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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길들이기 3

ㅇㅇ(223.39) 2017.08.05 04:17:04
조회 2012 추천 42 댓글 7
														

건조한 메르시가 보고싶어 쓴 글 3






독감이 유행이라고 했다.
앙겔라는 매주 주말, 아침부터 밤까지 제 집에서 보내는 아이에게 철저하게 위생교육을 시켰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3분씩 손발을 깨끗이 씻게 했고, 가습기로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게끔 했다. 아이는 자기가 애냐며 투덜거렸지만, 앙겔라의 말을 꼬박꼬박 잘 지켰다. 감기에 걸릴 일은 없을 것 같아 한 숨 돌리던 차였다.

논문 제출을 앞두고 앙겔라는 연이은 철야를 했다. 밤만 되면 더 집중이 잘 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아이가 그것을 눈치채고 야식을 만들어 가져다주기도 해서, 그 덕도 있어 앙겔라는 무사히 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지난 10개월간 계속 매달리던 일이 마무리되자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주말 아침, 앙겔라는 앓아누웠다.

연이은 철야로 인한 체력 저하인 상태에서 조만간 복귀할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병원에 들른 것이 원인이었다. 온갖 감기와 병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곳에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로 찾아갔으니 걸릴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온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앙겔라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자꾸만 몸이 가라앉는 바람에 그냥 누워있기로 했다. 주말 휴일인데다 논문도 제출하고 나니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어서였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눈앞이 어지러운 걸 보니 제대로 독감에 당한 것 같았다.
마침 현관벨이 울렸다. 주말 아침에 찾아올 이라고는 아이밖에 없었다.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날 기력이 없었다. 대답이 없으면 돌아가겠지. 그리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눈을 떴을 때는 침실에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점심 즈음인 것 같았다. 앙겔라는 터져나오는 기침에 저도모르게 등을 구부렸다. 연이은 기침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힘도 없는 몸에 격한 기침을 하려니 정말 고역이었다. 끙끙대며 몸을 비트는데 제 손을 쥐어오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가늘게 눈을 뜨니 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박사님, 따뜻한 물 좀 드세요."

아이가 등 뒤로 손을 넣어 앙겔라를 침대 배드에 기대어 앉혔다. 등 뒤로 베개를 넣어주는 손길이 분주했다. 앙겔라는 아이가 대어주는 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들썩이던 가슴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들어왔나요, 하고 묻고 싶은데 기운이 없어 말도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작은 목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대답했다.

"박사님이랑 매주 마트 다녀오면서 어깨너머로 비밀번호 봤어요. 무작정 집에 들어와서 미안해요, 박사님. 그런데 벨을 눌러도 인기척도 없고, 전화도 안 받으셔서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들어온 거예요."

무슨 일이 있기는 했다. 감기로 거의 기절하다시피 했으니까. 앙겔라는 아이가 비밀번호를 알고 집에 들어온 일에 대해선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약하게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다가 침대 매트리스 옆에 떨어진 물수건을 발견했다. 아이가 병간호를 했던 모양이었다.

"집에 감기약 있어요?"
"아뇨."
"그럼 사올게요. 증상이 어떻게 되세요?"

앙겔라는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아이가 그러다 큰일나면 어쩌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한국의 병원에서 과다한 약을 처방하는 것에 평소에도 불만이 많은 앙겔라였기에, 며칠 정도 증상을 두고 볼 생각이었다. 병원 근무를 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감기 옮아요. 이만 가봐요."
"박사님이 이렇게 아픈데 제가 어딜 가요. 저 그리고 독감 예방주사 맞았어요."

아이가 울먹이듯 앙겔라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아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누가 보면 제가 죽을병에 걸린 줄 알겠다는 생각을 하며 앙겔라는 힘없이 웃었다.

"놔두면 돼요. 괜찮아요."
"싫어요. 박사님이 뭐라고 하든 안 갈 거예요."

아이가 고집스레 말했다. 앙겔라는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 걸 정말 원치 않았다. 하지만 온 몸에 힘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어서 그저 고개만 저었다. 아이가 모른체 하고 앙겔라의 이마를 새로 가져온 물수건으로 닦았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얼마나 서러운데요. 제가 간호해드릴게요. 쫓아내도 안 쫓겨날 거니까 그냥 받아들여요."

그리고선 잠시 기다리라고 말해두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앙겔라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박사님, 죽 좀 드세요. 아침도 못 드셨을 거 아니에요."

