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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흔들리는 꽃 - 애증의 폭풍 속에서 - 28화

1234(39.113) 2021.03.05 20:02:40
조회 129 추천 10 댓글 4
														

환상종은 아무리 나약해 보이더라도 인간을 훨씬 웃도는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다. 흡혈종인 후미나는 물론이고 늑대인간인 아야메는 모두 작정하고 달리기 시작하면 어지간한 자동차보다도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이제 곧 해가 저무는 시간.


환산종들에게 있어서는 원래 자신들의 시간이었다. 만에 하나 사유리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녀는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천년의 세월 동안 퇴마사의 이름 아래 이어진 일족의 집념은 밤이야 말로 자신들의 시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유리는 사람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그녀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과 달리 사유리의 육신은 원념에 가까운 기운에 휘둘려 인간의 한계를 진작에 뛰어넘었다.


후미나와 아야메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살기 위해서는 그것 밖에 없다는 듯 그녀들은 자신들의 모든 능력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사유리는 빠르게 그녀들을 추격했다. 마치 사냥감을 앞둔 사냥개처럼, 사유리는 그녀들을 따라갔다.


"하아.... 하아...."


추격은 결국 끝이 다가오는 법이다. 후미나와 아야메는 모두 한계까지 달린 것인지 더 이상은 달릴 수 없다는 듯 숨만 헐떡였다.


그런 둘을 사유리는 숨 하나 흐트리지 않고 따라왔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종말이라는 것처럼 압도적인 힘을 두르고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은 환상종의 악몽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전설 속에서 환상종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쫓아온 퇴마사에게 그렇게 소멸되었다.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그 기억들이 후미나와 아야메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재현되어간다.


그것은 공포였다.


밤의 주인이자 어둠의 거주자인 환상종들에게 있어 절대 있어선 안될 절대적 재앙.


사유리는 그것의 체현자이며 존재만으로 환상종에게 용인 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후미나와 아야메는 마냥 두려움만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사유리는 여전히 울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족의 숙명에 따라 친구를 죽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괴로워 하였다.


어찌 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그것을 거스르기에는 사유리에게 내려간 혈통의 힘은 너무 강했다. 그녀를 막을 방법은 없었음에도 후미나와 아야메는 사유리를 돕고 싶어했다.


그것은 바보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자신의 목숨을 건 위험하기 그지 없는 일.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이곳은 누구도 쉽게 다가오기 어려운 곳이었다.


만에 하나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그녀들의 목소리가 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었다.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야 하지만 후미나도 아야메도 그런 능력이 없었다. 과거의 환상종과 달리 지금의 환상종들은 전투 능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인간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빨과 악의를 후대에 물려주지 않게 되었고 덕분에 후미나와 아야메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둘다 본능에 자신을 맡기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본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킨 상태로 사유리의 공격을 한번 이상 견뎌야만 했다.


그것은 지금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 도망쳐.... 제발...."


사유리는 자신의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며 정화의 기운을 불러오는 것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후미나와 아야메는 체력을 한계까지 쓴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움직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죽음.


그것은 때 이른 죽음이 되겠지. 수백년, 혹은 그 이상을 살 수 있는 존재들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렇지만 각오와 상관없이 죽음은 다가왔다. 서서히 구체화되는 정화 - 퇴마의 기운은 이제 멀리서도 후미나와 아야메의 피부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이대로 소멸하는 것일까?


그것은 싫었다.


살고 싶은 마음이 후미나와 아야메의 눈물로 맺혀갔다. 이대로 죽기는 싫었다. 살고 싶었다.


그리고 행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유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의 손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완성된 술식은 둘을 향해 해방되었다. 이대로 둘은 소멸될 위기 속에 후미나와 아야메는 그저 서로의 손을 꼭 잡을 뿐이었다.


"사유리 그러면 안돼!"


예상 못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녀들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후미나와 아야메, 두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 공격을 막아내었다.


"서, 선생님?"


후미나는 기운이 사라졌을 때 겨우 눈을 뜨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말을 걸었다.


"미안, 하도 심하게 사유리가 사고 쳐서 말이지."


치즈루는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과 달리 치즈루는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구미호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사유리의 공격은 막강했다.


그렇지만 이건 기회였다.


그랬다.


사유리도 이 정도로 강한 기술을 쓰면 당연히 지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더니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


두려웠다.


하지만 친구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바보 같은, 하지만 내버려둘 수 없는 외톨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럴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친해졌다.


그런데 이런 일로 헤어지긴 싫었다.


그렇기에 후미나와 아야메는 각자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뭐, 뭐하는거니!?"


치즈루는 겨우 공격을 막았는데 그녀들이 다시 위험에 다가가려 하는 것을 보고 놀란 듯 소리쳤다.


하지만 마음을 정한 두 사람은 각오를 다지고 뛰어갔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를 되돌리기 위해서.


어리석다 할지 모르는 도박의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절대 포기해선 안될 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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