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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너에게 보내는 첫 연애 편지 - 上 (미사코코)앱에서 작성

카스아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4 01:32:17
조회 584 추천 32 댓글 9
														

" 미사키, 주제는 골랐니? "


" 으응... 아직. 기한이 빠듯한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코코로는 정했어? "


" 으음... "


코코로는 수행평가 안내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문학 작품 써 보기. 시, 소설, 수필, 대본... 어떤 장르든 상관 없으니 자신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문학 작품을 써 보는 것이 다음주까지의 숙제였다. 주제어는 <꿈>, <가족>, <미래>, 그리고 <사랑>.


" 아리사, 우리는 무조건 <꿈> 이야! "


교실 한복판에서 외치는 카스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리사도 한숨을 푹 내쉬며 대꾸했다.


" 내가 너냐... "


" 어라, 그럼 아리사는 <사랑>? "


" 사랑이겠냐!! "


꿈이라니, 정말이지 카스미에게 딱 어울리는 주제어다. 분명 반짝반짝하고 두근두근한 작품이 나오겠지. 


" 역시 카스미는 <꿈> 이네! 나는, <사랑> 으로 해 볼까? "


" 엑, <사랑>? "


그 말을 들은 미사키가 갑자기 눈앞에 벌레가 날아든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코코로는 턱을 괸 채로 키득키득 웃었다. 항상 반응이 재미있는 미사키다.


" 혹시, 코코로... "


" 응? "


" 최근에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그러니까, 으음... 무슨 뜻이냐면... "


" 그래, 미사키. '사랑' 하는 사람이 있단다! "


미사키가 황급히 코코로의 입을 막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반의 한가운데서 시끄럽게 떠드는 카스미와 아리사 덕분에 아무도 이쪽에는 관심이 없다. 


" 우부, 우부부웁... "


" 으음... 카오루 씨가 또 무슨 말을 했길래. "


" 푸하! 어라? 카오루하고는 관계 없는데? 이건 오로지 내 생각이란다, 미사키! "


그러자, 미사키가 코코로를 지긋이 응시한다. 그리고는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걸 본 코코로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걸린다.


 ' 미사키, 알겠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


그러나, 미사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코코로의 기대와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 아아- 이거, 분명히 잘 모르고 있는데...... "


" 미사키, 나는...... "


다급히 무언가 덧붙이려고 달싹거리는 코코로의 입술에 미사키가 살며시 검지를 얹는다. 


" 코코로, 너한테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아. "


*


" 검은 옷 사람들. "


" 네, 아가씨. "


" 편지지 한 장만 가져다 줘. 연필이랑, 지우개도. "


코코로는 편지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도 연애 편지를! 물론, 받는 이는 미사키다. 너는 사랑을 모를 거라고 단언한 미사키를, 코코로는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 내가 사랑을 모른다니, 미사키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


사랑이 뭘까? 그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누굴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은 사랑을 알게 된 거다.


' 미사키, 나는 너를 좋아해. '


코코로가 미사키를 좋아한다는 것은 코코로에겐 정말이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까, 코코로는 사랑을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미사키는, 내가 사랑을 모른다고... 코코로는 흐음- 하고 짧게 침음했다. 


고민만 하고 있어서는 미소가 지어지는 결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코코로는 잘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 모르는 것에는 직접 부딪힐 뿐이다. 책상에 놓인 것은 반듯한 직선만 그어진, 어떤 장식도 없는 단색 편지지. 코코로는 연필을 집어 들었다. 이왕이면 아빠가 서류를 결제할 때 쓰는 멋들어진 검정 만년필을 쓰고 싶었지만 왠지 그럴 수 없었다. 그랬다간 지울 수 없으니까. 


우선은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글씨가 삐져나와 보이지 않도록, 꾹꾹 눌러서. 남에게 편지를 쓸 때에는 글씨를 단정히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카논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 더군다나 이건 연애 편지다......


[ 미사키에게 ]


제 글씨체로 쓰인 미사키의 이름을 보자, 왠지 웃음이 나왔다. 코코로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석양이 비스듬히 비치는 교실 안. 그리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있는 미사키. 아마 양모 펠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나. 상상 속의 코코로가 늘 그렇듯 한달음에 달려가 미사키의 옆자리에 앉고, 미사키도 늘 그렇듯 멋쩍게 웃어 준다. 


늘 그렇듯 코코로는 갑자기 할 말이 잔뜩 생각난다. 헬로 해피의 신곡 모티브, 여름엔 은근히 더워 보이는 미셸, 하굣길에 상점가에서 파는 키타자와 고로케... 미사키, 이것 보렴. 내가 사랑을 모르긴? 나는 오늘도 이렇게나 너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이건 분명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후후, 검은 옷 사람들에게 아예 편지지를 더 달라고 할까? 밤을 새게 될 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코코로가 감았던 눈을 뜬다. 그러자 미사키는 온데간데 없고, 눈앞에는 새하얀 편지지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 어라...... '


말과 글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나.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지금까지 미사키 앞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상상으로 가득 찼던 코코로의 머릿속이, 편지지를 보고 있자니 하얀 페인트를 쏟아 부은 것처럼 새하얘진다. 그렇게 텅 비어버린 곳에는 미사키의 목소리만 얄밉게 메아리친다.