그 사이 아이가 쟁반에 그릇과 스푼을 담아 든 채로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앙겔라는 만사가 귀찮아서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협탁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뭐라도 드셔야 기운이 나죠."
"배 안 고파요."
"몇 숟가락이라도 드세요. 네?"

더 실랑이할 기운도 없어서 앙겔라는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이가 고개를 젓고는 화장대 앞 의자를 들고 와 침대 옆에 놓고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 손에는 그릇을, 다른 한 손에는 스푼을 들고 앙겔라를 보았다. 먹여주려는 의도 같았다. 앙겔라는 몹시 난감했다. 한참이나 어린 여자애가, 심지어 학생인데-사실 요즘 들어선 학생이란 이미지보다 어린 요리사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지만- 제게 죽을 떠먹여주다니.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죽을 떠서 앙겔라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 받아먹었다. 그리고 앙겔라는 새삼 자신의 상태가 몹시 나쁘다는 것을 자각했다. 죽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맛도 안 나요."

쿨럭거리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야채죽인데 좀 밍밍할 거예요. 환자식이라 간을 덜 해서."

앙겔라는 우습게도 그 말을 듣자 조금 서러워지고 말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대꾸했다.

"장염에 걸린 것도 아닌데 간을 덜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어… 그렇게 맛이 별로예요?"

앙겔라는 순간 치열한 갈등을 느꼈다. 말만 하면 아이가 간을 해주거나 해서 더 맛있는 죽을 내어줄 것을 알기에 더 그랬다. 아파서 힘도 없는데 맛도 없는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고 혀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결국 이긴 것은 쓸모도 없는 체면따위가 아니라 아이에게 장장 8개월 동안 길들여진 입맛이었다.

"………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도 식욕은 있으신 것 같아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시 해 올게요."

아이가 앙겔라를 부축해서 다시 침대에 눕혔다. 일단 말은 했는데 생각해보니 창피해서 앙겔라는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한참이나 어린 애가 신경써서 죽까지 끓여줬는데 맛 없다고 음식을 물리다니. 어릴 적에도 해 본 적 없는 투정이었다. 아파서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해. 앙겔라가 중얼거렸다. 쿨럭거리며 후회하고 있는데 잠시 후 아이가 돌아왔다.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크림스프예요."
"…가져오는 게 너무 빠르지 않나요?"
"실은 박사님이 아프니까 아무 생각 안 나서 급한대로 야채죽을 끓였는데, 도중에 생각해보니 별로 안 좋아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크림스프도 끓이고 있었어요."

앙겔라는 아이가 저에 대해 미각 부분에서만큼은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다. 읽히고 있단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했다. 살아오며 자신을 이렇게까지 파악한 사람이 있었나 싶었다. 누가 다가와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제 삶만 살아온 앙겔라로서는 정말 낯선 감각이었다.
아이가 다시 조심스럽게 앙겔라를 부축해 배드에 기대게 했다.

"아 하세요, 박사님."

앙겔라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이가 주는 대로 크림스프를 받아먹었다. 하지만 애를 쓰면 쓸 수록 더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저 마냥 철없는 애인 줄 알았는데 생각외로 속도 깊고, 눈치도 빠르고, 무엇보다 요리를 끝내주게 잘 했다. 제가 아이 나이 때는 그저 공부밖에 몰랐던 것 같은데.
아이는 앙겔라의 시선을 눈치챈 것 같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저 스프를 떠먹여줄 뿐이었다. 앙겔라가 한 접시를 다 비우자, 그릇을 정리하고는 그때서야 아이가 물었다.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네?"
"할 말 많은 눈으로 절 보시는 것 같길래요."
"……하나 양은 왜,"

일단 말을 꺼냈는데 그 뒷말이 이어지지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냐고 묻고 싶었는데 답을 알고 있었다.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저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애가 좋아한답시고 장장 8개월 동안 요리, 그것도 돈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는 요리를 가져다 바치고 있으니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앙겔라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씀하세요, 박사님."
"…어떻게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요?"

아이는 앙겔라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난…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나 양이 왜 나를 좋아하는 건지, 그리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잘 해줄 수가 있는 건지. 사실 내가 하나 양에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지치지도 않아요?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이의 표정이 묘했다. 앙겔라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하나 양에게 먼저 다가선 것도 변덕이란 거, 알잖아요. 지난번에 말도 했고요. 실망스럽지도 않았어요?"
"실망했어요."

아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앙겔라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생각은 해봤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그 무게감이 달랐다.

