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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츠구미] 민트초코는 원래 까맣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30 23:03:08
조회 700 추천 30 댓글 4
														

 


 잠시라도 행복했다는 그 짧은 문장은, 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 거짓이 진하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


 “이쯤하면 됐으려나.”


 하자와 카페의 외동딸이자, 상점가의 막내 하자와 츠구미는 밀가루 반죽이 가득 담긴 용기를 냉장고 안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입이 대빨 튀어나오려 했지만, 츠구미가 안간힘을 쓰자 그제야 냉장고는 아가리를 집어넣었다. 제과점이라 항상 실온을 유지해서 그런지, 그녀의 입가에선 계절에 안 어울리는 단내가 났다. 


 “후우.”


 츠구미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오후까지 학교에 다녀오고, 내일 있을 제과교실을 위해 재료 준비를 저녁 내내 했기 때문이었다. 


 제과교실은 매주 토요일 오전. 장소는 하자와 카페에서 소소히 열리곤 했었지만, 근 몇 주 동안은 츠구미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제과교실을 열지 못했었다. 


 하자와 카페의 주인인 츠구미의 아빠는 쉬엄쉬엄 하라며 그녀를 말렸지만, 되려 츠구미는 괜찮다며 고개를 연거푸 저었다.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지만 책임감이 강한 그녀여서, 몇 주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단 것이 조금 마음속으로 얹혀 올라왔던 터였다.


 그래서 이번 과자교실을, 좀 더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다는 생각을 츠구미는 가졌다. 욕심이라면 욕심이지만, 이번엔 스케일을 높여 케이크도 만들고 싶었다. 물론 케이크 용 반죽은 미리 냉장고 안으로 넣어두었다. 


 연갈색 앞치마를 풀어 의자에 걸어두고, 츠구미는 주방 한 구석에 세워두었던 가방을 어깨에 멨다. 학생회 서류가 잔뜩 들어 있어서 그런지 조금 무겁다. 학생회장인 히카와 히나가 각종 안건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집에 가서도 검토해야 될 것이 산더미였다.


 한숨을 쉬면서도, 츠구미의 표정은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게,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아빠, 나 먼저 들어갈게.”


 카페 한 구석에서 시럽통과 커피 잔을 정리하던 아빠를 보며 츠구미는 말했다. 츠구미의 아버지는 잔에 섞인 물기를 닦아내다가, 이내 카페를 빠져나가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먼저 가게?”


 최근엔 카페 마무리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기 때문에, 갑작스레 먼저 간다는 것이 아빠는 조금 어색했다. 입 꼬리가 잘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학생회 일이 있어서, 조금.”  


 “괜찮겠니?”


 애정이 담긴 아빠의 목소리엔 나지막한 근심도 조금 섞여 있었다. 요즘의 그는 열여덟 살이나 먹은 딸아이를, 다시 다섯 살짜리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굴었다.


 “응, 괜찮아! 몇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아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지만, 그래도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모님에겐 야무진 딸아이로 여겨지고 싶었건만, 요즈음엔 좀 힘든 듯 했다. 


 “...알았어, 어두우니 조심히 들어가렴.”


 아빠는 츠구미의 얼굴을 몇 초간 바라보더니, 다시 카페 마무리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커피 잔을 닦는 그의 손길은 이전만큼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츠구미는 아빠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틀고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 


 그 전에 팻말을 OPEN에서 CLOSE로 바꿔두는 걸, 그녀는 잊지 않았다. 




 올해 겨울은 유독 쌀쌀했다. 뉴스에선 역대 최악의 추위라며 보도가 기승을 부렸고, 상점가 부근에선 동장군이 언월도를 연이어 휘둘렀다. 사람들은 칼바람에 맞서 목도리나 털모자를 쓰곤 했지만, 이내 하늘로 사라질 숨을 남긴 채 “으, 추워. 으, 추워.”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물론 츠구미도 그러한 흐름에서 떠날 수는 없어서, 땡땡이 장갑도 모자라 귀마개까지 써 온 몸을 꽁꽁 싸맸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날엔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뜨면, 몸도 그대로 다 씻긴 채 이불 속에 누워 있고 싶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오늘만큼은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츠구미 씨.”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츠구미는 쉬이 그것을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녀가 저를 부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츠구미 씨!”


