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모카리사]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0.16 22:56:43
조회 1225 추천 48 댓글 11
														

 우리네 인생사엔 타이밍이란 것이 있다. 


 라면 스프를 넣는 타이밍서부터, 순간의 판단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스포츠의 결과, 크게는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 째 바꿀 지도 모를 그러한 타이밍이.   


 그러나 우리는 최적의 타이밍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기회를 잡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타이밍을 모두 놓쳐가면서, 혹은 빠르게 잡아가면서 살아간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딱 걸렸을 때, 타야 할 버스가 휑하니 지나가버리는 것처럼 허망한 게 또 없다. 검은 아스팔트를 헤치며 떠나가는 버스. 그리고 닭 쫓던 개 지붕 쫓아보듯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몇 명.


 어느 날 본 옛날 영화에선 그 위풍당당한 뒷모습을 이렇게 비유했었다.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라며, 그렇게. 

  

 누군가 볼을 쿡, 쿡 찌르는 느낌이 들어, 모카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나 다시 쏟아드는 잠기운을 참지 못하고, 그녀는 다시 몸을 벽 쪽으로 틀었다. 모처럼의 휴일인데 좀처럼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모카의 방에 들어온 누군가는, 이번에는 침대를 침범하면서까지 모카의 잠을 방해했다. 강의도 없는 날, 알바도 없는 날, 게다가 애프터 글로우의 연습도 없는 날인데. 


 “모카 쨩은 조금만 더 꿈나라를 여행하고 싶답니다, 그러니 모카 쨩을 그만 찾아주세요.”


 엄마이겠거니 싶어, 그렇게 말한 모카는 이불을 끌어당겨 제 얼굴까지 덮었다. 창문을 닫고 자서 그런지 이불에는 땀이 찼고, 땀이 차니 살짝 퀴퀴한 체취가 배어 있었다. 그걸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침대에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의 무게감에 흠칫 떨었다. 


 행여나 젖어있는 베갯잇을 들킬까봐, 모카는 베개를 저 쪽으로 잡아당기며 황급히 말했다.


 “엄마 조금 이따 알아서 일어날 테니까, 그만...”


 “아오바! 손님 왔으니까, 지금 당장 일어나!”


 그러나 엄마의 목소리는 지척에서가 아닌, 조금 더 먼 곳에서 들려왔다. 모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롱 옆서 쯧쯧, 하며 혀를 차는 엄마의 모습이 비껴 나갔다. 


 그럼 저의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 의지와 다르게 뻗대어버리는 고개를 돌려 모카는 바라보았다.


 “안녕.”


 여유로운 모습으로, 조금 이르다 싶은 시간에 정말 풀 착장을 하시고 오셨다. 괜히 머리가 아파져, 모카는 다시 침대에 털썩 누웠다. 


 “리사 씨.”


 이름을 읊는 것과 동시에, 눈물도 비가 온 것 마냥 웅덩이처럼 고여 버렸다. 주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벌써 고장나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모카는 또 우는구나.”


 리사는 안타까운, 그러나 그러한 감정을 대놓고 보여주고 싶진 않은지 억지로 미소를 유지해보였다. 모카는 리사의 그런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살짝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다구요.”


 제 아무리 푹 꺼진 아스팔트 웅덩이라도, 비가 한 바가지 쏟아지면 결국엔 넘치고야 만다. 모카의 잔뜩 부은 눈두덩이도 그것과 마찬가지여서, 그녀의 바가지는 눈물을 줄줄 새어나오게 끔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환하게 웃어보려 했고, 심지어는 환하게 웃을 수도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그녀는 표정을 잃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빨갛게 부어버린 눈가와 자국은 어쩔 수 없었지만, 표정만큼은 지켜낼 수 있었다.  


 결국 모카를 바라보던 리사의 표정도 한껏 어두워졌다. 아프게 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내가 더 아프게 한 꼴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모카는 그게, 마음의 병이라 했다. 끌어안고 참느라 생겨버린, 응어리 같은 게 속에서 얹혀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아주 서글프지도 않게, 그렇다고 격정적이지도 않게, 그저 담담히, 그녀는.


 “우리, 잠깐 외출이라도 할까? 즐겁게.”


 리사는 모카의 손을 잡았다. 슬쩍 빼진 않는 게, 그래도 저를 믿어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외출까지만 말했어도 될 것을, 리사는 일부러 즐겁게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즐겁게요?”


 그러나 그게 가당키나 하냐는 듯, 모카는 헛웃음을 흘렸다. 손에는 어느새 손수건이 들려 있었고, 곧바로 흘러내리는 눈물자국들을 그것으로 모두 지워냈다. 


 “응.”


 살짝 긴장이 됐는지, 리사는 그 한 마디를 하는데도 힘겨워했다. 역시 괜히 붙인 사족이었을까. 그렇게 생각이 엇나가려는 찰나. 


 “그러죠 뭐.”


 리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던 모카는, 의외로 리사의 권유에 흔쾌히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순식간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리사의 표정은 급격히 해피해졌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


 “그러니까 리사 씨, 초절정 귀여운 모카 쨩이 옷 갈아입기 위해 잠시만 나가주세요.” 