"나한테는 되게 의미있는 만남이었는데, 박사님한테는 아니었잖아요. 사실 박사님이 좀 드라이하다고 해야하나… 그런 성격인 건 알고 있었어요. 분위기도 좀 그렇고, 양호실 갔다 온 애들한테 들은 이야기도 있고. 그런데 그 날 저한테 담배 피지 말라고 한 거, 그게 되게 의외인 거예요. 막 저를 야단치는 박사님이 순간 엄청 예뻐보이기도 했고."

아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마냥 킥킥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삼촌 때문에 나한테 접근한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튿날 양호실 찾아간 거, 반쯤 장난이었거든요. 박사님 보고 심장이 쿵쿵 뛴 건 사실이었지만, 만약 진짜 삼촌 때문에 저한테 접근했던 거였으면 괴롭혀주려고도 했어요."
"…사탕도 주면서요?"
"아, 그거 사실 선물 받아서 사물함에 잔뜩 있던 거였어요. 저 인기 많거든요. 물론 좋아하는 거였지만, 혼자 먹으면 이 다 썩어버릴 것 같고, 박사님은 군것질도 안 할 것 같아서 장난으로 드리기 시작한 건데."

앙겔라는 어이가 없어졌다. 초반에 그렇게 무시해도 꿈쩍도 않더니만 이런 사정이 있었다니.

"그런데 박사님이 저한테 정말 관심을 하나도 안 주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들이 그러듯이 눈치보면서 못 본체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냥 개무시. 관심 갖게 해놓고선, 좀 열이 받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더 찾아간 거예요. 겸사겸사 예쁜 얼굴도 보고. 그러던 중에 주말에 슈퍼 가려는데 박사님이 보이더라고요. 되게 무료한 표정으로 인스턴트 음식만 잔뜩 사가시던데."

그런 표정이었나? 떠올려봤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앙겔라는 그저 듣기만 했다.

"그걸 보고 아, 이 사람도 정말 세상 재미없이 사는 구나 싶었죠.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하나?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요리 가져다 드린 거예요. 안 그래도 심심한 삶에 맛 없는 인스턴트 요리까지 먹으면 더 우울하니까.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반은 장난인 거였네요."
"반은 진심이었죠. 박사님한테 관심이 계속 갔던 건 사실이니까요."

아이가 앙겔라를 부축해서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살 넘겨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 박사님이 그릇 가져다주시길래 어땠냐고 물었더니 맛있었다고 하셨죠. 박사님 이미지로는 그냥저냥 먹을만 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런 부분에선 솔직하구나 싶은 거예요. 요리 맛있다고 하니까 칭찬 들은 것 같아서 기분도 좋고요.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칭찬 듣기가 어렵거든요. 먹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요리도 더 하고 싶고. 요리 가져다 드리는데 처음엔 질색하고 내쫓더니 다음부턴 그냥 받아주셨잖아요. 그때 박사님 완전 귀여웠는데."

듣고 보니 자신이 음식 하나에 경계를 풀어버린 들짐승처럼 느껴졌다. 앙겔라가 복잡미묘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듣는 사이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접시 가져다 주실 때마다 꼬박꼬박 맛있었다고 말해주시는 것도 좋았어요. 양호실에서 무시하는 건 똑같았지만, 제 눈치 보는 게 아니고 그냥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안 들리는 척 하면서 뭘 열심히 읽는데 그 모습이 멋져보이기도 하고, 자꾸 무시하니까 관심 받고 싶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었으면 제가 오지 말라고 했을 때도 괜찮았겠는데요."

앙겔라의 말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말했잖아요, 반은 진심이었다고. 점점 박사님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당연히 상처받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좀 억울하기도 하고. 난 잘해주려고 애썼는데 박사님은 무시하거나 밀어내거나 둘 다거나 그랬잖아요."
"…그랬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뭐가 예쁘다고, 박사님 생각이 계속 나더라고요. 내가 뭐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박사님한테 말 붙여보려고 양호실에 갔는데 다짜고짜 말 꺼내기도 좀 그렇고… 저도 상처받긴 했으니까요. 근데 박사님이 점점 야위는 거예요. 신경쓰이게. 혹시라도 나 때문에 그런 건가 싶어서 양호실에 안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박사님 말라가는 거 보기 싫어서 음식은 가져다 드리기로 하고."