' 코코로, 너한테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아. '


*


" ...... "


" 코코로, 오늘따라 조용하네. "


정말로, 코코로는 조용했다. 미사키가 양모 펠트 한 개의 모양을 얼추 잡아갈 때까지 코코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사키에게 기대어 있었던 것이다. <츠루마키 씨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챌린지> 가 있다면 분명 오늘이 기록 경신이겠지, 미사키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냥 실패에 감긴 털실이었는데, 미사키의 손을 거치니 신기하게도 금방 예쁜 곰돌이 모양이 잡혔다. 노란색 몸통에 검은 눈동자가 귀여운 곰돌이 씨. 미셸의 친구쯤 되려나. 코코로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그 곰돌이를 응시했다.


" 코코로? "


" 에, 미사키? "


" 어디 아파? 오늘따라 너무 조용해. 코코로가 조용하면 오쿠사와 씨도 편하기는 하지만요~ "


너스레를 떠는 미사키에게, 코코로는 조금은 뜬금없는 얘길 꺼냈다.


" 미사키. "


" ...응? "


" 미사키는 양모 펠트를 어떻게 만드니? "


" 음.. 어떻게 만드냐니... 정확히 뭐가 궁금한 거야? 바느질하는 법? "


" 미사키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해. 그러니까... 처음 만들 때. "


" 아하... 전체적인 모양을 잡는 법 말이려나. 그냥, 어떤 모양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먼저 아닐까? 곰이나, 토끼, 양 같은 동물은 귀여워서 좋고. 별이나 하트 같은 모양은 만들기에 편하고... "


생각은, 어제도 많이 했단 말이야...... 코코로는 또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 그럼, 어떤 모양을 만들고 싶은지 모르겠을 때는... 어떻게 하니? "


" 어, 음... 정말 만들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


" ...모르겠어. 그냥, 생각이 나지 않네. "


" 그럼 단순히, 그날은 양모 펠트를 그다지 만들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


아니야, 미사키. 그런 게 아니란다. 나는 분명 하려고 했는걸. 그리고 하고 싶었는걸. 그런데, 만들고 싶지 않았다니... 


" 그래도, 내가 코코로라면 말이야. "


" ...응. "


" 만들고 싶은 게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기보단, 너무 만들고 싶은 것이 많은 탓이었을 거야. 분명... "


코코로는 깜짝 놀라서 미사키를 쳐다본다. 별 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미사키도 덩달아 깜짝 놀란다. 


미사키가 뺨을 살짝 붉히면서 덧붙인다.


" 코코로, 그 눈빛은 무슨 뜻...? 다른 뜻이 아니라, 내가 코코로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고! "


" 미사키, 역시 그랬구나! 정말 최고야! "


" 코, 코코로오!? 잠, 아직 바느질 마무리 다 안 끝났으니 달라붙지 마~! "


그래, 분명히 그럴 거야. 왜 어제는 한 줄도 쓰지 못했을까? 어제 그렇게 고민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코코로는 다짐했다. 집에 돌아가면, 이번에야말로 생각나는 걸 모두 써 보자고.


*


그날 저녁, 코코로는 다시 흰색 편지지와 마주했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나름의 도우미도 준비했다. 같이 놀이공원에 놀러 갔을 때에 찍은 미사키 사진. 분홍색 액자 속에 예쁘게 담긴, 회색 후드를 입은 미사키가 특유의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다. 


코코로는 손가락으로 액자 속 자그마한 미사키의 이마를 몇 번 쓰다듬었다.


' 코코로오~!! 느닷없이 만지면 어떡해! 놀랐잖아, 정말... '


금방이라도 그렇게 말할 것 같은 느낌의 미사키. 코코로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잠시 소리 죽여 웃다가, 다시 펜을 꺼내들었다. 


' 이번엔,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적어보는 거야! '


길다란 편지지의 가로줄에 코코로의 귀여운 글씨가 차곡차곡 쌓인다. 마치 미사키랑 수다를 떠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코코로는 이 작업이 꽤나 즐거웠다.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머릿속이 뿌옇기만 했던 어제랑은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코코로는 편지지의 마지막 줄에 도달했다. 


' 어머, 보내는 사람도 적어야 하는데. 깜빡할 뻔 했어. '


[코코로가]


조금 밋밋한가. 코코로는 한동안 연필 끝을 입에 물고 흐으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앞에 몇 글자를 덧붙였다.


