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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행성간공감시스템 1화

해와달(180.230) 2020.04.07 00:24:02
조회 253 추천 14 댓글 1
														

평화로운 푸른 행성 니르바나.

이 행성의 사람들은 고도의 과학 기술 대신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선택하였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생활과 잘 보존된 자연과 경관.

그래서 일부러 다른 행성에서 니르바나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트리우나 라이너도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니르바나의 중부 지역에는 마노라는 목가적인 분위기의 마을이 있었다.

이 곳의 주민들은 대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돌보며 살았다. 

주민들의 집들은 논밭을 사이에 두고 널찍하게 떨어져 있었다. 

트리우나는 마을의 여느 사람들의 집과 다름 없는 소박한 나무집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따르르르르르르릉"

"시끄러워."


그녀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로 근처에 있는 알람 시계를 찾기 위해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잠시 후 시끄러운 방해꾼은 그녀의 손에 붙잡혔고 버튼이 눌려졌다. 


"따르르르르르르릉"

"아! 시끄럽다고!"


아무래도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잠이 많은 그녀는 알람 시계를 냅다 던져버렸다.



벽을 강타하고 소리를 멈춘 알람 시계는 중력에 이끌려 밑 선반에 있는 음반 더미에 부딪혔다.

볼링핀들이 쓰러지듯 음반들은 제각각 선반 밖으로 탈출했고 그 중 여러 개는 먼지 쌓인 모포로 덮인 신디사이저 위에 도달했다.


파. 시. 레.


잠이 깬 트리우나는 음반들의 연주소리에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일어나서 흩어진 음반들을 주워 제자리로 돌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음반의 커버를 응시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 음반은 그녀가 직접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의 작품이었다. 

자신의 오랜 추억을 들여다 보는 그녀의 눈에는 깊은 연민과 후회가 담겨 있었다.


그 때, 창 밖에서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우주선의 엔진 소리였다. 

트리우나의 집 안의 물건들이 흔들렸고 기껏 정리한 음반들은 다시 쏟아져 내렸다.

화가 잔뜩 난 그녀는 정문을 박차고 나가 소리질렀다.


"어떤 미친 녀석이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 우주선을 주차하고 있냐!"


30m는 족히 되보이는 우주선은 착륙을 끝마쳤고 주위에 흙먼지가 날렸다. 

그녀의 집 앞이 단순한 공터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주민들처럼 농사를 짓고 있었다면 우주선 때문에 수많은 작물들의 대가리가 쓸려나갔을 것이다.

그녀는 불청객의 낯짝을 확인하기 위해 콕핏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외부에서 볼 수 없게 차단된 유리벽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야! 너 뭐하는 녀석이야? 빨리 안 나와?"


우주선 측면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한 소녀가 등장했다. 은은한 아쿠아마린색의 어깨 정도까지 오는 길이의 머리를 한 소녀였다.

그 소녀는 고풍스럽고 단아한 분위기의 원피스형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 소녀는 하얀 생크림 케이크 위에 놓인 딸기 같은 입술을 열며 트리우나에게 물었다.


"트리우나 라이너 씨 맞나요?"

"뭐? 너는 뭔데?"


아침에 뜬금없이 자신의 집 앞에 나타나 소음공해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소녀. 트리우나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졌다.

트리우나는 소녀를 얼빠진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자 소녀는 살짝 부끄러웠는지 눈을 피했다. 그리고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스승이 되어주세요."

"네?"

"되어주세요."

"음... 저기 경찰이죠?"

"경찰은 부르지 말아주세요!"


소녀는 트리우나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낚아챘다. 트리우나는 소녀의 무례한 행동에 노발대발했다. 


"뭐하는 짓이야? 대뜸 스승이 되어달라고 하더니 휴대폰까지 뺏어가? 내 휴대폰 돌려줘! 휴대폰 새로 살 돈 없단 말이야."

"미안해요. 여기요. 근데 경찰은 부르지 말아주세요."


소녀는 허리를 숙이고 공손하게 두 손으로 휴대폰을 돌려 주었다. 소녀의 가슴께에 있는 펜던트가 보였다. 

트리우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벌벌 떨며 자신이 본 것이 진짜인지를 확인했다.


"그 펜던트는...?"

"아."


소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 펜던트를 풀어 품 속에 숨겼다.


"숨기는 걸 깜빡했네요. 못본 척 해주세요."

"쿤의 황족이 도대체 왜 여기에?"


신성 제국 쿤. 이 은하의 수많은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는 은하 최대의 강대국이다. 트리우나는 쿤 황제에게 외동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설마.


"저는 이제 황족의 지위를 버렸어요. 제 이름은 프레이야. 프레이야라고 불러주세요."

"황족의 지위를 버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가출했거든요."

"가, 가출?"

"집이 너무 따분해서요."

"팔자 좋은 소리 하는구만!"

"그렇지도 않아요. 망할 아버지는 제 모든 것에 간섭한다니까요."


프레이야는 '망할' 을 힘주어 말하였다.


"온갖 규칙에 얽메이는 삶은 지긋지긋해요."

"하... 그래서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구나."

"네.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만 그래도 나중에 부모님께 연락 정도는 해라?"

"네. 스승님."

"누가 네 스승님이야? 그래.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네가 가출한 이유는 알겠어. 왜 내가 네 스승인데?"


프레이야는 검은 로브 안쪽에서 정사각형 모양의 플라스틱 박스를 꺼냈다. 

그 물건에는 트리우나에게 아주 익숙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까 전에도 보았던 그림이.

이윽고 트리우나는 프레이야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제가 어떠한 대중 문화도 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죠. 제 시종이 몰래 가져다 준 이 음반을 제외하고요."

"하하. 벌써 10년은 된 과거의 일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저는 밤 늦게 제 방에서 몰래 이 음악들을 듣는 걸 좋아했어요. 아마 지금까지 1000번 이상은 들었을 걸요?"

"거 참 고맙구만."

"저는 당신의 음악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제 음악 스승이 되어주시지 않을래요?"

"난 제자 같은 거 안 두는데."

"그러면..."


강한 바람이 불었다. 프레이야가 걸치고 있던 검은 로브가 날아갔다. 그리고 등 뒤에 매고 있던 물건이 드러났다.

푸른 색 화살 모양의 베이스 기타였다.


"저와 밴드하지 않을래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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