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봐, 아리사짱."
"집에 가면 숙제 해야겠어."
"슬슬 옷짱한테 밥 줘야 돼."
"아리사! 내일 봐!"
연습이 끝나고 네 사람은 창고에서 나갔다.
"어이, 카스미! 넌 왜 자연스럽게 슬쩍 나가려는 거냐!"
"에헤헤... 걸렸다..."
참나, 둘이서 하는 조별과제인데 혼자 시작하는 건 사양이라고.
"넌 좀 남아. 내가 노트 가져올 테니까."
"네에~"
천연덕스럽게 자리에 돌아와 앉은 카스미를 두고 방으로 가서 노트를 가져왔다.
"금방 왔네?"
"당연하지. 얼마나 멀다고 오래 걸리겠냐."
"...그러니까 기타 내려놔."
"에!? 방금 막 준비 끝내서 아직 한 곡, 아니, 한 파트도 못 쳤는데!?"
"과제가 먼저라고. 이번 거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거라서 못 끝내면 학교에 남아야 하니까. 학교에 남다가 우리 때문에 연습 못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오늘은 준비만 할 거니까, 끝나고 하든지."
내 마지막 말에 카스미의 눈에 반짝임이 돌아왔다.
"와! 역시 아리사야! 고마워!"
......이번에도 '좋아해'나 '사랑해'는 안 해주네.
뭐, 일반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는 안 하는 게 평범한 거겠지만...
"어쨌든, 주제랑 맡을 부분만 정하고 끝낼 거니까 집중해."
"응!"
「POPIPA!! PIPOPA!! POPIPA! PA! PIPOPA!!」
노래가 끝나자, 카스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말했다.
"후아아~ 언제 해도 이 노래는 경쾌하고 신나는 것 같아!"
"...목 아파."
내 말에 카스미는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야, 아리사, 열심히 불렀으니까~"
"그, 그건! 내가 오타에나 리미, 사아야 몫까지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 그런 거잖냐!"
앞으론 다 같이 있을 때 빼고는 절대 안 해!
"그럼 이제 뭐 부를까... 음! 아까 여름 노래 불렀으니까 이번에는 겨울 노래! 크리스마스의 노래 부르자!"
"야!? 그건 내가 부를 게 더 많잖아!?"
내 지적에 카스미는 눈을 감고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머릿속으로 노래를 한 바퀴 돌려보는 것 같았다.
2절로 넘어간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 싶을 즈음에 갑자기 카스미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 지적이 사실이라는 걸 알아채서 그런 걸까.
"대충 알겠냐. 뭐어... 굳이 부르고 싶다면야 못 부를 것도 없기는 한데......"
"아, 아니야! 괜찮아! 아리사 목은 좀 쉬어둬! 부르고 싶은 노래는 많으니까!"
"그렇다면 됐고."
사실 가사가 좀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제대로 못 불렀을 것 같고 말이지.
"으음, 뭘 부를까...? 오랜만에 우리 곡 말고 다른 곡이라도 불러볼까아...?"
눈을 감고 고민하던 카스미가 갑자기 알았다!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로미오와 신데렐라?"
"하아!?"
지금 얘가 이 시간에 뭘 부르려는 거야!?
"에, 안 되는 거였나?"
"아,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너 그 노래 가사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
"모르는데?"
으음...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할 말이......
"그럼 체리 봄은 어때?"
"너 그 두 노래 다 사실 무슨 뜻인지 아는 거 아냐!?"
지금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르는 곡들이 다... 그, 그렇고 그런 곡이었다.
"으음, 이것도 안 되면..."
"애초에 시간도 이미 저녁먹을 시간이 지났잖아.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고."
"오늘 할머니 안 계신 것 같던데, 저녁 잘 챙겨먹을 거야?"
"알아서 잘 챙겨먹을 거니까 집에나 가."
냉장고에 남은 반찬 있으면 그거 꺼내서 데워먹으면 되겠지. 없으면 적당히 컵라면 끓여먹으면 되고.
"으음... 걱정되는데."
"너부터 잘 하시지. 얼른 집이나 가."
