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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 여름, 놀이터 앞, 그리고 이상한 추격전

0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5 0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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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놀이터 앞, 그리고 이상한 추격전


 주위의 증언에 따르면 어렸을 적의 나는 꽤나 무던한 아이였던 것 같다. 뭐든 금방금방 수긍하는데다가 화내는 일이 잘 없어서 그래보였다나. , 어딘가 맹해 보인단 소리도 자주 들었다. 덕분에 내 주위에는 항상 이런저런 사람들이 머물렀다 떠나가곤 했고, 나도 그게 칭찬이라고 생각해서 싫지 않았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너는 내가 중학생이 되고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였다. 물론 금방 다른 아이들도 많이 사귀기는 했지만, 나한테 종종 답답하다며 화를 내는 건 너뿐이었다. 화를 내는 거에 끌렸다니,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매사에 느릿느릿한 와 성격이 급했던 네가 어떻게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 애들도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난 너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양한 표정들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는데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늘 생각이 많아 우물쭈물 거리게 되는 나와 달리, 해야 하는 순간에 확실하게 할 말을 하는 네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다행이 너도 말로는 늘 답답하다고 하면서도 내가 곤란할 때 대신 화내주기도 하고, 항상 다가와 줬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급속도로 친해졌다.

 “...손 잡을래?”

 평소와 같은 하굣길에 네가 그렇게 물어왔을 때, 솔직히 별 생각 없이 가볍게 대답했다. 친한 친구끼리야 당연히 할 수 있는 스킨십이었기에 그 질문이 새삼스럽기까지 했다. 처음 잡아본 너의 손은 부드러웠고, 따듯해서 이상하지만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 때는 둔해서 그게 무슨 감정이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너의 잔뜩 긴장한 표정이 새로웠다. 내가 아직 모르는 너의 다른 모습들을 더 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전학가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는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너랑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너와 멀어져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몇날며칠을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나 전학가게 됐어.’ ...이건 너무 딱딱하지. ‘전학가게 됐지만 그래도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고 싶은 말이긴 하지만 뭔가 부족해. 나는 너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날짜는 다가오는데, 네가 날 놀이터로 불러냈고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 그 동안 왜 생각이 복잡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전학가게 됐다고, 늦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너랑 더 친해지고 싶다고, 나도 널 좋아한다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입 안에서 뒤엉켜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았다.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우리가 멀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나는 너와 달리 내 마음을 똑바로 전할 용기가 없었다. 뒤돌아 뛰어가는 너를 보며 나의 망설임이 너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깨달아 뒤늦게 내 마음을 전하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 간 곳에서의 정리가 마무리 지어질 때쯤 너에게 내 바뀐 연락처를 전해주고 싶었지만, 너도 번호를 바꿨는지 문자도 전화도 닿지를 않았다. 한창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어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혼자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난 너의 집 주소를 몰랐다. 너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는 걸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너는 그런 식으로 이따금씩 떠올라 날 아프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돼서야 sns를 통해서 너의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너는 짐작도 하지 못 할 거다. 나와 같은 대학, 같은 과. 너의 프로필 아래에 적혀있던 그 한 줄이 합격 발표 때보다도 더 나를 설레게 했다. 이번엔 너를 다시 만나면 멍청하게 망설이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남은 건 직진뿐이라고 다짐하며 너와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래, 그렇게 다짐했을 터인데. 아니, 이건 너무 하잖아. 한 학기 내내 너랑 10마디는 해봤으려나. 내가 쫓아가면 네가 도망가는 이 이상한 추격전은 사실 그 날 너에게 고백 받았을 때부터 이어져 온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마저 널 잡지 못한다면 방학 내내 널 만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날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술도 잘 못하면서 이런 자리는 꼬박꼬박 나오는 건 입으로는 툴툴 거리면서도 사실은 성실한 성격 때문이겠지.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달려가 꼭 껴안으며 좋아한다고 하고 싶은데, 옆에서 남자 선배들이 치근덕대는 꼴을 보니 아무리 나라도 상당히 열 받았다.

