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우시고메 리미의 자그마한 일탈 (리미아리)앱에서 작성

카스아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21 02:17:14
조회 1330 추천 40 댓글 20
														

viewimage.php?id=21b4dc3fe3d72ea37c&no=24b0d769e1d32ca73ced82fa11d02831fe384ecd5bf5471a0304a3eb0e93158dd3dded400c797de10f69995a2f0a94d1b6fa743d38b77a1cd739f01dd54824c836ea7d972e75840056ad784e42e7af471cb8c5776101986365de01b00e5a957d796d30c1dc

누구든 타고난 천성이 있기 마련이다. 활발한 사람과 차분한 사람, 꼼꼼한 사람과 적당주의인 사람. 우시고메 리미의 경우는 상냥하고 착한 것이 그녀의 천성이었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 반에 한 명씩은 꼭 있다는 답답할 정도로 착한 아이를 떠올리면 된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데다 자기 주장이 강한 것도 아니다. 원체 상냥해서 누군가와 싸울 일도 거의 없지만, 막상 의견 충돌이 생기면 속으로 삭힐지언정 절대 대놓고 맞서지는 않는다. 이렇게 유한 성격이 그녀의 소동물계 이미지와 시너지 효과를 내서, 리미의 '미안해' 를 들으면 설령 리미가 잘못한 일이라고 해도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라고 사과하고 싶어지게 된다(는 것이 리미와 대판 싸워 본 거의 유일한 사람인 어떤 키보디스트의 평이다).


그러나 아무리 착해빠진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리미의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나는 모두가 잘 알듯 달달한 초코코로네고, 다른 하나는...


우시고메 리미는 흔히 말하는 공포물 마니아였다. 여름 시즌이면 극장가를 점령하는 공포 영화를 빠짐 없이 보러 가는 건 물론이고, 피와 살점 따위가 튀기는 b급 공포 영화도 문제 없었다. 오히려 리미는 그런 쪽이 더 취향이었다.


오싹하게 깔리는 배경 음악, 기분 나쁜 소품,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귀신과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 그것을 스크린 건너에서 구경한다는 것은 리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자극이었다. 어릴 적 서프라이즈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벌벌 떨면서 얼른 투니버스로 채널을 돌렸다가도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슬그머니 그 채널로 돌아가듯이. 초등학교 때 반에서 짝꿍이 열심히 보던 무서운 만화책에 슬그머니 눈이 가듯이. 리미는 그 기묘함, 그로테스크함, 오싹함에서 오는 짜릿함을 즐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자극의 역치는 점점 높아져서, 리미는 이제 웬만한 공포 영화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무슨 변태나 사이코패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픽션의 영역에서, 작품으로서 호러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취향을 굳이 밖으로 드러내서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취미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나 아이돌 얘기를 마음 맞는 친구랑 같이 하는 것이 즐겁듯이, 리미도 내심 공포 영화라는 별난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점심 시간에 이치가야 아리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 리미는 순간 밝아지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 리미, 그 뭐냐... 이번에 개봉한 공포 영화, 같이 볼래? 평점이 꽤 좋대서. "


이치가야 아리사. 핫팩을 보고도 철의 산화 반응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과 인간. 공포나 미스테리 얘기가 나오면 으레 '야, 그런 비과학적인 걸 아직도 믿냐?' 라고 퉁명스레 면박을 주는 부류다. 평소에 리미가 공포 영화 얘기를 꺼낼라 치면, 아리사는 팔짱을 끼고 입버릇처럼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 도대체 왜 영화관까지 가서 돈을 주고 깜짝 놀라려는 거야? 난 진짜 이해가 안 돼. 차라리 상영 끝나면 다운 받아서 보겠다! 솔직히 거의 태반은 작품성도 뭣도 없이 그냥 귀신이 튀어나올 뿐인 영화잖냐. "


리미는 솔직히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마술사가 멋지게 마술을 선보이면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트릭을 찾아내서 '하! 그건 그럴 듯한 속임수잖아!' 라고 외치고 싶어한다. 마치 자기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도무지 미스테리를 즐길 줄 모르는 삭막한 사람들. 호러라는 장르가 가지는 예술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딘가 결여된 사람들... 리미는 이들에게 일말의 동정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해서 리미가 고작 그런 이유로 아리사를 싫어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착한 리미답게 그저 아리사의 이런 점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정도에서 그쳤다.


