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45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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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의 몸이 팔락이며 날고 있었다. 계단에 몇번이고 부딪혀 구르며 바닥에 놓여진 그 작은 몸은 번데기처럼 웅크려 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요란한 엠뷸런스의 소리, 다급한 목소리들, 그 사이로 땀에 젖은 엄마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여지던 멀어져가던 설희의 모습.
정신적인 충격 면에선 나 또한 정신을 제대로 부여잡지 못하고 있었다. 출장지에서 급히 돌아온 엄마와 함께 의사에게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바깥 바람을 쐬며 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백의의 가운을 걸친 사내는 설희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목소리를 전해왔고 지금은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을 잃었다는 설명을 마지막으로 나와 엄마를 안심시켜 주었다.
지난 14년간 단 한번도 설희를 돌보는 일에, 어엿한 맏이로 부모님이 없는 집을 지키는 일에, 학업에 열중하는 일에, 교우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일에, 모범생, 멋진 언니, 착한 딸을 연기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엄마는 나를 믿고 있었다.
" 죄송해요. 제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출장지에서 급히 돌아오신 거죠? 설희는 제가 돌볼테니 걱정 말고 돌아가 보세요. "
나에 대한 부모님의 믿음은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제서야 엄마는 제 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무슨 일 있으면 곧장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늦은 시간 택시를 잡는 것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설희는 1인실로 옮겨졌다. 잠에 빠진 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나에게서 등을 돌린 지난 3개월 동안의 설희를 떠올리며,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보아왔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혹여나 이 아이가 깨어날까 소리를 죽여 눈물을 흘렸다. 후회. 막연하게 차오르기만 하던 그것이 넘쳐 얼굴을 덮은 두 손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잠에 들었다.
매미의 구애가 요란한 계절. 날이 밝기 무섭게 울어대던 그 소리 탓에 다행이도 설희보다 먼저 눈을 뜰 수 있었다. 설희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날 발견한다면 분명히 나를 더 미워할테니까. 긴 긴 밤 담겨있던 후회는 그저 멋진 언니로써, 의지되는 언니로써 있기로 다짐하고 결심했다. 설희가 깨어나면 사과하고 모두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예전처럼 그저 사이좋은 자매가 되기로. 내가 이 아이에게 성욕을 품기 전으로.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근새근 잘도 잘던 아이의 입술이 우물거리며 눈을 떠 보였다. 나는 의자를 밀어내며 괜스레 몸을 뒤로 밀어냈다.
" .. 잘 잤어? "
나 조차도 놀란 나의 목소리는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 아이가 괜히 동요를 느끼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 으응.. "
입술을 우물거리던 아이는 맹한 소리를 내며 손등으로 제 눈가를 부벼대다간 내 모습을 두 눈동자 위로 그려내고 있었다.
" 언니는 누구야..? 여긴 어디고? "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던 소녀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펴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뭐라고?
" 어라 설화 언니랑 엄청 닮았네. 저기 언니.. 우리 언니 못봤어요? "
가슴이 뛰어왔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나를 미워하기 전의 설희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해버린, 기뻐해버린 내가 그 무엇보다 최악이었다.
급히 의사를 불러냈다. 버튼 하나에 1분도 걸리지 않고서 간호사 한 명이 먼저 모습을 보였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어젯밤 만난 백의의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그 사내는 설희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무어라 이야길 나누다간 요령있게 아이를 대하는 말투로 설희를 진정시키고 나를 인솔했다.
새하얀 벽지와 천장, 무늬가 거의 없는 대리석 바닥으로 꾸며진 청결한 방. 목재의 탁자 위로 뇌 모형 따위가 올려져 있는 진료실이었다. 그가 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해리성 기억상실, 쉽게 말해서 특정 기간의 기억이 날아간 상태라고 이야기 했다. 의외로 간단히 기억을 되찾는 경우도 있다며 나를 안심 시킨 그는 자세한 사정을 물어왔다.
