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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츠구미] 하나하키병 걸린 란과 츠구미(츠구란)

ㅇㅇ(218.209) 2020.01.05 22:49:51
조회 868 추천 39 댓글 18
														

되도록 슬픈 브금과 함께 읽어주세요.

익명이라 인증용 메일 koha3562@gmail.com 적습니당.



하나하키병 / 짝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꽃을 토하는 병. 토해낸 꽃잎의 꽃말에 의미가 있다.






#1



질리도록 꿈에 나오는 그녀를 무시한 지도 벌써 몇 개월째.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꿈에 튀어나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밤만 되면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의 고동을 마주해야 했다. 잠을 내내 자지 못해서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고통스러웠다, 자그마치 몇 개월째 그런 상황이 반복되어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게 남는 건 오로지 허무함뿐이었다. 꿈과 현실의 괴리감이 커질수록 심장은 더욱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나 좀 그만 괴롭혀. 네가 꿈에 나올 때마다 나는 나는 머리가 하얘지고 정신이 없어져서 돌아버릴 것만 같아.

혼자 남아 느끼는 침묵은 짝사랑이 진행되고부터 과하게 쓸쓸해졌다. 쓸쓸하다 못해 씁쓸한 감정. 불쾌한 감정이 몸속 깊은 곳을 누르면 나는 헛기침을 했다. 그럼 또 이때다 싶어 튀어나오는 꽃잎들.


저 멀리 서랍에 다 처박아뒀는데도 잠에서 깨고 보면 침대 주위에 한가득 나풀거리고 있었다.

하얗게 피어난 꽃잎들은 나를 비웃는 게 틀림없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시달려 입바람을 불자 얌전히 피어난 꽃잎이 바람을 타고 휘날렸다.

한없이 가벼운 게 마치 짝사랑의 결말을 보는 것 같아서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점점 더 또렷해져. 네가.


흐릿한 형체 위로 아는 얼굴이 덧칠됐다. 원하지 않아도 그랬다. 그녀와 비슷한 것을 보면 내 쓸데없는 머리가 자꾸 덧칠해서 '너 얘 알지?'하고 비웃는 것이다. 아냐 몰라. 그렇게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네 웃음이… 란, 하고 부를 때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한 어조가.


회색 인영에 네가 겹칠 때쯤 나는 또 한바탕 꽃잎토를 했다.

정신 차리자. 친구잖아. 정신 차려야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오해하는 거라고. 이제 그만 사실을 인정할 때도, 됐지.



"내일 일어나자마자 쓰레기통 버리고...."



침묵 속을 깨뜨리고 나온 혼잣말이 그토록 슬플 수 없었다. 절대 시들지 않는 꽃잎은 내가 사랑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잠들 테다.


짝사랑.

어느 순간 시작된 원인 모를 짝사랑.


새삼스럽게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 괴로워졌다. 이 기분 나쁜 꽃잎들을 다 버리고 나면, 마침내 내 사랑도 쓰레기통에 던질 수 있을까? 선물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간절하게 빌었다.






#2



빌어먹을 하자와 츠구미는 그날도 아름다웠다. 항상 일찍 오는 너를 쳐다보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래, 제발 아무렇지 않은 척 좀 하게 해줘.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전날 밤 너와 섹스하는 꿈을 꾸고 나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뒷문을 열자 돌아 너와 그대로 마주친 채 나는 딱딱하게 굳었다.


네 사심 없는 미소와 가벼운 손동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날 밤 욕망에 일그러진 채 나를 갈구하던 너와는 완벽히 상반되어 있었다. 드디어 제 사랑을 실현하고는 나를 향해 웃던 그 미소와도, 내 어깨를 쓸어내리던 그 손동작과도 달라서... 그때 입을 다물지 않았다면 분명 꽃잎을 토해냈겠지. 네 앞에서 보란 듯이. 참 다행이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너를 지나쳐 내 자리로 걸어갔다.


인사를 무시당한 너는 시무룩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 아닌 체 뒤에서 네 전부를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네 앞머리를 살짝 흔드는 것까지도. 동시에 구역질이 나올 뻔했다.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목구멍부터 차오르는 징그러운 사랑에 대한 근거들.


준비해둔 병을 꺼내 그 안에 몰래 꽃잎들을 뱉어냈다. 피부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든다. 벌써 반을 넘게 채운 병을 바라보며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게 뭘까. 대체 뭘까. 이런 병이 있는 것도 신기하지.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누가 보기라도 했다간 인생 망칠 게 확실한 거. 도대체 누구한테 말할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한테?



'저기요, 있잖아요. 선생님. 사실 제가 같은 반에 하자와 츠구미라는 애를 좋아하는데. 글쎄 걔만 보면 밤도 낮같고 겨울도 여름같은 거 있죠. 어느 날부턴 너무 좋아서 꽃을 토하기 시작했어요. 알죠, 알아요 이해 안 되는 거. 하지만 진짜 그런 걸 어떡해요. 좋아서 미치겠는데.'



