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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Som du vil

백신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08 00: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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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망 12년 째.



지구는 기나 긴 빙하기에 들어섰다.




서기 2159년 11월 30일





생명체가 살 수 없을 온통 얼음 뿐인 땅 위에서 한 소녀는 말했다.




"저기 있지, 우리 엄마가 죽기 전에 그랬는데, '이제 네가 마지막 남은 인류구나.' 라고 하고 그대로 잠들었든."




"그랬나요?"




"응. 그래서, 너는 뭐야?"




소녀는 물었다.


마주 앉은 여인은 소녀가 내준 이름 모를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요."




"너무 대충 대답하잖아."




"저도 제가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걸요."




소녀는 불퉁하게 앉아 있더니 여인의 옆으로 와서 손가락으로 여인의 뺨을 쿡쿡 찔러보았다.




"아니야. 아무리 봐도 인간이야."




"그런 걸까요."




"인간은 인간인데, 나 하고는 약간 다른 종족이야."




여인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소녀는 여전히 여인에게 관심이 아주 많았다.


소녀는 여인 앞에 고양이처럼 앉아서 여인의 손을 주물거렸다.




"너 말이야."



여인이 소녀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귀찮게 구는 소녀에게 그리 짜증이 나 있지는 않다.




"신인류지?"




소녀는 여인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독한 술인데 여인은 전혀 취하지 않은 듯 보인다.




"우리 엄마가 죽기 전까지 평생 찾아다녔던 거."




소녀는 손가락을 펴 여인을 가리켰다.




"영하 140℃ 에서 별 다른 장비 없이 생존 가능,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눈동자 색, 그리고 아까 분명 도저히 인간으로는 볼 수 없었던 괴력. 그리고 어제는 분명 말도 못했어. 알아 듣지도 못하고. 근데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말도 해."



여인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거 엄청 독한 술인데."




"잘 모르겠네요."




"알았어. 일단 너는 신인류야."




소녀는 무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너덜너덜한 노트에 무언가 적었다.




"다른 동족 들은 없어?"




"제가 말씀해 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회피하는 거야?"




"제가 뭔지도 확실하게 말씀해 드릴 수 없는 걸요."




소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튼 나랑 같은 인류는 아니란 것은 알겠어. 눈 속에 파묻혀서 옷도 하나 도 안 입고 자고 있었는데 멀쩡해. 그리고 저기 빙하도 부쉈어."




"그랬나요."




"알고 있으면서 그러지 마."




여인은 대답 없이 남은 술을 마셨다. 지금까지 단 한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너, 이름은 있어?"




"글쎄요."




"그럼 일단은 이거 붙여. CODENAME: NHGL-38591130."




"이거 어떻게 읽어요?"




"New Humanity of GLacier. 일종의 콩글리쉬야."




"저 부를 때 마다 그렇게 부르실 건가요?"




"아니 그냥 glacier [ˈɡlæsiə(r)] 라고 부를게. 근데 너 솔직히 방금 좀 당황했었지?"




"아니요."




"그래. 그런 거로 하쟈."




"네."




소녀는 여인을 놀렸다.


다만 여인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피이. 재미 없어."




소녀는 흥미를 잃고 제 방으로 들어가다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는 말했다.




"Glacier 너, 거기서 잘 거야?"




"동침을 원하시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저쪽에, 엄마가 쓰던 방 있으니까 너 쓰라고."




"감사합니다."




"아, 내 이름은..."



소녀의 등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헐, 나, 그동안 내 이름 불러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내 이름이 생각이 안나."




"유감이네요."




"아, 몰라 아무튼 일단은 그럼 나 아가씨라고 불러. 너, 우리 집에 도우미로 취업. 축하. 수고해."






***






서기 2166년 6월 21일 오전 10시 39분





"Glacier! 그 쪽으로 간다!"




붉은 점이 거대한 괴물의 단단한 피부에 나타났다.


괴물은 고통스러운지 크아아, 소리치고 고꾸라졌다.


소녀는 기다란 쇠꼬챙이를 괴물을 향해 겨누고 달렸다.


괴물의 턱에 쇠꼬챙이가 깊이 박혀 들었다.




"잡았다!"




소녀는 나무 위에 있는 Glacier를 향해 몸을 빙글 돌리며 방방 뛰었다.




"봐 봐, Glacier! 막타는 내 꺼!"




"크워어어어!"