무엇보다도, 리미는 알고 있었다. 아리사는 공포 영화를 안 보는 것이 아니라 못 보는 것이라고. 전에 다 같이 공포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아리사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바르르 떠는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 게슴츠레 눈을 뜨고 필사적으로 유지하는 무심한 표정, 팝콘 통을 거의 찌그러트릴 듯 꽉 쥔 두 손... 대놓고 울먹이는 카스미와는 다른 느낌으로 안쓰러워지는 아리사였다.


그렇게 겁이 많은 아리사 쨩이 나한테 공포 영화를 보자고 했다는 건... 아리사 쨩, 아직도 그때 싸운 거 맘에 두고 있구나? 리미는 제 앞에서 쭈뼛거리는 아리사가 귀여워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둘만 놔두면 약간 분위기가 어색해진다는 걸 알게 된 카스미나 사아야가 아직도 화해 못했냐면서 아리사를 곧잘 놀리곤 했었으니까, 이 기회에 다시 이전처럼 앙금 없는 사이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리미도 환영이었다. 일부러 자기가 좋아하는 호러 영화를 골라 준 아리사가 고마웠다.


어쨌든, 리미가 "응, 아리사 쨩! 이번 주 주말, 어때...?" 라고 말하기만 해도 그 다음 줄거리는 따뜻한 리미아리 순애물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무슨 이유에선지 리미는 입을 다물고 아리사를 잠깐 응시했다... 그리고 모범 답안 대신 이렇게 답했다.


" 아리사 쨩, 괜찮아...? 그 영화 리뷰를 보니까, 이번엔 꽤 무섭다고 해서. 볼 수 있겠어? 살짝, 무리일지도... "


그러자, 아리사의 미간에 얇은 핏대가 섰다. 


" 아니, 내가 무슨 카스미냐!! 그냥 돈이 아까워서 안 볼 뿐이지,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본다고! "


마치 그렇게 말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리미의 입에서 바로 다음 대사가 나온다.


" 그치만 아리사 쨩 취향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구. 깜짝 놀라는 요소도 많고... "


" 그, 그러냐...? "


아리사의 어깨가 움찔 하고 떨린다. 아마 나름대로의 잔인한 장면을 상상하는 중이겠지. 하지만 아리사가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자신이 있는 리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응. 나야 괜찮지만, 아리사 쨩이 못 보면 안 되니까... 나는 그냥 로맨스코미디나 애니메이션 영화 같은 거 같이 봐도 좋아. "


생글생글 웃는 리미의 얼굴을 보는 아리사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걸렸구나...! 리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리미는 이치가야 아리사가 사실 카스미와 쌍벽을 이루는 엄청난 겁쟁이라는 걸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리사는 카스미와 달랐다. 때때로 튀어나오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리사는 도무지 공포물이 무서워 죽겠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비과학적이라느니 작품성이 떨어진다느니 하는 이유를 대면서 슬쩍 빠지곤 했다.


그러니까 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이치가야 아리사한테는, 친구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가 무서워서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 점을 노린 밑밥이었다.


" 아, 그냥 그거 보자! 또 영화 찾으려면 귀찮고... "


언제나처럼 쿨하게 얘기하는 아리사였지만, 불쌍하게도 얼굴은 이미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월척이래이~! 낚싯대를 신나게 당기던 리미는 갑자기 더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만화였다면 커다란 느낌표 한 개를 머리 위에 그려도 좋을 법한 생각이었다.


" 그럼, 아리사 쨩. 오늘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을래..? "


" 어, 리미네 집에...? 왜? "


" 아, 지금 개봉 중인 건 속편이잖아? 그 영화의 전편 dvd가 마침 집에 있어서, 그걸 먼저 보면 이해도 잘 되고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오늘 바빠? "


물론 아리사 쨩이 바쁠 리가 없지, 하고 리미는 자기 질문에 스스로 즉답했다. 포피파 각자의 일정은 이미 서로 훤히 꿰고 있었으니까. 아리사는 오늘 한가하다.


아리사도 하나죠 학년 수석.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공포영화를 보자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아리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다 알아 놓은 상태였다. 확실히 줄거리를 미리 알고 있으면 별로 무섭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좋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전편을 보자고? 아리사의 안색은 어느새 귀신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아, 핸드폰 왜 냈지... 1편 줄거리도 좀 읽어 볼 걸! 완전 망했다...! 리미 얘는 그런 영화를 왜 dvd로 소장해...? 꺼림칙하지 않아!?


물론 리미가 거기까지 다 꿰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리사와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볼 구실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 뿐. 어쨌든 중요한 건 결과였다. 갑자기 벌어진 심리 싸움 끝에, 결국 리미의 판정승!


