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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백일홍

ㅇㅇ(220.93) 2021.01.17 23:23:41
조회 183 추천 12 댓글 0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꽤 오랬동안 바보같은 짓을 해서 부상을 당한 팀도 없었고, 멍청하게 반항하는 노예도 없었다. 그래서 다소 한가해진 나는 내가 아는 지식과 책속의 지식을 결합하기 위해서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잔뜩 적힌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론, 어느 책을 찾아보더라도 백일홍에 대한 내용이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겠는 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뭐 어쩌고저쩌고 이름이 긴 병이었는데, 우리들은 그 병을 그냥 백일홍이라 불렀다. 백일간 몸에 홍반이 피어오르므로 백일홍. 직관적이고 좋지 않나?


그것은 세상에 발표된지 겨우 한달만에 사회를 무너트렸고, 혹여 관련된 연구가 있었더래도 지방대학에 불과한 우리 거점의 도서관에서 찾을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틀이면 간다는 연합의 연구원들이 더 빠삭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책을 뒤적이니 뭐가 머리속에 들어올 리가 없다. 뭐, 이런거 공부해서 뭐해. 대충 뼈 맞추고 수술만 잘해도 명의니 뭐니 치켜세울 녀석들이 널렸고, 대장한테 귀인대접 잘 받고 사는데.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고 조수한테 손짓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을때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네가 속한 팀이 재수없게 괴물을 만나 두엇이 크게 다쳤다는 말을 전했다.


질겁하여 입구로 뛰어가보니 하나는 죽었고, 셋은 중상이었지만, 너는 다행이 사지멀쩡한채 네 동료들을 걱정하는 입장이었다. 경상자들은 다른 놈들에게 맡기고, 셋을 처리한 뒤 그제야 널 다시 확인하니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특별대접을 받을수는 없다며 바득바득 우기는 너를 욕구불만이라고 속여서 내 방으로 데리고갔다. 미약이랍시고 수면유도제를 건내주었고, 꺼림찍해 하는 너를 뒤로하고 씻고나오니 너는 푹 잠들어있었다.


그러나 중간에 잠을 설치기라도 했는지, 아침에 본 네 눈은 더욱 붉게 충혈되어있었고, 심지어 검은자위마저 불그레한 빛을 띄고있었다. 순간 백일홍이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평범한 눈병이겠거니 하여 간단한 검사라도 하자고 널 데리고 출근했다.


대장이 내가 겨우 목숨을 붙여둔 녀석중 하나를 처분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리가 절단된 하나는 대장 딸이 기르기로 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특별히 잘 관리하라는 거겠지.


보고를 마친 네 동료는 검사를 위해 기계에 얼굴을 들이댄 네게 무슨 이상이 있느냐 물었다. 나는 대충 그럴싸한 말을 둘러대었고, 너는 네 동료가 사라지기 무섭게 웃음을 터트렸다.


"말은 청산유수야. 그냥 네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있고 싶어서 데려왔다고 하면 되잖아."


이런, 역시 너는 눈치가 좋았다. 어물쩍 웃어넘기려 했으나, 너는 그마저도 웃음거리로 삼았고, 나는 내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너에게 기계에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대라는 요구를 했다.


사실, 뭐 검사를 한대도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네 시력이 이전보다 조금 떨어졌고, 각막에 상처가 있더라는 것 뿐이려나.


염증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하지 않은 일에 약을 낭비했다가는 대장에게 우리 둘 다 얻어터질게 분명했다. 물론, 나는 앉을때마다 욕이나오도록 맞을테고 너는 대장 욕도 못할 정도로 맞을테지.


팀에서 셋이나 빠져나가게 된 통에, 네 팀장은 새 팀원을 구하기 위해 바빴고, 자연히 너를 포함한 나머지 팀원에겐 며칠의 휴식이 생겼다.


나는 그 휴식기간 내내 이핑계 저핑계를 대며 내 숙소에 잡아두었고, 너는 몸살이 난 탓에 내 제안을 거절하지도 못했다.