 땀에 젖은 셔츠 단추를 모카는 하나, 하나씩 풀어갔다. 일단 이렇게 무례한 차림으로 계속 있을 순 없으니 좀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별로 상관없는데? 애초에 모카 알몸도 다 봤고.”


 “아하하, 그런 얘기는 집에선 자제하죠.”


 침대에서 일어나며 한 리사의 말은 너무나도 능글스러웠고, 모카도 어설피 웃으며 그것에 대해 답을 주었다. 


 솔직히,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럼, 불청객은 거실에서 점수나 좀 따고 있어볼까.”


 조금은 섭섭한 마음을 담고, 그걸 툴툴 털어내려는 듯 리사는 거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던 모카도 서랍서 꺼낸 속옷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마음대로 하세요.”


 모카의 목소리가 데구르르, 굴러 오래 된 원목 바닥 틈으로 사라졌고, 곧 그녀 또한 저의 방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깊숙이 들어간 것인지, 리사의 눈길은 느껴지지 않았다. 


 치약 묻힌 칫솔을 물고, 힘을 주지도 않은 채 질겅질겅 씹어댔다.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무기력한 요즘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한 자신이 더욱 꼴사나워 보이는 요즈음이기도 하다. 


 괜스레 컵만 만지작거리던 모카는 이내 거울 속 제 얼굴로 물을 뿌려버렸다. 물줄기가 갈라버린 얼굴은, 이내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흘러내리고야 만다. 마치 눈물처럼. 


 그래도 꼴사나운 얼굴이 조금은 가려지는 것 같아 조금 기분이 편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워, 양치질과는 어울리지 않는 실소가 입 꼬리로 연하게 걸렸다. 


 두 차례의 뻘짓이 있고난 후에야, 모카는 입가에서 놀고 있던 칫솔을 저의 손에 잡았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 더 머뭇거릴 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카의 늘어진 기분은 좀처럼 상승되지 않는다. 


 그녀가 정신병 진단을 받은 지, 벌써 세 달째다.




 춘래불사춘, 분명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른바 꽃샘추위다. 그러나 이러한 날씨는 아오바 모카가 가장 사랑하는 날씨이기도 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후드티를 마음껏 입을 수 있는 날씨였으니까. 


 나그네의 두툼한 외투를 벗긴 것은, 북풍이 아니라 태양이었으니까. 


 “춥네...”


 그러나 얇고 다니는 이마이 리사에겐, 그저 추운 날씨일 뿐이다.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싸늘한 바람에, 리사는 흠칫 몸을 떨었다.


 버스 정류장엔 평소와 달리 사람이 없었다. 하긴 날씨가 영하권을 맴돌고, 더군다나 오늘은 휴일이니 그럴 만도 했다. 상황판을 보니 버스가 오기까지 5분이나 남아 있었다. 


 “외출 얘기를 꺼내신 분은 리사 씨입니다~?”


 “알고 있으니 그만 강조해~”


 모카의 타박 섞인 목소리에, 머쓱한 리사도 모카에게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모카의 나른한 목소리처럼, 날씨도 나른나른해야 외출할 맛도 나는데. 요즈음의 날씨는 아직도 동장군이 칼을 시퍼렇게 빼들고 있었다. 그래도 좀 있으면 건물 안으로 들어갈 테니, 그때까지만 좀 참아야지.


 리사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제 옆에 있는 모카를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녀, 몰래 훔쳐보기엔 지금이 딱 좋다. 후드를 바짝 눌러 썼지만, 동글동글한 얼굴선만큼은 채 가려지지 않았다. 유키나와 닮은 듯, 닮지 않은 회색 머리카락. 


 감정에 치여서 일까, 그녀는 머리가 꽤나 길어졌다.


 “얼굴 천재 모카 쨩, 관람료는 1만엔 되시겠습니다~”


 어느 순간, 스마트폰을 후드 티 주머니에 넣은 모카. 그녀의 말이 리사의 못된 양심을 쿡 찔렀다. 그 덕에 그녀의 목소리도 살짝 떨려왔다. 어쩌면 그저 추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비싸, 오늘 예산을 한참 상회하는 걸?”


 “그러면 렌탈 요금이라고 생각하세요~”


 조금이나마 기분 좋게 웃어 보이는 모카. 그녀의 입 꼬리에 담긴 즐거움이 리사의 마음도 훈훈하게 했다. 그녀가... 울지 말고 조금만 더 웃었으면 좋겠다, 그게 리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 데이트하기 좋은 날씨네.”


 그래서, 그녀는 그런 말을 했다. 


 모카와 리사가 몇 마디를 더 나눴을 때, 드디어 버스는 도착했다. 끼익, 소리를 내면서, 그리고 열감이 느껴지는 기름 냄새를 내면서 말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일어났다.


 “가요.”