" 알았어... 솔직히 전편 줄거리는 인터넷에서 찾아 보면 될 것 같지만, 같이 보는 것도 재밌겠네... "


*


아리사가 자리로 돌아가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도 리미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엄마 몰래 군것질을 처음 해 본 아이처럼 리미의 자그마한 심장은 방망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 나, 아리사 쨩한테 방금 엄청 심술 궂었지... '


그 말대로였다. 친구를 골탕 먹인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것도 자기한테 먼저 용기내서 다가와 준 아리사에게... 그 생각을 하니 리미는 당장이라도 아리사의 두 손을 맞잡고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어졌다. 으으... 아리사 쨩, 미안해...!


그 착한 리미가 왜 갑자기 그런 계략을 꾸민 걸까? 그 이유는 리미 본인도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직, 나는 아리사에게 살짝 삐져 있는 거라고... 


내가 이렇게 뒤끝이 있는 편이었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리미는 열심히 도리질을 했다. 아리사 쨩이 얼마나 좋은 앤데! 나 진짜 나쁜 애구나, 이런 생각까지 하고... 아리사 쨩이 무서워하는 호러 영화도 반쯤 강요하고...


그런데, 계속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신기하게도 아리사에게 서운했던 일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솔직히 아리사 쨩 가끔 나한테 너무 했어. 그때 나한테 버럭 화 낸 것도 있지만, 자꾸 나 호러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호러 영화는 비과학적이니 작품성이 떨어지니 하는 것도 그렇고...! 그동안 쌓였던 앙금의 둑이 터지자, 리미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죄책감도 같이 휩쓸려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제 리미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아리사 쨩을 곤란하게 해 보고 싶어졌다. 도도한 표정으로 무시했던 호러 영화를 보고 잔뜩 겁먹은 채로 소파 한 구석에 움츠러든 아리사가 보고 싶다. 과학이니 뭐니 얄미운 소리만 하는 그 조막만한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나 흐느끼는 소리가 나오게 해 주고 싶다. 생각해보니 귀여울 것도 같았다. 리미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자기 품에 반쯤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아리사를 상상해 보았다.


" 흐윽... 흑... 리미이이... 귀신, 지나간 거지...? 읏... 이제 정말 안 나오는 거지...? 그, 그렇게 조용히 있으면 더 무서우니까...! "


읏...! 이거 엄청 위험해...! 울먹이는 아리사 쨩, 진짜 귀여워 죽겠데이...! 리미는 두근거리다 못해 욱신거리기 시작한 가슴께를 확 부여 잡았다. 설마 이게, 카스미 쨩이 들었다는 별의 고동소리...?


리미는 입을 막은 손을 살며시 떼고, 무언가 의미심장한 눈을 하고 열심히 노트 필기 중인 아리사를 바라봤다. 저 예쁜 얼굴이, 몇 시간 후엔 내 앞에서 눈물 범벅이 되겠지...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기분 좋게 간질거려서, 이후의 수업은 아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


" 리미, 집은 비었어? "


" 응, 부모님도 저녁 늦게 들어오셔. "


거실 소파에 걸터 앉은 아리사를 뒤로 하고, 리미는 찬장에 꽉 들어찬 공포 영화 비디오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윽고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그럴 만도 한 것이, Dvd에 붙은 네임태그에는 리미 특유의 동그란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이건 좀 그렇다... ]


1편을 보자면서 아리사를 데려오긴 했지만, 리미는 그런 어중간한 영화를 같이 보는 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아리사의 귀여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많이 보려면 자극적인 B급 영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었다.


리미가 꺼낸 비디오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기분 나쁘고, 음침하기로 소문이 난 영화였다. 어지간한 공포 영화로는 간에 기별도 안가는 리미조차 이 영화를 처음 보고 그날 저녁을 걸렀을 정도로... 어차피 아리사 쨩 수준의 겁쟁이는 절반도 안 가서 엉엉 울어버릴 테니까 괜찮으리라는 것이 리미의 계산이었다. 적당히 보다가 울기 시작하면 끄면 되지 뭐.


리미는 살짝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 위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아리사에게 말을 걸었다.


" 아리사 쨩, 1편 비디오가 없어져 버려서... "


순간 아리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가 다시 아쉽다는 듯한 표정이 되는 걸 리미는 놓치지 않았다. 귀여워라...