그 설명을 듣고서 더 안심해버린 나는 자기 혐오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설희를 내몬 것도 모자라 위협에 빠트리고 그 책임을 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지자 안심하고 있는 꼴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그렇기에 이야기 했다. 전부 사실대로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설희의 기억을 되돌리는 것이 먼저였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로 각별한 자매였다고, 그것이 나의 실수로 지난 3개월 최악으로 치닫았다고, 그 탓에 말 다툼을 하던 중 설희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실려왔다는 사실을, 나의 추악한 모습만을 감추며 모두 이야기 했다.
다행일지 불행일지 백의의 사내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주고, 단 하나의 질책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되는 미소를 지어주곤 했다. 느긋하게 이야기 하던 사내는 짧은 기간동안 스트레스에 내몰린 것에 외부적 충격이 가해져 단기 기억상실이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분명 더 길고 복잡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내게는 끔찍한 기억에서 도망쳐 그 아이가 가장 행복했던 때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로 들려왔다.
" 설화 학생이 예전 처럼, 그리고 지금 처럼 쭉 평소대로 대해주는게 중요해요. 경과를 보고 약물이나 최면 치료를 병행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퇴원해도 되겠네요. 다음주에 진료 예약을 해드릴테니 동생이랑 같이 와요. 알겠죠? "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진료실을 떠나온 나는 그와 함께 설희에게 간단한 설명을 끝으로 함께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자신을 11살로 생각하고 있다는 설희는 정말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 어.. 그럼 언니가 설화 언니인 거에요..? "
똘망똘망한 눈을 어찌도 그렇게 귀엽게 뜨는지, 며칠 전 보았던 그 싸늘하고 경멸을 담은 시선이 괜스레 생각나곤 했다. 가슴이 조여왔다.
" 응. 설희도 지금은 중학생이야. 언니는 지금 고등학생이고. "
" 흐에.. "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간 방긋거리는 순박한 미소를 지어내던 설희는 나를 올려다보며 내 팔에 조금 더 몸을 감아 안겨왔다.
" 잠들기 전엔 언니가 중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중학생이래 이상해.. "
그 따스하고 포근한 온기를 느끼면서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관을 지나 이어진 복도 양 쪽으로 나 있던 방이 두개. 오른쪽 방이 설희가 원해서 새로히 꾸린 그 아이의 방이었고, 왼쪽의 방이 나와 설희가 오랫동안 써 왔던 방이었다. 그리고 당연스레 설희는 왼편의 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 어라! 내 침대가 없어졌어! "
훨씬 한적해진 방 안을 둘러보던 설희는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여 갸웃거리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 뭐야 뭐야, 언니 내 책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
" 설희가 중학생이 돼서 건너편 서고 있지? 거기가 이제 설희방이야. "
" 으엥?! 왜? "
못마땅 하다는 듯이 눈을 꿈뻑이던 설희는 아직 열려있던 방 문을 나서 건너편의 제 방으로 달려갔다. 으에엥? 하는 맹한 소리가 한차례 더 들려와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깐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적막이 울렸다.
" 짠! "
교복차림. 나에게 물려 받은 것은 아니였지만 내가 입었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자랑이라도 하듯이 내 앞에서 치맛자락을 팔락이며 미소짓는 설희는 신이나서 이야기 했다.
" 어때 어때? 교복이 걸려있어서 입어봤어. 딱 맞아! "
" 응. 잘 어울리네.. "
" 에헤헤.. 언니랑 똑같은 옷이다? 아! 언니는 이제 고등학생이지 .. "
즐겁다가도 시무룩해져선 또 금방 즐거워져선 바쁘게도 떠드는 설희는 무척이나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도가 찾아올 때면 불안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 배고프지? 금방 밥 해줄게. "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나랑 같이 밥을 먹으려고 하질 않아서 저녁식사를 제외하곤 거의 마주할 기회조차 없었기에 두명분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 조금은 새롭고 기쁜 것이었다. 쫄레쫄레 거실로 나와 두리번 거리던 설희는 금세 내 곁으로 걸음해 갸웃거리며 내 주변을 서성였다.