나는 울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정말 펑펑 울어서 섬 하나쯤은 잠기게 하고 싶었다. 겨우 얼굴 좀 보고 병을 반이나 채운 내 사랑의 무게도 슬프지만. 네 인사에 제대로 답장조차 주지 못하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시달리는 것도 슬프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뱉은 꽃잎을 엮어 꽃다발을 건네는 망상을 하는 내가. 그런 망상을 하며 은근 좋아할 정도로 고달픈 내가. 내가 너무 슬펐다, 나 자신이. 어쩔 도리도 없이 나는 당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해맑은 걸까. 왜 내 앞길을 가로막고 나타나서 기어이 사랑하도록 만들어버린 걸까. 태양보다 높이 뜨고 중력보다 지배적이라 나는 차마 물러서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먹혀야 한다. 벗어날 수 없어. 대체 왜?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뒤이어 친구들의 활발한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작게 들리는 츠구미의 목소리를 찾고 있어서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애를 향해 오감이 곤두서 있다. 이렇게나 무섭구나. 이렇게나 무서운 거였어, 사랑은. 나중에 히마리한테 알려줄까? 네가 원하는 사랑은 사실 엄청 무거운 거라고. 그러니까 혹여나 할 생각일랑 말고... 그냥, 그냥 '우정'을 중요시하자고.


남몰래 꽃잎들을 병에 쓸어 담으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밟아버릴까?






#3



애프터글로우는 이제 해체한다. 정확히 말하면 무기한 휴식. 오늘도 연습을 빠지냐고 툴툴대는 애들한테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짜내서 말했다. 노래하는 거 지겨워졌어. 매일 똑같이 너네랑 부르는 것도 지겨워. 난 나갈 테니 너희끼리라도 할 거면 대타 찾아봐.


토모에가 멱살을 잡았을 때에도 아무렇지 않았으나 그 애가, 하필 그 애가. 내 사랑이 소리치자 나는 참을 수 없어졌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네가 내 사랑에 대해서 뭘 안다고. 너랑 같이 있으면 입을 열 때마다 꽃잎을 토해낼 텐데 어떻게 노래를 불러? 사랑노래를 할 때마다 네 생각이 나서 참을 수 없을 텐데 어떻게 거기서 노래를 부르겠어.



"계속 나 보면 피하잖아, 란짱."

"......"

"애프터글로우 나가는 것도 나 때문이야? 그럼 내가 나갈게."



보기 드문 외침에 멤버 전원이 침묵했다. 슬프게도 네가 나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니까 그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던 꽃잎들이 겨우 잠잠해졌다. 슬프고 기쁜 나머지 나는 속에서 울고 웃었다. 츠구미는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나지막이 혼잣말처럼 독백하는 모습이 아련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란짱. 내 잘못이야? 그럼 잘못한 게 뭔지는 알려줘야지. 그래야 내가 고칠 거 아냐.


슬프게 잠긴 목소리가 용납할 수 없었다. 목구멍을 따갑게 괴롭히던 꽃잎들이 가라앉아서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내 꽃잎이 잠기면 뭐해, 츠구미가 슬퍼하는데. 퍼뜩 떠올린 뒤엔 어깨를 늘어뜨리며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짐작한 애들이 더 화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츠구미를 앞세운 무리는 내게 그렇게 고했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와.' 하고. 그것은 즉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 애들은 마음을 정리하길 바란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할 말이 없어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을 때 잡힌 병이 깔깔 웃어대는 듯했다. 꽃잎이 넘쳐나기 직전인, 꾹꾹 마음을 눌러 담은 병.

아, 집에 가면 쓰레기통이랑 같이 병 안의 내용물도 버려야지. 신발로 잔뜩 찢어 뭉개면 그때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까?






#4



잔인한 사실 중 하나로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차마 애들을 볼 낯이 없어 나는 일주일이 넘도록 수업시간 대부분을 빠졌다.

하루는 옥상에 있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카가 씩씩거리며 찾아온 바람에 본진을 양호실로 옮겼다. 푹신한 침대에 온종일 누워 있다가 심심하면 나는 슬쩍 수첩을 꺼내 진심을 적곤 했다. 좋아해. 그 단어가 빼곡하게 한 장을 채운다. 정말 좋아해, 너를.



"좋아해."



맹세컨대 나는 입 뻥긋하지 않았다. 그 애가 불러주길 바란 건지 어째 목소리가 너였다.

불길한 예감이 싹을 틔웠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네가 내 옆에 서서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와, 큰일났네. 놀랄 힘도 없어 나는 멍하니 너를 응시했다.



"이게 뭐야."

"이건.."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거야?"