" 아, 정말...? 아~ 아하하, 아쉽네~! 리미! 정말 아쉽긴 하지만, 인터넷으로 대충 내용 찾아 보면 되는 거니까...  아~ 진짜 아깝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그냥 TV라도 보면서 시간 때우다가 연습하러, "


" 그 대신, "


아리사의 말을 리미가 부드럽게 끊고, 등 뒤에 숨겨 놓았던 하얀 비디오테이프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 이거, 그 시리즈의 프리퀄인데... 이건 아리사 쨩에겐 진짜 무리일지도. 나도 조금 버거웠으니까.... 아하하. "


아리사의 표정이 다시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리미는 말라버린 입술을 살짝 핥았다. 이제 리미는 아리사에게 거짓말까지 한 것이다. 프리퀄 따윈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그 시리즈의 1편은 당연히 소장하고 있었으니까. 뾰족한 양심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아 괴로웠다. 내가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 순간 스스로에게 놀라기까지 한 리미였다. 그야말로, 우시고메 리미 인생 최대의 비행을 저지른 날!


하지만 어떡해,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여기까지 왔으니 아리사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다. 너무 멀리 와버린 건 리미도 마찬가지다. 아리사 쨩, 미안해. 이미 더러워진 손,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면 오늘 아리사 쨩이 흘릴 눈물로 조금이나마 씻어낼게... 각오를 다진 리미는 dvd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집어 넣었다.


" 에엑!? 리리리리미 잠깐만!! 그거 진짜 보는 거야!? "


아리사에게 평소의 천사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리미는 대답 대신 거실 불을 꺼 버렸다.


*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했다. 새로 이사 온 가족이 귀신이 나온다는 집에 싸게 입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장인물들은 귀신인지 무엇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무언가에게 당해서 하나하나 끔찍한 방법으로 죽게 된다. 공포 영화를 많이 봤다면 식상하다고 느껴질 소재였다. 그렇지만 그 스토리의 부족함이 배경 음악, 소품, 배우들의 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분위기로 커버될 정도로 무서웠다. 마을회관에서 BTS가 공연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 아하하, 스토리 완전 뻔하잖냐... "


" 저 배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


리미는 일부러 아리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리사는 지금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덜 무섭게, 나랑 잡담을 하겠다는 심산이겠지? 물론 리미는 아리사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계속 혼잣말만 하던 아리사가 ' 제발 뭐라고 대답이라도 좀 해줘...! '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리미 쪽을 흘깃흘깃 쳐다 볼 때조차 리미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영화에 몰입한 척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영화는 순조롭게 무서워지고 있었다.


주인공의 여동생이 자정을 넘어서 혼자 2층으로 올라간다. 삐걱삐걱하는 낡은 마룻바닥 소리와, 촛불의 위태로운 빛 때문에 그림자도 같이 기묘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새 아리사는 리미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솔직히 리미는 이제 영화에 거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새액, 새액 하는 아리사의 긴장 가득한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삐걱, 삐걱하는 기분 나쁜 효과음이 방을 가득 울릴 때마다 아리사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도 느껴졌다. 


' 아리사 쨩,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


 리미가 겁 먹은 아리사를 감상하며 즐거운 독백을 하는 바로 그 순간, 화면은 텅 빈, 어둡고 길다란 복도로 전환되었다.


" 에!? 아니, 여자애는...? 아, 읏...! "


하던 말을 멈춘 아리사는 갑자기 리미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서, 눈을 게슴츠레 뜬 채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아리사의 예상대로, 이 장면은 흔히 말하는 갑툭튀 구간!


" 뭐야, 왜 계속 복도만... 리미, 화면 멈춘 거 아니야? "


정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화면은 몇십 초 간 미동도 없었다. 리미도 묵묵부답. 점차 마음이 놓인 아리사가 다시 화면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순간...!


"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괴성을 지르며 복도 끝에서부터 기어온 것은, 기분 나쁜 인간형의 무언가.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아리사도 귀신에 버금가는 비명을 지르면서, 갑자기 리미의 한 쪽 팔을 와락 껴안고 자기 품으로 가져갔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란 리미가 팔을 빼려고 해 봐도 이미 단단히 붙잡힌 후라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 아리사 쨩!? "


이제 화면에는 귀신에게 붙잡혀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의 발만 보였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고기 썰듯 무언가가 꿰뚫리는 소리가 여러 번, 그럴 때마다 검붉고 질척한 액체가 후두둑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모습...


" 아읏..! 아으...! 읏...! 아우으...! "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리사는 마치 자기가 대신 찔리기라고 한 것처럼 몸을 떨면서 짧은 신음만을 흘렸다. 물론 리미도 다른 느낌으로 곤란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방이 덥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 으, 진짜 억수로 귀엽데이...! 아리사 쨩, 호러는 비과학적이라 하나도 안 무섭다더니... 쪼매 더 있음 아주 울겠네 울겠어! 진짜 이 가스나 우째 이리 귀여운데!? '


그렇지만 귀여운 거랑 별개로, 가쁜 숨을 쌕쌕 내쉬면서 불규칙하게 몸을 떠는 아리사의 상태가 슬슬 걱정이다. 이쯤에서 리미는 아리사의 상태를 살짝 떠보기로 했다.


