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 오늘도 바빴네요."
학생회 일이 끝나고 책상에 자빠져 내뱉은 말에 린코 선배가 말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처음으로 학생회가 되었을 때보다는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선배의 말에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서로 조금씩 알아가려던 참에 갑작스레 바빠졌고, 정말이지, 큰일이었다.
"아아...... 맞아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네요. 그때는 정말 정신이 나가는 줄만 알았죠."
"그래도 그때의 경험덕분에... 이렇게 차근차근 성장해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보다 바빴던 적도 없고, 그 덕분에 침착하게 대처해온 것 같기도 해요."
한 번 빡세게 굴러보니 웬만큼 구르는 건 힘들지도 않게 된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일하는 동안'만'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그래도 이렇게 일이 다 끝난 다음에는 언제나 힘들지만요."
"그러게요, 역시 오늘처럼... 히카와 씨가 바빠서 못 오시기라도 하면 탱커없이 레이드를 뛰는 것만큼 힘들어요......"
...린코 선배는, 정말로 게임을 좋아하시나보다.
이런 비유까지 게임을 쓴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는 가방을 챙겼다.
"선배, 이만 가봐도 괜찮을까요?"
"네... 저도 이제 가보려고 했어요......"
학생회실에서 나와 교문까지 가는 길에 린코 선배가 말을 걸었다.
"이치가야 씨... 생일이 10월 27일이라고 하셨나요...?"
생일? 갑자기 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단 영문을 모른 채 대답했다.
"ㄴ, 네..."
"전갈자리... 전갈자리는......"
"별자리에요?"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물었지만, 린코 선배는 폰 화면에 집중한 건지 반응이 없었다.
"...전갈자리, 북극성을 바라보고 걷다보면 평소에는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소중한 기회이니 놓치지 않게 조심하기를."
평소에는 보지 못한 것......?
"별자리 운세에요?"
"네...... 별과 관련된 별자리 운세에요... 왠지 지금... 이걸 알려드려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소중한 기회......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북극성을 보며 걸어볼게요."
놓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 어째서인지 가슴에 걸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급히 인사를 하고는 하늘에서 북극성을 찾으며 무작정 뛰었다.
"...네. 놓치지 않기를 바래요..."
린코 선배의 말에 다시 인사를 한 뒤 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극성......"
북쪽에 뜨는, 가장 밝은 별. 하지만 폰으로 어느 쪽이 북쪽인지를 확인하고는 잠시 망설였다.
"별이... 안 보여."
잔뜩 있는 가로등 때문인지, 아니면 하늘에 드리운 구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북극성은 보이지 않았다.
"어?"
잠깐.
한 지점에서 멈춰서고는 북쪽을 확인했다.
"저 빙향으로 가면... 그 공원......"
공원에서는 별이 보일까. 다른 곳도 소중한 추억은 많지만, 공원도 내게는 소중한 기억들이 새겨진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공원에서라면 별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봤을 때'도, 쏟아질 듯 많은 별의 광경을 볼 수 있었으니까.
"가보자......"
어째서인지 놓쳐서는 절대 안된다고 외치는 가슴 속 목소리를 따라 공원으로 달렸다.
"하아... 하아......"
최근에는 학교를 다녀도, 여전히 운동을 잘 안하는 내게 이렇게나 뛰어다니는 건 역시 버거웠다. 하지만 멈춰서는 안될 것만 같은 느낌에 뛸 힘이 없어도 계속 걸었고, 결국 공원에 도착했다.
"여기서라면...... 북극성이..."
볼 수 없었다.
아니, 볼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겐 북극성이 보이지 않았다.
유난히 낮은 곳에 있는,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정도의 높이에 있는, 갈색 별이 보였으니까.
갈색 별은 어째서인지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져버릴 것만 같은,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그 별의 이름을 불렀다.
"카스미......?"
"엣......!?"
내 부름에 돌아선 카스미는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물었다.
"ㅇ, 아리사!? 여, 여기는 그, 왜......?"
"왜냐니, 내가 와서는 안 될 곳이라도 왔냐."
내 말에 카스미는 "그, 아무곳도 안 가고 집으로만 바로 가서 쉴 것 같았다고나 할까... 에헤헤......"라며 어설프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봤을 때에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똑똑히 봤다.
