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토메, 차트 정리 아직이냐? 치프님이 찾으셔”

오늘도 정신없는 A대학병원 정형외과. 인턴 이상으로 말단 노릇 담당인 레지던트 1년차 메아리는 드디어 쉴 수 있다 생각하며 휴게실에 왔지만 치프가 찾는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다. 생각해보니 어제 치프가 시킨 차트 정리를 하나도 안 했다.

“바보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그렇지, 치프의 명령을 어기다니. 쯧쯧. 넌 이제 죽었다라고 쳐다보는 동기들의 표정을 보며 메아리는 이를 악 물고 휴게실을 나선다. 다른 애들보다 훨씬 빡센 일정을 맞이한 이번 달의 메아리이기에 굳이 잡다한 차트정리까지 자신이 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막말로 이런건 말단 인턴을 부리면 되는 것 아닌가. 가뜩이나 재수해서 의대 온 것도 서러운데....

도박에 미친 고등학교를 졸업 후 명석한 두뇌임에도 의대에 떨어진 메아리는 이를 악물고 삼수생 신분으로 의대에 왔다. 여자는 정형외과에서 버티기 어렵단 사람들이 많지만 본과 재학생 시절 실습 돌면서 정형외과에 매력에 빠져들었기에 다른 과는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돈도 잘 벌 수 있고 말이지.”

정형외과 의사로 개업하면 돈을 땡길 수 있으니까. 또... A대학병원 정형외과엔 ‘그 사람’이 있으니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왔어?”

레지던트들의 ‘대표’인 치프님이 기다린다는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메아리를 부르는 낮은 목소리.

“너 죽을래?”

하지만 메아리는 자신을 기다리는 뒤 돌아 앉아 있는 치프에게 달려가 의자를 휙 돌린다. 그러자 밝은 은발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메아리를 보고 있다. 그녀가 입은 흰 가운에는 ‘모모바미 리리카’라고 적혀 있다.

“사오토메… 화났어…?”

커다란 눈으로 메아리를 올려다보며 리리카는 눈치를 살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화 내려던 마음이 싹 가라앉는다.

“화 안 났어…”

“귀찮은 일 시켜서 기분 상했지?”

“…..조금 화날 뻔했어. 동기 녀석들이 자꾸만 네가 나 괴롭히는줄 알고 비웃는단 말이야. 아니, 괴롭히는건 사실인가?”

“그치만.... 일 거리를 던지고 오라고 난리쳐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으니까...!”

새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말 하면 정말 화낼 수 없잖아.

“둘만 있을 때만이라도, 이름으로 불러줘.”

“메아리…”

처음 만난 고교생 시절, 리리카는 무엇하나 본인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소심한 소녀였지만 메아리를 만나고 변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어린시절부터 키운 꿈이었던 의사의 길을 택해 의대에 진학했다. 그런 리리카와 함께 걷고 싶단 목표만으로 메아리는 문과생이었던 자신의 진로를 틀어 의대 진학을 위해 삼수까지 굴렀고.... 결론은 이렇게 같이 근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성공인가?

“그거 알아?”

“뭐?”

“메아리는 흰 가운이 정말 잘 어울린다.”

“으응…”

“섹시해.”

“야, 정신 차려. 여기 병원이에요.”

“아무도 없는데 뭘...”

“방금 전까지 엄청 부끄러워 했잖아!”

“…싫어?”

또, 또. 그렇게 예쁜 얼굴로 쳐다보면 당연히 싫다고 할 수 없다는걸 알면서.

“사랑해, 모모바미 리리카.”

그렇게 둘은 행복했다고 한다 ㅇㅇ 이 뒤는 상상하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