 모카는 버스를 먼저 탔다. 그러면서 뒤에 남아 있던 리사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모카의 입장에선 그저 아무 뜻 없이 남긴 말일 것이다. 분명 별것 아닌 단 한 마디였을 터인데. 그러나 집 밖으로 나올 때부터 계속 삐딱선을 타던 모카여서 그랬는지. 


 “응.”


 모카의 그 말이, 리사는 너무나도 기뻤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두 사람의 모교인 하네오카 여학원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쇼핑몰이었다. 문구점과 액세서리 공방. 그리고 여러 브랜드를 취급하는 의류점도 많아서, 이 부근의 사람들이 자주 찾는 쇼핑의 메카다. 


 그러나 오늘 두 사람의 목적지는 조금 달랐다. 


 “많이 기다렸지?”


 “많이 기다렸습니다아~”


 의례적으로 한 말에, 모카는 진심을 내비췄다. 그게 불만스러워 리사는 입술을 내밀었지만, 모카는 건네주는 것을 받고 짐짓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모카는 손에 받아든 영화표를 보았다. 오늘을 위해 미리 예매를 한 건가. 


 “리사 씨, 표값은...”


 “됐어~ 얼굴 천재 모카 쨩 렌탈 값이니까.”


 최근에 알게 된 또 다른 일면.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의외로 리사 씨는 제법 뒤끝이 있다. 대부분의 뒤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이 되지만, 이렇게 말 하나, 하나 마음에 담아두는 것에서 모카는 그리 느꼈다. 


 “영화, 재밌을까요?”


 표를 살며시 접어, 모카는 청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입장 시간이 그리 멀진 않았다. 그렇다고 가까운 것도 아니어서, 모카는 좀처럼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히나가 재밌다고 한 영화였으니까, 진짜 재밌을 거야.”

 

 “히나 씨요?”


 갑자기 훅, 하고 지나간 이름에 모카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러자 왜 그러냐는 듯, 리사는 모카의 물음에 눈을 크게 떠 침묵으로 답했다. 그 모습이 토끼 같아, 조금 귀엽다.


 “히나 씨 감성에 재밌다라면, 뭔가 이상한 게 나올 것 같아서요.”


 모카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말 꼬리에 덧붙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리사도 히나의 트레이드마크가 갑작스레 떠올랐다. 눈빛이 반짝거리면서, 룽하고 왔다는 그녀의 말이. 


 



 세상엔 정말 많은 영화가 있다. 멜로, 코미디, 블록버스터, 스릴러 이외 기타등등, 참 많은 장르 영화도 있다. 그 외에 상업 영화라든지, 예술 영화라든지 어떠한 기준으로 틀을 두 개로 나눠버린 경우도 있는데, 그건 일단 차치하고.


 요즘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작게는 입방아부터, 크게는 시상식까지 평가의 기준이 존재한다. 그 기준을 틈으로 영화들은 평작부터 수작이나 명작, 그리고 졸작, 범작 망작까지 또 다시 궤를 달리하게 된다. 


 아무튼 그러니까 내 말은, 단순히 사람 말만 듣고 영화를 보면 안 된다는 거다. 재밌다고 해서 간 건데, 재미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장르까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이 킬링 포인트다. 


 지인의 말론 진짜 배꼽 빠지게 웃기다고 했는데, 쉴 새 없이 웃게 된다고 그랬었는데... 아니, 웃긴 장면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게 맘 편히 웃을 영화는 아니지 않나.


 듣기로는 분명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막상 보고 나오니 신파영화였다.


 “훌쩍.”


 코 찔찔 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리사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비가 온 마냥 흐르는 모카의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주었다. 환한 곳에서 보니, 극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보다 더욱 엉망이 된 모카의 얼굴에, 리사의 죄책감이 조금 더 해졌다.


 “미안.”


 웃게 해주고 싶어서 나온 건데, 괜한 짓을 한 걸까. 초반엔 웃긴 장면도 많고 재밌었는데, 후반부부터 갑자기 전개가 이상해졌다.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전개였지만, 결국 억지 신파로 나간 게 모카의 눈물샘을 자극한 듯 했다.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저런 말을 한다. 이럴 때마다 리사는 모카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평소에는 꾹 참고 있긴 했지만, 그녀의 눈물은 이미 병적이어서 그게 어떻게 흘러나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리사는 답답했지만, 그게 모카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조금 보편적인 감성에 의지해, 그녀를 지탱하고 싶을 뿐이었다. 


 “자, 펑펑 울었으니까! 우리 슬슬 단 거 먹으러 가자!”


 슬플 땐 눈물을 흘린다는, 그러한 감성에.



 

 단 것이란 말에 하자와 커피점으로 갈 줄 알았건만, 그들은 전철을 타고 조금 더 먼 곳으로 갔다. 괜찮은 가게가 생겼다는 리사의 말에 모카가 혹했기 때문이다. 


 “이거, 맛있다.”


 과일 타르트를 포크로 찍어서 먹은 리사의 감상이었다.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풍미가 리사의 입안에 감돌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모카가 치즈 케이크를 살며시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괜찮네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 마냥 단 게 아니라 다른 맛도 있어 마음에 들었다. 맛이 괜찮았는지, 리사는 이내 다시 칼을 들어 타르트를 먹기 좋게 썰었다. 