" 아리사 쨩, 우리 여기서 그만 볼까...? "


그 말에 흠칫 놀란 아리사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앙칼지게 대답한다. 이제야 눈치챈 건지, 아까까지 꼭 껴안고 있던 리미의 팔도 슬그머니 놓아 버렸다.


" 쵸맛, 무, 무슨 소리래!! 지금 한창, 재밌는데... 그냥 계속 봐, 계속... 나는 궁금하기만 하네 뭐... 리, 리미는 무서워...? "


당당한 발언과는 달리 안쓰럽게 몸을 떠는 아리사. 저대로 두면 심장마비로 곧 쓰러질 것 같으니까, 이번엔 리미 쪽에서 다시 아리사에게 찰싹 붙어 주었다.


" 역시 아리사 쨩이네, 나는 살짝 무서워졌는데... 이렇게, 서로 가까이 있으면 안 돼? 아리사 쨩이랑 붙어 있으면 조금 안심이 돼서, 에헤헤... "


" 그, 그럼 어쩔 수 없네! 물론 나는 아무렇지도 않긴 한데, 많이 무서우면... 내 팔 잡아도 좋으니까. "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고 냉큼 팔을 내밀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다. 그런 아리사가 귀여워 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리미는 아리사의 팔을 꼭 껴안은 채로 어깨 쪽에 뺨을 기대었다. 막상 정신줄을 잡고 보니,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리사는 뻣뻣하게 굳은 채로 시선을 TV에 고정했다. 확실히 서로의 심장 소리도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부끄럽지만, 자기가 잡아도 좋다고 했으니까 이제 와서 리미를 뿌리칠 수도 없었다. 곰인형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부드러워서 솔직히 뿌리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그 뒤에도 이런 저런 갑툭튀나 잔혹한 연출이 러닝타임 내내 이어져서, 30분 정도가 더 지났다.


이제 아리사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역으로 리미 쪽에 딱 붙어서 거의 반쯤 감은 눈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귀여운 양갈래 머리도 어느새 다 헝클어진채로 풀려 있었고, 양 손은 리미의 옷자락을 뜯어낼 듯 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귀신이 9번째로 나타난 장면에서, 아리사는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맞게 되었다.


" 꺄아아아아아아악!!! 흐, 으윽... 흐윽... 리, 리미이... 나 이거 못 보겠어... 언제, 이거 언제 끝나...? 우리 그만 보자... 응? 진짜 그만 보자... 흐윽... 으읏, 하... 흐으... "


리미는 그런 아리사의 모습을 한 컷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뚫어져라 쳐다 보면서, 엄지 손가락으로 아리사의 눈가에 묻은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 평소 같으면 당장 얼굴을 붉히고 틱틱댔을 스킨십이지만, 지금의 아리사는 무언가 의지할 게 간절히 필요했으니... 리미를 밀어내는 대신 아리사는 리미의 손을 제 뺨에 가져다 대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안쓰럽게도, 마치 그 온기로부터 조금의 안정이라도 얻고자 하는 것 같았다.


웃으면서 끝내려면, 여기서 그만 둬야 한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욕심이 났다. 곧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인데...! 이걸 본다면 아리사 쨩은 어떻게 될까... 딱 한 번만 더, 라고 사아야네 초코코로네 앙금보다 달콤한 속삭임이 리미의 귓가에 아른거리는 듯 했다.


결국, 리미는 가빠진 호흡을 억지로 가다듬으면서 아리사를 안심시켰다. 앞으로 딱 한 번만, 아리사 쨩의 멘탈이 버텨 주기를 바라면서... 앙큼한 거짓말까지 덧붙였다. 나쁜 짓은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선을 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쉽다. 아까까지 열심히 리미의 마음을 찌르던 양심도 결국 모서리가 다 닳아버린 것일까? 이번에는 죄책감조차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 딱 한번만 더 보고 끄면 되잖아...? '


" 아리사 쨩...? 이제 무서운 장면은 다 끝났거든? 놀랄 일도 없으니까... 그냥, 끝까지 보면 돼. 정말이야. "


아리사는 리미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더니, 격하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 정말 다행이야 ' 라고 얼굴에 써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리미는 다시 차오르는 죄책감에 아리사와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드디어 끔찍한 폐가에서 탈출하게 된 주인공. 가족들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 리미 말대로, 정말로 이제 끝이구나... 아리사는 리미의 품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를 올 때 탔던 자동차에 얼른 다시 타서,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으려는 바로 그 때...!