"그냥, 별이나 보러 온 거야."
어떻게 위로하는 게 좋은지, 애초에 무엇 때문에 울었던 건지도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내가 할 얘기만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있을 줄 몰랐던 다른 별이 있더라고. 나도 너가 있어서 당황했다니까."
"별...?"
"너 말이야, 너."
내 말에 카스미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도 아까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이라고 해주는구나! 모두들 별보다는 고양이를 떠올리던데~"
"고양이가 그렇게 반짝반짝거린다니, 소름돋거든."
"그런가? 하지만 요즘은 눈에서 빛이 나는 고양이도 있다던데?"
"그.러.니.까, 그런 게 소름끼친다고."
내 말에 카스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며 말했다.
"아리사는, 나한테...... 별이라고 해주는 거구나... 그럼 더 반짝여야겠네! 그치? 더 잘 보이게..."
카스미는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도 표정도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 카스미에게 손을 뻗자, 카스미는 뭔가 붙은 걸 떼주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얌전히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아줬다.
"바보냐."
"아얏!"
아프다며 울상이 된 카스미를 보니 너무 세게 때렸나 싶어 미안해졌지만, 내가 할 말은 똑바로 해줘야 했다.
"별은 빛나려고 노력하지 않아. 그런데도 그 자체로 빛나는 거라고."
"응... 그런데 그게 왜...?"
"너도, 어떻게든 빛나려고 노력하는 지금보다 그저 네가 원하는대로 반짝임을 쫓던 너가 더 반짝였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그냥 너 자체로 빛나고 있으니까."
"......아리사."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듯 나를 부르는 카스미의 말을 뒤로 하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지를 펼쳐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빛나지 않더라도, 다른 누구도 널 찾지 않고 찾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나는 널 찾아낼 테니까. 찾아내서 계속 지켜봐줄 테니까. 계속......"
"계속...?"
말하려고 하니 부끄러워져서 입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미 부끄러운 얘기는 실컷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무리해서 말하자.
"......곁에서, 같이 있을 테니까."
"아리사......"
카스미의 눈동자가 조금씩 떨렸다. 목소리는 그 이상으로 떨렸고, 평소였다면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었을 몸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눈에 띄게 떨렸다.
"평소에는 상황을 안 가리고 달려들면서, 정작 이런 때에는 달려들지도 못하는 거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천천히 다가가 카스미를 안아줬다. 여전히 떨리는 카스미의 몸이, 그 불안한 마음을 표출하는 것만 같았다.
"아리사...! 아리사! 아리사아아!!"
그저 내 이름만을 외치듯 부르며,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도 옷이 구겨질 정도로 나를 꼭 껴안았다.
......조금 아프지만 그걸로 카스미가 조금이라도 덜 아파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안 불러도 어디 안 가. 울어도 되고, 붙잡아도 돼. 지금 정도는...... 네 마음대로 행동해도 괜찮으니까. 네 마음이고 기분이고 전부 받아줄 거니까."
"아리사... 아리사아......"
"부르지 않아도 여기 있는다니까...... 카스미."
얼마나 힘들었으면 단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밖에 하지 못할까. 요즘 카스미를 볼 때마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건, 이것 때문이었을까.
"아리사... 모두들 더 반짝여가고 있는데, 포피파의 모두가 더 빛나고 있는데, 나는... 나만 제자리야...... 나는 예전보다 나아진 게 없나봐...... 그래서, 그래서... 읍!?"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꼭 껴안아 말을 끊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더 듣고 싶지 않았고, 카스미가 아픔을 얘기하는 걸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바보... 내가 성장하고 있다면 그건, 아니, 모두가 그렇게 성장하는 게 네가 있었던 덕분인데...... 너가 가만히 있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네 곁으로 가라는 거야......"
가장 앞에서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가장 철없으면서도 모두를 이끌어주던 카스미. 그런 카스미가 계속 앞으로 달리기만 한다면... 나는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놓쳐버릴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웠다. 모두가 앞을 향해 달리는데, 나 혼자만 중간에 꺾여버려 멈추는 게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가장 앞에서 달린다고 생각했던 카스미마저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어,라고.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넌, 지금도 계속 앞으로 달리고 있잖아... 네가 점점 더 빛난다는 건 뒤에서 봐온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거든."