예전이었으면 귀찮다고 아무것도 안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카스미와 만나서, 지금까지 계속 변했으니까.
"...그럼 아리사를 믿기로 하고, 난 가볼게!"
"어어, 어서 가."
카스미가 나가고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가 부엌으로 가서 먹을 걸 찾아보던 때였다.
"아아리사아아!!"
그 목소리에 놀라서 창문밖을 봤...
히익! 밖에 비 엄청 오잖아!? 아까까지 안 왔는데!?
우선은 급히 문을 열어 카스미를 집에 들여줬다.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이 마치 비 내리는 곳에 버려져있던 고양이 같았다. 특히 비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머리 양쪽의 뿔 때문에 더.
"흐으으...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어쩔 수가 없었어... 나가자마자 금방 또 이렇게 신세져서 미안해애..."
"그런 건 됐으니까 우선은, 씨, 씻기나 해! 그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난 병문안같은 거 가줄 생각 없으니까."
"응! 얼른 씻고 올..."
카스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라!? 나, 아, 아리사네 집에서 씻으라고!?"
"왜, 처음 씻는 것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혹시, 우리 집에 뭐 문제라도 있었냐?"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 으으,"
어째서인지 카스미가 갑자기 부끄러워하는 듯, 얼굴을 붉혔다.
"아! 그, 갈아입을 옷도 없고,"
"옷은 내 거 빌려줄게. 기껏 씻어도 비에 젖은 옷 입으면 씻어봤자잖아. 내 옷 불편할 거 같으면 드라이기로 네 옷 좀 최대한 말려보면 될 거고."
내가 키가 조금 작기는 하겠지만, 그래봤자 10cm도 차이 안 나고, 사이즈는 별 문제 없겠지.
"으으... 아, 알았어! 일단 씻고 올게!"
"좀 천천히 씻어. 나도 너 입을 옷 좀 찾아볼 테니까. 맞다, 일단 교복은 밖에 놓으면 내가 말려줄게."
"교복은 그러면 되지만... 그, 그게......"
"아."
그리고보니 이 정도로 비가 쏟아졌으니 교복 말고도 젖었겠지...
"소, 속옷은 네가 직접 말려서 입어!"
"으, 응! 다, 당연하지!"
"어, 어서 들어가!!"
"ㄴ, 네!"
......들어간 건가.
나를 안 놀리고 들어가버린 걸 보면, 카스미도 꽤나 부끄러웠나보다. 얼굴도 똑바로 보지는 못했지만 꽤 빨갰던 것 같고.
"나도 좀 놀려볼걸."
그랬으면 카스미가 좀 더 부끄러워하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에휴, 됐어. 이미 늦었는데, 뭐."
옷이나 챙기러 갈까. 천천히 씻으라고 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천천히 씻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
조금 서둘러서 옷을 챙기고 거실로 나왔다.
빨래한 이후로 한 번도 안 입은 옷들만 모아서 그 중 어울릴 것 같은 옷을 고르다보니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기도 했지만, 카스미도 정말로 천천히 씻는 건지, 아직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Song for the light delight! Song for the light delight!」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아까 그렇게나 부끄러워했던 게 내 착각인가 싶었다.
그리고보니, 오늘 연습에서도 이 노래 불렀었지.
그 생각을 하니 연습 때 생각이 난다.
"......오타에한테 두 번, 리미한테는 세 번, 그리고 사아야한테는 두 번."
오늘 연습에서 카스미가 좋아한다며 달려든 횟수였다.
"나한테는... 한 번도 안 했지."
예전에는 그렇게나 부끄러워서 하지 말라고 소리쳤는데, 이제는 없어서 초조해할 정도라니.
왠지 카스미한테 지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빴다. 물론 좋아한다고 해주지 않는 카스미가 아니라, 여태까지의 말들을 똑바로 받지 않은 내가.
"그것보다 나 진짜 미친 건가?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그랬는지를 세고 있었던 거야!? 와, 소름돋아!!"
나 지금 집착하는 건가? 설마, 나 얀데레였던 거야!?
"아니야! 집착은 안 했어! 그... 집착'까지는' 안 했다고......"
그래, 아직 집착까지는 안 했으니까!!