 “표 값은 내주셨으니, 이번에는 제가 살게요~”  


 끝 맛은 또 짜다. 다른 케이크도 아니고 치즈 케이크니까,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냐, 아냐. 내가 내야지.”


 “내주게 해주세요.”


 한사코 내준다는 것을 모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모카답지 않은 모습에, 리사의 눈은 다시 그녀의 눈가로 향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모카의 입술로 향했다. 


 참고 싶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입술에.


 “또 눈물 나?”


 리사는 걱정스레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카의 눈물샘은 주책도 없는 것인지 또 다시 빵 터져버렸다. 볼이 붉어진 만큼, 그녀의 눈가도 붉다.  


 “그... 너무 달아서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덜어내는 모카. 건네주는 손수건을 마다하고, 탁자 한 구석에 놓여 있던 냅킨으로 눈가를 찍어내는 모카. 그리고 다시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모카. 눈빛 한 구석이 서늘하지만, 분명 흔들리고 있는... 모카. 


 “그냥 하자와 커피점으로 가셔도 괜찮은데.”


 모카는 좀 더 진심을 드러냈다. 그늘 속에서 나오려, 아등바등하면서 조금 더 강하게 마음을 드러냈다. 오자고 해서 왔지만, 솔직히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집과 조금 더 멀어지는 것도 그렇고, 이 날씨에 지하철을 타 더 멀리 올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리사도 모카도 모험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리사가 하자와 커피점이 아닌, 이 커피점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별로 가고 싶을 것 같지 않아서.”


 1차원적인 이유였지만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그저 모카가 껄끄러울 것 같았기 때문에, 리사는 하자와 커피점을 가지 않았다. 철저히 모카를 배려하기 위했던, 그랬던 리사의 마음이었다. 


 “그런가요.”


 그러나 모카는 리사의 대답에 어떠한 의견도 주지 않았다. 저는 괜찮다라거나, 멋대로 생각하지 말라거나, 그 어떤 말도 그녀는 하지 않았다. 조금 불편해진 리사의 나이프도 다시 움직였다. 


 칼과 접시가 맞대어지는,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어 붙이려고 했던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괜스레 타르트를 쿡 찔러보기도 하고, 죄없는 치즈 케이크만 쉴 틈 없이 서걱 잘라버리는, 불편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서 감돌았다. 


 이러려고 나온 게 아닌데, 실수에 실수를 연발해버리고 말았다. 좀처럼 되지 않는 감정 환기에 리사는 안간힘을 써 묘수를 짜내려 했다. 


 “다 드셨으면 슬슬...”


 “이거 다 먹으면 우리 노래방이라도 갈까?”


 끝내려고 했던 모카의 말을, 더 급했던 리사의 목소리가 끊어버렸다. 모카와 리사의 동공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한 쪽은 힘이 없이 축 늘어졌고, 한 쪽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둘이서요?”


 “응응, 둘이서.”


 모카의 말에 리사는 고개를 두 번 씩이나 끄덕이며 답했다. 분명 생긴 건 고양이 상인데, 요즘에는 대형견을 더 떠올리게 하는 리사 씨다. 성격이 모난 곳도 없고 마냥 착해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알았어요.”


 “응?”


 모카의 답에, 리사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지 살짝 놀라며 반문했다. 다시 말해보라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덤이었다.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생각보다 더욱 좋아해서 모카의 기분도 나아졌다. 


 “갈게요, 노래방.”


 모카는 다시 웃었고, 리사도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한껏 몰아쉬었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잔뜩 경직됐던 분위기도 다시 살살 풀려갔다. 


 훌쩍 훌쩍 우는 것보단, 역시 호호 하하 웃는 게 보기 좋다. 왜,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고, 보기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있지, 난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


 “응, 가자.” 


 그러니 너는 울지 말고 웃었으면 해. 




 노래방으로 바로 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동네까지 온 터라 노래방이 어디 있는지 쉬이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노래방은 주변에 꽤 있었지만, 합리적인 가격인지 아닌지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그냥 다시 동네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스마트폰으로 검색중인 리사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모카가 한 마디 건넸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는데, 역시 노래방 같은 편의시설은 가던 곳으로 가는 게 옳다. 


 “잠깐 조금만 더 찾아볼게.”


 그러나 리사는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검지를 놀려 검색을 계속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 포기할 수 없었다. 노을 저물 때 서쪽 하늘이 가장 밝듯이, 다시 동네 쪽으로 돌아가면 어둠을 틈 타 십중팔구 이대로 헤어질 확률이 더 많았다. 그렇게 애매한 만남은 별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 찾았...”


 “리사?”


 가격이 합당한 노래방의 위치를 막 찾아내었을 때, 듣고 싶었던 목소리면서 역설적이게도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리사의 귀를 때렸다. 익숙하면서도 계속 들으면 울 것 같은 그 목소리에, 리사는 몸을 틀어 저를 부른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키나...”


