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롭붕이들아

원작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이 죽은 웨더링하이츠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2년이 지나고 히스클리프가 웨더링하이츠로 돌아간 시점에서 캐서린은 아직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림버스 세계의 캐서린은 스스로를 예의 관짝 속에 넣었기 때문에 장례식을 치렀지 여기서도 충분히 살아있었을 수 있던 것과 대조된다

그렇다면 원래 없었어야 할 "히스클리프/캐서린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대체 왜 발생했을까 생각해봤는데

각 거울 세계에는 그 "히스클리프/캐서린의 죽음"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공통적으로 있다. 다름아닌 마왕 히스클리프와 모든 캐서린이다.

즉 내가 생각하는 각 거울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다음과 같다

1. 마왕 히스클리프의 세계에서 모든 캐서린이 캐서린을 죽임. 그 영향으로 마왕 히스클리프는 자기 때문에 캐서린이 죽었다 여기고 히스클리프를 죽이러 떠남

2. 모든 캐서린의 세계에서 마왕 히스클리프가 히스클리프를 죽임. 그 영향으로 모든 캐서린은 자기 때문에 히스클리프가 죽었다 여기고 모든 캐서린을 죽이러 떠남

이 둘이다. 1이랑 2가 같이 일어날 수 있냐고 어이없어하는 반응이 나올 것임. 이렇게 되면 인과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마왕 히스클리프가 먼저냐 모든 캐서린이 먼저냐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그런 전례가 있다

쥐파우의 세계와 본편 세계는 어느쪽이 먼저인가, 어느 쪽이 어느 쪽에 영향을 주었는가 알 수 없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각 거울세계는 인과가 시간순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즉 마왕히스와 모든 캐서린의 발생 순서가 서로 인과적으로 맞지 않는 것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즉 마왕 히스클리프는 모든 캐서린의 히스클리프를 죽였고, 모든 캐서린은 마왕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을 죽였다.

그리고 이 생각이 되게 비극적이라고 느낀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둘 모두 자신 때문에 다른 한 쪽이 불행해진다고 강조한다는 것임. 그리고 이 판단으로 인해 모든 자신을 죽인다는 선택을 내렸고. 그러나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다른 세계의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둘은 모두 서로를 위해, 서로가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세계의 자신을 죽이고 다녔으나 이는 반대로 정확하게 모든 세계의 서로를 끝없이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

비극을 피하려고 하는 일이 오히려 비극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매콤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게 바로 맨 마지막에 갑자기 데미안이 나와서 수천 세계의 장미꽃 어쩌구 한 이유라고 생각함. 만약 마왕히스와 모든캐시가 거울세계의 서로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면? 둘 사이에 이러한 비극도, 아니 애초에 마왕히스와 모든캐시 자체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만든 관계라는 걸 이렇게 비극적으로 은유하는 게 진심으로 감탄스러움

3줄요약

1. 각 거울세계가 주는 영향은 시간 순서대로 연결되어있지 않다.

2. 그래서 마왕히스는 모든캐시 세계의 히스를 죽였고, 모든캐시는 마왕히스 세계의 캐시를 죽였다. 그렇게 서로가 탄생했다.

3. 애초에 거울세계의 소중한 것을 가꾸려 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게 데미안의 말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