"진짜... 카스미가 나쁜 거야. 왜 이렇게 좋은 건데......"
순식간에 자신에 대한 혼란에 빠져 어버버하던 사이, 물 소리가 멈추고, 카스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리사~ 거기 있어?"
"으, 응. 여기 있는데, 왜?"
"나 옷 좀 빌려주라!"
"아까 빌려준다고 했잖아. 문 앞에 뒀어."
혼자 당황해서 소리지르고 하는 사이에 카스미의 교복도 대충 말라서, 그건 펼쳐서 잠시 말린 다음에 주기로 생각했다.
"아리사, 나 나갈게?"
"어."
내 대답에 쭈뼛쭈뼛 카스미답지 않게 소심하게 걸어나왔다. 입고 있는 옷이 원래 주인인 나보다도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
"아리사......?"
"......"
"아리사아?"
"......"
"저, 기, 아! 리! 사!"
"아!?"
무심코 넋을 놔버렸던 걸까.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제정신으로 지금의 카스미를 봤다가는 지금 카스미가 내 옷을 입고 있다는 걸 의식하게 되니까.
"혹시 나 지금 아리사가 넋이 나갈 정도로 예쁜 거야~?"
"그, 그런 거 아니야!"
뭐어, 예쁜 건 사실이어도... 언제나 그랬고...
"그런 거지? 후후......"
웃음소리가 가벼우면서도 어딘가 무거웠다.
"너 무슨 고민 있냐."
"응!?"
"아니, 웃는 거 들으니까 왠지 저번에 너 혼자 울던 게 생각나서."
"......아리사는, 되게 똑똑해."
카스미의 목소리가 조금씩 무거워지는 게, 가라앉는 게 어쩐지 힘들어할 게 무서워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꾸려 농담을 던졌다.
"너가 바보 아니고?"
"그러게, 내가 바보인 거였네."
"어, 어이, 카스미?"
갑자기 그런 소리 하지 마.
네가 어떤 말을 할 지 무섭단 말이야.
"분명히, 예전의 토야마 카스미는, 남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어."
"이런 말이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앞으로도, 토야마 카스미는 망설이지 않기로 정했어."
"카, 카스미? 무슨 말을 하는 거냐니까!?"
내 말을 듣고 있지만, 아직 그 말에 대답할 때가 아니라는 듯, 카스미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과거도, 미래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거야."
"카스미......"
"그러니까, 지금도 망설이지 않기로 정했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니까...?"
내 말에 카스미는 잠시 날 보며 웃다가 말했다.
"지금은... 몰라도 괜찮아. 어차피 곧...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금 쉬었다가 가자. 망설이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지금'은 돌아오지 않게 될 테니까."
"카스미......"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자신의 고민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 정도만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카, 카스미, 여기 한 번 와보라고? 밖에 밤하늘이 보이니까."
어떻게든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하고 싶어서, 나답지 않을지도 모르는 말로 카스미를 불러냈다.
"너가 좋아하는 별도... 어? 안 보이네!?"
비가 내려서인지 검은 하늘은 흐렸고, 별빛도 보이지 않았다.
와, 나 정말 분위기 돌리는 데 재능도 없고 운도 없구나.
"푸훕, 아리사 지금 말 돌리려고 한 거야? 귀여워라~ 하지만 비때문에 하늘이 흐린데 어쩌지~?"
"시, 시끄러!!"
아! 진짜! 왜 결국 이렇게 되는 건데!!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려던 게 왜 이렇게 되는 거냐고!!
그리고, 그것 말고도......
"별, 둘이서 같이 보고 싶었는데..."
"아리사!?"
"앗! 아니야! 딱히 너랑 ㄷ, 단둘이서 별을 보고 싶었다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하하, 아리사~ 조금 솔직해져도 괜찮다고?"
"시끄ㄹ"
"나도, 지금만큼은 정말로 솔직해지려고 하니까."
뭐?
"아리사는 별이 안 보이는구나?"
"어? 어, 뭐... 그렇지."
"난 말이야, 지금도 별이 보이는데..."
에? 보이는 별이 있었나!?
