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업!47화

커틀러스 · 2021.01.09 23:18:11

메이가 위치를 확정. 오른발 끝으로 지면을 툭툭 건드리며 타이밍을 잡고, 글러브는 잡기 직전에 위로. 특별한 것 없는 포구.

“아웃!”

몸쪽에 붙이는 공 2개를 지켜보고 0-2 카운트에서 타격. 소리는 좋았지만 좌익수 플라이.

[삼자범퇴! 시라사키의 아야나미, 공 8개로 깔끔하게 이닝을 정리합니다!]

노조미와 아이나의 제 1라운드는 어색할 정도로 간단히 끝났다. 공수 교대.

“나이스 피칭, 아이나!”

“카나 덕분이에요. 그 상황에서 그렇게 침착하게 처리하시다니.”

“뭐, 타구가 느렸으니까.”

느려서 아슬아슬했지만 느렸던 덕에 처리하기 쉬웠던 것.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내야 수비에는 리듬이라는 것이 있고 야수들의 움직임은 반복적으로 훈련한 리듬에 따른 동작이 있는 법이다. 느리게 구르는 타구는 경계하고 있지 않은 한 리듬을 깨트리고, 예기치 못한 실책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또한 급하게 잡으려고 하면 낮은 공을 제대로 줍지 못하고 글러브 아래로 빠져나가는 일도 있다. 항상 끝까지 제대로 보고 제대로 허리 숙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매뉴얼이 있으면 철저하게 실행해 내는 것이 카나다.

“그래. 이참에 하는 말인데 방금 같이 아슬아슬한 경우가 아니면 맨손은 자제해. 우리는 한 명의 부상이 출전불가로 이어지니까.”

글러브의 의의는 손의 보호와 확실한 포구. 맨손을 사용하는 기술을 익혀두면 이레귤러성 상황에 대처할 수 있지만 평상시에는 꼭 글러브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 정확하게, 안전하게, 길게. 진정한 의미에서 수비를 잘한다는 것은 그런 것을 쌓아올리는 것이다.

“네, 네.”

카에데의 말을 잔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순수하게 아이나와의 대화에 끼어든 것이 싫을 뿐.

“이번 공격에서는 조금 더 침착하게 가 보죠. 높은 공에 반응하지 않고 노리고 칠 만한 코스와 구종을 파악해보는 방향으로. 커트와 출루를 노리면서 상대의 좋은 분위기를 늘어트립시다.”

1회전에서 쇼요가 보여준 브레이킹 볼은 슬라이더 뿐. 간간히 투심의 그립으로 던지는 것이 포착되었지만 비율은 아주 낮다. 료의 정보라고 해도 2년 전의 것. 직접 추출할 필요가 있다.

“네!”

사쿠타의 지시와 함께 기합.

그렇게 그라운드의 예열은 끝났다.

2회 초. 스코어 0 대 0에 투 아웃 주자 없음. 타석에는 마야. 카운트 2-2에서.

‘카운트를 몰아붙이고 연이어 유인구로 슬라이더...다음은 높은 확률로 빠른 계열 공!’

와인드업. 릴리스 된 직후의 공을 보고 반사적으로 레그킥에 들어서는 마야.

한가운데로 몰린 밋밋한 공. 소극적인 타격을 버리고 크게 휘드르려는 순간.

‘베이스 앞에서 급격히!’

아카리의 미트가 공을 붙잡은 곳은 존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곳.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자 연속 삼진! 2회는 삼자범퇴로 끝내며 2이닝 3K의 오키타!]

“슬라이더의 변화폭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는 건가...”

완급 조절도 상당한 수준으로 가능. 얻어낸 정보는 그 정도였다.

2회 말. 투 아웃에 주자 없음.

[6번, 포수. 유즈키 선수.]

카운트는 1-2. 4구째.

[2루수 강습!]

정면. 반사적으로 글러브를 낮춘 카에데지만.

“큭!”

바운드되는 각도를 잘못 파악해 몸통에 맞는 타구. 공은 크게 튕기지 않고 근처에.

“아웃!”

주자보다 반 박자 가까이 먼저 도달한 송구. 그러나 번복의 여지없는 아웃이다.

[2이닝 연속 삼자범퇴! 아야나미 아이나, 2이닝 2K. 유라 고교에게 주자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카에데 선배.”

“이 정도는 괜찮아, 아야나미. 시합에 집중해.”

3회 초. 선두타자가 들어선다.

[8번, 포수. 타카하시 선수.]

시라사키의 공격력에는 사실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하위타선이 너무 물러!’

슬라이더에 리에의 배트가 말 그대로 스치며 파울..

“스트라이크, 투!”

기본적으로 맞추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훈련했기 때문에 평범한 약팀보다는 생산력이 있다. 탄막을 뿌려 접근을 막는 것처럼 타구 자체의 양을 늘려 안타를 늘리는 방식인 것.

하지만.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인 하이 스트레이트! 시합 중 첫 3구 삼진으로 삼진 4개 째인 오키타!]

“타이밍을 아는데 왜 안 맞는 거야...!”

“진정해요, 리에. 완전히 폼이 무너졌어요.”

그런 방식으로는 단순한 등번호 1번이 아닌 자타가 인정하는 에이스들을 공략하기가 어렵다.

