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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치사카논치사] 어떤 예감

ㅇㅇ(124.58) 2020.10.27 18:37:54
조회 370 추천 15 댓글 7
														

뱅드림 초창기 파스파레 탈주각 재던 치사토의 매운맛을 기억하며...

다른 글들은 요기 https://baeknamoo.postype.com/post/8264473 포타에 업로드 되어있음!

이건 여담인데 '촛농의 노래' 노래 좋으니까 보컬 들어간 버전으로도 함 들어봐 가사도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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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파레의 데뷔 무대. 핸드싱크와 립싱크가 온 세상에 다 발가벗겨진 직후, 당황해 말문이 막혀버린 아야를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치사토는.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나쁜 쪽으로의 관심이었다는 게 문제이긴 했다. 경력이 있는 아역배우 출신의 연기자가 아이돌 밴드에 투입된다. 심지어 악기 경력이 전무한데도. 치사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업계에서의 명성, 속된 말로 이름값. 이번 활동에서 별 다른 소득을 내지 못한다면 다음엔 연기 일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 불 보듯 했다.

최대한 실패하지 않을 길을 골라 걸어온 자신에게. 떠들썩한 데뷔 스캔들로 주홍글씨를 남길 밴드 활동 따위가 더 이상 중요할 리가 없었다. 실제로 다른 멤버들에게 함구한 채로 어떻게 여기서 발을 뺄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과 직접 겪어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 인터넷에서 자신을 씹어대는 익명의 사람들도, 무대 아래서 야유를 보내던 관객들도 아닌.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함께 지낸 학우들이 뒷말을 하는 것이, 무뎌질 리가 없었다.

 

시라사기 양 이번에 아이돌 밴드로 데뷔했다며?”

라이브라고 해놓고 연주하는 시늉만 했다던데.”

연주하는 시늉뿐만이 아니야. 중간에 노래도 멈춰버렸다고.”

 

역시...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전부터 시라사기 양이 쎄하다고 생각했어.”

나도. 항상 일이 있어서 바쁘다는 말로 무마하려 하고 말이야.”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확인서를 책상 서랍에 두고 온 것. 치사토는 그 실수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실수가 이렇게 뼈아플 수 있는지 놀라웠다. 이미 교실 뒷문 가까이 와서 복도에 서 있었지만 도저히 문을 열고 발을 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교실엔 카논이 남아있었다. 조금 전 자신이 오늘은 사무소에 가봐야 한다고 먼저 일어나 인사를 건넸던 까닭이다. 차라리 저 안에 카논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저런 가시 돋친 말을 혼자만 감내하면 되는 것이었더라면. 가만히 서서 길 위에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쏘아보고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들 그만해.”

? 마츠바라 양, 뭐라고 했어?”

치사토 쨩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란 말이야.”

 

아니, 들어가기 무섭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빨리 자리를 떴었어야 했다.

 

마츠바라 양은 시라사기 양 대변인이라도 되는 거야?”

 

그랬다면 차라리 이런 말을 카논에게 듣게 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우리끼리 얘기니까 좀 솔직해져 봐.”

마츠바라 양도 시라사기 양한테 불만 같은 거 없었어?”

 

아니. 치사토 쨩은 지금 이렇게 너희한테 싫은 소리 들을 이유도 없고, 내가 치사토 쨩이랑 친하게 지내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어. 치사토 쨩한테 사과해.”

“...뭐라고?”

치사토 쨩한테 사과하라고!”

 

답지 않게 일갈하는 카논의 목소리. 저렇게까지 큰 소리로 말하는 걸 자신이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여기서 화를 내며 덤벼올 거라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는지 아까까지 험담하기 바빴던 입들이 잠잠해졌다.

 

참 이상했다. 나는 여기에 있지도 않았는데, 굳이 내게 사과를 하라는 말이.

 

결국 이렇게 한참을 서 있다 돌아갈 거였다면 역시 아까 돌아가는 편이 나았을 거다. 확인서 따위 고개 한 번 숙이는 대신 다음 날 제출해도 됐을 거라고 생각한 치사토가,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계단참에 작은 발이 제대로 들어서지 않는 모양이라 조금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지금은 단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습관처럼 사무소에 들렀지만 역시나 그날 이후로 자신에게 들어오는 개별 활동도 마땅치 않았다. 보는 눈들도 있고 시간이나 죽이면서 앉아있기에도 모양새가 이상해서. 치사토는 실로 오랜만에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몇 번인가 카논과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자신의 집을 지나치기 전 카논의 집 앞에 가까워졌을 때. 치사토가 불현듯 카논에게 라인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집 앞으로 갈 테니까 잠깐 만나줄래? 이렇게 덧붙이면 어떨까. 사실 지금 너네 집 앞이야. 바로 답장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너는 항상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날 놀라게 하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당장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뛰쳐나온 거겠지.

불러낸 건 이쪽인데 어째서 불러냈느냐고 캐묻지 않는 너의 그런 성격.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은 타고난 성품. 자신은 노력해도 가질 수 없었기에. 더 손에 쥐고 놓치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 말할지도 몰랐지만, 치사토는 꽤 오래전부터 자신을 시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을 부러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와 진짜 시라사기 치사토의 괴리감 사이. 곪을 대로 곪아 뒤틀린 마음이 응어리져 있었다. 이렇게 뒤틀린 나니까 별꼴 다 봐가면서도 이런 일을 하는 거 아니겠냐고. 스스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함께 산책이라도 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했으면서.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 불편한 상황. 먼저 침묵을 깨는 것은 언제라도 더 불편함을 느끼는 쪽이었다.

 

“...왜 물어보지 않아?”

?”

 

아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굴 수 있어?

 

혹시 카논도 나한테 실망했어? 말해 봐. 말해 보란 말이야!”

 

다그치듯 혹은 절규하듯 대답을 갈구하는 치사토의 목소리가 듣기 싫게 뒤집어졌다. 얼굴에 딱 붙어버린 가면을 떼어내면, 가면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맨얼굴이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무리 가면을 붙들고 있어도 그 가면 안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어딘가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줄 거라는 걸 잘 알아서.

 

“...내가 치사토 쨩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때라도 치사토 쨩을 믿어주는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치사토 쨩한테 실망했을 리가 없잖아.”

 

주어도 없고, 꾸밈말도 없는, 정말 되는 대로 내뱉을 뿐인 억지에 가까운 물음인데도.

 

, 나는 카논의 다정함을 이용하고 있는 거야.’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이 난다는 걸 아니까.’

 

카논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사토가 일그러뜨린 얼굴을 거두지도 않고 거의 본능에 가깝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린 치사토에 당황한 카논이 고개를 든 채로 울고 있는 몸을 끌어안아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 치사토 쨩... 괜찮아? 울지마.......”

 

겁쟁이인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는 데도.’

너조차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다정한 너를 이용하고 있는 거야...’

 

자신은 카논을 사랑하지만, 그리고 카논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결코 그 사랑은 말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이 눈물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그 사랑을 위한 애도의 표현이라고 치사토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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