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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여동생에게 EBS 폴더를 털린 사연 -7-

LL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2 17:37:05
조회 581 추천 24 댓글 0
														

 나는 잠시 피씨방으로 들어가서 구직 사이트를 뒤져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평범하고 무난한 직장을 찾고 싶지만, 이제 와서 갑자기 구하긴 힘들겠지. 그래도 한동안 유리 네서 얹혀 살 계획이니 재정적 부담을 일방적으로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


 몇 군데 후보를 물색해둔 다음, 유리를 만나기 전까지 당장이라도 가능한 곳부터 면접을 보러 다닌다. 라는 계획이다.


 도착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혼자 구직사이트를 뒤지는 행동이 제법 저항감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를 잡고 컴퓨터를 켜 보았다. 괜히 이런 곳에서 굳이 돈을 쓰면서 구직 사이트를 뒤지는 행동이 눈치가 보였다. 아마 남들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무난한 취직 욕심을 버리니 제법 괜찮아 보이는 후보가 보였다. 패스트푸드알바, 피씨방알바, 카페알바, 편의점 알바, 기타 프랜차이즈 알바 등. 이런 곳에 가려고 대학교를 나왔나 자괴감이 들었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주진 않는다.


 길고 긴 고민과 판단 끝에 아이스크림 가게로 결정했다. 여기라면 아이스크림도 이미 있는 아이스크림을 주문에 맞게 퍼다 주면 되지 않을까? 재고가 부족하면 발주요청하면 되는 정도일 것이다.

 가끔 새로 도착한 아이스크림을 냉동 창고에 옮기거나 하는 부분은 중노동이겠지만,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겠지.


 무엇보다도 동생 녀석이 잔뜩 남긴 키스마크. 이것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울 곳은 후보군에서 싹 제외해버렸다. 마침 아이스크림 보관도 차가운데서 할 테니 유니폼 안에다 목을 가릴만한 복장을 추가해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마음을 정한 나는 유리의 집 주소에서 제법 가까운 곳 위주로 전화번호랑 주의사항 등을 스마트폰에 메모해놓았다.


 "좋았어."


 나는 피씨방 요금을 빠르게 정산하고 나왔다. 아무래도 피씨방 안에서는 고함지르는 소리, 키보드를 거칠게 두들기는 잡음 때문에 집중이 안 될 테니까. 나는 당장 면접이 가능한 곳들을 최우선시 하여 연락해보았다. 같은 내용을 클립보드 복붙만 하면 되는 문자지원은 최고야.


 깨똑

 깨똑



 지금 이건 느낌상 여동생일까? 확인하기 조금 무서웠지만, 메시지를 읽어 보았다.



 여동생 : 언니 지금 어디야?

 여동생 : 빨리 돌아와! 늦으면 호된 꼴을 당할 테니까!


 나는 코웃음을 피식 흘렸다. 집으로 돌아갈 일이 생긴다면 무서워졌겠지만, 난 이제부터 외박할 거란다! 나는 신나서 그간의 복수를 하듯 답변을 남겼다. 보내는 김에 모 고전만화에 나오던 퇴사 기념 짤과 함께.


 >안녕히 있어 나리야 

 >언니는 가족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날게


 차단을 할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가족 된 정으로 그렇게 까진 하지 않기로 했다.


 깨똑!


 여동생 : 뭐? 뭐라는 거야? EBS폴더 부모님에게 알려져도 좋아?

 >ㅇㅇ 상관없어

 여동생 : 후회하지 마!

 >어차피 집으로 안 들어갈 거거든 ㅋㅋㅋ 폴더 까발리는 김에 네가 부모님에게 대신 전해줘


 띵 띠로리롱♪


 이번엔 전화인 걸까? 나는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 대담하게 받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말해주기 싫어. 그냥 이 언니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아 주렴."


【아하하하. 이상해. 언니가 나를 버린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통화기 너머로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살짝 맛이 간 목소리다. 이거 슬슬 위험한 기분이다. 왠지 목소리만 들어도 정신을 지배당할 것 같은 무서움이 자라났다.


【설마 나 때문이야? 당장 돌아와!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바로 통화종료버튼을 눌렀다.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협박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사실 냉정하게 굴었지만 이 이상 목소리를 들으면 어린 시절 유원지에 같이 갔던 기억 때문에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날 위해 울어주던 그 착한 아이는 어디로 간 건지.


 띵 띠로리롱♪


 나는 여동생인 걸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끊어버렸다. 집요해. 이쯤 되었으면 슬슬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깨똑!

 꺠똑!


 나는 굳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에게 일러바치는 내용이라면 굳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애원하는 말이라면 마음이 약해져서 돌아갔다가 모진 꼴을 당할 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같이 살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불행해 질뿐이다. 내가 여동생에게 일방적으로 모진 꼴을 당해서 불행해지거나, 여동생의 성벽이 드러나서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거나.


 나리가 나에게 욕정을 품은 시점에서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조금 고생하더라도, 이쪽이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겠지. 여동생은 이 못난 언니를 잊고 부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나는 먼저 문자답변이 가장 먼저 온 곳으로 면접을 보러 이동해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뻔한 예상 질문인 지원동기에서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해버렸다. 여기서 키스마크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면접을 보면서 부족하게 느꼈던 부분을 보완해서 다녔다.


