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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담장 위로 별안간 들린 목소리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10 01:03:50
조회 298 추천 13 댓글 1
														


“그 넝쿨을 타고 올라와.”


“하지만 가시가 돋아 있어서 아파 보이는 걸.”


“그렇다면 내가 밧줄을 내려줄게.”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토끼에게 홀려 이상한 나라로 향한 것일까. 나는 처음 보는 신비한 공간에 있었다.


“어때? 이러면 올라올 수 있겠지?”

그런 공간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수아는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 그 목소리 그대로. 나 또한 어느새 그 옆에서 웃던 모습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알았어, 올라가 볼게.”


가시 넝쿨로 뒤덮인 저 담장 위에서 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위해 밧줄을 내려준다. 무섭지만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나는 밧줄에 내 몸을 실어 담장을 오른다.


“...잘 지내야 해?”


부모님의 차에 올라타기 전, 수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수아의 얼굴은 분명 눈물과 콧물로 얼룩져 보기 흉했다.


“울지 마, 바보야…”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는 내 얼굴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해 구겨져있었다. 이건 유년의 기억, 둘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절.

전화번호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집 주소도 나누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구와 동의 집합을 외우지 못한 우리의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솟아올랐다. 그 순간 나는 이미 교복을 입고 있었다.


“도시에서 왔다고 그랬나?”

“그런 소리 들은 지 4년째야.”


“뭐, 그래도 나는 널 처음 봤으니까.”


첫 인사는 늘상 이런 식. 도시에서 내려온 나는 꽤 오래토록 자극을 주는 신선한 존재로, 그렇게 남아있었다.


“위에서는 친구 많았어?”


“그렇지.”


“그러면 남자친구는?”

“없었어.”


“의외네.”


“남자애들 다 바보같이 누구 놀리는 거나 좋아하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건 수아였으니까. 이제는 소통도 하지 않고 얼굴도 점점 잊혀 흩어져가지만...그래도 좋아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


“...후우…”


금방 올라갈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어린 아이의 몸으로 밧줄을 잡고 담장을 오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쳤어? 당겨줄까?”

“아냐, 괜찮아. 조금만, 조금만 쉬면 될 거 같아.”


애초에 나는 이런 곳에 왜 있을까, 분명 오늘은...오늘은 일찍 잠들어야 하는 날이었을텐데.


“미안해요, 우리 딸. 아빠가 또 힘들게 해서.”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래, 분명 내일 이사를 간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또다시 근무지를 옮기며 가족도 함께 바다가 있는 곳을 향한다고 했다.


“그래, 맞아. 바다에서 짠 바람이 불어오는 그런 멋진 장소로 향하기로 했어.”


담장 위 수아가 말한다.


“어떻게 네가 그걸 아는 거야?”


“비밀, 계속 그대로 올라오면 돼.”

어째서 내가 이런 곳에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수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기 우리 집 전화번호.”


“그리고 이건 우리 집 전화번호야.”


마치 귀중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 처럼, 우리는 공터에서 조그맣게 접은 종이를 교환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 종이를 열었을 때 적혀있던 것은 전화번호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좋아해.’


“우리 부모님 사이정도면 전화번호 정도는 교환하셧을 줄 알았는데.”

“사실 서로 만난 적이 있어야 전화번호를 나누던 말던 할 수 있는 거잖아.”


수아의 목소리가 점차 가까워짐을 느꼈지만 아직 거리는 남아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때 기뻤어.”


“왜?”


“네가 나랑 같은 말을 적어줘서.”


“우리 사이잖아.”

꽤나 멋들어진 고백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번호가 적혀있을 거라 생각한 쪽지에 있는 것은 열렬한 사랑의 말.


“설마 같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우린 서로 좋아하는 거 아니겠어?”

“결국 서로 연락은 못했지만.”


한 발 한 발 위로 올라간다. 팔은 저려오고 숨은 가빠오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있잖아, 사실 나 네 얼굴같은 거 까먹어버려서.”


“....”


“지금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네가 너 라는 확신을 하지 못해, 이루야.”


그 말에는 어딘지 슬픈 울림이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수아야. 나도 네 얼굴같은 거 제대로 그리지 못해.”

“나쁜 년.”


“그래도 이렇게 올라가고 있잖아.”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담장에서 피어난 넝쿨은 점점 많아져, 자꾸만 다리를 찔렀다. 밧줄을 쥐고 있는 두 팔을 찔렀다. 그래도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담장을 오르는 것을 멈추 지 않았다.


“보고싶었어, 어떤 모습이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그 밧줄을 놓지 말아줘, 나는 올라갈거야. 얼마나 걸리던.”

피는 땀과 섞여 소매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마에 맺힌 땀은, 닦을 방법도 없는 그것은 몸을 적셨다. 애초에 나는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왜 담장을 오르고 있을까.


“거의 다 왔어.”


그건 저 목소리에 의지해, 수아일지도 모르는.


“이제 곧 만날 수 있어.”


아니, 분명 내가 사랑하던 그 수아를 만나기 위해.


“우리 딸? 이제 일어나야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아빠의 목소리가 있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툭툭 머리를 쳤다. 고통과 함께 서서히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거름 냄새가 나는 논밭이 아닌 탁트인 바닷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힘들다고는 하지만…”

“예쁘다.”


“그렇지?”


그렇게 나는 바닷가의 마을에 들어섰다. 간밤에 꾼 기묘한 꿈과 함께. 그 꿈의 의미는 뭐였을까. 내 사무치는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상일까. 어째서 나는 그런 꿈을 꾸었을까.


그 이유는 그날 밤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아빠와 함께 나선 밤산책. 아빠작 잠깐 흡연장으로 간 사이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이제 곧 만날 수 있었다고 했잖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조금 키가 컸지만 분명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


“정말 좋아해.”


그런 달콤한 말마저 변하지 않은채로 있었다.

_____________________


소재를 던져준 백붕이에게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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