 연기했다. 그리고 연인이 됬다. 멤버들은 아칼리의 본모습을 모른다. 아칼리의 비밀이, 본모습이 드러나면 그들은 여전히 아칼리를 사랑할까? 아칼리는 처음으로 가진 연인들을 잃을까봐 불안했다.

이런 불안감은 상호적 교감이어야 할 연인과의 성행위에서 조차 아칼리가 가면을 벗지 못하게 만들었다. 멤버들이 자신을 만지다가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쾌감을 주기만 하는 성행위로 도망쳤다.

일시적으로는 만족하는것 같았던 연인들이 불만을 표하자 아칼리는 크게 당황했다. 연인을 잃고싶지도 않고, 비밀을 밝히기도 무섭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연인 중 한명인 카이사가 걱정스레 다가왔다. 요즘 고민이 있지 않냐며, 힘든일이 있다면 자신이 상담해주겠다는 것이다. 별일 없다며 거절해도 카이사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그래, 언제까지나 숨길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밝혀야만 한다면 카이사가 좋다.

카이사는 아칼리의 일방적인 성행위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연인으로, 쾌감을 주고받고 싶어하는 아리와 이블린과 달리 아칼리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두었다. 거짓말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고통받는 아칼리에겐 그야말로 안식처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아칼리는 카이사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리라 마음먹었다.




마음은 먹었으나, 실행하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상담에 응하여, 맨정신으로는 못할것 같아 술의 힘을 빌리기 위해 바에서 얘기하자고 한 것 까지는 좋았다.

‘이걸...뭐라고 설명하냔 말이야...!!!!’

사실은 조루 컴플렉스에요? 사실 지금이 첫 연애입니다? 몸이 너무 민감해서 깔리는건 싫어요?

‘말할수 있겠냐고...!!!’

아칼리는 눈을 질끈 감고 몇잔째인지 모를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카이사는 묵묵히 아칼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몇번이고 말을 하려다 입만 뻐끔대다 술을 들이키기를 반복했다. 카이사는 그렇게나 말하기 힘든 이야기냐며, 힘들다면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고 하소연만이라도 하는게 어떻겠냐며 걱정스레 등을 쓸어내렸다.

진지하게 걱정하는 카이사를 보자 아칼리는 자괴감과 수치스러움에 휩싸였다. 아아, 이대로 죽어버리는 편이 편할것 같아. 수치스러워서 죽을것같다... 왜 조루인거냐고... 내 몸새끼야...

수치심때문인지 취기때문인지 얼굴에 열이 오르고 눈매가 촉촉해졌다. 아아, 답답하다... 벗어나고싶다... 후련해지고싶어...

생각이 단순해지고 감정에 솔직해진다. 이성도 흐물흐물 풀어졌다. 오랫동안 들킬까 애지중지 감춰왔던 비밀은 혼자 견디기엔 너무 버거워졌고, 옆에는 믿을수 있는 신실한 연인이 있다. 이런 유혹을 뿌리칠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그래도 수치심만은 가시질 않아서, 아칼리는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저기... 카이사 언니,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당연하지! 카이사가 아칼리의 손을 꼭 쥐었다. 어차피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겠지만, 아칼리는 카이사의 귀를 끌어당겼다.

“그... 나, 사실은— ”




얼굴을 붉히고 눈가는 촉촉한, 잔뜩 취기가 오른 연인을 두고 아무런 성욕이 끓지 않을리가 없다. 연인을 사랑하지 않던가 부처거나 둘중 하나겠지.

평소에 강한 모습만 보이는 아칼리가 지금은 작은 토끼마냥 움츠리고는 손을 꿈지럭댄다. 그리고는 물기 가득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올려다본다. 몸속에 솟구치는 뜨거운 기운은 취기다. 그래야한다.

나는 지금 고민상담을 하는거야. 흑심을 품으면 안돼, 이 되먹지 못한 놈아! 아칼리는 지금 괴로워하고있다고!

“저기... 카이사 언니,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겨우 다잡은 마음을 아칼리는 너무나 쉽게 허물어버린다.

“ㄷ...당연하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나만 믿어!”

세상에, 반말? 이건 반칙이잖아. 게다가 혀가 풀려서... 어리광 부리는것처럼 들려... 평소엔 딱딱한 존댓말만 하면서...!

괘씸한 마음을 뿌리치듯 호언장담하며 아칼리의 손을 꼭 쥐었다. 꼼질거리며 맞잡아오는 손가락이 죽을만큼 귀엽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칼리는 카이사의 귀를 잡아 끌었다. 귓속말을 하려는건가? 참자, 카이사! 넌 할수 있어!

“그... 나, 사실은— ”


뜨거운 입김과 함께 귀에 닿은 말은 카이사의 이성을 녹여버리기에 충분했다. 못해, 이건 못참아. 아니 안참아.


당신의 레섹씬, 상자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