 숨기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겨울용 롱 코트를 걸친 유키나. 냉정하다고 일컬어지는 그녀에게도 요즘의 추위는 버티기 힘든 모양이다. 


 “이쪽은 아오바씨네.”


 “안녕하세요.”


 모카를 알아본 유키나도, 후드를 푹 눌러 쓴 채 모르는 척을 하려 했던 모카도 서로에게 살짝 목례를 했다. 모카도 유키나도 서로에게 마냥 좋은 감정만 있는 건 아니어서, 꽤나 어색한 분위기가 세 사람을 감돌았다. 


 “여긴 무슨 일로 왔어?”


 그 분위기를 애써 풀어보려, 리사는 유키나에게 이곳까지 찾아 온 이유를 물어보았다. 굳이 여기까지, 이런 곳에서 만날 이유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너는 도대체 왜. 


 “아.”


 그러나 유키나는 리사의 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그러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에게도 이곳까지 온 이유가 있었다. 더불어 그녀들에게는, 조금 잔인한 이유이기도 했다.  


 “괜찮은 게 있다고 해서.”


 유키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 손으로 다 가려질 만큼 작은 것들을 손바닥에 올린 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의 시선 또한 유키나의 손바닥으로 향했다. 


 미나토 유키나는 보컬리스트다. 기타조차 손에 들지 않는 정통파 보컬리스트. 그러한 그녀의 손에는 낯선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작지만 존재감은 확실한 피크 두 개였다. 나무를 소재로 쓴 피크와 플라스틱을 소재로 쓴 피크. 그러나 플라스틱에는 회사명이 명백히 보였고, 모카 또한 그 회사의 이름을 잘 알았다.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손에 잘 안 맞는 피크를, 억지로 맞게끔 노력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 회사의 피크로 같이 애프터 글로우의 수많은 곡들을 연주했었으니까. 


 “날씨가 쌀쌀해, 그런 차림으로 너무 밖에 오래 있지 마.”


 “아, 알았어.”


 피크들을 다시 코트 주머니 안으로 넣은 유키나가 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늘한 것 같으면서도, 저를 향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목소리와 눈동자는 언제나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이제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모양은 분명 똑같을 터인데, 그 얄궂은 눈빛은 이제 온전히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아오바 씨도....”


 한 차례 씁쓸한 감정을 남긴 유키나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벌벌 떨고 있는 모카에게로 향했다. 모카는 일부러 살짝 고개를 숙였다. 후드에 가려 저를 볼 수 없게끔, 그리고 저가 당신을 피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랬다. 


 하지만 유키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더욱 기분이 나빴다. 이런 식으로 숨는 것 보다는, 차라리 얼굴을 마주한 채 피하는 게 그녀의 기분에 훨씬 나았다. 


 “란이 걱정하니 자주 연락하도록 해.”


 그래서 그녀는 곧 바로 비수를 꽂아 넣었다. 배려 능력치를 모두 소꿉친구에게 몰아주기라도 한 것인지, 여전히 배려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유키나는 그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저한테 배려 없는 사람에게는, 마땅한 배려 없는 언행으로 되갚아주는 게 미나토 유키나란 사람이었다.


 “갈게.”


 저가 할 말은 끝난 것인지, 유키나는 저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그걸 잡고 싶었지만 잡을 수도 없어서, 리사는 뻗어 나가려는 손을 꾹 참고 간신히 흔들어보였다.


 “아, 응! 다음에 봐... 유키나.”


 유키나라는 이름이 리사의 혀끝을 툭, 스치고 지나갔다. 예전에는 마냥 좋다고 불렀는데, 요즘엔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딘가 허전함이 조금씩 느껴진다.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각이라고 불러야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리사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모카를 바라보았을 때엔, 이미 그녀의 얼굴에선 홍수가 빵 터지고 말았다. 정말 대충 헤집어도 크게 아플 것을, 너무 헤집어놓아 피가 철철 흐르는 수준이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어째 모카의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한 눈으로 보아도 뻔히 보일 지경인데. 고장 난 로봇처럼, 괜찮다는 말밖에 못하는 앵무새처럼, 모카는 계속해서 괜찮다며 옹알거리길 반복했다.


 모카는 흔들거리는 종이인형처럼 비틀비틀 전봇대로 다가갔다. 그녀는 홀린 듯이 저를 지탱해주던 전봇대를 바라보더니.


 “모카?!”


 이윽고 전봇대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이,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그녀답지 않은 욕설과 함께, 그녀답지 않은 발길질은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혹시나 발이 다칠까봐, 모카는 발바닥으로 계속해서 전봇대를 차댔다. 그 때문인지 모카의 발차기는 계속해서 엉성하게 나갔지만, 그녀의 그 모습을 리사는 울상이 된 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의 목적지가 노래방에서, 조금 더 허심탄회한 곳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잡스러운 목소리와 라이터를 켜는 소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뚝배기에 얹어진 계란찜이 내는 소리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정확히는 알 수 없었던 소리들이 뒤섞여서 들려왔다. 그 소리들보다 더욱 귀에 띄는, 김이 서린 맥주거품 소리에 리사는 잔을 들었다. 그리고 건배할 틈도 주지 않고, 그냥 목으로 넘겨버렸다.

