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지독한 일들도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사유리와 관련된 일도 비슷했다.

스즈메의 감독 아래 사유리는 조용히 지냈고 그 사실에 다른 환상종들은 안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스즈메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사유리는 최소한 건드리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다들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건 어쩌면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의 씨앗은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후미나와 아야메는 남들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감이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마치 폭풍전야와 같았다. 단지 그 폭풍은 어디까지나 자신들 만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둘은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불안해 있을 수만도 없었다.

어찌되던 일단 남들 앞에서 사유리는 조용히 지냈으니까. 가끔씩 도서관에 찾아오면 후미나는 물론이고 아야메도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사유리를 대했다.

자신들에게 있어 어떤 위협이 될지 모르는 퇴마사의 후예에게 그러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반대로 그런 그녀들이 있었기에 사유리는 아주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스즈메가 없어도 조용히 있는 사유리를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소외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미나, 아야메와는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며 다른 환상종 학생들은 어느 순간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후미나와 아야메는 원래 도와달라는 사람 거절 못하는 것을 알기에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지내는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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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미나는 조용히 아야메 곁에서 혈액팩을 마셨다. 물론 자신들의 근처에서 식사하는 사유리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순수한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흡혈욕을 자극한다. 특히 사유리와 같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나마 배가 부르면 그런 욕망은 줄어드는 법, 그렇기에 후미나는 사고를 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혈액팩을 비웠다.

혀를 적시는 혈액 특유의 끈적하면서도 농후한 맛이 후미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피의 향기에 취한 듯 후미나는 한동안 그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목을 넘어가며 온몸을 따뜻하게 채우는 피의 생명력은 후미나의 몸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야메는 언제나 차가운 후미나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비록 종이 다르기에 다른 연인들과 형태는 같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함께 하기에 얻는 것도 있다.

"흐음...."

아야메는 피 냄새를 맡으며 입맛을 다셨다. 비록 변신하지 않는다면 인간에 가깝다지만, 늑대인간답게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 또한 좋아하였다.

사람의 피 냄새는 비록 인육이 금지되었기에 섭취가 금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식욕을 돋우는데 충분했다.

어머니가 준비해 준 도시락도 매우 훌륭했지만 후미나가 마신 피의 향기는 그녀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물론 이성이 있기에 사고를 치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일탈은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부럽네...."

곁에서 스즈메와 함께 식사하던 사유리는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후미나와 아야메의 분위기가 많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젓가락을 멈추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유리의 모습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죄송합니다."

스즈메는 그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사유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미안한 모양이었다.

"아니야. 그냥 내가.... 아니...."

사유리는 여전히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었다.

"하아.... 읏...."

사유리는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듯 괴로워했다. 스즈메는 재빠르게 사유리를 안아주었다.

"괜찮으세요?"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의 일인 듯 전혀 막힘 없이 스즈메는 그녀를 돌보기 시작했다.

후미나와 아야메는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당사자보다 오히려 더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인간에 대해 잘 몰랐다. 이제는 환상종과 인간의 혼혈도 드물지 않은 시대, 그렇지만 순혈 환상종인 두 사람은 그저 지켜보는게 고작이었다.

스즈메는 사유리를 안은 상태로 보온병을 꺼내 능숙하게 잔에 무언가를 채웠다. 아마도 약이겠지. 그것을 조심스럽게 사유리에게 마시게 하였다.

서서히 사유리의 고통이 사라지는 듯 그녀의 얼굴은 편안함이 돌아오고 있었다.

"괘, 괜찮아. 고마워 스즈메."

사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며 잠시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아...."

사유리는 후미나와 아야메의 시선을 뒤늦게 느낀 모양인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본 것을 무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몸 괜찮은거야?"

후미나는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자 사유리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별 것 아니에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으니 남에게는 이야기 하지 말아주세요."

사유리는 그녀답지 않게 부탁했다. 스즈메 또한 부탁한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 고개 숙이실 것 없어요."

후미나는 놀란 듯 말을 더듬었다. 허나 그녀들이 그러는 것을 보니 함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아야메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어린 시절 그 일을 경험했기에 표정은 어두웠다.

"부탁드립니다."

스즈메는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녀의 말에 알았다고 말하며 두 사람은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람만이 이들 사이를 지나갈 뿐이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이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한숨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