사실 앙겔라는 그때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고급화된 입맛이 인스턴트 식품에 맞지 않게 된 것 뿐이었다. 이걸 말을 해야 하나? 8개월 전, 아니 최소한 5개월 전만 하더라도 말했을 터였다. 하지만 앙겔라는 입술만 달싹이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이가 하고 있는 오해를 굳이 정정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소각장에서 봤는데… 박사님이 왜 양호실 안 오냐고 했잖아요. 그때 느꼈죠. 아, 내가 이 사람한테 진짜 아무 의미 없는 건 아니었구나. 그리고 박사님도 뭔가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요. 그래서 다시 다가가보기로 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박사님이 조금씩 곁을 주는 게 보이기 시작해서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여름방학 때 즈음에는 박사님이 진짜로 좋아진 후였어요."

앙겔라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박사님이 저한테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건 아니에요. 전 박사님이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진짜 좋거든요. 그냥 박사님을 보고만 있어도 가슴 설레기도 하고. 박사님 만나기 전엔 정말 심심하게 살았는데, 박사님 만난 후에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그리고 아이는 앙겔라의 이마 위에 물수건을 올려놓았다. 시원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이제 좀 주무세요. 이따가 저녁은 맛있는 거 해드릴 테니까요."

앙겔라는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이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감기 때문인지, 아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앙겔라의 의식이 점차 어두워졌다.

*

땀에 전 듯한 찝찝함에 눈을 떴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 창밖이 새카맸다. 앙겔라는 낮보다는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느꼈지만, 기침은 여전했다. 쿨럭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데 아이가 기침 소리를 듣고 침실로 들어왔다.

"깨셨어요?"
"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옷 좀 갈아입고 싶네요."
"잠시만요."

아이가 앙겔라의 상체를 일으켜 세운 후 방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아이의 팔에는 잠옷이, 그리고 손에는 처음 보는 세숫대야가 들려 있었다.

"…그건 뭐죠?"
"세숫대야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저희 집에서 가져왔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땀 흘렸는데 어떻게 그대로 옷을 갈아입어요. 수건으로 닦고 갈아입게요."

앙겔라는 진심으로 난감했다. 설마 지금 땀을 닦아준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상대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몸을 보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걱정 마세요. 등만 닦아드릴게요. 정 힘드시면 제가 다 닦아드리고요. 물론 눈 감은 상태에서요."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려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앙겔라는 고민했다. 찝찝함 때문에 잠에서 깰 정도니 이대로 옷을 갈아입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샤워하기에는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었다. 결국은 아이 말대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럴 경우 최소한 등은 보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 들었다. 앙겔라가 휘청하자 얼른 아이가 부축했다. 앙겔라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등만 닦아줘요."
"네, 그럴게요."

생각해보니 등 정도는 보일 수도 있는 범위 같았다. 앙겔라는 그렇게 결론짓고 땀에 전 잠옷 상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자 앙겔라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등만 보일 수는 없는 거였다. 속옷만 입은 채로 상체 탈의를 해야 했으니까. 앙겔라는 침착하려 애썼다. 공중목욕탕 가면 다들 옷 벗고 돌아다니지 않던가. 물론 앙겔라는 공중목욕탕은 이용하지 않았지만.
아, 나이 서른 일곱이나 먹어서 이게 뭐하는 짓이지. 속으로 자책하고는 평점심을 찾으며 옷을 벗었다. 아이가 물수건을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차가운 물수건이 등에 닿자 절로 몸이 움찔했다.

"조금 차가울 거예요."

아이가 조심스럽게 등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온 몸의 신경이란 신경이 등에 죄다 쏠리는 느낌이었다. 물수건이 닿을 때마다 괜히 몸이 움찔움찔했다. 아이가 꼼꼼히 등을 닦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 몹시도 길게 느껴졌다.

"등은 다 닦았어요. 혼자 하시다가 힘드시면 저 부르세요. 밖에 나가 있을게요."

아이가 다소 빠른 말투로 말하더니 새로 짠 물수건을 앙겔라에게 쥐어주고 후다닥 침실 밖으로 나갔다. 얼핏 보인 목이 벌갰다. 그깟 등이 뭐라고……. 앙겔라는 팔에 힘을 주어 손수건을 쥐고 천천히 몸을 닦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조차도 힘들었다. 그러나 아이를 불러서 닦아달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몸을 다 닦는데 한참 걸렸다. 겨우 일을 끝낸 것도 잠시, 앙겔라는 곧 또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아이가 잠옷만 가져오고 갈아입을 속옷은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부르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옷을 다 벗은 지금 상태로는 속옷을 가져다 달라고 하고, 또 그것을 건네받기가 요원한 일 같았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뭣했다. 결국 속옷은 그냥 벗고 잠옷만 입기로 했다.