" 뭐 만들거야? 언니가 해주는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어 ── "
칭얼거리던 소리를 해대던 설희의 목소리에 저절로 흘러나온 작은 웃음소릴 보였다. 이 아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이었으니까. 오믈렛을 잘 만들지 못해서 몇번이고 실패해도 맛있게 먹어주던 아이를 위해 드디어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먹어주지 않던 오믈렛을 정성껏 완성시켰다.
" 와! 우와! 엄청 예쁘게 됐다! "
몽글거리는 계란 옷을 입은 접시를 눈에 담으며 그것을 가르던 설희는 신이 나서 두 접시를 들고 식탁으로 달려갔다. 저러다 꼭 넘어지고 그랬는데.
단란한 식사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얼마만일까, 두 팔을 테이블 위로 기대고 제 뺨을 꽃받침처럼 두 손으로 감싸 나를 바라보던 설희의 모습은. 빨리도 제 몫을 다 먹어버린 설희는 기특하게도 내 식사가 끝나기 전 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 다 먹었어? 더 줄까? "
" 으응, 아니야 배불러! "
" 그럼 뒷정리는 언니가 할테니까 방에서 쉬고 있어. "
" 지금도 쉬고 있는걸? 언니 보고 있으면 안 돼? "
" .. 마음대로 하렴. "
그 눈살에 못이겨 조금은 속도를 더해 그릇을 비워내고 싱크대에 돌려놓는 것 까지 줄곧 함께했다. 그것이 즐겁다는 듯이 한시도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장난을 쳐대는 설희의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생의 모습이었다. 정말 그 시절의 설희였다.
" 설희 먼저 씻고 나와. 어젠 병원에 있느라 못 씻었으니까. "
" 엥? 같이 안 씻어? "
정리를 끝마치고 소파에 몸을 뉘인채 이야기 했다. 그 목소리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설희는 내 팔을 잡아 당겼다.
" 언니랑 같이 씻는게 좋단 말이야! 빨리, 빨리이 - "
그 칭얼거림에, 기분좋은 감촉에, 그리운 감각에 결국 욕실로 끌려가 서로의 알몸을 드리웠다. 작기만 했던 설희의 새하얀 살갗이 모두 드러났고, 조금은 더 부푼 가슴이나 잘록해진 허리를 타고 흐르던 곡선이 자꾸만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이러면 안돼. 절대로. 절대 절대 안돼. 각오 했잖아. 결심 했잖아.
미온수를 서로에게 껴얹고선 간단히 몸을 씻어낸 뒤 욕조에 물을 채워 몸을 담구던 설희는 또 내 팔을 잡아 당겨댔다. 이제는 둘이서 들어가기엔 너무 좁아진 욕조였다.
" 둘이 들어가기엔 너무 좁지 않을까? "
" 아니야, 내가 조금 더 이렇게 .. 다리 이쪽으로 하고.. 으응 "
뇌가 타올라 재가 되고 있는 감각이었다. 다리를 엮고 서로 마주본채 찰랑이는 욕조의 안에서 몸을 섞고 있었다. 입욕제 따위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기에 찰랑이던 투명한 물결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봐선 안될 것들이 보여버릴 것 같았다.
몇분 되지도 않는 그 짧은 입욕 시간 속에서 영겁의 시같 같은 번뇌를 가져왔고 결국 목욕을 끝마치고 바깥으로 나온 나는 현기증마저 앓고 있었다. 겨우 서로의 방으로 돌아와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하늘은 보랏빛으로,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피로감이 짙었다. 그다지 한 것도 없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말이 아니였다. 졸음이 쏟아져 조금 이르지만 잠에 들려고 불을 껐다.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기 무섭게 굳게 닫힌 방문 사이로 점점 더 빛을 새어들게 하며 설희가 모습을 보였다.
