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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쉽게 사랑하고 쉽게 포기하는 아야가 보고 싶다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20.127) 2019.09.27 02:51:04
조회 824 추천 28 댓글 6
														
치사토와 단둘이 어딘가에 가본 날,
아야는 굉장히 들뜬 기분으로 치사토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돌아다니지만
치사토의 입에서 카논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구름에 앉아 햇볕을 즐기던 것 같은 기분이 순식간에 바스라들어

히나와 단둘이 영화를 보던 날에도,
아야는 처음에는 히나와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지만
히나의 입에서 자기 언니 이야기가 나오면 영화를 보며 느꼈던 희열과 감동마저 늪 깊은 곳에 가라앉는 것처럼 천천히 사라져버려


히나의 언니인 사요, 종종 카스미 등 다른 사람과 단둘이 나간 날,
아야는 상대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텐션이 하락해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겉으로 표현하지야 않지만

그리고 상대와 헤어져 돌아올 때면 생각하게 되지
그래, 이런 기분은 나만 가지고 있을 텐데, 내가 아무리 굉장한 사람이 된다 해도 상대에게는 그저 친한 친구까지밖에 될 수 없을 텐데
이미 나를 많이 아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러면서 스스로를 욕심이 너무 많은 이기적인 아이라고 여기는 아야
아이러니한 건, 그녀가 그런 사랑을 속삭여주길 바라는 이들은 이미 아야에게 푹 빠져 있다는 거지... 표현을 안할 뿐이야 어쩌면 못하는 걸지도 모르고
경쟁자가 좀 많아야지 상황이 난잡해지면, 가장 곤란한 건 당연하게도 그녀들이 사랑하는 아야거든



아야는 이런저런 평가에 휘둘리며 자존감이 낮아진 탓에
자연스레 그런 자신이라도 사랑해주는 사람을 늘 바라고 있어
하지만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이 여러 가지로 아야를 얽매고 있는 거야


누군가가 아야에게 자그마한 호의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야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품게 돼
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호의를 보이면, 같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정도인 존재니까, 라며 그 호감을 포기해

그러면 자기는 왜 그런 사소한 행동에도 마음을 빼앗기고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주길 바라는 걸까, 같은 자기혐오에 빠지며
자존감은 좀 더 늪 깊숙한 곳으로 한 발짝 다가가고, 아야는 다시금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여줄 사람을 바라게 되지
지독한 악순환이야


좀 더 재미있는 건, 아야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그녀가 호감을 품은 사람이나 그녀에게 호감을 품은 사람이 아닌 그저 방관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란 거야

카오루씨...
아야, 이 늦은 밤 내게는 어쩐 일이지?

그게... 저...
아아, 말하지 않아도 돼 어렴풋이 짐작이 가니까... 덧없군 그대와 같이 귀여운 아가씨가 홀로 추위에 떠는 모습은 정말 보기 안타까워

귀, 귀엽다는 말은... 딱히 귀엽지 않으니까...
아니! 아야, 너는 무척이나 귀여워 그것은 마치 구름이 자욱한 탓에 햇빛이 들지 않는 꽃밭의 소녀와 같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하하하, 즉 그런 거지


아야가 보기에 카오루는 언제나 주변에 카오루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사랑의 스페셜리스트 같은 느낌이야
그래서일까, 자신의 문제도 헤아려주지 않을까 싶어 고민을 털어놓게 된 것을 계기로 둘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생겼지

카오루는 어떤 고난을 겪어도 꺾이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길을 꿋꿋이 나아가려는 아야의 확고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
하지만 지금 아야는 자존감이 결여되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등, 상처투성이가 된 탓에 더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몸을 감싸느라 앞을 못 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어
안쓰럽지 지독한 악인이 아닌 이상 그 모습을 보고 못 본 척은 힘들 거야

카오루는 아야가 전화를 해오면 위로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자신감이 쌓일만한 이야기를 자주 해줘
가끔은 실없는 농담도 꺼내고 단순한 잡담을 하기도 하며 생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지 그뿐이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야가 호감을 가지겠지만 자신에게 늘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는 사람인걸 괜한 마음으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한편 카오루는 딱 선을 긋고 있어 자기가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면 아야의 상황이 더 복잡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거든

사실 카오루는 아야 주변에 그녀에게 호의를 품은 이들이 아야의 생각과 달리 많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당장 그녀의 친우인 치사토도 아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얼굴을 보여주거든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아야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아
아야가 스스로 깨닫고 선택해 해결해야 되는 일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자기 때문에 상황이 꼬이는 걸 원치 않는 거야