옷 한 벌 갈아입었을 뿐인데 녹초가 된 것만 같았다. 낮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아지는 느낌에 힘겹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이가 문밖에서 다 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 간신히 대답했다. 문이 열리고 시트와 새 이불을 든 아이가 들어왔다.

"박사님, 저 잡으세요. 잠깐만 바닥에 앉아 계세요. 시트도 이불도 젖었잖아요."

앙겔라는 생각할 힘도 없어서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아이가 앙겔라를 낑낑대며 안아들고는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분주한 손놀림으로 침대 시트를 갈았다.

"힘드시죠? 다 끝났어요."

그렇게 말하며 저를 부축하는 아이의 팔에 기대 힘겹게 침대에 올랐다. 사각거리는 새 시트의 촉감이 기분 좋았다. 온 몸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고마워요, 하나 양."
"뭘요. 나중에 저 아프면 박사님도 저 간호해 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아이가 미소짓고는 탈의한 잠옷과 침대 시트를 챙겼다.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져 아이를 보자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요?"
"속옷을 안 가지고 왔네요. 지금이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아뇨, 갈아입을 힘이 없어요."
"네, 그럼 이것들은 세탁기에 집어넣고 올게요."

앙겔라는 멍한 머리로 천장을 보고 누웠다. 18살이나 어린 여자애가 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상황이 참 웃겼다. 철이 들고 나서 이렇게까지 간호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점점 맑아져오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또다시 쟁반이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뭔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이번에도 베드에 몸을 일으켜 세우게끔 도와준 아이가 쟁반을 제 무릎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닭고기랑 양송이 버섯을 넣은 리조또예요. 오늘 크림 스프밖에 안 드셨으니 배 고프실 것 같아서요."

제 취향의 음식을 가지고 온 아이에게 앙겔라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와서 그녀를 대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마음이 편했다. 어쩌면 그 상대가 아이라서 그럴지도 몰랐다. 앙겔라는 아이가 내민 리조또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은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맛있네요."
"다행이에요. 천천히 드세요."

침묵이 한결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며 앙겔라는 아이가 입에 대어주는 리조또를 열심히 씹었다. 낮까지만 해도 부끄러웠던 기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득 앙겔라는 궁금해졌다. 저 작은 머리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무슨 생각 해요?"
"그냥, 박사님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요."
"간호 힘들죠?"
"아뇨, 전 좋아요. 박사님이 저한테 기대는 건 처음이잖아요. 꼭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인걸요."

생긋 웃는 아이의 웃음이 참 싱그러웠다. 이제 슬슬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가 어느새 제 선 안에 들어와 있다고. 아이가 저를 생각하는 감정은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호감이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한국에 온 지는 꽤 되었지만,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처음 마음을 열게 된 것이 만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18살이나 어린 여자애라는 점이 조금 웃기게 느껴졌다.

"…나중에 아프면 연락해요. 왕진 올게요."
"꼭 연락할 거예요."
"그래요. 안 아픈 게 제일이지만, 혹시라도 모를 일이니까."

아이가 그 말에 빙긋 웃더니 마지막 리조또를 먹여주었다. 앙겔라는 건네주는 물까지 마시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배가 든든하니 아까보다 훨씬 몸이 나아진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이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 정도에는 거동할 정도로 기력을 되찾을 것 같았다.
오늘 하루 종일 지겹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부르니 다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졸려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아이가 얼른 앙겔라를 침대에 편하게 눕혔다. 앙겔라는 아이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만 가봐요. 오늘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
"박사님 주무시면 그때 갈게요. 제 걱정은 하지 말고 주무세요."
"어떻게 그래요."
"환자가 다른 사람 걱정하는 거 아니에요, 박사님."

아이가 훈계조로 그렇게 말하더니 앙겔라의 가슴 위로 이불을 끌어 올려주고는 다른 손으로 눈을 감겨주었다. 보살핌 받는 기분이 너무 생생해서 앙겔라는 실소를 흘렸다.

"어렸을 때도 이런 취급은 받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럼 지금 한 번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그것도 그러네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만 이 빚을 아이에게 돌려주려면 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튼 나중의 일이었다.
눈을 감아도 아이가 제 옆에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앙겔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이와 했던 대화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린 나이에 사는 게 심심했다던 아이에 대한 것들이 새삼 궁금해졌다. 입을 열어 묻고 싶었으나 의식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내일 일어나고도 생각이 나면 물어봐야지. 앙겔라는 생각했다. 아이와 의미없이 거리를 두는 일은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제 손을 따뜻하게 감싸쥐는 아이의 온기를 느끼며 앙겔라는 잠에 빠져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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