"....."



아, 이런.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머리 위로 네 깊은 탄식이 들려왔다. 그녀의 숨이 허공에 바스라질 때마다 심장에 바늘이 날아와 꽂혔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 괜찮아. 이미 상처로 가득해서 더 아프지도 않았다.



"란, 너 진짜.."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



일말의 진심이다. 모순적이지만 사랑을 준 건 너면서 너조차도 어쩔 수 없었다. 애프터글로우를 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고. 네가 뭐라든 내 사랑을 주체할 수 없는걸.



"누구야? 좋아하는 사람."

"그걸 왜 말해야 되는데."

"애프터글로우에 있어?"



일순 목구멍이 따가웠다. 꽃잎토를 할 기미가 보여 본능적으로 입을 닫았다. 애프터글로우에 있냐고요? 당연하죠.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인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양호실 침대에 걸터앉았다. 네 등에 살짝 닿은 내 손이 어느새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닿은 느낌이 황홀하고 짜릿한 나머지 목구멍을 넘어 이제는 입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놈의 꽃잎들이. 외투 주머니에 고이 잠든 병만이 아니라 꽃잎 그 자체가 나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목련꽃. 목련꽃잎. 그 괴로운 이름.



"누구를 좋아하든 난 상관하지 않아. 우리들이 고작 그런 걸로 싫어할 리가 없잖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피하려는 거야?"

"....."



죽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해할 수 있어, 란짱. 나만이라도 이해해줄게. 응? 그러니까 다 털어놔. 부담갖지 말고."



죽었을 텐데.


츠구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 자신도 그렇고 츠구미의 말도 그렇고, 모든 게 전부 같잖아져서 여태껏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너라도 이해해준다고? 그 반대야. 너는 절대 이해하면 안 돼. 네가 이해한다면, 그럼 너는 안타까운 마음에 내 사랑을 받을 테고. 사실 그보다 더 이기적인 게 없으니까.



"... 란짱?"



말 한 마디 하기도 전에 꽃잎들이 우거지로 탈출을 시도했다. 누구도 아닌 내 입에서, 꽃놀이가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츠구미는 고개를 돌린 그대로 굳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렴, 그렇겠지. '대화할 때까지만 해도 입에 꽃잎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가 급기야 빠질 듯이 확장되어서 아주 기겁을 했다.



"뭐..지? 뭐야, 이게?"

".. 나도 잘 모르겠어."

"이, 입에서 꽃이 나오는데. 란짱 어디 아픈 거야?"

"아.. 하. 하아."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쉽게 들킬 거였으면 도대체 왜 지금까지 전전긍긍하며 숨겼던 걸까? 나의 노력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차였다. 그러나 괴로움보다는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미움받는 편이 낫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꽃잎에 둘러싸인 채로 죽을 수 있잖아.



"란짱."



그 뒤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속사포처럼 변명을 쏟고 나서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나는 츠구미를 밀고 도망쳤다. 뒤에서 츠구미가 뭐라고 외쳤는데 듣고 싶지 않아서 무시했다. 알고 싶지 않아. 흡사 마라톤 선수마냥 달리고 또 달렸다. 지치지 않는 건 마음뿐인지 집에 다 와갈 때쯤 나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는 끝도 없이 잔인한 기분을 느끼며 사방을 꽃으로 가득 채웠다.


병을 가득 채우고도 남고, 서랍을 가득 채우고도 남고, 어쩌면 방을 한가득 채우고도 남을지 모른다. 절제를 잃은 사랑이 피처럼 묻어났다. 추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러다가 몸도 꽃으로 변하겠네. 입으로 뱉어낸 사랑이 나를 덮고 또 덮었다.






#5



하자와 츠구미가 집으로 찾아왔다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뻔했다. 끝까지 버텨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밤이 훌쩍 지나고도 무슨 석고상처럼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요지부동은 기어코 나를 끌어냈다. 내가 어떻게 네 얼굴을 안 보겠니. 어떻게 너를 안 보고 지나치겠어. 생기가 꺼져 초췌해진 눈빛으로 본 츠구미는 겨우 몇 시간 만에 살이 빠진 것 같았다.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어 가만히 있었더니 그 지독하게 맑은 눈동자로 나를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시간이 멈췄다고 착각할 정도로 오랜 정적이 흘렀다.



"나한테 할 말 없어?"

"... 미안."

"그거 말고."



당장 생각나지 않아 나는 우물쭈물했다. 그 사이 네가 손을 뻗어 내 손등을 쓸었다. 예상한 것만큼 달콤한 것이라서 더욱 심장이 아렸다.



"왜 도망친 거야."

"......"

"뭐가 두려운 건데? 아까 그 꽃, 병이야? 뭐야?"

"....."

"왜 도망친 거냐고 묻잖아, 란짱."