백미러에 선명하게 비치는, 빨간색 눈동자.


" 아아아아악!!! "


"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백미러에는 검붉은 피가 잔뜩 튀기고, 주인공과 아리사는 동시에 비명을 내지른다. 별 하나 없이 구름이 짙게 낀 밤, 기분 나쁜 피아노 배경 음악. 폐가의 입구를 마지막으로 비추고는 화면은 서서히 페이드 아웃. 그리고 엔딩 크레딧.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정말 깜짝 놀라버린 아리사. 멍하니 엔딩 크레딧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던 리미의 팔에 무언가 뚝, 뚝 떨어진다. 놀라서 고개를 휙 돌린 리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리사의 얼굴.  


" 하, 흐으.... 으.... 리미!! 왜, 왜 거짓말 했어!! 흐윽.... 흐아앙.... 하, 한 번 더 나왔잖아, 귀신.... 왜 나한테 거짓말 해, 왜....! 흑, 흐윽... 히끅, 흑.... "


리미의 팔을 한 손으로 콩콩 두드리면서 원망하듯 내뱉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긴 하지만 갑자기 확 겁이 나는 리미였다. 아리사 쨩, 진짜 화난 거면 어쩌지...?  


" 미안, 아리사 쨩!! 내는 거기서 튀어나올지 진짜 몰랐다!! 진짜 몰랐으니까! 우, 울지 말고... 이리 온나, 응...? "


당황한 리미가 두 팔을 벌리자, 아리사가 저항 없이 리미의 무릎에 올라탄다. 


' 에!? '


그냥 어깨를 다독여주는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리사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리미의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사는 리미를 마주 본 채로 리미의 목에 팔을 감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어버린다. 이 와중에도 한 줌 남은 자존심을 지키려고 변명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이건, 이건 진짜 리미 잘못이야.... 흐윽, 나, 나 원래 이런 거 잘 보는데, 리, 리미가 거짓말 해서, 그래서.... 그래서 안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심장이 놀란 것 뿐이라고.... 흑, 흐읏.... 리미가 나빴다고, 진짜로.... "


" 응, 응....! 아리사 쨩은 잘못 하나도 없데이...! 다 내가 깜빡해서, 아리사 쨩을 놀라게 한 내 잘못이다 안카나...! 자, 뚝! 울지 말고...! 아리사 쨩, 미안, 진짜 미안... "


연신 사과를 하는 리미의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고 아리사는 계속 리미에게 안긴 채로 훌쩍일 뿐이다. 리미는 우는 아이를 달래듯 아리사의 등을 상냥하게 쓸어주다가 때때로 토닥여 주었다. 아이를 달래본 적은 몇 번 있지만, 우는 고등학생을 달래본 적은 없으니 그야말로 난감하다. 나름 상냥하게 달래주고 있는데도, 방심하고 있다가 놀란 것이 서러웠는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아리사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아리사가 훌쩍이는 소리도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어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자기 품에서 가끔 움직이는 아리사를 보고 있으니, 죄책감과 은근한 쾌감이 동시에 리미의 가슴에 파도 치듯 몰려왔다. 분명히 아리사는 리미보다 키가 클 텐데, 이렇게 안겨 있으니까 그런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 아리사 쨩, 조금 진정 돼...? "


리미의 말에 드디어 아리사가 고개를 살짝 들어 주었다. 서로 눈이 맞자, 아리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갛게 물든다. 그러면서도 아직 진정이 안 됐는지 안겨 있는 건 그만두지 않는다. 


" 아리사 쨩... 괜찮아? 이쪽 좀 봐 줘, 응...? "


" 읏....! "


분명히 분하고 속상해 죽겠는데, 딱히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이 현재 아리사의 상황이었다. 예상 못한 타이밍에 튀어나온 귀신 때문에 리미 앞에서 울어버린 건 쪽팔리고 억울하지만, 고의가 아니었다는 리미를 마냥 나무라기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전에 싸운 일 때문에 안 그래도 살짝 서먹해졌는데, 오늘 또 화냈다가 완전히 어색해진다면... 그렇다고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가기엔 이미 리미 앞에서 너무 서럽게 울어버렸다. 그러니까 리미한테 화를 내기도, 안 내기도 애매한 상황. 죽어도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겁쟁이인 자기 탓이었다. 그게 분해서 아리사는 괜히 리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번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리미의 손길을 차마 뿌리치지는 못하고 아리사는 고개만 돌려버릴 뿐이었다. 어쨌든 상냥하게 자길 달래주는 리미를 딱 잘라 밀어내는 것이 안 되니까 부끄러워도 참을 뿐이다. 서럽고 속상한데 쓰다듬어 주는 건 기분 좋아. 쪽팔려. 안겨 있으니까 안심돼서 분해. 진짜 너무했어. 내 잘못 아니야. 리미 네가 잘못한 거라고. 이치가야 아리사 진짜 바보 멍청이. 잘 못 보면서 왜 공포물을 보겠다고 해 가지고 흑역사를 만들어. 이제 뭐라고 변명 할지 모르겠어. 결국 아리사의 머릿속에는 파편화된 감상들만 맴돌 뿐이었다.


