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으로 발을 뻗을 때면 문득 망설이게 된다. 바깥은 무정한 바람이 부는 삭막한 거리의 연속. 시멘트가 덮인 도시에 달콤한 꿀이 담겨져있는 꽃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럼 선화야, 잘 다녀오렴.”

환히 웃으며 나를 배웅해주는, 작디 작은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 수는 없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이모와 살고 있다. 대지를 덮은 아스팔트의 한 가운데 피어난 정원에서 아진 이모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어째서 가족들과 그렇게 싸웠을까. 나중에라도 잘 해주지 못 할거라면 살아있을 때 잘 해줄 것이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사람들의 품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오갈데가 없는 아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가족을 보면,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어머니가 정말 못된 짓을 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언니…”

그렇게 삼일이 지났다. 애초의 장례식은 내 손을 떠나 있었다. 아직 제대로 크지 않은 애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 유골함을 안치하고나서 나는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말로만 들었던 어머니의 집에 내려가는 듯 했다. 때묻지 않은 어느 자연의 품 속으로.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는 바뀌어서 아직 나는 도시의 한 구석에서 살고 있다.

“선화 학교 다니고, 또 공부하는 거 생각하면 이 쪽에서 사는 게 나을테니까. 선화는 제가 맡을게요.”

그런 말을 하며 이모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비록 내 가슴 정도까지 밖에 오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를 품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모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이모와 사는 하루하루.

“편하게 있어, 내가 네 기저귀도 갈아주고 그랬는걸.”

배시시 웃으며 그런 말을 하지만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형상화한 꽃을 파는 이모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더불어 싱그러운 생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모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나이 차이는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젊은 사람이었으니. 애초에 이모는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었다.

그런 사람이 혼자 기르는 아이인 나. 어쩌면 나는 이모의 삶에 끼어든 장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얘는 뭘 그런 생각을 해, 으이그.”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을까. 결코 그럴리 없겠지만 사춘기 특유의 삐딱한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그걸 부추기는 것은 간간이 들려오는 거리의 풍문, 화원에 들리는 아줌마들의 목소리.

“아니 글쎄 여기 아가씨가 어느 날부터인가 애를 데리고 있더라구요.”

“어머, 진짜?”

“얌전해보이던 아가씨였는데 그게…그렇대요.”

“다시 봤네 그래…”

그런 말로 이어지는 억측은 내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기묘하게 부풀려진 괴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자기 흥미를 충족시키는 것에만 몰두한다. 당사자의 사정같은 건 고려대상이 아니니까.

“아…”

“아침부터 표정이 왜 그래?”

“아니 그냥...이모한테 미안해서.”

“또 그 소리다, 안 지겨워?”

얘는 내 사정을 제대로 알까. 나때문에 이모가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욱신거리는 이 마음을 알까. ...아니, 애초에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이렇게 친구를 향해 나쁜 마음을 먹는 내가 못된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돌아간 집. 우울한 생각은 꽤나 오래간 모양이다.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던데, 학교에서 뭔 일 있었어?”

이모한테 바로 들켰다.

“아, 아뇨. 아무 일 없었어요.”

“음...거짓말 하는 거 같은데?”

사실대로 말하면 또 이모는 토라질 게 분명하다. 자기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다른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부터 이야기했었으니까. 방 한 구석에서 아무 말없이 벽이나 바라보는 그런 이모는 보고싶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저기…그냥 이모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를 생각했다고? 왜?”

“그냥 저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구요.”

상황을 모면하려고 대충 던진 말. 그것도 말한 나 자신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오글거리는 칭찬이었다. 그래도 이모는 이런 내 말을 좋아한다.

“얘는 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그렇게 답을 하면서도 절로 올라간 입꼬리는 숨겨지지가 않았으니까. 그 날 우리는 그렇게 밥을 먹은 뒤 같이 tv를 보다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모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었다. 창 틈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 그 사이로 들리는 건 작은 숨소리. 나는 이 작지만 강한 생명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림 원본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691608&exception_mode=recommend&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