당황에 빠져 아무리 창문 밖을 바라봐도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지금도 밖은 비가 쏟아지고 있고, 구름도 많으니까.
"어딜 보고 있는 거야? 그런 곳에는 없는데."
"뭐? 밖에 없으면 어디에 별이..."
콕-, 내 이마를 찌른 건 카스미의 손가락이었다. 분명 콕하고 찌른 것인데도, 아프기보다는 부드럽고, 따스했다.
"여기서 먼 곳만 보지 말고 좀 더 근처를 봐봐."
"응...?"
"난, 별이 하나 보이는데... 아리사는 어떨까. 아리사한테 보이는 게, 그 하나가 아리사의 별이었으면 좋겠는데."
"자, 잠깐만! 너 내가 당황할 거라는 걸 알고서 이상한 소리나 하려는 거지?"
카스미의 말이 나를 향해 해주는 진지한 말이면, 카스미의 진심이면 좋겠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바라는 것일 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말이 진심일 이유도, 진심이라도 지금 할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카스미에게 별은, 그저 '하늘에 떠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까 말했잖아? 솔직해져보려고 한다고."
"하지만... 왜 굳이 지금..."
"그건......"
잠시 대답을 주저하던 카스미는, 천천히,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비가 와서 맞았을 때...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도 못했어. 모든 게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지워진 느낌으로. 그런데... 딱 하나가 생각이 나더라고."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카스미는, 잠시, 하지만 짧지 않게 느껴지는 시간을 두고 말을 이었다.
"아리사가 보고 싶었어."
그 말이, 짧은 한 마디가 가슴속에 몇 번이고 울렸다. 나를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준 것도 아니었는데, 그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깊은 의미인지도 알 수 없는데, 그저 내가 보고 싶었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비유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어렸을 적 추억도, 포피파의 모두와 함께한 시간도, 별의 고동도, 내가 꿈꾸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한 모든 반짝거림과 두근거림마저도 전부 머릿속에서 잠시나마 잊혀졌을 때, 나한테 남았던 건 아리사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어."
"카스미......"
"있잖아, 아리사. 나한테 아리사는... 이미 별, 아니,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
그 말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카스미에게 있어서, 별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냥 그렇다는 얘기였으니까... 나는 아리사한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아리사는... 나한테 그렇다는 거였어."
울 것만 같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해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딱한 말밖에 없었다.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냐. 넌, 북극성이랑 비슷하다고."
"그, 그랬었지."
"나한테 너는, 별이고 북극성이야."
그 의미는, 카스미라면 금방 알아차리겠지.
"그건 그렇고, 너 말이야."
"응...?"
"요즘, 나한테 '어떤 말'을 안 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어떤 말이라고 콕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카스미도 짐작가는 게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건... 말 못 했지...... 말할 자신이 없었거든."
"그런 거였냐."
그 대답을 듣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래서 그만 창가에 몸을 기댄 채 주저앉아버렸다.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정말......
정말... 다행이야......!
"아, 아리사!? 우, 울지 마!"
"나 지금 울고 있냐...?"
똑, 똑, 노크하듯 눈물이 손등에 떨어졌다.
왜 우는 거지?
잠깐만,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
"이제야 알았어..."
왜 그 말을 못 듣는 게 그렇게나 신경쓰이고 걱정되는 일이었는지.
"무서웠나봐... 네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닌지, 그래서 나한테 그 말을 안 해주는 게 아닌 건지..."
말해주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게 더 많으니까.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했다. 아니,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바랬다. 그건 그저 희망사항이었다. 내가 봐온 카스미는 적어도 자신의 표현을 부끄럽다고 주저하는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아리사, 나 말이야, 아직 자신은 없지만 아리사가 듣고 싶다면 몇 번이든 말해줄 수 있어."
"말해줘, 좋아한다고."
"당연히 널... 정말 좋아해, 아리사."
"......나도, 나도 너를, 널 정말로 좋아해, 카스미."
드디어 서로 좋아한다고 말했어. 드디어 좋아한다는 말에 좋아한다는 말로 대답했어.
큰일났다, 지금 너무 행복해.