소녀가 방심한 틈에 괴물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 발악했다.


단단하고 두꺼운 꼬리가 소녀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위험합니다."




Glacier는 어느새 소녀를 품에 안고 괴물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Glacier는 소녀를 품에 안은 체로 들고 있던 총으로 괴물의 머리를 쏘았다.



"와, 갈 뻔."




"아가씨. 지난 7년 간 느꼈습니다 만,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대체 어떻게 생존하신 겁니까?"




"어떻게든?"




"그 어떻게든이 아니였으면 죽었겠죠?"




"응, 그러네."




"웃지 마십시오. 지금 혼내는 겁니다."




"아, 미안. 표정 변화가 없어서 몰랐어."




Glacier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소녀는 Glacier의 잔소리를 대충 흘리며 계속 딴 짓을 했다.


방금 쓰러진 괴물을 향해 다가가 다리를 뻗어 콕 콕 찔러보았다.




"이제 죽었나 봐. 꺄아! 고기다!"




Glacier는 소녀가 자기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말해봐야 소용없는 거 같다. Glacier는 할 일 이나 하기로 했다.




"옮기겠습니다."




"응, 수고."




Glacier는 괴물을 짊어지고 일어섰다.




"응? 근데 성체는 아니구나."






***






서기 2166년 6월 21일 오후 12시 13분





소녀는 연구소로 돌아오자마자 술부터 꺼내왔다. 굉장히 들떠 보인다.




"그거는 생으로 먹을 수 있어."




소녀는 Glacier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아 들고는 괴물의 다리에서 살을 덜어 내었다.


굉장히 좋아하는 고기인 모양이다.


곧장 입으로 가져가던 소녀는 Glacier를 돌아 보더니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괴물 다리 살을 Glacier의 앞에 들이민다.




"자, 먼저 먹어 봐."




소녀의 행동은 매우 이례적 이였다.


차라리 저 괴물 다리 살이 상하진 않았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시식해 보라고 명령 하는 거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상황 이였다.


Glacier마저 최근 들어 점점 변하는 소녀의 행동에 내심 놀라고 있을 정도였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을 뿐.




"맛있습니다."




"그치? 성체는 더 맛있어. 너무 새끼면 너무 물렁 물렁해서 느낌이 이상하고, 너무 늙으면 퍽퍽해. 얘는 적당히 성체여서 조금 괜찮을 거야.'




소녀가 내심 뿌듯해 했다.




"소스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응, 수고."






***






서기 2166년 6월 22일 오전 2시 53분





콰릉.


소녀는 창 밖으로 저 멀리 번개가 내리 꽂히는 걸 보았다.


저 멀리 산에서 연기가 스멀 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직 안 주무십니까?"




"응. 저기 봐라? 방금 번개 떨어졌는데 불났어."




산불이 조금 크게 번져 있었다.




"곧 눈이 오면 꺼지겠지만, 혹시 모르니 GL-01 10기를 보내 조치하겠습니다."




"음, 뭐 조심해서 나쁠 거는 없지."




지난 7년 간 소녀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설계도를 바탕으로 로봇을 만들었다.


Glacier와 혼신의 힘을 다해 세 종류를 만들어 냈지만, 결국에는 전투 능력은 끝내 탑재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쓸만한 것을 만들어 내었다.



소녀에게 Glacier는 일꾼 이였고, 만들어낸 로봇들 역시 일꾼 이였기에 Glacier의 이름을 따 GL이라고 명명했다.


GL-01은 GL 시리즈의 첫 째다. 악천후에도 활동할 수 있고, 주변 지형을 무시하는 수준의 기동성과 강한 열에서도 버틸 수 있었으며

양산하기도 쉬워서 가장 폭넓고 다양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는 기체다.


소녀는 산불이 난 지점을 향해 빠르게 기동하는 10기의 GL-01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장성한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같이 밤을 새워가며 땀 흘렸던 Glacier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느낌이 이상했다.


GL들이 소녀의 자식이라면 같이 밤 새워 땀 흘린 Glacier의 자식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GL들은 소녀와 Glacier 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함께 밤 새우며 땀 흘려 달성한 성과' 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에 따라 이야기가 이상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소녀는 갑자기 옆에서 저를 따라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Glacier가 몹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같이 밤 새다가 졸리면 서로 기대서 잔 적도 있었고,


어느 때는 일어나 보니 아예 서로 끌어 안고 자고 있었다 거나,


일어났다가 따뜻해서 Glacier품을 더 파고 들어갔었다 거나.