" 언니 벌써 자? "
" 으응, 이제 자려고. 왜? "
쭈뼛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던 설희는 곧 기분이 좋아졌다는 듯이 웃어대며 걸음을 뒤로 돌렸다.
" 언니 불 켜도 돼? "
" 아, 응 켜도 되는데. "
장난이라도 치는걸까 불을 켜놓고 방을 빠져나간 설희는 건너방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를 내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모습을 보여왔다. 제 베개를 들고, 잠옷 차림으로 모습을 보인 아이를 눈에 담자마자 아찔한 감각이 밀려왔다.
" 언니랑 같이 자고 싶어! 아직 잠은 많이 안오지만 .. "
다시금 불을 끄고 내 옆으로 걸어온 설희는 자연스레 내 이불을 걷어내며 배게를 나란히 놓고선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언니는 졸려서 많이 놀아줄 수 없는데 - "
" 괜찮아! 언니랑 이야기 하다가 자고 싶어서 .. 아직 조금 이상한 기분이라 .. "
작은 혼란을 간직한 설희는 내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시선을 마주하고 웃어댔다. 따뜻했다. 부드러운 감촉이 곳곳에서 느껴졌고 좋은 향기가 나고 있었다. 언제나 처럼, 여느 때 처럼, 조금은 오랜만에 상냥한 손길로 설희의 머리를 쓰다듬고 토닥여주며 눈을 감았다.
" 매일 언니랑 같이 잘 수 있으면 좋을텐데 .. 왜 방이 나눠진거람.. "
" ... "
" 엄마 아빠는 언제 온대? "
" 아빠는 당분간 안 오실거야. 설희도 언니도 이제 다 컸으니까. 엄마도 2주 정도는 안 오실거고. "
" 흐응... 다시 방 합치고 싶은데.. 침대랑 책상은 무거워서 못 옮기니까... "
" .. 설희야 "
" 당분간만 언니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돼? 응? 응응? "
달콤한 제안, 악마의 속삭임, 이 결정이 내 결심을 갉아먹는 것이라고 해도 이건 내게 주어진 벌이니까.
" .. 어쩔 수 없네. 대신 방학이라고 계속 언니 방에만 있으면 안돼. 낮에는 제대로 방 정리도 하렴. 기억이 돌아오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
" 에헤헤 ── 응! 알겠어. 언니 좋아해. "
조금 더 내 품으로 파고들어서 내 목에, 등허리에 팔을 감아오며 뺨을 부벼대던 보드랍고 따스한 감각에 가슴이 아파오면서도 잠기운이 밀어닥쳐 나도 모른새 잠에 들고 말았다.
" .. 더워. "
열대야 탓일까 이불은 누가 걷어찬건지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설희의 잠옷은 다 걷어 올려져 배꼽이나 속옷을 조금 보이고 있었다. 땀에 젖어서도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아이의 팔을 조심스레 풀어내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어둠에 익숙해져 새벽녘의 희미한 빛에 그을린 설희의 살갗, 땀이 맺혀있던 배꼽. 봉긋한 가슴을 감싸고 있던 새하얀 천조각이 ───
결국 설희의 옷이나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 거실로 걸어 나왔다. 너무나도 예쁜 아이였다. 왜 이런 마음을 품게 되는 걸까. 좋은 자매로, 언제 까지고 사이좋게 있고 싶은데.
" 왜 .. 난 이런 걸까.. "
눈물이 흘러 나왔다. 소파에 몸을 뉘이고 무릎을 끌어안아 고개를 묻고선 흐느끼던 것이 어느새 다시 잠에 든 모양이었다.
피곤했다. 베란다의 햇살이 눈꺼풀을 두드리고 요란한 구애의 노랫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시간도 꽤 늦어선 9시나 되어 있었다. 방학이라고 그다지 늦잠을 자고 그러진 않았는데..
벌컥, 거실과 찬 복도를 나누던 문이 열리고 머리에 물기가 조금 남아있던 설희가 모습을 보여왔다.
