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자기한테 누룽지를 나눠줬던 장씨네 셋째따님이 원님이 부임하는대로 하룻밤만에 죽어나가는 관아로 돈받고 팔려나가자 의리때문에 따라간 멋진 두꺼비쟝

아가씨가 엄청 걱정하다가 어느새 곤히 잠든걸 확인하고나서 수리수리마하수리 주문을 외워 수십년 묵은 마력을 토해내 전투용 인간 형상으로 변신한 두꺼비가 느긋하게 천장 쪽을 돌아보며 소꿉놀음은 그쯤 해두고 나오라고 하자마자 굵기가 장정 팔뚝만한 지네가 슬슬슬 기어나오는거야

시허연 독기를 쉭쉭 뿜어대며 이젠 하다하다 계집애랑 어디 여물통에서 굴러먹던 개구리 사촌까지 끌고오는걸 보니 고을 원으로 앉힐 사내도 떨어진게냐고 비웃으며 다리를 하나씩 거둬들여 무시무시한 갑각 갑옷으로 몸을 감싼 고대의 여전사로 변한 지네님이 고작 백몇십년 도닦은 어중이떠중이가 날 상대할수 있을성싶냐고 으르렁대는거지

무지막지한 독기 말고도 눈에 시퍼렇게 일렁일정도로 강력한 기를 보고 자기는 오늘 밤에 죽을 거라는걸 직감한 두꺼비가 상대해줄 생각따윈 없다고 말하고는 도망칠 셈인가 싶어 구경하던 지네에게 달려들어 꽉 끌어안더니 지붕을 박살내고 밤하늘 높이 뛰어올라 동귀어진을 시도하는게 보고싶다

고작 몇십년 수련으로 네년같은 몇천년짜리 흉물을 저승길동무로 데려갈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당당하게 외치면서 스스로 혈을 찔러 자폭을 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장씨네 따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손가락이 아주 살짝 느려지는 바람에 지네님한테 독 비녀로 단단히 찔려서 그대로 근처 야산으로 곤두박질쳐버리는거지

원래 두꺼비가 독이 잘 안통하는 족속이라지만 그 순도높은 극독이 척추에 정통으로 꽂혔으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름드리 떡갈나무를 몇그루나 박살내면서 추락한 두꺼비의 새하얀 목을 한손으로 잡아올린 지네님이 처녀의 숨통을 제멋대로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마구 발버둥치며 고운 맨발로 딱딱한 갑옷을 걷어차려 드는 가여운 모습을 무심하게 관찰하는거야

죽음의 공포와 맹독의 고통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주제에 쏴 봐야 부질없다는걸 알면서도 수명까지 깎아가며 지네님에게 장풍을 쏘려 드는 두꺼비 처녀를 바라보면서 무엇이 너같은 미물을 이리도 절박하게, 강하게 만들었는지 물어보다가 피섞인 침을 얻어맞고 그 아이인 것이냐고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어보는 잔인한 지네님이 보고싶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투지와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동자가 쪼그라들더니 순수한 공포로 가득차서 아씨를 건드리면 삶과 죽음을 넘어서라도 널 죽이러 다시 오겠다고 발악을 하는 두꺼비를 그제서야 재미있게 바라보며 흥미가 생겼다고 선언하는 지네님이 보고싶다

천장을 뜯어봤더니 나온 엄청나게 거대한 지네 껍질과 독기에 새파랗게 질려버린 벽지같은걸 보고 관아 건물 안에 있었던 지네가 전에 왔던 원님들을 죽여댔었던 거라고 판결을 내린 장 아씨가 지붕에 뚫린 큰 구멍을 남겨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두꺼비를 기리며 네가 내 대신 죽어버린 게로구나 하고 남들 몰래 추모하는것도 보고싶다

단아하고 새하얀 두루마기는 격렬했던 관계 중에 모조리 찢겨나가 이빨자국과 독침 자국으로 빼곡한 알몸을 드러낸 두꺼비가 오늘도 둘만 있는 동굴 깊숙한 곳에서 열락과 고통의 비명을 토해내는줄도 모르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