" 아리사 쨩, 오늘 일은 꼭 비밀로 할테니까.. "


" 거짓말. 어차피 또 아까처럼 거짓말이잖아. 리미는 오늘 계속 나한테 심술궂으니까... 나 싫어하는 거잖아.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라고. "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버린 리미에게 괜히 심술을 부려 보는 아리사였다. 그렇게라도 해야 응어리진 마음이 살짝 풀릴 것 같았다.


" 하아!? 내는 오히려 반대다, 반대!! 아리사 쨩은 귀엽고, 공부 잘하는 것도 멋있고, 키보드 칠 때 손도 억수로 예쁘고, 내한테도 참말로 상냥하니까... 아리사 쨩을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죠에, 아니 지구에 한 명도 없데이! "


" 으...! 알았으니까!! "


손사래를 치면서 부끄러운 말을 잘도 하는 리미 때문에 역효과로 괜히 얼굴만 더 빨개졌다. 이제 더 생각하는 것도 피곤해진 아리사는 다시 리미 품에 파고들듯 안겼다.


" 그래, 아리사 쨩..! 테레비에서도 한숨 푹 자고 나면 진정된다고 안카나... 내 참말로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푹 자면 된다... "


" ...... "


영화를 본다고 불을 꺼놓은 탓일까, 다시 등을 살며시 토닥여주는 리미한테 안겨 있는 것이 안심 되는 덕분일까. 긴장이 확 풀리자 자연스럽게 잠이 쏟아진다.


리미는 아리사가 깨지 않게 조심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는 문자 메세지를 작성한다. 받는 사람은, 포핀 파티의 기타 앤 보컬.


[ 카스미 쨩,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아리사 쨩이랑 나는 오늘 연습 못 갈 것 같아... ]


[ 정말?? 다른 일 있어? 아니면 둘 다 몸이 안 좋아!? ]


뭐라고 해야 하지. 비밀로 해야 하는데... 오늘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 버린 탓일까? 아니면 피곤해서? 한참을 고민해도 리미의 머릿속에는 그럴 듯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거짓말을 하는 것은 포기하고, 적당한 문자를 보낸 뒤 리미도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 아리사 쨩이랑 같이 잘 거야. ]


*


" 그래서, 리미네는 왜 못 온대? "


연습 시작 전. 드럼 스틱을 경쾌한 리듬으로 움직이며 손을 푸는 사아야가 묻자, 답신을 받은 카스미는 왜인지 손가락을 꾸물거리면서 대답을 쉽사리 하지 못했다.


" 카스미? "


" 그, 그러니까... 리미가 그랬는데, 아리사랑 자느라 못 온대... "


사아야의 손에서 스틱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고, 창고에는 어색한 침묵이 돈다...


*


" 앗, 리미링, 아리사...!? "


전날 늦은 새벽에야 겨우 깨어난 리미랑 아리사는 결국 리미네 집에서 같이 등교하게 되었다. 등굣길에 우연히 둘을 마주치게 된 카스미, 사아야, 타에의 표정이 하나같이 미묘해진다. 


" 아, 다들 있네... 어제 연습 못 간거 미안. 근데 너네들 왜 표정이... 우리 없는 동안 뭔 일 있었냐...? "


" 아니야, 아리사!! 무, 무슨 일이 있긴 뭐가!! 그리고 둘이 그런 일로 바쁘게 되면, 앞으론 굳이 말 안해도 되니까... 눈치 없이 물어봐서 미안해. 아하하... "


" 카스미, 그만...! 그만 얘기하자. 아리사, 리미링, 우린 먼저 가 볼게!! "


" 리미, 아리사, 나는 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마치 귀여운 아기 토끼 한 쌍 같아서... "


" " 오타에, 쉿!! " "


그대로 잰걸음으로 학교로 향하는 포피파 3인방. 난데없는 사과를 들은 아리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 리미... 너, 너...! 어제 일 다 얘기했지!! 비밀로 지켜준다고 했으면서, 또, 또 나한테 거짓말 했지...!! 이 거짓말쟁이!! "


