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수아는 보기엔 완전 쿨시크 냉미녀인데 속은 은근히 유리멘탈인 대학생, 동생 아라는 비글미 MAX의 활달한, 사실은 조금 소심하고 여린 고등학생. 둘은 원래는 그냥 사이가 나쁘진 않은데 사소한 일로 맨날 투닥투닥하는 평범한 자매였음. 근데 하루는 또 수아와 말싸움하던 아라가 홧김에 집에서 뛰쳐나가버린 거지. 수아도 삐져서는 내가 쫓아가나 봐라 혼자서 툴툴대며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데 이놈의 동생이 어째 돌아오지를 않네? 수아는 혼자서 왜 이리 늦지. 전화해야 되나. 근데 전화하면 지는 거 같은데. 그래도 걱정ㄷ아니아니딱히걱정되는건아니지만! 하면서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그러던 와중에 수아의 핸드폰이 울려. 아라에게서 전화가 온 거지. 내심 안도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아직 화난 척 하기 위해) 전화를 받는데 동생의 장난기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왠 모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수아가 놀래가지고 누구시죠, 이거 저희 동생 핸드폰일 텐데요, 하니까 여자가 자신이 어디어디 병원 응급실의 의사라고, 아라 언니분 되시냐고 하는 거야. 수아는 가슴이 철렁하겠지. 일단 맞다고 대답하니까 의사분이 빨리 병원으로 와달라고 하지. 아라가 트럭에 치여서 의식불명이라는 거야.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수아를 맞아주는 건 의식이 없는 채로 잠자듯이 누워 있는 동생이겠지. 아라의 의식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수아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할 거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긴 했지만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생인데. 그런 작은 일로 아라에게 화내지만 않았어도, 라며 괜히 자신을 탓하고 좌절하겠지.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수아는 바쁜 부모님 대신 매일같이 아라의 병실을 들려 아라를 챙겨줘. 대학생활과 알바와 간호를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수아는 자기 자신에 대한 벌이라 생각하고 조금 무리를 해가며 아라를 챙겨.

그렇게 누워있는 아라를 지켜보길 여러 달. 대학 도서관에서 졸고 있던 수아에게 연락이 와. 아라가 눈을 떴다고 말이야. 아직 강의가 몇 개 남아있었지만 수아는 다 때려치고 병원으로 달려가지. 아라야! 외치며 병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니 침대에 앉은 채로 창밖을 보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겠지. 생기있던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새하얘졌고, 적당히 살집이 있던 팔도 살이 빠져 가늘어졌고, 어깨 위쪽에서 찰랑거리던 단발은 이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가 되어 있겠지. 

누워만 있을 땐 알아차리지 못한 동생의 변화를 수아가 새삼 실감하고 있으려니 아라가 천천히 수아 쪽을 돌아봐. 팔과 마찬가지로 갸름해지고 새하얀 아라의 얼굴이 수아를 마주보겠지. 수아와 꼭 닮은 아라의 맑은 두 눈동자가 조금 커지고, 창백한 볼이 약간 붉어지며 생기가 돌아와. 아름답다, 여지껏 보지 못했던 동생의 모습에 수아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리고 홀린 듯이 다시 동생의 이름을 부를 거야.

'아라야.'

하지만 아라는 멍하니 수아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겠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수아가 다시 아라야? 하고 부르겠지만 아라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그게 제 이름인가요?'

라며 멍하니 물어봐. 의식은 돌아왔지만 사고의 충격 때문에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거야. 의사는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수아는 알 수 있었어. 자신이 아는 아라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간신히 집까지 돌아온 수아는 몇달 전 그날 동생을 기다리던 소파 앞에 주저앉아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지.

으아 졸려서 더는 못쓰겠다.

여튼 이런 소재 괜찮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