내가 봐온 여태까지 성장해온 카스미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서, 그런 카스미를 보는 내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났다. 그와 동시에 카스미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슬펐다.
"뭔가 복잡해져서 내 생각을 제대로 말해줄 수 없게 됐지만, 혼자서만 뒤쳐질까봐 무서워하는 건 너만이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꼭 껴안았던 카스미를 살짝 풀어주고는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같이 힘내자. 앞으로도 계속."
"아리사......"
내 마음이 전해진 건지 아닌 건지 카스미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가는 부드럽게 휘어진, 고운 미소였다.
"평생... 같이 있자! 아리사."
"......으, 응."
내 대답에 카스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아리사~ 그렇게나 나를 생각해주던 거야?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기쁜걸~"
"그, 그거야......"
솔직하게 전하지 않으면, 널 잃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갈 방향을 알려주는, 그리고 어느 별보다도 밝은, '나의 북극성'을 영원히 놓쳐버리게 될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 진심은 말할 수 없었다.
"그, 너가 언제나 바보같이 솔직하게 구니까 나까지 그렇게 된 거잖냐!"
진심을 말할 용기같은 건... 이미 다 써버린 걸까.
"ㅇ, 어쨌든... 오늘 일은 비밀이다?"
"응... 고마워, 아리사."
아직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는 깨달았다. 아까의 장난스러운 말은, 원래대로 돌아온 척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다는 걸.
"......카스미."
"응?"
"저기, 북극성."
밤하늘에 보이는 밝은 별. 북쪽을 알려주는 별을 가리키자, 카스미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에, 슬며시 거리를 좁혔다.
☆-
바보같이 굴기도 하지만, 사실 속도 깊고 생각이 많은 카스미. 그런 카스미의 볼은, 남들을 대할 때의 카스미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아, 아리사!?"
카스미는 자신의 볼에 닿은 게 뭐였는지 바로 눈치챈 걸까. 목소리에 조금, 크게 당황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평소의 패턴을 뒤집은 것 같아서, 왠지 내가 잠시나마 카스미가 된 것같은 기분이어서 좋았다. 지금이라면 카스미처럼, 내 기분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북극성 있잖아, 너와 비슷하지 않아?"
정말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보이는 것도,
내가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것도,
주변을 뒤덮을 정도로 반짝이는 것도.
"응? 난 북쪽에만 있는 게 아닌데?"
"아니, 그것보다 북극성처럼..."
아악!
아아아악!!
잠깐! 잠깐만!!
원래 이런 말까지는 할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미칠듯이 부끄러워졌어!!!
"그... 그러니까......"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넘어 뜨겁게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괜히 기분에 휩쓸려 익숙하지도 않게 진심을 말해서 이렇게 되는 걸까.
"그게... 그... "
말이 똑바로 나오지도 않았다.
"ㅁ, 몰라!!"
얼굴을 가리며 그곳에서 도망쳤다.
얼굴이 새빨개졌을 것만 같아서...도 있지만, 카스미의 얼굴이라도 봤다가는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조금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잠시 주저앉았다.
"오늘은... 하아... 너무 많이 뛰었어..."
도망치면 안되는 거기도 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카스미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도망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카스미는... 작사하는 걸 보면 표현력도 좋고, 의외로 머리도 좋으니까... 내 말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리려나. 아니, 어쩌면 단번에 알아차리고서도 부끄러워서 이해 못한 척을 한 걸지도 몰라.
여전히 불이 붙은 듯 화끈거리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생각했다.
아까, 그 볼에 내 입술이 겹친 그때, 카스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좋아해줬으면 좋겠는데.
'나의 북극성'을 생각하며 조금씩 깊어져가는 밤, 북쪽 하늘의 밝은 별은 유난히 더 빛나는 것만 같았다.
- BanG! Shorts, Kasumi X Arisa 2. 밤하늘의 북극성
아아아아!!! 예쁘게 안 써져어어어ㅠㅡㅠ
분명 카스미를 북극성에 비유하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똥손이라서 이렇게 되버린 것 같아... 혹시 이 비유가 괜찮다면 마음껏 써주길 바래! 금손의 작품은 언제나 환영이야! 사실 금손이 아니어도 다 좋아! 그럼 난 이만 자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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