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11편 12편 13편 14편 15편

"이곳은...."

텐도 마야는, 자신이 죽은 후에 대해선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세, 천국과 지옥.

이런 추상적인 개념들은 그녀가 혈귀가 되기 전에도, 된 후에도 그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텐도 마야조차도, 자신의 눈 앞에 펼처진 이 허무의 공간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걸쳐진 세상이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너머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불길은 필경 지옥의 업화일 터.

이제 마야는 엉겹의 세월 동안 저 불길에 삼켜져 타오르며 고통받을 것이다.

허나, 마야는 두렵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의 업보에 대한 속죄.

괴물이 되어 아버지를,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클로딘에게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힌.

자신에게 내려진 천벌이었다.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럼, 가 볼까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비로소 텐도 마야는 예전의 당당함을 되찾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 불길을 향해 발을 디딘다-

"가긴 또 어딜 가. 혼자서."

-하지만.

이 곳에서 들려올 리 없는.

아니,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마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목소리.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녀의 목소리.

"...클로...딘...?"

천천히 돌아본 그 곳에는, 언제나처럼 당당한 미소를 지은 사이죠 클로딘이 있었다.

검은색 귀살대 제복 위에는 둘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주홍색 하오리가 걸쳐져 있다.

하지만. 어째서....?

"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네. 텐도 마야."

"... 당신이, 왜..."

"여기 있냐고? 널 따라서 왔지. 당연한 거 아냐?"

진짜 몰라서 묻냐는 듯이 클로딘이 눈썹을 찌푸린다.

충격에 빠진 마야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왜, 오신 겁니까.”

“못 들었어? 널 따라-“

“어째서 절 따라오신 겁니까!”

절박한 노성이 터져나온다.

클로딘이 놀란 듯 눈썹을 치켜든다.

“텐도 마야-“

“전 당신이 행복하길 바랬습니다! 저 같은 것은 잊고, 당신만의 길을 걸어가서 행복을 찾기를 바랬습니다!”

절박한 목소리가 젖어들어간다.

차마, 저의 클로딘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질 쳐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저 같은 건 당신에게 폐가 될 뿐이기에, 당신에게서 멀어지려 했습니다. 검사로서의 긍지도, 사람의 마음마저 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에게 제 짐을 지우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죽는 그 순간까지 마음속 깊이 감춰두려 했던 진심이, 댐이 터지듯이 입 밖으로 터져나온다.

멈춰야 하는데, 무심코 새어나온 속마음은 멈추질 않는다.

"어째서 당신은, 절 버리지 않으셨던 겁니까....?"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다.

정적.

저 너머의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자신이 던진 말이 질문이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마야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내, 클로딘이 마야에게 다가간다.

"마야. 고개 들어 봐."

다정한 목소리에 마야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짝!

"-???"

"아, 속이 다 시원하네."

활짝 웃으며 클로딘이 후련하게 말한다.

"크, 클로딘?"

"아니, 너 뺨 한번쯤 때려보고 싶었거든. 기분 좋을 거 같아서."

"....네..?"

"역시 기분 좋네."

"????"

조금, 아니 많이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마야의 머리속이 물음표로 가득찬다.

멍한 표정으로 자길 쳐다보는 마야의 모습에 클로딘이 한숨을 쉬고, 손으로 마야의 뺨을 부드럽게 감싼다.

"난, 너의 짐을 나와 함께 나누고 싶었어."

마야의 눈이 커진다.

"어떤 역경이 닥쳐오더라도, 너와 함께하고 싶었어. 너와 함께, 이겨내고 싶었어."

다정한 목소리에 슬픔이 베어나온다.

"이 마음은, 네게 전해지지 않았던 거 같네."

씁슬한 클로딘의 미소가, 오래 전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함께'야. 함께 이겨내는 거야.

아버지께서 우릴 인정하지 않더라도 괜찮아. 함께 다른 방법을 찾아내면 돼.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난 네 곁에서 떠나지 않아.

오래 전의 그 약속을, 맹세를 떠올린다.

언젠가부터 잊어버린 그 약속을.

"...아, 아아. 클로딘...."

마야의 눈에서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천천히, 클로딘이 마야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는다.

마야도 클로딘을 마주 끌어안고 품에 고개를 묻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클로딘. 저는...!"

"쉬이. 괜찮아. 마야."

목을 놓아 울고 또 운다.

자신을 묶어 두었던 긍지라는 이름의 족쇄마저 버린 채,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의 품에서.

클로딘은, 그런 마야를 안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다정히 속삭인다.

"괜찮아. 텐도 마야."

"비록 이런 끝이었지만. 난 한 순간도 너와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사랑해.

누가 말했는지 모를, 마지막 고백과 함께, 지옥의 불길이 둘을 집어삼킨다.

하늘이시어.

부디, 다음 생에서는.

우리 둘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있기를.

그리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먼 훗날. 세이쇼 음악학원의 입학식 날.

"...아, 그래. 너가 그 수석이구나?"

"어머, 기억하고 계셨군요. 감사하게도."

따듯한 봄날의 바람. 벚꽃이 만개한 나무 아래에서.

"사이죠 클로딘이야. 잘 부탁해."

"텐도 마야에요. 마찬가지로 잘 부탁합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진다.

와 완결이다 완결! 와!!!!

일단 늦게 올려서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네. 미안해요... 진짜 한달만에 올릴줄은 나도 몰랐어...

어쨌든 늦었지만 마지막화야. 사실 그냥 끝까지 배드엔딩으로 하려고 생각했는데 쓰고나니까 둘이 너무 불쌍해서... 환생해서 지금 세이쇼에서 만났다는 설정으로 했어. 여기선 행복하겠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런 부족한 글 읽어주고 댓글 달아줘서 다들 정말 고마워. 쓰다 막힐 때마다 댓글들 보고 힘내서 써왔어. 정말 고마워!(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