소녀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괜히 Glacier에게 무심한 듯 말했다.




"너는 안 자냐?"




"조금 있다가요."




소녀는 Glacier의 입술이 보였다. 그래서 그냥 누웠다.




"나 이제 잘게."




"소등 하겠습니다."




"응, 응, 수고."






***






서기 2169년 1월 17일 오전 2시 05분






소녀는 그새 더 이상 소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동안 GL들 도 많은 성장을 거듭하며 양산되었고, GL-01를 개량한 GL-01P와, 오랜 노력 끝에 전투 능력을 탑재한 GL-04를 양산했다.


소녀는 GL-01P 80기와 GL-04 30기를 양산한 후에는 조금 고민했다.


이것들을 그냥 놀리고 있기에는 조금 아쉬웠던 모양이다.

소녀는 대탐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Glacier처럼 어딘가 신인류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소녀와 같은 인류가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여기서 딱히 쓸 일은 없고 웬만한 건 무려 8000기를 양산한 GL-01이 모두 해결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녀에게는 만능 Glacier가 있었다.


그래서 소녀는 GL-01P 50기와 GL-04 10기로 탐사대를 꾸려 남쪽으로 보내기로 했다.


Glacier는 통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L-01 1000기에 송·수신기를 달아 딸려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조금 향상된 AI를 탑재한 GL-01P의 대장기가 무언가 굉장히 신이 났는지 더 멀리, 더 멀리를 외치고 있었다.



소녀는 허락했으나, Glacier는 일단 대기하라 명했다.


통신이 힘들어 진다는 이유였다.




[탐사대01(GL-01P) : Glacier 어머니께 당신의 넷째 딸들의 대표로서 유감을 표합니다.]




탐사대 대장기인 '탐사대01'은 하루 세 번씩 꼬박 꼬박 저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기서 넷째 딸 이란 건,


만들어진 순서로는 GL-01P가 네 번 째였으니 따지고 보면 넷째 딸 이라는 것이다.



GL들은 어느 순간부터 소녀와 Glacier를 어머니 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소녀를 '아가씨 어머니'로, Glacier를 'Glacier 어머니' 로 구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녀는 3년 전부터 저런 것에 관련해서 고민이 많아졌다.


계속 Glacier에 대해서 무언가 계속 신경 쓰이게 되었는데 GL들 까지 저러니 혼란스럽다.


그래서 소녀는 처음에 GL들 에게 그러지 말라, 했고.


그 말을 들은 Glacier에게서 처음으로 서운해 하는 기색을 어렴풋이 느꼈다.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그냥 그랬다.



그래서 소녀는 GL들에게 내린 명을 번복했고,


Glacier은 소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나갔다.




그 일이 생각나서 이번엔 반대로 소녀가 Glacier를 빤히 쳐다보았다.


Glacier은 시선을 느끼고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5초 정도 흐르고 소녀는 눈싸움에서 패배했다.




"응, 수고해."






***





서기 2171년 12월 25일 오후 23시 15분





소녀는 탐사대로 부터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Glacier! 이거 봐! 스발바르래!"




"예, 보고 있습니다."




"뭔가 작물 씨앗 같은 걸 보관하고 있다는 것 같아. 이제 저 지겨운 풀때기 1, 2, 3, 4를 먹지 않아도 될 지도 몰라."




Glacier는 뭔진 몰라도 꽤 들떠 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덩달아 기뻐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Glacier은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으익. Glacier! 왜 왜 그래!"




소녀는 엄마의 죽음 이후 처음 쓰다듬어졌다.


소녀는 매우 당황하여 뒤로 넘어졌고, Glacier는 재빨리 소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흔한 클리셰 장면이 연출 됐다.


Glacier는 소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소녀보다 컸다.


소녀가 성장하며, Glacier도 약간이지만 더 컸다.


결론은 소녀는 Glacier의 품에 완전히 파묻히게 되었다는 것 이였다.



"괜찮으십니까?"




"어, 어 어어어. 괘 괜찮으니까 이제 놔줘."




Glacier은 품에 안긴 소녀가 굉장히 부드럽다는 것을 알았다.


당황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조심하십시오."




Glacier 소녀를 놔주기 내심 아쉬워서 또 쓰다듬어 보았다.