 

 “걔들, 진짜... 너무하네.”


 달달한 목 넘김과 동시에, 리사는 누군가들을 성토했다. 걔라고 표현하지 않고, 일부로 걔들이라고 표현했다. 담배를 입에 물었던 모카도 재떨이에 그것을 비벼 끄고, 리사에게 잔을 받았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서, 두 사람은 충동적으로 술집을 찾아왔다. 아무 곳이나 들어왔더니, 잘 알지도 못한 곳엔 사람만 더럽게 많았다. 그 중 가장 구석 자리를 그녀들은 잡았다.


 모카는 아직도 눈물이 그치지 않아서, 연이어 코를 훌쩍거렸다. 유키나가 남기고 간 말이 그녀에겐 너무나도 상처가 되었나보다. 그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스피커에선 브라스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술로 잔 채우는 소리를 막아주었다. 것도 모자라 깨질 듯 건배하는 소리까지 막아주었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뭘 잘못한 건 아니지 않아?”


 짠-!


 “잘못한 건 아니죠. 그냥, 그냥 때를 놓쳤지.”


 짠-!


 “정신 차리고 보니까 지들끼리 짝짜꿍하고 있는 걸 으쯔런가야.”


 짠-!


 “그 말이 딱 맞아요. 진짜, 정신 차리고 보니까 북치고 장구치고 지드르기리.”


 짠-!


 “그... 요키나 씨도 느무해요. 리샤 씨가 얼마나 응? 제가 그거 잘 알잔아요?”


 짠-! 


 “마자, 내가 무슨 여키나를 돌보는 샤람이야? 아니쟈나? 란도 진짜 너무해 어뜨케 모카한테, 응? 우리 모카쨩한테 그럴 수가 ㅇㅣ써?”


 짠-!


 “규런데 이런 건 어쩔 수 읎나? 그르켓지? 못 되돌리게찌?”


 짠-!


 “머 되도르기엔 느찌 않았나 시프요? 아마도?”


 짠-! 짠-! 짠-! 짠-! 짠-! 하고, 몇 번의 반복이 흘렀다. 


 “아,,,,,,,,,,, 토할거가타.”


 “모, 모카쟝은 리얼 아직, 레알. 완전 멀쩡.”


 “아냐, 아냐아아아아냐아, 지금 모카쨩 완전 취했는걸.”


 이라고 말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취했다. 입 꼬리는 헤실헤실 풀어졌고, 볼도 모자라 귓불까지 빨개졌다. 처음에는 천천히 한 잔 씩 쳐 마시다가, 점점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듯 ‘쳐’ 마셔댔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안 취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계, 계사는 내가 해야지.”


 “아니, 머 다 하시려고 해여! 여기셔는 후배가 좀 선배 대접 하게, 네?”


 비틀비틀 거리면서도 두 사람은 카드를 내밀었다. 사장님은 어쩔 줄 몰라하다가, 한 명의 카드를 그어버렸다. 서로 니가 계산을 했네, 내가 계산을 했네. 어쩌면서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조금 싸늘해진 밤공기가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


 “집엔 찾아갈 수 있으려나, 이거.”


 서늘한 밤바람이 들이치니, 리사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모카는 여전히 갈지자로 비틀비틀 걸어댔다. 그 쪽이 아니라며 소리치면 낄낄 배를 잡고 웃다가, 다시 이쪽으로 뛰어오길 반복이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 평소와는 조금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모카였다. 술을 마시니 엔돌핀이 솟구치는 모양이다. 우는 것도 멈추고, 별 것 아닌 말에도, 별 것 아닌 농담에도 깔깔 웃어댔다.  


 “자, 자, 집에, 집에 가야지. 응?”


 저를 지나치려는 모카를 리사는 꽉 붙잡아 품에 안았다. 모난 곳 없는 그녀의 몸은 마치 빵처럼 말랑말랑하다. 그런데도 육향은 싱그럽다. 샴푸 냄새인지, 그것도 아니면 바디워시 냄새인지 모를 달짝지근한 과일 향기가 났다. 


 “와아악~!”


 술에 취해서 그런지, 모카의 고함 소리는 렉이라도 걸린 것 마냥 더욱 느릿하게 퍼졌다. 갑작스런 소음에 리사가 인상을 살짝 찌푸린 건 덤이다. 


 “왜 그래?”


 “고양이가 있어서요.”


 고양이란 단어에, 리사의 표정은 미소를 띤 채로 굳어버렸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꼼짝할 수 없는 키워드다. 모카는 리사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녀를 털어낸 뒤 떠나갔다.


 남겨졌던 표정은 가로수 그늘 아래에 가려져서, 모카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울면서 웃고 있는지... 리사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재수 없어.”


 저만 알고 있는 정답을 숨긴 채, 모카는 픽 쓰러졌다. 조금만 더 걸어가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했다.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순되게도 웃음이 자꾸만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낄낄, 하고 정말 웃기는 웃음이. 


