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공들의 눈을 피해 탈의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고 있었다. 샤워실을 사용할 것도 아니면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누가 보면 '난 공들이 무서운 총수요.'하고 광고하는 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교실에서 갈아입다가 그대로 덮쳐지는 것보단 나았다. 내 옆에선 같은 시간에 체육 수업을 한 2학년의 총수인 선배가 옷을 갈아 입......

 "선배?"

 "응?"

 "그거...... 대체 뭐예요?"

 "뭐가?"

 "팬티 말이에요!"

 "아, 이거?"

 날 덮쳤던 모든 공들의 팬티를 다 기억하는 건 아니었지만 저 흰 바탕에 파란색 별이 색이 반대인 성조기 마냥 박혀 있는 팬티는 전승아의 것이 확실했다. 도대체 선배가 왜 그 팬티를 입고 있는 거지?

 "아, 애들이 집에서 쓸 거라고 자꾸 하고 나면 팬티 가져가서 안 돌려주는데 어쩌겠어? 계속 새 걸 살 수도 없고. 저번에 걔 집에서 하고 나서 슬쩍했지."

 "스을쩌억? 선배 미쳤어요? 그러다 들키면?"

 "뭐, 몸으로 때우면 되지."

 지혜 선배가 체력이 장난 아니게 좋고, 약간 나사가 빠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까지 벌일 줄은 몰랐다. 이런 짓을 할 손놀림이 가능한 건 둘째치고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셨나......

 "대체 선배는 그 스피드와 체력으로 왜 총수인 건데요?"

 "하는 건 별로 재미없잖아, 손가락이 성감대도 아니고."

 "선배는 진짜 선배보다 더 수 성향인 사람한테 반하지만 마세요. 애인이 불쌍하니까."

 "아, 네에. 네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치마를 올리는 선배의 손을 황급히 붙잡았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끝까지 태평하니 내 속이 다 타는 것 같았다.

 "그 팬티 이리 내놔요."

 "아, 왜? 오늘은 승아 안 만나기로 했다고."

 "걔한테만 안 들키면 될 것 같아요? 빨리 벗어요."

 승아가 특별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이 있긴 해도, 다른 공이 보면 승아에 대한 질투심으로 선배가 무슨 짓을 당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어...... 하영이, 그런 취향이었구나?"

 "농담 아니니까 벗어요!"

 선배와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내가 오늘 비상용으로 가져온 팬티와 교환했다. 애들한테 당하고 다 젖으면 쓰려고 가져온 건데......

 "그래서 그건 승아한테 네가 돌려주려고?"

 "돌려주러 갔다가 무슨 오해를 사려고요? 그냥 버릴 건....."

 그 순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난 승아의 팬티를 손에 든 채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하영아, 어디갔나 했더니 여깄었구나?"

 "하, 한솔아......"

 한솔인 분명 웃고 있었는데 살기가 느껴졌다. 체육시간 끝나고 탈의실에 숨은 것 때문만으로 이 정도로 빡치게 만들 순 없을 것이다. 이건 분명.....

 "근데 손에 들고 있는 그거, 승아 팬티 아냐?"

 "아, 스, 승아 팬틴가? 바, 방금 탈의실에서 주운 거라 그냥 누구 건가 했지, 하하."

 "난 먼저 간다."

 '이 선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선배는 옷을 마저 갈아입고 도망쳤고, 한솔인 선배를 막지 않았다. 선배가 나가자, 그저 조용히 문을 닫고 손잡이를 잠글 뿐이었다.

 "하영아?"

 "네? 네!"

 "구라를 깔 거면 차라리 승아 팬틴 줄 알고 돌려주려고 주웠다고 해야지. 저런 미친 별무늬 팬티를 잊을 만한 사람이 있겠어?"

 망했다. 빼박 내가 팬티를 훔쳤거나 이걸로 혼자 하려 했거나...... 아무튼 찔리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 한솔아, 내가 설명할, 읍!"

 한솔이는 변명을 들을 생각은 없다는 듯 내 입술을 막았다. 한솔이를 떼어 놓으려고 들어올린 팔은 그대로 붙잡혀서 탈의실 벽에 붙여졌다.

 "푸하, 으읏!"

 키스만으로 힘이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자 한솔은 자유로워진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팬티 속에 집어넣었다.

 "내가 둘만 있을 땐 뭐라고 했지?"

 "하, 한솔님이라고, 으윽!"

 "잘했어, 상이야."

 안쪽으로 파고드는 손가락을 느끼며 허리를 떨었다.

 '상은 개뿔, 점심시간에도 했는데 이러기냐!'

 절대 입 밖으론 못 꺼낼 불만을 속으로만 삼키고 한솔이의 손에 몸을 맡겼다. 지혜 선배를 다음에 만나면 멱살부터 잡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잃을 것 같이 계속되는 절정에 곧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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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몰라도 상관 없지만 이 세계관 속 다른 인물들 이야기

아무튼 나사 빠진 총수가 다른 총수를 충격받게 하는 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