 어디든 시급이야 다 최저시급이고, 스케줄 근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주 3,4회정도?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8시간 일하는 것 같았다. 캐셔 역할과 아이스크림을 퍼주는 일과 재고관리, 청소 등이 주된 업무였다.


 아마 빠르면 오늘 저녁쯤 결과를 통보한다나? 만약 되면 열심히 할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늙을 수는 없지만, 일단 된다면 유리에게 당당하게 붙어 살 수 있어.


 만약 나를 불편해한다면 돈을 조금씩 모아서 독립해야지. 만약 안받아주면 오히려 곤란한 상황인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대강 면접을 마친 나는 시계를 살펴보았다. 슬슬 유리를 만날 저녁시간대였다. 아주 적절하게 끝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깨똑!


 아마도 유리겠지? 나는 스마트폰을 펼쳐 보았다. 역시 유리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유리 : 이제 집에 들어왔어. 언제쯤 도착할 수 있어?

 >당장이라도 가능해. 마침 근처야etc_07.gif?v=2

 유리 : 빨라! 그래도 잠깐 기다려줄 수 있어? 집안이 조금 어질러져 있어서 그... 창피해서

 >응응. 기다릴게 준비 다 되면 연락 줘. 아니 그냥 카페에서 기다릴까?

 유리 : 아냐. 그 정도로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원룸 앞에서 기다려도 돼


 어차피 같이 살면 볼꼴 못 볼꼴 다 볼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유리는 내가 눌러앉으러 가는 사실을 모르니까. 한창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겠지.


 유리의 반응으로 우리는 한참 풋풋할 때라는 것이 느껴져 왔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실감이 안 날정도로 순박해! 오히려 아직도 평소처럼 대하는 내가 죄인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여동생과 대화할 때와 차원이 다른 배려심으로 치유되는 기분이다. 처음엔 책임감 때문이었지만 사귀길 잘했어! 그때 술 취해서 실수를 저지른 나를 칭찬해야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기억을 유리의 원룸 앞으로 가서 집 앞에 서서 기다렸다. 유리가 연락을 하면 바로 들어가야지. 시간상으로는 짧지만, 체감시간이 길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일까? 일분, 일초가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닫고를 몇 번 반복하는 그 시간은 정말이지 길었다.


 철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유리가 상체를 빼꼼 드러냈다. 피부도 어딘가 촉촉해 보이고 화장도 깔끔한 걸로 보아, 방 정리는 핑계고 빠르게 씻고 다시 화장을 한 모양이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아냐. 방금 왔어. 에헤헤."


 "근데 무슨 일이야?"


 "그게 실은……."


 나는 잔뜩 짐을 싸놓은 가방을 들어보였다.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야! 유리라면 받아들여줄 거야!


 "뭘 그렇게 많이 싸왔어?"


 "들어가서 설명해도 괜찮을까?"


 유리의 방은 여전히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가서 산다면 어지르지 않게 조심해야지. 일단 여동생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생판 남에게 심어줄 수는 없으니 에둘러 설명해야지.


 "실은 집을 나왔거든. 아니, 사실 어제 연락하기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어."


 "어어? 갑자기 왜?"


 갑작스러운 선언에 유리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동생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해도, 너랑 사귀자고 한 뒤에 네 생각만 났어! 같은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사실, 요즘 가정 분위기가 힘들어 져서. 그… 가정사라 함부로 말하긴 힘들어서."


 "그랬구나."


 유리는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잠시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하긴 1인이 사는 걸 전제로 한 방이니 조금 힘들 수도 있고, 사생활 문제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여기서 거절당한다면… 집밖에 남지 않는다고! 아까 여동생을 괜히 도발했나?


 "제발 재워줄 수 없을까? 두 달… 아니 적어도 한 달만이라도! 방값이라거나 다른 비용도 부담할게! 아르바이트도 알아보고 왔어!"


 "아, 알았어. 다른 사람 부탁도 아니고, 아리 부탁인걸."


 "유… 유리야!"


 나는 감격에 겨워 유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야! 나는 유리의 뺨에 얼굴을 비비며 애정을 마구 표현해주었다. 이걸로 드디어 위험한 여동생에게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대, 대신에 말이야."


 "응?"


 유리는 목까지 빨갛게 붉히고는 머뭇거렸다. 뭔가 부끄러운 말을 할 기미가 보이는데. 부끄럽지 않게 받아주는 것이 의리이자 사랑이야!


 "밤에 그… 외롭지 않게… 으읏."


 끄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거 보면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이미 어제 아침에 샤워하면서 대담하게 할 짓 다 했으면서. 그래도 연인이니까 동거한다면 서로 그렇고 그런 일이 있을 나이긴 하다.


 근데 솔직히 여자랑 하는 건 아직 저항감이 상당히 있긴 하지만, 윤리관으로 봐도 여동생보단 유리가 낫고….


 무엇보다 유리라면 강제로 밀어붙이지도 않을 테니 괜찮을 것이다. 여동생이 어제 잔뜩 남긴 키스마크정도가 신경 쓰였지만, 이 부분만 3주정도 잘 숨긴다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는 유리의 양 뺨을 잡고 입을 맞추는 걸로 대답해 주었다. 어제 몇 번이나 했으니까 이 정도는 세이프! 심리적 허들이 점점 낮아지는 게 어째 복잡한 기분이지만. 내 입맞춤이 끝나자 유리는 눈을 살며시 뜨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


 "응. 나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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