[9번, 투수. 아야나미 선수.]

오늘 아이나가 9번인 이유는 투구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원래는 메이저리그의 투수들처럼 적당히 배트만 들 계획이었다.

‘갑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누구든 간에 쳐야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1점, 혹은 장타 하나라도 먼저 얻어야 기세를 가져갈 수 있다.

‘미스 K.O인가.’

지금까지 공식전에서 아이나의 타구를 잡거나 잡으려고 시도한 선수들은 모두 넘어졌다. 주로 강습 타구의 위력 탓에. 그렇게 쇼요가 붙인 불명이다.

타구가 강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슬라이더는 조금 불안한데. 좌타에 팔다리가 길다 보니 몸에 맞춰버리거나 배트에 맞아버리거나 둘 중 하나야.’

바깥쪽 볼에서 존으로 집어넣는 기책도 한 두번 정도 밖에 쓸 수 없을 터다.

일단 초구는.

“스트-라이크!”

아웃 로우 아슬아슬하게. 구속은 131km/h. 낮은 공의 판정이 좋은 심판 덕을 봤다.

2구 째. 바깥쪽 중간 높이.

‘이게 그 공...!’

짧은 슬라이더. 온전히 반사신경에 의존하여 막아내듯 쳐 낸다. 3루쪽으로 날아가 불펜 벽을 때리는 파울. 카운트 0-2.

‘좋아. 코스보다는 폼에 집중해. 낮게만 들어가면 되니까.’

쇼요는 글러브 너머에서 그립을 고친다. 유난히 긴 준비 시간.

‘무언가가 온다.’

‘시합’이라는 환경 자체에 익숙한 아이나는 직감했다. 위닝샷 혹은 숨겨둔 무언가를 던질 거라고.

와인드업. 투수들이 흔히 던지고 하는 ‘무의식 중의 최고의 공’ 같이, 완벽하게 쓸데없는 힘이 빠진 쇼요의 폼. 이미 휘두르기로 마음먹은 아이나는 그 구종을 알 수 있었다.

릴리스. 기록된 구속은 113km/h. 아이나의 배트보다 늦게, 그녀의 발치를 향해서 떨어지는 공.

“스트라이크-배터, 아웃!”

‘체인지업!’

프로 선발들에게 가장 돈이 되는 구종. 체인지업이었다.

[1번, 2루수. 혼죠 선수.]

1구째의 슬라이더를 지켜본 카에데. 뒤이어 같은 코스로.

“젠장!”

타이밍이 완전히 흐트러진 타구가 높게 떠올라.

“아웃!”

[이쪽도 질세라 삼자범퇴! 오키타 쇼요, 이번 대회 9이닝째 연속 무실점!]

체인지업에 호쾌한 스윙으로 포수 플라이. 이걸로 공수 교대.

“망할. 낙폭은 거의 없으면서 구속 차이가 미쳤어. 거의 속도만 다르니까 구분이 안 돼.”

“스트레이트 체인지업이라는 건가~.”

제대로 된 명칭은 스리 핑거 체인지업. 말 그대로 공을 검지, 중지, 약지로 잡는 그립을 가졌으며 던지는 것 자체는 체인지업 중에서 가장 간단한 편. 현대에는 서클 체인지업이 대세지만 여전히 자기 손에 잘 맞는 투수들에게 쓰이고 있다. 낙차보다는 구속 차이가 강조된 형태이다.

즉 파이어볼러인 쇼요에게 적합한 것.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나한테 한 타석이라도 더 승부해달라고 할 걸.”

더 중요한 점은 료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체인지업은 리그의 수준이 낮을수록 인기가 없다. 직구로 속여 범타를 생산하는 구종인 만큼 직구가 강할 수록 그 위력이 강화되는데, 따라서 직구부터 100~110km/h 정도여서는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오히려 원래 똥볼이었는데 더 형편없는 똥볼을 던져주는 격.

그렇기에 시라사키 나인은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투수를 만나본 적이 거의 없는 거다.

물론 그녀들은 기죽지 않았다.

[8번, 투수. 오키타 선수.]

“이쪽으로 보내줘, 아이나!”

“승부다, 아야나미!”

그녀들의 에이스가 싸우고 있으니까.

‘음. 이쪽인가.’

료가 자세를 잡고.

“아웃!”

그것도 가까스로 시합의 형태를 갖추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

[9번, 좌익수. 유하라 선수.]

초구는 바깥쪽으로 크게 벗어나는 볼. 1-0.

‘적극적으로 휘둘러오지를 않아. 그렇다면.’

충견이 맹견으로 돌변하듯 머리를 노리는 것 같은 인 하이. 배트에 맞지만 타구는 힘 없이 마운드 바로 앞에서 바운드하고.

“아웃!”

투수 앞 땅볼로 아웃. 이걸로 공수 교대. 즉.

[시라사키의 1번 아야나미, 3이닝 퍼펙트! 현재까지 안타도 출루도 허용하지 않으며 삼진 3개! 숨막히는 투수전이 이어집니다!]

신성(新星) 유라 고교의 에이스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다. 먼지 포기하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다.

그렇게 하나되어 기합을 모으며 들어간 중반. 이변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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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빨리 여름대회 끝나야 연애 떡밥을 다 풀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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