 땅바닥이 차가운 대신 밤하늘은 분에 넘칠 정도로 잘 보였다. 그 옛날 그 별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늘은 잘 보이지만 별도 잘 보이지 않아 또 다시 울적해졌다. 


 마음이 어두워지자, 하늘은 또 다시 흐려졌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모카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하루 종일 눈가를 간질이는 게, 여간 마음을 할퀸 것이 아니었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난다.


 

 도대체 뭘 던진 건지, 벽엔 알 수 없는 얼룩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생수병엔 물이 담겨 있었는데, 누군가가 벌써 몇 모금이나 마신 듯 남은 것은 고작 반. 창가엔 물을 주지 않아 잔뜩 말라비틀어진 꽃이 있었다. 정확히는 꽃병이라고 해야 할까, 유리병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것.


 눈을 뜨니 속이 울렁거렸다. 술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뭘 잘못 먹은 기억이 없는데, 배배 꼬인 속은 계속해서 모카를 아프게 했다. 어떻게든 덜 아프고 싶어서, 몸을 웅크리려 해봐도 그럴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이마이 리사가,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저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리사 씨?”


 저의 배를 검지로 쓰다듬는 그녀의 이름을, 모카는 나지막이 불렀다. 너무 크지도 않게, 그렇다고 작지도 않게. 


 “아, 깼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리사의 손은 어느새 하복부를 향해 뻗어 나갔다. 그러자 이번엔 모카가 등을 돌렸다. 그녀의 냉담한 반응에, 리사는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지 마세요, 피곤해요.”


 그래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영 아닌 것 같아서, 모카는 권태를 가장해 거절의 뜻을 내비췄다. 여전히 그녀의 입에선 독한 술 냄새가 났다.  


 “모카.”


 그러나 더욱 강한 술기운이 모카를 덮쳤다. 리사의 것들이 그대로 저의 뒤에서 느껴졌다. 리사의 하얀 팔이 모카의 눈가를 슬쩍 지나갔고, 등에선 리사의 유두가 선명히 느껴졌다. 고혹적이면서도, 완전히 저를 자극하려는 그러한 속셈.   


 “나, 너 좋아해.” 


 아무래도 그녀는, 혼자 조금 더 마신 듯 했다.  


 “그러니까...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


 술이라는 변명에 기대어,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본심을 말했다. 아니, 그것은 사실 본심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거짓 속에 섞인 진심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야.”


 그러나 그 얄팍한 마음마저 눈치 못 챌 정도로, 


 “넌 뭔데, 사람을 이딴 식으로 병신 취급하냐.”


 모카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병신은 맞는데....”


 모카는 저를 옥죄어오던 리사의 팔을 풀었다. 그러나 일부러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구김살이 생겨버려, 되려 못생겨져버린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체온으로 덥혀진 이부자리 위에서, 리사는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 목소리조차 더 듣기 싫었다.


 “넌, 내가 우스워?”


 어긋나버린 감정들은 파편이 되어 곧 흉기가 되어버렸다. 저가 못됐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녀는 엇나가고 싶었다. 


 “왜... 그런 말을 해?”


 다른 누구도 아닌, 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너야말로 왜 그런 말을 해?”


 어쩌면 내가 사랑한 사람보다, 더욱 나를 잘 알고 있을 사람. 


 “너도 힘들잖아.”


 결국 틈이 벌어졌다. 애써 모른 척 하던, 억지로 모른 척했던 그 틈은.


 “괜찮은 척 하지 말라고, 병신아.”


 다른 사람도 아닌 저와 동류라고 여겼던 이에게, 결국 깨져버렸다.


 깨져나가고 말았다.

 




 “어?”


 외마디와 함께, 리사의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모카가 주르륵이라면, 리사의 눈물은 펑펑 정도는 되어 보였다. 가만 보기만 해도 서러울 듯, 정말... 뚝뚝.


 늘 여유로웠던 표정은 망가지고, 일그러진 적 없었던 눈가는 사정없이 뭉개지고, 뜨거워진 눈가는 이제 한동안 차가워질 일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리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터져 나오려고 하는 울음소리를, 그녀는 억지로 뭉개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북받친 감정과 해묵은 소리들은,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저를 내보내달라며 문을 쾅쾅 두드렸다. 저를 배려해 끝까지 참아내려 하는 게, 리사 씨 답다면 리사 씨다웠다. 


 어디서 새어 들어왔는지, 새벽 공기가 저들을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서늘한 것도 모자라 조금은 추운 새벽 바람에, 모카는 리사의 손을 잡았다. 저의 체온을 조금 더 전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까지 저의 곁을 지켜준 그녀가 고마워서. 


 그렇게 모카는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떠 리사의 반응을 살펴보려 했지만, 결국 무너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모카의 눈에 고였던 웅덩이도, 그저 작달막한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고스란히 떨어져 내렸다.


 맺혀버린 응어리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성장통. 그 애매함과 어련함이 벌여버린 착각이, 결국 우리들을 그대로 무너트렸다.


 마치 무너져 내리는 도미노처럼, 우리를 그렇게.


 -


 조커 보고 생각난 것.


