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밤을 설치게 되는 날이 있었다. 어제같이 뜬금없이 들뜨거나, 창 밖의 벌레소리가 유독 거슬리는 날이 그랬다. 핸드폰을 보면 더더욱 잠을 못 이룰 것을 알면서도 가득 찬 방의 어둠을 얕은 빛으로 밀어내었다. 가끔 보는 유머사이트에 들어가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저급한 개그나, 특이한 팁 같은 걸 보다가 보게된 글이 하나 있었다. 그건 버스에 탄 여고생 셋이 사이 좋게 떠들다가 한 친구가 내리자 돌변해서 뒷담화를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내용을 보고 있자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여고에 다니는 내게는 여자인 친구들 밖에 없었다. 특히 매일 같이 붙어다니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왠지 바로 그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떨쳐내며 다른 이런저런 유머글을 보다가 밀려오는 수마에 핸드폰을 쥔 채로 잠에 들고는 다음 날이 되었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한 덕에 졸린 눈에 둔해진 머리로 겨우겨우 준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서 학교로 향했다. 언제나와 같은 버스에 타서 앉자 어젯밤에 읽었던 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애들도 그럴까?'

머릿 속에 두 친구들이 스쳐 지나갔다. 차가워보이는 여우눈에 높은 콧대, 빨간 입술은 마치 모델을 연상시키는 냉미녀. 교내에서 뿐만아니라 전국에서도 톱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높은, 머리마저도 뛰어난 말도 안되는 사기캐릭터. 또 한명은 그야말로 순한 강아지 같은 인상에, 높은 입꼬리와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사교력. 거기에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우승컵까지 가지고 있는 사기캐릭터. 어떻게 나와 친구가 되었을까 싶을정도로 사기인 두 친구들이었다.

'에이, 설마…….'

의심은 좋지 않았지만, 어쩌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가 그 두 사람의 친구라는 것도 참 특이한 일이었고, 주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 떠나서 내가 없었을 때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궁금하긴 했다.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이럴까저럴까하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이르기까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고, 어떤 계획을 생각해내기까지 이르렀다.

그건 바로 핸드폰 녹음기능을 이용해서, 놓고 일이 있는 척 나갔다가 오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고, 담임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다들 가방을 매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셋이 모여서 수다를 시작하려 할 때 핸드폰을 책상 속에 녹음으로 숨겨두었다.

"나, 잠깐 선생님이 부르셔서 다녀올께."

"또 무슨 잘못을 한거니?"

"잠깐, 그렇게 말하면 꼭 내가 맨날 잘못해서 불려가는 줄 알잖아!"

"아하하! 그런거 아니었어?"

"정말! 그런거 아니야. 심부름 같은 일이야."

"그렇다고 해줄태니 다녀오렴."

"앗, 그럼 올 때 콜라 부탁해!"

"나는 아메리카노 도피오가 좋단다."

"콜라랑, 아메리카노 도피오……가 학교에 어딨어!"

"얘, 농담이란다. 나도 콜라로 부탁해."

정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각자에게 천 원짜리를 받고서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적당히 학교를 돌다가 자판기에서 콜라 세 개를 꺼내들고는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 후, 적당한 시간이 되자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후, 적당히 TV의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웃다가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에 방 침대에 쓰러져 누워 핸드폰을 만지다가 녹음파일을 문뜩 상기시켰다.

'무슨 말을 했으려나.'

사실 이런 일은 친구의 신뢰를 져버리는 일이라 하면 안되는 일이지만, 그보다도 호기심에 져버린 내가 너무 미웠다. 이 일과 녹음한 내용들은 무덤까지 가져가자는 생각과 함께 녹음파일을 재생하였다.

처음엔 내가 핸드폰을 책상 속에 넣어두면서 부딧치는 소리와 그 소리가 책상 속에서 잠시 잔여하여 생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나도 알고 있는 적당한 이야기와 내가 자리를 비우면서 한 변명과 마실 거에 대한 간단한 농담이 있었다.

[얘, 농담이란다. 나도 콜라로 부탁해.]

[정말, 알았어. 그럼 갔다올께!]

문이 열리면서 경첩에 기름이 제법 말라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닫치면서 살짝 부딧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간 뒤인 지금부터가 귀 기울여야할 내용일 것이다. 핸드폰 녹음 특유의 노이즈가 잠시 들리고, 잠시 아무런 소리가 없다가 10여 초가 지났을 무렵 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간 거 갔은데?]

[그런가보네.]

생기 가득한 목소리와 살짝 차가운 듯한 말투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들렸다. 그들은 딱히 특이할 것 없이 내가 떠난 걸 확인하는 듯한 대화를 몇 차례, 다른 바리에이션으로 반복하고서는 대화가 끊겼다. 거기까지 듣고서는 나는 내심 다행이다며, 인터넷에서 본 글 같은 안 일어났다고 안심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가 없으면 이렇게나 대화가 없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듣던 중 1분 정도가 지났을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오늘 저 녀석 아침에 졸 때 봤어? 놀랬다니까.]

[밤에 게임이라도 한걸까? 피곤한 모양이네.]

순간 내 뒷담화가 시작되는건가라는 생각에 숨이 멈췄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서 나온 이야기는 그보다도 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치마 말려올라가서 허벅지가 다 보였다니까.]

[정말, 부주의해서 큰일인 아이구나.]

[그 새뽀얀 허벅지에, 보일듯 말듯한 치마에, 아 정말 놀리는거야?]

[그렇게 침을 뚝뚝 흘리면서 졸다니.]

[아, 허벅지 빨고 싶다.]

[반질반질한 입술이 닿으면 어떨지 아찔하네.]

[괴씸한 가슴도 빨고 싶다!]

[그 꼭지를 튕기면 어떤 귀여운 목소리를 내줄까.]

[그 야한 체취하고는, 얼마나 야하면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나지? 아랫 입에서 꿀이라도 흐르는걸까?]

[손발을 다 묶어두고, 기절할 때까지 괴롭히고 싶은걸.]

[아, 잠깐 흐른다. 물티슈.]

[나도 한장만 주겠어? 하아…….]

흘러나오는 소리에 멍하니 듣다가, 흠칫 놀라면서 정지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리고는 한참 망연자실한 채로 녹음한 것 처럼 멈춰 있었다. 그래, 이건 판도라의 상자였다. 아니 그보다도 무서운게 아닐까? 나는 더 이상 무서워서 재생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아아, 나는 이제 어쩌면 좋지.'

잠이 안와서 갑자기 생각나는 걸 기운차게 썼지만 내려갈 수록 필력이 약해진다!

회선이 바껴서 아이피가 바뀌었으니, 나는 다시 신입 유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