네가 정말로 아픈 바람에 처음엔 핑계였던 욕구불만이 정말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을 땐, 어떤 녀석이 네가 백일홍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퍼트리고 다녔다. 네가 괴물을 물어뜯었고, 그 뒤로 눈이 충혈되어있다는게 증거랬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날, 대장이 나와 널 불렀다.


대장은 네 충혈된 눈을 보고서, 남들 앞에서 네 옷을 벗길것을 요구했다. 내가 바득바득 우긴 탓에 대장과 몇 여자들만 남고 죄다 내보내긴 했지만, 너는 결국 남들 앞에서 온몸이 발가벗겨지고 구석구석 관찰당했다. 당연하게도, 홍반은 없었다. 


신중한 대장은 그래도 혹시모를 사태를 대비해 너를 가둬두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 네 팀장은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봐 부랴부랴 너를 빼고서 팀원을 꾸려 정확히 10일만에 다시 임무를 나갔다. 너무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에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장기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다.


너는 네 생각에도 백일홍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며 나와 접촉을 거부했고, 그 사이 대장의 딸은 아직 다 낫지 않았다는 내 말에도 제 애완동물을 끌고가버렸다. 불구자를 데려다가 환자로 만들어놓는 그의 취향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네가 돌아온지 정확히 14일째, 너는 나를 불러 눈이 보이지 않음을 호소했다. 헛구역질과 불면, 왼쪽 어깨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열감을 호소했다. 너의 어깨엔 내 손톱만한 붉은 꽃망울이 져 있었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백일홍이었다. 네 근육은 점차 녹아내리고, 몸 곳곳엔 붉은 꽃이 피어오를 터였다. 깨끗하게 게워낸 배속엔 물렁한 괴물의 씨앗이 깃들것이다. 백일간 핀 꽃은 진다. 괴물은 그 꽃의 열매였다.


대장은 종종 제가 이 무리를 세우기 전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부랑자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곤했다.


그들은 괴물들을 길들인다는 멍청한 꿈이 있었고, 몇번의 시도끝에 전멸하고 말았다. 그 탓에 자신의 배우자를 잃은 대장은 괴물은 무조건 쳐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 또한 죽임당할 것이 뻔했다. 내가 너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살아날까?


분명 아닐게 뻔했다. 속보이는 제안을 내뱉는 나를 비웃고서, 연구는 연합에서 충분히 하고 있으니 필요하면 가져다 주겠다고 하겠지.


왜 진작 그렇게 하지 않았던걸까. 왜 좀더 공부하지 않았던 거지?


너는 내 침묵이 불안했는지 아니면 그 빌어먹을 통증이 너무 심했는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내가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자 매서운 기세로 내 손을 쳐내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고쳐줄게. 걱정마."


나 선생이잖아. 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기껏해야 증상에 따라 약만 처방할줄 아는 선생. 아까 봤던 책에선 대증치료라 하던가. 결국 환자가 버틸 수 있게 돕는 것에 불과했다.


너는 그저 웃었다. 힘없이 아주 잠깐 웃고서 내게 나가달라고했다. 나는 방을 나서며 조수의 입단속을 하려했지만, 이미 대장은 알고계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수는 대장이 이번 기회에 내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며 은근히 너를 죽이기를 권장했다.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생각했다. 조수가 대장의 딸이 제 애완동물을 데려왔기에 제가 대신 치료해 보냈다고 보고했다. 대장이 내게 총알 사용을 허가했다고 보고했다. 딱 한발만 사용하라는 말을 어찌나 강조하던지, 지랄 발광을 하여 겨우 방에서 내쫓았다.


밤이 되고, 창 밖으로 전등의 빛이 들어오자 불현듯 머리가 맑아진느낌이 들었다. 나는 진짜 의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널 치료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 의사를 찾아가면 되는 일 아닌가.


연합으로 가려는 건 아니었다. 그 녀석들 수준이야 내가 잘 안다. 제일 잘났다는 년도 책에 쓰인거 줄줄 읊는 수준이었으니 십여년간 연구를 했으면 뭐 얼마나 했겠나.