" 앗! 언니 일어났네? 왜 거실에서 자고 있었어? "
" ... 네 잠버릇이 나쁜 탓이잖니. 더워서 깬 김에 거실에서 마저 잔 것 뿐이야. "
" 으앙! 미안해.. 어 으 .. 잠버릇은 어떻게 고치지..? "
" 푸흡.. 안 고쳐도 돼. 당분간 같이 자기로 약속 했으니까. 배고프지? 금방 밥 줄게. "
잠옷 차림으로 나른한 몸을 이끌어 부엌으로 향했다. 뒷편에서 들려오던 아싸!나 에헤헤..하는 설희의 목소리에 힘 입어 간단한 아침밥을 준비했다.
식탁을 하나 하나 채우며 식사 준비를 끝마치던 참에 주변에서 손을 거들던 설희가 먼저 마지막 접시를 놓고선 내게 다가왔다.
" 에헤헤 맛있겠다. 고마워 언니. "
쪽, 가볍게 마주친 부드러운 감각이 아찔하고 기분좋은 소리를 내며 내 입술을 지나쳐갔다. 놀라서 떨어트린 물컵 탓에 바닥이 젖어 급히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아댔다.
" 앗..! 설희 때문이야..? 미안해... "
" ... 그런거 아니야. 딴 생각 중이었어. "
가슴이 쿵쾅대고 있었다. 예정에도 없던 바닥 청소를 금세 끝마치고 마주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고요했다. 매미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앞에서 무어라 이야기 하던 설희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고동소리가 요란했다.
" .. 설희야. "
" 우음── 응? "
우물거리며 뺨을 부풀리던 아이의 목이 한차례 뽈록 튀어오르더니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댔다.
" 뽀뽀 하는거 , 이제 그만할까? "
" 에에엥?! "
우당탕, 손에 쥐고 있던 수저를 테이블에 내려놓고선 크게 뜬 눈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왜 .. 왜? "
" 설희도 이제 중학생이잖아. 입술에 뽀뽀하는 건 연인들끼리 하는 일이야. 설희도 이해할 수 있지? "
" 그치만 .. "
" 언니도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응? 이해해줄 수 있지? "
" .. 언니는 그럼 사귀고 있는 오빠가 있는 거야? "
눈썹을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 불안감이 담긴 물음에 잠시간 적막이 흘렀다.
" 그런건 아니지만 , 대답해야지? "
" ... 으응 알겠어.. "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식사를 재개했다. 내 수저가 몇번 작은 소리로 움직이자 내 눈치를 살피던 설희도 뒤늦게 식사를 시작했다. 미안해. 내가 참을 수 없어질까봐 그래. 정말 미안해 설희야.
조금은 갑작스러웠을까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설희는 식사가 끝난 뒤로 제 방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낮에는 착실히 각자의 방에서 있자고 했기 때문이겠지. 내 말이라곤 무조건 믿어주는 아이였으니까.
숙제나 공부따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간단한 점심식사를 해냈고 그 때 마저도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독서나 청소 따위를 하고서 할 일이 없어져 적당히 핸드폰을 두드리며 거실로 나와 TV를 보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설희도 모습을 보여왔다.
" 뭐 하고 있었어? "
" 방 구경이나 정리! 못보던 인형이 생겨서 재밌었어. "
" 푸흡.. 잘 됐네. 조금 이따 저녁 먹자. "
" 응! "
저녁 메뉴는 질리지도 않는 건지 이틀 연속으로 주문을 받은 오믈렛, 식사를 여느때와 같은 식사를 끝마치고 드디어 밀린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울리며 이틀분의 쌓인 그릇을 씻어내는 것은 조금 고생스런 일 이었다.