소녀는 작은 고양이가 털을 바짝 세우는 모양새로 화들짝 놀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으응, 수, 수고하고."






***






서기 2180년 3월 8일 오전 9시 10분




어느새 소녀의 나이가 불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그녀의 어머니가 사용하고, 그녀가 물려받아 사용하던 연구소는

이제 지어진 지 80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는데 다가, 인류의 멸망이라는 큰 사건을 겪으며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였다.


소녀는 Glacier와 GL들의 힘을 빌려 지금까지 연구소를 어떻게든 고쳐 사용해 보고 있었으나, 더 이상은 한계였다.



소녀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로 향하기로 했다.


원래 대로라면, 한국보다 북서쪽 방향에 있어야 맞으나, 어찌 된 것인지 한국보다 남쪽으로 가 있었다.


국제 종자 저장고는 6개의 마스터키가 모두 있어야 문을 열 수 있다.


소녀는 새 전투 로봇 GL-05 5기를 보내 문을 파괴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GL 탐사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이 열려 있었고, 입구에서 백골 18 구를 발견 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이 이곳을 점거하고 생활하다 모종의 이유로 죽음을 당한 것 같았다.


GL들은 주변을 탐사하며 위험 요소를 점검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저장고 안 내용물에 대해서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운 좋게 살아남은 몇몇 종자들을 회수할 수 있었다.



소녀는 미리 GL들을 보내 저장고 내부를 수리하고 리모델링 하도록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출발하는 날이다.


소녀는 Glacier가 건네는 특수 방한복을 입었다.


떠나기 앞서 연구소 앞 작은 언덕 앞에, 소녀는 조심스레 말을 건네보았다.




"엄마 안녕."




그러고는 잠시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뒤돌아서 나아갔다.


Glacier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서기 2190년 5월 5일 오전 8시 34분





"Glacier."




"예, 아가씨."




"이제 그만 가 봐도 돼. 아, 여기가 더 편하려나?"




"알아서 하겠습니다."




"나한테 반말 한번 만 해줘 봐. 아니 지금 시간 이후로는 계속 나한테 반말 해."




"그래."




소녀는 헤헤 하고 웃었다.




"너 혼자 두고 내가 먼저 갈 줄은 몰랐어."




Glacier는 말 없이 소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동안 정말 너무 너무 고마웠어."




소녀는 Glacier와 함께한 31년 간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 없이 이야기 했다.


속에 파묻힌 시체를 꺼내서 묻어주려는 데 눈을 번쩍 뜨고, 갑자기 말도 하고, 전속 시녀처럼 부려 먹고,


똑똑한 내 조수가 되었다가, 엄마가 되어 주었다가, 언니도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주고, 목숨도 여러번씩이나 살려주고,

밥도 해주고....



소녀는 숨을 헐떡였다.




"아... 억울해... 죽음을 앞에 두고 정말 추해지네."




"아니. 추하지 않아."




Glacier의 진지한 모습에 소녀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리 와봐. 한 번만 안아보자."


소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Glacier는 소녀의 등을 받혀주었고, 소녀는 Glacier의 등을 꽉 껴안았다.


"따뜻하네."


소녀의 눈에서 흐른 물이 Glacier의 옷깃을 촉촉하게 적셨다.


소녀는 애써 웃음을 만들어 내며, 말 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너 정말 좋아했고, 이제 나 없어도 행복하게 지내고, 만약 너희 종족들을 찾아 문명을 건설한다면, 첫 여왕은 너로 기록 되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잘 지내."


소녀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Glacier는 소녀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그간 표정 변화 없던 Glacier의 표정은 아주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환한 웃음은 후회와, 짙은 슬픔 이였다.


"아, 마지막에 그렇게 웃냐. 억울하게."


소녀는 Glacier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이름 생각났어. 내 이름. 김 밝은빛누리예. 밝은 세상에서 밝게 살아가란 의미래. 사실 쪽팔려서 안 알려줬는데, 이제 보니까 나는 저 이름에 맞는 삶은 산 같아."


"나를 만나서, 라는 진부한 대사를 하고 싶은 거야?"


"후흐. 정답이야."

소녀는 점점 잠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Glacier는 조심스레 소녀에게 입을 맞췄다.


소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래, Glacier. 수고 많았어. 응. 수고해."


소녀가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홀로 남은 Glacier은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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