"아리사, 혹시 듣고 싶은 말은 좋아해가 끝이었어?"
"나는...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여태까지 미처버릴 것 같았으니까.
"내가 진짜 해주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는데."
"뭐......?"
그럼 '좋아해'가 아니었던 거야......?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듯한 마음의 미궁에 혼자서 떨어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져서,
그 때, 어디선가 내게 따스함이 전해져왔다. 나를 감싼 그 온기가 어쩐지 너무 그리웠고, 너무 좋았다.
"아리사, 사랑해."
"사랑......해주는 거야?"
이런 바보같은 나라도?
솔직하지 못해서 소리나 지르는 나라도?
"응, 아리사를 사랑해."
"흐으... 흑..."
"아리사, 울 거야?"
"흐윽... 미안, 멈추지를 못하겠어..."
울지 않고 싶었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참고 억누르던 감정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좋아, 그러면 계속 울어도 괜찮아. 나는 웃는 아리사도 사랑하지만, 우는 아리사도 사랑하니까."
"흐윽...... 카스미... 나도, 나도 사랑한다고..."
똑바로, 제대로 말해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역시 나는 바보이고, 어설픈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을 확실하게 전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계속 전하다보면 언젠가 제대로 전할 수 있게 되겠지.
그러지 않더라도,
"카스미, 정말로 사랑해."
카스미는 어설픈 내 표현에서도, 내 진심을 느껴주겠지.
그러니 난 계속 전하기만 하면 된다.
언제까지나 계속, 사랑한다고.
- BanG! Shorts, Kasumi X Arisa 5. 나에서 너에게, 너에서 나에게, 두 갈래로 이어지는 반짝임
끝.
새로운 5편을 써봤어! 물론 예쁘게 써지지 않은 건 슬프지만...
이번 제목의 모티브는 두 개의 무지개 - 더블 레인보우. 카스미와 아리사의 상징색이 각각 빨강색과 보라색이니까 카스미(빨강)에서 아리사(보라)에게로, 아리사(보라)에서 카스미(빨강)에게로 이어지는 반짝이는 마음이 마치 무지개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비가 내리는 것도, 비가 그치고 나면 무지개가 떠오르니까 그런 거야!
그리고 더블 레인보우는 내가 포피파에 빠진 계기가 되기도 했어서, 제목을 쓰고 나니 왠지 여태까지 내가 카스아리를 파지 않았던 시간이 너무 아까우면서도, 그 시간마저 카스아리를 만나기 위한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후의 내가 어떨지는 지금의 내가 알 수 없겠지. 하지만, 나의 지금은 카스아리를 파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
잡담이 너무 길어졌네. 마지막이니까 글 관련된 얘기를 쓰는 게 좋았을 것 같기도 한데.
글 얘기를 하자면, 일단 글자 수가 4편보다 많이 길거나 하진 않고, 비슷비슷한 것 같아. 아무래도 저번에 4,000자였던 게 계획의 중반 전까지 쓴 거였는데도 원래 계획에 이런저런 파트가 추가된 분량이었어서 그런 것 같아!
그리고, 카스미가 샤워를 하며 흥얼거린 곡은 light delight. 가사 중에 '먼저 내가 용기를 낼 테니까'라는 느낌의 가사가 있어서, 카스미가 먼저 용기를 낼 거라는 암시를 넣고 싶었는데, 괜찮았을까? 어땠을지 궁금해.
그리고보니 4편의 마지막이 '그때는... 먼저 내가 용기를 내볼 테니까'였던 것도 그 가사에서 따온 거야. 생각해보면 4편의 마지막이 9th 싱글의 곡에서 따온 문장이고, 5편의 제목은 10th 싱글의 타이틀곡에서 따온 제목이 되네. 4편을 쓸 때는 이 노래의 가사를 쓰려고 의도한 거였지만, 5편의 제목은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더블 레인보우'에서 따와서 짓자라고 생각한 것뿐이라서, 이런 순서의 연결까지는 생각 못했던 일이었어.
그럼, 이걸로 내 얘기는 진짜 끝. 여태까지 내 글을 읽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고마워 할 예정이니까, 기억해둬.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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