 구태여 너의 옆에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만든다. 너에게 더 이상의 술은 한모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 * *

 

 “소올직히 말해봐, 너어 그때 하나도 안 취했었지?”

 “으아아, 제발 똑바로 좀 걸어봐.”

 

 아, 망했다. 이 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 온 내 계획이.

 그 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겨우 사귀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된 데이트는 이게 처음이었다. 이미 방학 때 알바와 공부 계획으로 스케쥴을 꽉꽉 채워 놨다나. 물론 카페나 도서관 데이트도 좋았지만, 난 좀 더 네가 나에게 집중해줬으면 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너를 설득해 이번 여행의 허락을 받아낸 거였다.

 응, 여름의 막바지에 너와 단둘이 바닷가로 여행을 온 것 까지는 좋았다. 아니, 바로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호텔 바에서 좋은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칵테일이 맛있다며 홀짝홀짝 마시는 널 귀엽다고 다 받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비틀거리는 널 간신히 옮겨 침대에 눕혔다.

 “와아, 침대가 넓어어!”

 남의 속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고 있는 네가 조금, 아주 조금 얄미웠다.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예전 일을 추궁해 오는 저 입.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너랑 둘이 나가려고 취한 척 했다는 걸.

 네가 정신 차리기에는 이미 틀린 것 같다고 생각하며 씻으러 가려는데, 갑자기 네가 내 옷을 잡고 끌어 얼떨결에 너의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얼굴이 가깝다.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입은 왜 갑자기 다무는 건데? 갑자기 조용해지는 바람에 두근거리는 소리를 의식해버렸다.

취기가 올라 발그랗게 상기된 얼굴. 이런 흐트러진 모습에 흥분하다니, 내가 이 정도로 음흉한 사람인지는 몰랐는데. 너를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이렇게 변질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얼굴을 가까이 한 것만으로도 너의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슬쩍 뺨을 쓰다듬었더니 네가 두 손으로 내 손을 끌어 얼굴에 밀착시켰다.

 “, 기분 좋다아. 시원해.”

 나에게 먼저 손을 뻗어준 것도, 좋아한다는 말로 날 이끌어 준 것도 너였으니 이번만큼은 내가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취했을리 없는 나까지 이성을 놓아버릴 것 같다. 아까부터 너의 다리사이에 닿고 있는 무릎이 간질거린다. 지금, 해도 되는 걸까..? 아냐, 이게 의식 없는 상대를 동의 없이 덮치는 거랑 뭐가 달라. 이런 내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내 목에 양팔을 두르고 끌어당겨 키스하나 싶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하자.”

 아, 이제 모르겠다. 이미 몇 번이고 너와 입을 맞춰왔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부드러운 너의 혀가 평소보다 더 달았고, 어깨나 허리를 감싸고 있었을 손이 너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내가 달라붙으려 하면 싫은 척 툴툴 거리던 네가 적극적으로 내게 몸을 밀착해 조르는 게 사랑스러웠다.

 혹시 네가 필름이 끊겨 기억 못한다는 말을 할까봐 걱정 하며, 젖어가는 아래쪽에 손을 얹어 천천히 움직였다. 너도 오늘밤을 제대로 기억해 준다면 좋을 텐데. 이제 충분히 젖은 틈에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는데, 네가 아픈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거렸다. 아직 모자랐나 싶어 입구 쪽을 좀 더 핥아주다가 넣었더니 조금씩이지만 내 손가락을 조이며 받아들여줬다. 지금이라도 그만 둬야하나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며 좋아한다고 말하는 널 기분 좋게 해주고 싶었다. 나도 네 이름을 부르며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속삭여 줬다.

 

 ...역시 그만 뒀어야 했나? 아침부터 너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씻고, 짐을 챙겨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 같은 아침으로 해장국을 먹으면서도 너는 계속 뚱한 표정이었다. 혹시 어제 일을 기억하냐고 물어보니, 단답으로만 대답해 줄 뿐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나랑 한 게 기분이 안 좋았나? 내가 억지로 해서? 그치만 그건 나도 억울한데. 설마 이대로 헤어지는 거야..?’ 어제 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대로 널 보내면 또 한참을 엇갈리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도망가지 말아줘.”