게다가 그 겁쟁이들은 괴물들이 무서워 문 꼭 닫고 안에서만 벌벌 떠니 환자를 치료해본 경험도 나보다 적을게 분명했다. 녀석들은 연구원이지 의사가 아니다.


어떤 노예가 신정부에 대한 이야길 지껄이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옛 수도 근처의 섬에 사건이전의 문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사는 녀석들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의사가 있을터다. 그래야만 했다.


결심을 하니 곧바로 행동에 옮길 차례였다. 곧바로 가볍게 짐을 쌌고, 모처럼 발포허가도 받았겠다. 장식처럼 걸어두었던 권총도 챙겨들었다.


너는 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이닥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침대구석에 몸을 움크리고서 잠시 고개를 들었으나, 눈은 뜨지 않고서 다시 숙여버린다.


"도망치자."


"미쳤어?"


미쳤다니, 그게 여기서 제일 머리 좋은 사람한테 할 말인가. 당연히 나는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약이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맑았다.


오기전에 도서관에 들려 지도도 확보했다. 혹시몰라 비상시를 대비한 생존법이 적힌 책도 두어권 챙겼다. 나는 나름 꼼꼼하게 신정부로 갈 준비를 마친 뒤였다.


너는 잠시 나와 따라가기를 거부했으나 내가 머리에 권총을 대고서 협박하자 천천히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놈의 쏘지 않을거지, 몇번이고 말하지 않아도 쏘지 않는다고.


너도 물론 내가 나 자신을 쏠만큼 담력이 쎄지 않다는 것쯤 아주 잘 알테지. 혹시 몰라서, 내가 실수로라도 방아쇠를 당겨버릴 가능성 때문에 고분고분 내 말을 들어주는 걸테지.


너와 내 등에 배낭 하나씩을 메고서 무리에서 도망쳤다. 당연하게도 주변을 순찰하던 녀석이 우리를 발견했으나 네가 무척 놀라운 솜씨로 녀석을 때려눕혔다.


나는 녀석을 죽일것을 주장했으나 너는 입에 제갈을 물리고 묶어서 숨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나는 결국 양보하고말았다.


당연히 충분할리는 없다. 우리가 도망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는지 그리 오래지 않아 대장이 직접 확성기를 들고서 내 이름을 고래고래 소리쳐 불렀다. 저새낀 동네 괴물들 다 불러모을 작정인가.


"지금이라도 그년 죽이고 돌아오면 너그럽게 용서해준다. 당장 돌아와!"


지금 돌아갈 것 같았으면 도망치지도 않았다. 나는 애써 대장의 외침을 무시하며 액셀을 밟았다. 너무 오랜만에 운전하는 자동차였지만, 내 운전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연합에서 단신으로 무리까지 운전하고 왔던실력인데.


강제로 뒷자리에 앉은 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지 빨리 도망치차고 했다가, 도망칠 수 없다느니 중얼거리다가, 내 권총에 손을 대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리고 젠장, 그 지랄맞은 년은 누군데 자꾸 이름을 불러대는거야?


속으로 이름 두자 아는 년에게 욕을 퍼부으며 다리를 향해 차를 몰았다. 대장이 가지 말라고 외치는 소리가 참 요란스럽기도했다. 물론, 그만큼 총성도 요란하다. 이 소란을 일으키고도 괴물이 안오기를 바라면 그 새낀 남한테 부려먹힐 자격도 없다.


시끄러워 죽겠네. 입 밖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를 보다가 있는 힘껏 귀를 틀어막은 너를 보았다. 그리고 몸이 붕 뜨는 느낌에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빠르게 떨어지는 시야에 어느 다리의 부러진 철골이 보였다. 이거 나 건너올때만 해도 멀쩡했던 다리였는데.


-

이 설화는 두 가지 종류가 알려져 있는데, 그 하나는 인신공희(人身供犧) 및 영웅의 괴물 퇴치 모티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벼랑으로 떨어져 죽은 두 처녀에 관한 것이다. 이 중에서 보다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백일홍설화(百日紅說話))]


벼랑으로 떨어져 죽은 두 처녀 왜 안보이는데! 엄청 두근거리면서 찾아봤는데 왜 다들 있다고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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