 그럼 자기 의지랑은 상관 없이 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거기서 부터 시작해서 쓴 글. 


 감정적인 글이지만,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감사. 


 모카리사 글은 이제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


 마음 두드리기에 관하여.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안 쓰려고 해서 안 쓰는 게 아님.


 마지막 화랑 전 화를 몇 번인가 썼는데, 생각하던 느낌이 안 나고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지웠음.


 그리고 이건 좀 개인적 변명이지만 최근에 주7일 일해서... (이번 모카리사 글 완성도 3주 걸렸음)


 결국 또 완결 못 내는 조루 슬럼프에 갇힌 것 같음. 뚫어보려 노력은 하고 있는데... 


 아무튼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림.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48

고정닉 17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6041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3251 25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3]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4442 14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902 32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7369 25
1331450 공지 공지 [3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0352 43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2911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1140 27
1464469 일반 드디어 죽었나 백갤 [2]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22 0
1464468 일반 백붕이 한시간만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12 0
1464467 일반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애 낳음? [2] ㅇㅇ(59.13) 02:26 77 0
1464466 📝번역 [번역] 괴롭혀주세요, 악역영애님! 90화 [6] 유동(P)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8 226 21
1464465 일반 게임에 주인공이 있을 필요가 있나 [3]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6 79 0
1464464 일반 여주인공 고정 하면 또 헤번레인데 ㅎㅎ [1] rwbyro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4 47 0
1464463 💡창작 늠검) 결국.... 잘렸어.... 우우 백부이... [8] sabr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9 179 11
1464462 일반 ㄱㅇㅂ) 와 더워서 잠이 안 오네 [8] 씨사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114 0
1464461 일반 백바... 살아서 보자... [1] 후에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7 45 0
1464460 일반 애웅... ㅇㅇ(114.108) 01:50 55 0
1464459 일반 이거 갓에넬 아니냐 [3] ㅇㅇ(218.154) 01:49 116 0
1464458 일반 ㄱㅇㅂ) 잠 다 깼는데 그냥 작업이나 할까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9 76 1
1464456 일반 왜 섭종이 확정되고 나서야 마기아레코드가끌리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6 51 0
1464455 일반 악리 센세는 ㄹㅇ 호감이네 아오바모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5 63 0
1464454 일반 백붕들 안뇽안뇽 [3] 아르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39 0
1464453 일반 이치사키 보구가 [4] 초코모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63 1
1464452 일반 소전 스토리에 보이스가 없는게 좀크다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56 0
1464451 일반 간만에 왔는데 진득하게 볼 거 없나 [3] 유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60 0
1464450 일반 분명 10화 요루카노 대박쳐서 앞화 몰아봤어야됐는데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2 83 0
1464448 일반 ㄱㅇㅂ 개졸리네.... [9] 융가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1 133 8
1464447 일반 솦갤펌) 소전의 백합관계도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75 4
1464446 일반 카노안욱벌써 야짤나왓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0 51 0
1464445 일반 진짜 백합작가들 트위터들어가면 맨날작품들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86 0
1464444 일반 사람의 상상력이란 대체 뭘까 [2] 나리유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6 81 0
1464443 일반 밤해파리 자막은 보아하니 오늘도 글렀구만 ㅇㅇ(220.85) 01:33 76 0
1464442 일반 사사코이 애니화도 안됐는데 언급 왜이리 활발하지 ㅇㅇ(222.110) 01:32 152 13
1464436 일반 키황인데 왜 키위아님??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9 69 1
1464435 일반 꺄아아아아악 레즈마왕이야!!!!! [1] 키타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8 89 0
1464434 일반 키황 씹간지네... [2] ㅁ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5 110 2
1464433 일반 친애하는 원수님 결재하려면 어디로 가야해? ㅇㅇ(221.151) 01:25 24 0
1464431 일반 평범한 경음부 재밌네 ㅇㅇ(220.85) 01:22 55 0
1464430 💾정보 24년 10월 수성의마녀 제일복권 3탄 미쳤다 ㅇㅇ(118.34) 01:21 84 2
1464429 일반 전생 7왕자 11화보고 사사코이 생각남 비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56 0
1464428 일반 나나레하나나레 신규 키비주얼 [3] ㅇㅇ(118.36) 01:19 64 1
1464427 일반 밤의해파리 왜 아직도 자막이 안뜬거야? [3] ㅇㅇ(222.110) 01:13 104 0
1464426 일반 념글 짱깨들 지랄하는 글 보니깐 새삼 [3] 소리야겟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3 480 24
1464425 일반 니나모모가 맛있는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9 63 1
1464424 일반 스포)드디어 종트도 거의 끝나가네 ㅠㅠ AGBM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4 65 1
1464423 일반 소네트?? 왜 배송 지연이야???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3 110 2
1464422 일반 마이고는 운좋게 완결되고 보기시작햇는데 뒤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0 60 0
1464419 일반 사사코이까지 역대급 퀄이었다면... [4] 뒤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57 136 0
1464418 일반 버틴정실 [2] 공혜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55 56 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