[미사키를 좋아하는 코코로가]


그래, 이거야! 코코로는 흐흥, 하고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처음으로 완성한 연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 미사키, 저번에 카논이 알려준 수족관에 새로운 아기 펭귄이 들어왔대! 그런데, 엄마랑 떨어져서 외롭지 않을까? 걔네 엄마는 남극에 있는 걸까... 궁금해졌는데, 이번 주말에 알아보러 가지 않을래? 미사키가 만드는 양모 펠트는 정말 예뻐. 어제 만든 양모 펠트는 노란색이라서 내 마음에 꼭 든단다! 내 머리카락 색이랑 똑같잖니! 다음엔 미사키를 닮은 검정 곰돌이 씨도 만들어 보자... ]


' ....어라. '


신나게 써내려갈 때에는 전혀 몰랐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본인이 쓴 편지인데도 코코로는 위화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분명히 빈 공간 없이 빼곡히 채운 편지지인데도 무언가 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코코로는 곧 무엇이 빠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 코코로, 뜬금없이 무슨 펭귄이야. '


라든가,


' 잠깐만요, 츠루마키 씨. 남극에 펭귄이 몇 마리 있는줄 아는 거야? 걔 엄마를 어떻게 찾겠다고? 아- 뭐어, 검은 옷 사람들이라면 왠지 어떻게든 해줄 것 같아서 무섭지만요... '


라든가,


' 그래? 마음에 들면 그거 집에 가져 가도 돼. 양모 펠트는 또 만들면 되니까... '


같은 말이 뒤따랐다면 훨씬 보기 좋았을 것이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내어 봐야, 도우미 역을 맡은 액자 속의 미사키는 자신에게 한 마디도 대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코코로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둘 모두에게 즐거운 대화가 되어 가고 있었다는 것은 착각이었고, 사실은 혼잣말을 하고 있었던거나 마찬가지다.


편지란, 상대방에게 전할 말을 글로 적어내는 것. 그리고 연애편지는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 그렇기에 코코로는 미사키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것이 정말이지 쉬울 줄 알았다. 그야, 미사키와는 몇 시간이고 얘기할 거리가 생겼었으니까. 그런데......


비로소, 코코로는 어제 자신이 편지지 앞에서 답지 않게 망설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연애편지는, 미사키가 기뻐할 만한 말을 써야 하는 거였구나... '


그럼, 어떤 말을 해야 미사키가 기뻐해주었더라?


' ...모르겠어. '


참을 수 없을 만큼 미소가 새어 나오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제자리에서 재주넘기를 하고 싶을 만큼 팔다리에 찌릿한 느낌이 오는... 코코로에게 있어 기쁨이라는 감정은 그런 의미.


그런데 미사키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다. 주로 '그건 안 돼.' 라고 하거나, '귀찮아, 그런 거.' 라고 하기도 하고. 어쨌든 코코로가 생각하는 '기쁘다', '즐겁다' 와는 거리가 멀었다.


언젠가 미사키가 한 말이 불현듯 코코로의 머리를 스폈다.


" 코코로는 내 심정 따윈 몰라! 아무리 생각해 봤자 모른다고……! 애초에, 코코로 말은 항상 너나 편하거든!
뭐든 긍정적으로 보는, 그런 걸 누구나 잘 해낼 리가 없잖아! "


그때는 미사키를 잘 모르겠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지만 서로 같이 있으면 즐거운 기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는 알게 되었고, 그렇기에 <헬로, 해피 월드>는 웃음을 주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 이제 나는, 미사키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처럼 '너를 잘 모르겠어, 하지만 <헬로 해피>로 같이 있으면 즐거워' 에 머물러선 안 될 것만 같았다. 조금 조바심이 났다.


' 코코로, 아직 너한테는 너무 이른 것 같아. '


미사키랑 싸웠을 때와 꼭 같이 가슴 언저리가 답답한 느낌. 이런걸 카논은 고민이라고 했었지. 별 의미 없이 손가락을 연신 꼼지락거리다가, 코코로는 지우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편지지의 첫 부분부터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막다른 길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코코로는 다시 맨 처음의 하얀 편지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손가락 끝에 아무리 힘을 주어서 문질러 보아도 이미 종이에 묻은 흑연은 생각만큼 잘 지워지지 않았다. 흐음, 으음- 하는 소리를 간간히 내면서, 점점 더 손가락 끝에 힘을 주다가...


찌이익-!


' .....! '


편지지가 그대로 반으로 찢어지고 말았다.


" ...아가씨, 여기 새 편지지가... "


어딘가에서 나타난 검은 옷 사람이 품에서 편지지를 꺼내자, 코코로는 고개를 저으며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 ...오늘은 괜찮아. 어머, 벌써 12시네! 좋은 꿈 꿔, 검은 옷 사람! "


검은 옷 보디가드가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코코로는 귀여운 손인사를 남긴 채 침실로 달려가버렸다.



*


코코로같은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좋아해 줄지 혼자서 고민하는 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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