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는 연예인이다.

그 것도 꽤 탑 급의 아이돌.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탑 급의 반열에 올라선 전대미문의 천재 아이돌! 이 바로 내 여자친구가 있는 그룹이다.

애인이 연예인이라고 하면 이런 궁금증 부터 들 것이다. 주변에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널리고 깔렸는데 불안하지 않아? 또는 질투나지 않아? 이런 류.

대답부터 하자면 '아니'라고 하겠다. 나와 내 여자친구는 같이 살고 있는데다 여자친구는 장난 아닌 사랑꾼이다. 온갖 기념일을 챙기는건 당연지사, 새 앨범이 나올 때나 음악방송의 순위를 발표할 때 등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귀찮을 정도로 같이 봐 달라고 졸라댄다. 걱정될 틈이 없는 팔불출이기에 나는 언니를 믿는 것 뿐이다.



내 친구들은 단지 내가 그 그룹의 엄청난 열성 팬인줄 안다. 그도 그럴것이 핸드폰에는 언니의 무대사진, 팬싸사진, 직캠, 셀카, 브이로그 등등이 파일별로 정리되어 있으니까. 앨범이란 앨범에 굿즈도 종류별로 가지고 있다.


"넌 그 그룹이 그렇게 좋냐?"
"엉. 진짜 이쁘지 않냐? 빨리 봐봐."
"아 됐어."


어김없이 카페에 앉아 언니 직캠을 돌려보는데, 친구가 타박을 한다. 화면속에서 나비처럼 팔랑팔랑 춤을 추는 언니 모습은, 집에서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막 잠에서 깬 부시시한 모습과 또 다른 매력이다.

흐흫, 하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친구가 이내 자기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엥? 야 대박."
"....?"
"니가 보고 있는 그 네 언니, 열애설 났는데?"


잠깐의 정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고개를 도로 홱 든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표정을 구기는 내게 봐봐, 진짜라니까 하며 친절히 코끝까지 핸드폰을 들이댄다.

친구가 건넨 폰에는 짤막한 기사가 떠있다. '아이돌 ㅇㅇㅇ, 신인 배우 ㅁㅁㅁ씨와 뜨거운 열애?!' 기사는 단순히 '아직 확인 중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의외의 조합', '그래도 잘 어울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와, ㅁㅁ라니. 진짜 의외다."
"아 좀 조용히 해봐."


친구의 입을 틀어막고 기사를 내렸다. 이 신인 배우, 언니가 욕하던 사람이잖아? 얼마 전에 같이 예능 한 번  찍었었는데 성격이 영 쓰레기라고. 잘생기기만 했지 대가리가 텅텅 비었다고 욕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뭐라했더라, 이 사람이랑 지구에 단 둘이 남아도 안사귀어! 최악! 이라고 신랄하게 욕했었지.

화면을 더 내리니 두 사람의 투샷 사진이 나온다. 와 확실히 연예인이라 그런지 잘생기긴했네. 본 적은 없지만, 키도 큰 모양이고...이렇게 보니까 잘 어울리긴 잘어울리는 것 같...긴 개뿔. 속에서 장난끼가 슬그머니 올라온다.


"자."
"야, 괜찮아?"
"뭐가? 아 나 잠깐 카톡 한번만."


친구에게 별 말 없이 폰을 돌려주니 눈치를 살핀다. 아마 내가 이 열애설에 충격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 그래 마음대로 생각하렴. 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감추고 카톡창을 켰다. 그리고 첫 번째에 즐겨찾기 되어있는 언니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언니.]


언니도 기사를 접한 모양인지 안절부절대며 카톡을 들락날락 거린 모양이다. 1은 바로 사라졌다. 언니가 뭐라 메세지를 보낼지 궁금하지만 그보다 내 장난이 먼저다.


[언니 연애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 새 캡쳐한 기사를 보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잘어울리는구만, 이 두 사람. 나랑 내 여자친구만큼은 아니지만! 두 번째 카톡 마저도 바로 보고 있던 모양인지 1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답장 대신 언니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징징 울려다는 폰을 한 손으로 막고 키득키득 웃으며 카페 밖으로 나왔다. 통화 연결 버튼을 터치하니 폰 너머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야!!!!!!"
"윽."


방심하고 있던 차에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황급히 귀에서 핸드폰을 살짝 뗐다. 그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언니는 또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뭐어???!!!!!! 연애하냐구~?!!!"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 것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운 격이 된 듯, 언니의 목소리는 한 톤 더 높아져갔다. 아니 근데, 이인간 이런 말 함부로 해도 되는거야?

"걱정은 못할망정!!!!! 그래!!!! 한다! 너랑!!!!"

열받으면 앞뒤 분간 없어지는 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 너머로 가뜩이나 짜증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는 험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거 참 위험한 발언을 하네. 장난을 치는건 재밌었지만 슬슬 언니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짓 화난 척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왜 언니가 소리를 질러요?"
"....미안해."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개미기어가는 목소리로 언니가 사과를 했다.
아, 진짜 너무 귀여워. 보이지는 않지만 또 풀 죽은 강아지처럼 잔뜩 움추려 있겠지. 보이지 않는 꼬리도 흔들거릴거다. 내 말 한마디에 이렇게 일희일비하는데 어떻게 의심을 할 수가 있겠냐구.


"진짜, 진짜, 그런 사이 아니야."
"알아요."
"화 났어?"
"아니요. 친구가 부른다. 이따 집에서 봐요."


언니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난 척, 내 이름을 안타깝게 부르는 언니를 외면하고 전화를 무정하게 끊어버렸다. 갑자기 더 좋은 생각이 났거든.

화가 나지 않은 건 사실이고 언니가 그사람이랑 어떤 사이일거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지만, 열애설이 난 건 사실이니까. 어쨌든 언니가 잘못한 거잖아. 오늘 밤에는 언니랑 더 재미있는 걸 해야겠다. 나는 씨익 웃으며 카페 문을 열었다. 딸랑, 하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렸다.




갑자기 귀찮아져서 마무리가 엉망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