" 조금 오래 걸릴 것 같네. 설희 먼저 씻고 나와. "
" 응..? 같이 안 씻어? "
" 혼자 씻을 수 있잖아? 언니는 설거지 끝나면 씻을테니까. "
" 그 , 그럼 .. 설거지 도와줄게! "
" 도와줄게 뭐 있어. 이제 애도 아니잖아? "
" ...설희가 뭐 잘못 했어? "
손에 쥔 접시를 놓치고 말았다. 깨지진 않았지만 제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싱크대 안으로 떨어졌다. 아니야. 잘못은 내가 했어. 네가 불안해 하고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 ... 그럼 소파에 앉아서 기다릴래? 설거지는 정말 도와줄게 없어서 그래. 끝나면 같이 씻자. "
" ... 에헤헤 , 응! 알겠어. "
그제서야 활력을 찾은 설희는 가벼운 걸음으로 부엌에서 돌아섰고 곧 TV의 잔잔한 소리가 들려왔다.
설거지를 마무리 하고서 또 다시 욕실에서 서로의 살갗을 모두 드러내자 괜스레 불안하게 한 탓일까. 설희는 한층 더 달라붙어 왔다. 내 어깨를 붙잡고 욕실로 밀어대며 재촉해댔다.
" 언니 언니 , 나 머리 감겨줘 응? 등도 씻어줘 - "
" 왜이렇게 어리광쟁이가 됐지? 정말.. "
" 낮에 계속 혼자 심심했단 말이야.. 그래도 언니 말 잘 들었으니까 응? "
" 하아 .. 오늘 만이야. 알겠지? "
에헤헤 - 하는 얼빠진 웃음소릴 흘리며 대답을 대신한 설희는 장난스레 샤워기로 미온수를 서로의 몸에 마구 뿌려대며 촉촉히 젖은 머리나 새하얗게 드러난 등허리를 보이곤 했다. 새하얀 거품과의 경계선조차 잘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몸과 물에 젖어도 기분좋은 무게감이 부드럽게 손에 감겨오는 머리를 한껏 거품으로 감싸냈다.
설희가 남은 곳을 제 손으로 씻을동안 나도 간단히 몸을 씻어냈고 먼저 물을 채워 욕조에 들어선 설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언니 몸 되게 이쁘다 - "
머리의 거품을 다 씻어내고 있을 때 였다. 그 목소리에 놀라 괜스레 등을 보이며 내 몸을 가리곤 했다.
" 무, 무슨 소리야.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 "
같은 생각을 해버려 괜스레 가슴을 조이며 동요를 가득 품은 눈동자를 정처없이 휘저어댔다.
" 에헤헤 .. 언니 빨리 들어와 - "
욕조에서 다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내 자리를 만들어낸 설희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낯낯이 눈에 담아냈다. 눈꺼풀이 나도 모르게 크게 들어지고 그 모습을 샃샃이 살피다간 질끈 눈을 감았다.
" ... 언니는 먼저 나가있을게. "
결국 나는 도망쳤다. 인내심이 한계였다. 아쉬움을 표하듯 앙칼진 목소리로 날 부르던 설희를 뒤로 하고선 급히 욕실을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잠옷을 대충 걸치고선 머리를 다 말리지도 않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써 침대 속으로 숨어버렸다. 가슴이 요동치고 몸이 달아올라 안그래도 더운 날씨 탓에 땀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자꾸만 눈 앞에 설희의 그 사랑스런 모습이 아른거려서..
참을 수가 없어. 속옷 속으로 손을 파고들게 할 때 쯤 내 방 문이 열리고 설희가 다가왔다.
" 흐아~ 더워라 , 언니 에어컨 틀어도 돼? "
" ... 응 , 온도 너무 낮추지 마. 감기 걸리니까. "
같이 자기로 했었으니 당연한 일 이었다. 설희가 내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주는 이유도 내가 약속을 어긴적이 없기 때문일텐데. 이제와서 무를 순 없는 일이었다. 자위하고 싶어. 해소하고 싶어. 마음이 진정이 안돼.
" 설희야. "
" 응? "
" 언니 감기 걸린 것 같아서.. 당분간은 따로 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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