그야 난 정상이 아니니까. 너를 보면서도 너를 떠올리고 떠올리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가슴 속에 가득 채우고도 그보다 더 좋아한 바람에. 넘쳐나는 사랑을 태울 길이 없어 꽃잎을 만들어낸다는 괴상망측한 이야기는 누가 쓰더라도 망작이 될 게 분명하다. 하다못해 공주님과 왕자님 동화로 써도 아름답지 않을 것이었다. 네가 좋아해, 그 목소리로 말을 할 때 어떻게든 귀를 닫아버렸어야 됐는데.


시리고 차가운 후회의 파편이 목구멍을 쿡쿡 찔러댔다. 이미 체념한 뒤라 그런지 꽃잎이 나오지 않았다. 목련꽃잎도 내 사랑의 결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꽃말처럼.



"제발, 대체 왜!"

"네가 좋아서 그래."

"..... 어?"

"너를 좋아해서 그래. 너만 보면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미칠 것 같아. 너를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간지러운데 방법이 없더라. 네가 너무 좋아서 하루하루 좋아한단 말만 되새기다 보니까 그게 어느새 꽃잎이 되어 증거로 남고 있었어. 원했던 거 아니고 징그러운 거 알지만 나도 이거 때문에 미치겠다고. 그래, 나도 내가 이상한 거 알아. 그래서 도망치려고 했더니 이제 네가 이렇게 와서 날 붙잡고 있잖아. 짜증나게."

"....."



이젠 진짜로 미쳤나 보다. 제대로 돌은 게 확실하다. 울컥한 마음에 속내를 빠짐없이 내뱉어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어디까지 꿰뚫어야 만족해?



"들어와."



츠구미를 붙잡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내내 입에서 꽃잎이 떨어지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끝까지 추하기만 했다.


멀뚱히 선 츠구미를 세워두고 나는 심호흡을 했다. 얼굴을 마주보니 목이 꿀렁거렸다. 그건 꽃잎토의 징조였다. 나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서 수십 개의 병이 즐비하게 늘어선 서랍을 열었다. 츠구미는 그걸 보고 놀란 눈치였다. 전부 내 사랑의 증거였다. 언젠가 이 꽃잎으로 꽃다발을 만들 생각을 했었고, 현실을 실감한 뒤로는 이 서랍째로 불태우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널 볼 때마다 이래. 네가 너무 좋아서 눈에 담을 때마다 토한다고. 사랑노래를 할 때면 네 생각이 나서 가사를 읊다가도 꽃이 흩날리고, 이별노래를 할 때면 꼭 우리 같아서 꽃이 흩날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노래를 불러?"

"...란."

"이게 무슨 꽃인지 알아? 목련이야. 목련 꽃잎이야. 꽃말이 뭔지 알지?"

"그러니까 왜!"

"이미 정해져 있잖아, 그게 나는 무섭고 또 두려워서 널 보기 힘들었고... 저 서랍만이 아니야. 갖다 버린 것만 수십 개는 될걸. 그만큼, 네가 좋아서. 여태까지 날뛰지 않은 내가 신기해."

"왜 혼자서 정하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들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도망치면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 한 적 있어? 네가 꽃잎 토해낼 때 내가 더럽다고 말했어?

나는 나를 멋대로 판단하고 도망가버린 그때 네가 제일 이상했어.


답지 않게 소리친 츠구미가 냉큼 병을 빼앗더니 창가로 다가갔다. 이미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불었다. 그녀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병뚜껑을 열어 하얀 꽃잎이 바스락거리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실한 꽃잎 한 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말릴 수 없었다. 겨우 모은 꽃잎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막연한 느낌만이 몸을 휘감았다.



"이 목련꽃잎이 나를 알고 있어? 지금까지 너 혼자 판단해서 만들어낸 내가 쓴 결과 아니야? 평소대로 잘 얘기하면 됐지 왜 답지 않게 망설여서 시간을 끌어?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왠지 물기어린 목소리였다. 무의식에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헷갈리는 마당에 동작 하나하나 기억하긴 불가능했다.

그러나 츠구미는 확신에 찬 얼굴로 꽃잎을 훌훌 털어버렸고, 바람에 맡긴 내 사랑이 부드럽게 날아올랐다.



"원하는 게 뭐야?"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뭘 원해? 뭘 바라고 있어, 란짱?"



바짝 말라 타들어가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그제야 울 것 같던 츠구미가 활짝 웃었다. 꽃잎은 저 멀리 날아가 보이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따갑던 목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꽃말을 부정하고, 나아가 혐오스럽던 병 자체를 부정할 수 있었다. 진심을 전하는 내내 쉴 새 없이 방안을 채우던 목련 꽃잎도 그만 숨을 거두었다.










단편은 정말 오랜만에 도전해보는 거라 기승전결 개똥망이지만... 아무튼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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