아야가 어떤 것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정신력을 가져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인지 실상은 굉장히 위태로운 상태야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정신적 토대로 삼으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 카오루도 이미 겪은 분기점이라고 해도 될 시기이니 자기가 섣불리 나섰다가 아야를 망치면, 그때 느낄 죄책감은 아무리 카오루라도 두려운 거야



그래서 쭉 방관자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어느 날 아야가 카오루에게도 단둘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거야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서 당황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지하게 받아들여

아야가 최근 좋아하게 된 캐릭터가 있는데
어느 이벤트에서 그 캐릭터 굿즈를 얻을 수 있다는 모양이야 근데 조건이 페어로 온 사람에게만 준다는 거지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가보지 않겠냐고 말할 셈이었대
하지만 혹시 이걸 데이트 같은 걸로 받아들일까봐, 그래서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계속 고민하다 카오루에게 부탁한 거야


카오루에게는 그저 간단히 해볼만한 권유에 지나지 않는 말인데 아야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슬슬 전화 통화로 해주는 격려나 위로는 별 효과가 없게 됐다는 걸 깨달아 이젠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두 사람이 단둘이 만나게 되는데,
아야는 특별하게 뭔가를 준비하지 않았어
그냥 페어로 받는 굿즈만 얻으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카오루는 그 앞뒤를 꽉꽉 채운 일정으로 아야를 에스코트해


신기하게도 아야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어
카오루의 리드는 정말 근사해 아야가 처음 가보는 곳도 해보는 것도 카오루가 앞장서서 선보이면 걱정없이 따라가는 거지

심지어 슬슬 밤이 되어 헤어지기 직전에, 카오루는 아야와 같이 시내를 거닐 때 아야가 눈여겨보던 것을 몰래 사놓고 선물하기까지 해
마치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근사한 데이트 같아

아야는 카오루의 그 박력 있으면서도 달콤한 모습에 푹 빠졌어
그리고 무심코 카오루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묻는데


카오루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는 확신이 있고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그리고 나약한 자신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머 시무룩해하는 아야를 상냥하게 다그치며 말을 이어가
셰익스피어가 말하길,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임을 아는 것이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게 되는 첫 번째 단추라고

스스로의 나약함을 자각한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려 해
그 과정에는 두 가지 길이 있어 자신의 장점을 더욱 이끌어내는 것과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
어느 한쪽이 정답인 것은 아니고, 각자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길을 택하면 돼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그 길을 걷는 거야
그 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자신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게 돼

거기에 이르면 그 다음은 걱정할 필요 없어
이미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는지 알게 됐으니
비록 힘든 걸음이 되더라도 그 걸음은 확신에 찬 굳센 걸음일 거라고

그러면서 카오루가 가장 중요한 장면에 선보이는 주인공의 미소를 띠며 말하는 거야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러지 않은 척 숨길 필요도 없다고 자신을 믿고 한번 주변에 도움을 청해보라고
아야는 평소에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니, 분명 주변도 아야가 노력하는 만큼 아야에게 보답해줄 거라면서

카오루...씨... 그거 정말로 셰익스피어가 말한 거야?
......하하하, 맹점을 찔렸군 하지만 위대한 사람의 말에서 위대한 말만 남았다 해도 그 사람은 실제로 그보다 많은 말을 했겠지 즉 그런 거야



그리고 집에 돌아온 아야,
아야는 카오루와 헤어지기 직전 그녀가 해준 격려를 곱씹어봐
뭔가 아야가 지금껏 들어왔던 여러 격려와 다르게 아야의 가슴을 정말 뜨겁게 달궈 지금까지도 그 온기가 남아 있어


아야는 슬며시 맺히는 눈물을 닦아내고 역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느끼며 오늘 있었던 일을 개인 sns에 올리려는데

오늘처럼 카오루씨랑 단둘이 놀러나가는 일이 또 있었으면,
아야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한 건가 싶어 화들짝 놀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부담을 주지 말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지만 사람 마음은 수레바퀴 같은 거라서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쉽사리 멈추기 힘든데
그리고 지금, 아야가 무심코 올린 sns를 그녀의 주변사람들이 봤어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곳에 경사가 생긴 거야
이제 본인의 의지로는 결코 멈출 수 없게 됐지
수레바퀴가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어디에 도달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야




아야는 강철멘탈이라 여러모로 꺾이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만큼 겉과 달리 내면은 상처투성이임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많아
언젠가 이러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어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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