 “..?”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한 너를 이끌고 나왔던 호텔에 다시 체크인 했다. 그 땐 널 붙잡지 못 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버둥거리는 널 침대로 밀어트리고 물었다.

 “어제 일 싫었어?”

 “...아니.”

 “그럼 왜 화가 난건데.”

 “......”

 고개를 돌리고 대답하지 않는 모습에 나도 화가 났다. 서운한 말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려 했더니 이젠 눈물도 나올 것 같았다.

 “...”

 내 스스로가 들어도 떨리는 목소리. 갑자기 네가 내 멱살을 잡더니 키스하고는 휙하고 몸을 뒤집어 내 위에 올라탔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에 깜짝 놀라 나오던 눈물도, 하려던 말도 쏙 들어가 버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네가 내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더니 중얼거린다.

 “나도 너랑 여행 오는 거 기대했었단 말이야.”

 “그거랑 무슨 상관, ...”

 너는 곧장 내 목에서부터 쇄골까지 라인을 따라 입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나는 너의 얼굴이 보고 싶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갛게 달아오른 너의 귀.

 “...차라리 기억이 안 났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생생해서 문제야.”

 뭐야, 화내는 게 아니라 쑥쓰러워하는 거였잖아. 순간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내 옷을 벗기던 손이 멈칫 한다.

 “왜 웃는데..?”

 “우리말이야 새삼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다 싶어서.”

 “...그래서 싫어?”

 “그럴 리가. 어제 해달라고 매달리던 게 얼마나 귀여웠는데.”

 조금 삐죽거리는 거 같아 농담식으로 도발해봤더니, 네가 바로 반격해온다. 어느새 내 옷을 다 벗기고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이 목 언저리를 잘근잘근 깨물며 가슴을 주물렀다. 약간 힘이 들어간 손놀림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소리가 새어나왔다.

 “으읏, 조금만 천천히 해줘..”

 내 목소리가 닿지 않았는지, 너는 조금씩 들썩이는 허리 아래로 손을 넣어 부드럽게 쓸더니, 배 주위를 핥으며 아래쪽에서 손을 움직였다. 이윽고 오늘은 내 차례니까.’ 하며 손가락을 천천히 밀어 넣으며 주위를 핥았다. 어제 내가 해줬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기뻤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지기 싫어하는 네가 앞으로 내게 할 일을 생각하니 조금 무서워진다.

 “저기, , , 아직 낮인데.....!”

 너는 내 온몸을 구석구석 물고, 빨고, 핥아가면서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에 적나라하게 내 몸이 비춰지고 있는 걸 새기듯 바라보는보는 눈길에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다. 깊숙하게 들어온 손가락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할 때마다 찔꺽이는 소리를 내며 민감한 곳을 스치는 바람에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어제 밤 들었던 너의 목소리가 너의 손길을 통해 내 입에서 재생되는 것 같아 창피했지만, 너는 결국 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너에게 매달릴 때까지 멈춰주지 않았다.

 어제는 그렇게 귀여웠는데, 지금은 헐떡이는 날 지긋이 쳐다보며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다른 사람 같았다. 다음에도 술을 먹게 되면 취할 때까지 그냥 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딱히 도망갈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어.”

 네가 옆에 누워 잔뜩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중얼거린다. 슬금슬금 눈을 피하는 것으로 봐서 거짓말인 것 같지만, 지금만은 태클을 내 마음 속에 묻어 두기로 하며 대신 널 꼭 껴안았다. 아무래도 너와의 추격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장기전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끝까지 쫓아갈 거지만.”

무슨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물어오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냐하고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앞으로도 네가 붙잡는다면 잡혀줄 거리에서 내 곁에 머무르기를 바라면서.

  

끄읕. 

달달한 게 보고 싶었는데, 앞으로도 둘이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잘 지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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