 그 순간은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높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막 변했을 때였다. 목소리가 터져 올라와서 그런지, 녹빛 머리를 한 소녀의 입가에서도 숨이 막 터져 올랐다. 


 “아...!” 


 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츠구미는 몸을 살며시 뒤로 틀었다. 띄엄띄엄 존재하는 가로등 사이에서, 그녀는 전기로 일궈진 빛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잘 알듯 한 모습을 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녀의 성을 입에 담았다.   


 “히카와 선배...”


 하네오카에도 히카와 선배는 있었지만, 하나사키가와에도 또 다른 히카와 선배가 있었다. 한 대는 잘 알았던, 그러나 이제는 잘 모르는 선배. 잘 알 수 없었던 그러한 선배가.


 “편히 불러도 된다고, 제가 말하지 않았던 가요.”


 히카와 사요는 쓸쓸함을 미처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츠구미를 바라보았다. 연민이 담긴 눈빛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하자와 츠구미란 사람이 아니라, 예전의 그녀를 알고 있는 히카와 사요, 자신을 향한 자기 연민.  


 “그래도, 아직은 이게 편해서...”


 “그런가요.”


 예의가 워낙 바른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곤 생각했다. 그러나 세타 카오루를 제외한 다른 모두를 이름으로 불러주면서, 저한텐 이름마저 허락해 주지 않는 게 사요는 안타까웠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나도 멀어진 기분이다. 분명 가까운 거리일 텐데, 그 거리가 마치 절대로 닿을 수 없는 평행선과 같아 보였다. 


 “집으로 가는 중이셨군요.”


 그러나 사요는 그것을 따라 잡으려,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예전의 그녀답지 않게, 그리고 그녀가 가르쳐준 모습답게 말이다. 


 “네.”


 츠구미는 가로등 빛 사이에서, 저를 향해 건너온 히카와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엔 기타 케이스가 메어져 있었다. 분명... 로젤리아라고 했던가. 서클에서 연습을 하고 온 듯 했다. 


 “...같이 갈까요.”


 조금 머뭇거리다 꺼낸 말이었지만, 사요의 발걸음은 이미 츠구미의 발걸음에 맞춰져 함께 걷고 있었다. 그래서 츠구미도 사요의 말에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탁, 탁, 하고 맞춰진 서로의 발걸음 소리가 그 대답을 대신 했다. 


 사요는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츠구미의 손에 장갑이 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치마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이러한 날엔 장갑도 아닌, 주머니가 제격이라고 자위하며 말이다. 


 밴드 연습이 끝나고 가장 먼저 뜬 별을 찾는 것은, 츠구미의 장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요즘의 밤하늘엔 별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도화지가 검게 칠해진 날씨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별이 빛을 잃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자와 츠구미가 기억을 잃은 지 벌써 몇 주가 흘렀다. 아니, 더 정확히는 히카와 사요란 인물에 대한 기억‘만’ 잃은 지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친구, 가족, 하다못해 어제 먹은 것들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히카와 사요란 사람을 츠구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머릿속의 지우개가 그녀에 대한 기억만 박박 긁어낸 것 마냥, 츠구미는 사요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하자와 츠구미에겐 불행 중 다행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행운이지만, 히카와 사요에겐 다행 중 불행이었다. 그것도 그녀에겐 있어서는 있지 말았어야 할 최악의 날.


 그녀가 기억을 잃은 날. 그 날은 하자와 츠구미가 히카와 사요란 사람에게 고백을 받은,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


 원래 장편 용으로 계획한 소설인데 시간이 없어서 단편으로 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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