" 에!? 아리사 쨩, 그거 진짜 오해다, 오해!! 내는 참말로 아무 말도 안했데이! 아, 아리사 쨩~!!! "


*


리미 사투리는 정말 어렵다... 전에 쓴거랑 합쳐서 15000자라 조금 길긴 한데 재밌게 읽혔음 좋겠네 ㅠㅠ

- dc official App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40

고정닉 18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3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3]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4115 14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2]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5297 45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2733 25
1331450 공지 공지 [30]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9995 43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0]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7047 25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600 32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2257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0849 27
1456297 일반 아하하 해파리인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21 28 0
1456296 일반 유키가 먼저 마유한테 습-하 하라고 말하는게 보고싶다 [1] ㅇㅇ(121.188) 19:20 10 0
1456295 일반 슬라임300 사신킥 콜라보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20 20 0
1456294 일반 요루카노를 석방하라 [10] 치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3 97 3
1456293 일반 카노 엄마 꼰대야? [1] ㅇㅇ(175.196) 19:12 49 0
1456292 일반 ㄱㅇㅂ) “츠카~마에테~!“ 하는 여자 제이팝 아는 사람? ㅇㅇ(112.144) 19:11 33 0
1456291 일반 선착순 한명 마이쮸 무료나눔 [14] 만달로리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1 81 0
1456290 일반 오늘은 빠른 백바 [5]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 65 0
1456289 🖼️짤 냥카인 흡입하는 집사 짤 [4] ㅇㅇ(211.208) 19:05 150 8
1456288 일반 해파리 끝나는 날 걸밴크 정주행해야지 [1] ㄴㅊㅎ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4 43 0
1456287 일반 다음주는 공휴일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 [6]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2 77 0
1456286 일반 이번분기 백합애니 근황.jpg [8] 이탄성질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2 253 8
1456285 일반 2분기 보국지는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0 93 0
1456284 일반 니황 야쿠자같애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9 50 0
1456283 일반 욱평 개빡세네 [2] Klaud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7 83 0
1456282 일반 갓경 쥰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6 29 1
1456281 일반 성우분인가 보고나면 다음편 못참을거라고 했던 거 근들갑이라 생각했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6 125 4
1456280 일반 이번주 현충일이구나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4 66 0
1456279 일반 이거 보니까 메스가키 야에 보고싶네… [7]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3 89 0
1456278 일반 어설트 릴리 이마파시 [1] 마이레오팬클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3 38 0
1456277 일반 사사코이 망한거보면 진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네 [2] ㅇㅇ(222.96) 18:52 95 0
1456276 일반 일주일은 너무 길소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2 48 0
1456275 일반 시발 다음주까지 어케 참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50 91 2
1456274 일반 아니 이거 낳는거였어 [13] 토끼단조무래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9 173 4
1456273 일반 나참 요루가 잘못했네 [2] ㅇㅇ(125.177) 18:48 93 0
1456272 일반 여자들끼리는 강간으로 안치더라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7 117 1
1456271 일반 대륙이 백합 강국인 건 [3] 9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6 103 2
1456270 일반 걸밴크 밀린 거 다봤다 [1] 만달로리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6 47 0
1456269 일반 역시 니황ㅋㅋㅋ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5 60 2
1456268 일반 념글 메이카논도 은근 근본 아님?? [4] 여아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5 76 0
1456267 일반 그래도 요루쿠라 수요일에 예고편 나오지? 백합백문학과교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4 50 0
1456266 일반 새삼 악질렉카 참교육하고도 말짱히 활동하는 유우히가 대단하네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3 92 0
1456265 일반 요루쿠라 걸밴크 그리고 사사코이 센트로이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2 72 3
1456264 일반 슬라임 300근황... [12] 연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2 139 2
1456263 일반 솔직히 시호 히말이가 더맛잇다고생각해요..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40 41 0
1456262 💡창작 【 1화 】 유리장의 카나리아 [7] 로나펠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39 222 15
1456261 일반 "그래서 고민이거든요."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38 60 0
1456260 일반 노을빛 소녀 보고 있는데 SM0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38 24 0
1456259 일반 "후후... 우리가 만들었던 노래..." [14] HiKe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37 523 27
1456258 일반 프리큐어 귀엽다 [4] 코토사츠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36 62 0
1456257 일반 근데 백합물에서도 난자난입이나 여자가 ntr하는것도 불호 많은가봄 [7] 웃치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34 179 0
1456256 일반 지금 싸움은 메로가 이긴 거야 [1] μ’s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34 80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