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경, 아침의 분주함을 만긱하며 퇴근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보너스도 받았고 하니 버스정류장으로 가려던 발을 멈추고 산뜻한 맘으로 택시를

불렀다. 콩나물 시루마냥 미여 터지는 버스에 오르기가 두려웠기도 하고 잠시 공상에 잠겨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정서은’ 흔한 이름은 아니였지만 그다지 희귀한 이름도, 특별한 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묘하게 그리운 어감 때문에 계속 혀 끝에 굴리고 있었다. ‘정서은..,정서은..,’

아는 사람중에 정서은이라는 사람이 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학생, 여기서 내려줘요?”

아 맞다. 따스한 이불속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들릴 곳이 있었다.
“아, 네. 여기서 내려주세요!”

요금을 치르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귀여운 장식품들로 가득 찬 자그마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마치 인형나라에 온 듯했다.

멀지 않은 테이블 한구석에서 현주가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현주는 무척 분통하다는 투로 내게 얼굴을 들이댔다.

“봐봐. 매번 약속시간 맞춰서 오는 걸 보면 너가 시간개념이 없거나

게으른건 아니란 말야, 근데 왜! 매번 금요일 밤이면 늦냐 이거지. WHY~???”

현주는 궁금한건 알아내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매번 그 이유를 물으면 내가 입을 닫아버렸기에 그녀 특유의 과장된 반응이 한층 더 과감해졌다.

“싱겁긴. 겨우 그런 거 물어보려고 퇴근하는 사람을 불러낸거니?”

“아닌데? 아닌데? 그냥.., 교대시간에도 딱히 별 대화 못했잖아.”

현주는 말끝을 흐리며 제 앞에 놓인 잔의 손잡이를 문질렀다.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을 때 나오는 습관이였다.

“그리고, 언제 다시 복학할건지도 궁금했고.., 여튼 벌써 8월인데..,”

“하. 본론이 뭔데, 돌리지 말고 말씀하시죠. 아가씨.”
“아니 뭐, 진짜..! 안 말해 줄건가 싶어서.

너 ‘그때’ 이후로 자전거만 보면 애가 경기를 일으키는데, 너랑 내가 알고 지낸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잖아.” 중간에 생략된 문장. '

‘이유가 뭔지는 알려주지도 않고.’

현주는 이렇게 눈으로 말하곤 했고 이어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사정한다.

‘정말 안 알려줄거니..?’

“...”

나는 현주의 총공에 못이겨 테이블로 시선을 내려 깔았다.

은연중에 뜯어댄 수많은 냅킨 조각들이 테이블 위에 한데 모여 있었다.

모서리가 뜯기다 만 넵킨 네장, 작은 부스러기 16개.

“아~ 그래 그래. 그럼 이건 넘어가자.

뭐 지금 이런다고 알려줄 것 같지도 않구. 좋은 일이라도 있냐?”

“있어, 복숭아.”

나 자신도 예상치 못한 답이였다. 분명 ‘검은모자’라고 말하려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만 것이었다. 복숭아를 좋아하는 손님, 원인불명의 달큰한 내음.

“엥? 복숭아?”

“음.., 요즘 자주 오는 손님이 한분 있는데, 어린애야. 중,고등학생정도 된 것 같아.”

“학생? 너 야간 알바 밖에 안하잖아, 설마.., 그 새벽에??”

“응.”

“매일 오는 거야?”
현주는 흥미로운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아니, 매일 오는 것 같진 않아”

알바가 아닐때도 오나 싶어서 확인해 봤거든.

“그냥, 내가 알바 할 때를 맞춰서 오는 것 같아.”

“고등학생이?”

“어, 고등학생이.”

흠.., 그것 참 기묘하군, 현주는 미간을 문지르며 중얼댔다.

 그렇게 잠시 있다 눈을 반짝이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 혹시, 너한테 빠진거 아냐? ‘저..한눈에 반했는데, 누나 번호 좀 주세요!’ 이런 거 말야.”

나는 현주의 엉뚱한 발상에 잘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너 또 그런다. 그 애 여자애거든?”

현주는 아쉽다는 양 커피를 쭈욱 들이마셨다. “앗 뜨거..!”

불거진 입술을 연실 문비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왜 복숭아야?"

“그 애, 복숭아를 엄청 좋아하거든,” 그왜 저번에는

다짜고짜 담배를 사려고 했다니까..,

이 말을 시작으로 수다가 꽃피었다.

그러다 문득-.

“너답지 않게 인자한 척 하긴. 먼젓번에 술 사다 걸린 애는 얄짤 없이 경찰 불렀으면서,

이번엔 왜 그렇게 잘해줘?” 현주의 물음이 훅 치고 들어왔고 느닷없이 들이닥친 공격에 나는 저항할 기회도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어..?”

“옛날부터 잘 알던 사이도 아니잖아, 그렇게 잘해줄 필요가 있어?”

딱히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게. 내가 왜?

현주의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끝내 현주와 헤어지고 난 후 집으로 와

침대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너답지 않게’

흐릿한 빛만이 일렁이는 천장을 노려보며 답을 강구했지만.

‘나 다운 것’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코끝을 간질이는 달큰한 복숭아 향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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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과제 절반남았다. 발등에 불떨어지니 따스하네, 

다들 즐거운 일요일 보내라^^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