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는 키보드를 두드러던 손을 잠시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금요일, 그녀가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그리고 깨고 나니 처음보는 천장이었다. 곁에는 처음보는 여자가 있었고.

난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유미는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치듯 방 밖으로 나갔을 뿐이다.

아마 이상한 일이라도 당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던지 기억은 없다.

그냥 당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잊고 싶었다.

자신의 실수를. 없던 일로 돌리고 싶었다.

띠링

손을 놓고 생각에 잠긴 사이 메세지가 하나 들어왔다. 처음보는 번호. 유미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것을 열어보았다.

그리곤 얼어버린 표정으로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사진이 있었다.

알몸에, 쾌락에 젖은 얼굴을 한 그녀의 사진.

-오늘 만날래요?-

사진 아래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절대 도망칠 수 없는 메시지.

-네.-

거부권 따위는 유미에게 없었다. 오한 속에서 한숨만 내쉬며 유미는 시간이 가기만을 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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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요."

상대는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의 흑장발이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유미를 바라보고 조용한 목소리로 손짓했다.

"...."

"너무 딱딱하게 있지마요. 그리고 그 사진 내가 찍고 싶어 찍은거 아니니 이야기 좀 해요."

유미는 그녀의 말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찍고 싶어 찍은게 아니라니 무슨 말인가?

"기억 안나나보네요? 그날의 일."

"그, 그날의 일이라니요?"

이미 페이스는 말린 상태다. 유미는 더듬거리며 여자에게 되물었다.

"술 잔뜩 마시고는 날 끌고 호텔로 간거 기억해요?"

"...."

사고 친 쪽은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유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만 내쉬었다.

"아아 기억 못하는구나. 그러니 날 버려두고 도망쳤지. 그 사진도 당신이 내게 시켜서 찍은거에요."

"...죄송합니다."

유미는 그녀의 말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허나 상대는 유미를 탓하지 않았다. 대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날 날 유혹하고 그토록 뜨거운 밤을 보냈는데 기억 못하나요?"

"...죄송합니다."

"사과받으려는게 아니에요. 그저 난 그 날 싫지 않았다는 거에요. 당신 꽤 잘했으니까요."

부끄러웠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유미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를 생각하였다. 아름다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미를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기억 자체가 사라졌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나랑 사귀면 되요."

"네?"

돌직구.

이보다 더 꽉찬 승부구는 또 없을 것이다. 유미는 이제 다른 의미로 얼어버렸다.

"그 날 했던 거 생각하면 그쪽은 거부권 없는거 알아요?"

"죄, 죄송합니다."

유미의 모습을 보며 여자는 미소지었다. 마치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듯 기세등등한 표정이다.

그러나 유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혹시나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폰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그것은 굴욕의 전시와도 같았다.

"...살려주세요."

유미는 애원했다. 더 이상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추태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상기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럼 오늘부터 1일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요."

"...네."

자신은 거부권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유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녀를 따라 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