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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15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11 17: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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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 (完)


눈을 떴을 때, 해경은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개운함을 맛봤다. 몸은 가벼웠고, 더는 자지 않아도 될 만큼 상쾌했다. 해경은 더없는 최상의 몸 상태보다 눈에 들어온 풍경이 집이란 데에 더 놀랐다.


“일어났나?”


성진의 목소리에 해경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문가엔 신발을 벗지 않은 성진이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더군.”


“제가요?”


해경의 물음에 성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널 구한 놈들이. 널 병원이 아니라 복원조에 데려갔어. 덕분에 지금 네 몸은 어떤 초자연현상에도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갔지.”


성진의 말에 해경은 잠시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지금 몸 상태는 단순히 상쾌하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선 건 분명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수액 좀 맞고 수술한다고 그렇게 회복된다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좋아하지 마라. 외근부에서 일하는데 지금 네 몸 상태는 치명적이야.”


“초자연현상이 노리기 좋으니까요?”


해경이 답을 먼저 말하자,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까지 다녀왔다면, 어지간한 초자연현상 속에서도 거뜬히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성진이 아깝다는 투로 말하자, 해경은 가만히 흘려들을 수 없었다.


“잠시만요, 그 말씀은 절 일부러 센터에 보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래, 사실이다.”


성진은 순순히 인정했다. 해경은 황당했지만, 너무 빠르게 인정해서 도리어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내 이해했다. 외근부의 위험성과 초자연현상과 인간의 경계에 선 성진을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그 동기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왜 제게 말하지 않은 거죠?”


“네가 당사를 믿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겠지.”


성진의 말에 해경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말로 얻는 충성은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해경은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 이전 같았으면 자신도 그랬겠거니 납득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조금은 불쾌했다.


“사실대로 말해주셔도 돼요. 저는 각오하고 들어온 거니까요.”


“노력해보지.”


성진은 마치 정치인처럼 답했다. 해경은 입을 샐쭉 내밀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그래서, 몸도 이렇게 회복됐으니까 다시 초자연현상에 투입할 생각이신가요?”


“뭐, 너무 보채진 마. 세상이 온통 초자연현상으로 가득하다고 해서, 외근부가 항상 일거리로 넘쳐나는 건 아니니까. 아마 당분간은 목숨이 위험할 수준의 임무는 없을 거다.”


성진의 말에 해경은 마음속으로 살짝 안도했다.


“그거 공신력 있는 발언이죠?”


“2012년이 오기 전까진 꽤 잠잠할 거라는 게 상부의 전반적인 예측, 예지, 예언이다.”


“2012년이요?”


정확히 3년 뒤를 콕 집어 언급하자 해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성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해외에 마야란 고대 문명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성진은 기대도 안 했다는 듯 한숨조차 내쉬지 않고 말했다.


“고대 문명이 만든 역법 체계는 2012년에 끝이 난다. 구체적인 시기는 2012년 12월 21일이라더군.”


“그게 어쨌다는 거죠? 그게 진짜라도 된다는 거예요?”


“아, 그렇군. 넌 초자연현상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지. 초자연현상 앞에서 음모는 모두 실재한다. 모든 망상과 공포는 실현된다. 그러니 2012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거란 뜻이지.”


“저주 인형 같은 얘기네요.”


해경은 어렸을 적 빨간색으로 이름을 적으면 안 된다거나, 인형에 어떤 조치를 해놓고 장롱 속에 숨어 나 홀로 숨바꼭질하면 안 된다는 등의 괴담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렇게 해서 진짜로 사라진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성진은 그 얘기를 듣고 피식 웃었다.


“저주 인형 정도면 양반이지.”


“근데 국경이 단절됐는데, 해외 이야기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요?”


“해외 이야기가 한국에도 돌아다니는 이상, 그건 한국의 이야기지, 해외의 이야기가 아니야. 실제로 멸망이 일어나든 아니든, 멸망과 관련된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이 초자연현상을 자극할 거다.”


“징크스……잖아요, 그거.”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비슷하지. 따라서 상부에선 2012년에 본격적으로 초자연현상이 기승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있어. 시기적으로 따지면 2011년 연말부터겠지. 따라서 너는 적어도 3년……. 아니, 2년 안에 센터에 들어갔던 수준으로 너를 떨어뜨려야 해.”


성진은 검지와 중지를 펴 보이며 말했다. 해경은 센터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몸을 떨었다. 아무리 깨끗해진 몸일지라도 트라우마 반응은 정직했다.


“다시 센터로 절 보내실 건가요?”


“보냈다가 회수도 못 할 텐데? 아서라. 말했듯 2012년이 예정된 이상, 2011년 중반까진 초자연현상이 크게 날뛰지 않을 거야. 그러니 외근부로선 다소 심심한 임무들을 수행하게 될 거다. 성실히 임하도록.”


성진의 말에 해경은 안심해야 할지, 낙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해경은 승호의 제안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렀는데, 명함 한 장이 느껴졌다.


해경은 곧 직감했다. 이건 류승호, 아니면 초자연현상처리반의 명함이라고. 해경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성진을 향해 물었다.


“만약 제가 그만둔다고 하면, 그만둘 수는 있는 건가요?”


“왜, 갑자기 변심이라도 한 건가?”


“이곳에 자유가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절 구해줬던 아저씨가 그랬거든요. 사람이 초자연현상에 가까워지면 가장 먼저 잃는 게 자유라고요.”


“류승호가 그러던가?”


성진의 말에 해경은 뜨끔했다. 그러나 여기서 숨겨봤자 이미 성진이 다 파악하고 있을 게 뻔했기에, 마지못해 긍정했다.


“그래, 대충 무슨 얘기를 나눴을지 알겠군. 놈의 성향을 이용해 널 구하긴 했다만, 네겐 쓸데없는 생각을 집어넣었어.”


“쓸데없다뇨?”


“그깟 자유는 아무것도 아니야.”


성진의 말에 해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넌 네 동생을 지켜야 하고, 보살펴야 한다. 동시에 넌 동생이라는 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고, 외근부는 네 모순적인 욕망을 모두 이뤄줄 수 있다. 넌 네 목적에 충실하면 돼.”


“전 제 동생을 짐으로 여긴 적이 없어요!”


해경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성진은 해경을 차갑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넌 떨어져야 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메타포가 널 죽일 테니까.”


“메타포요?”


“그래, 초자연현상 중 ‘사람을 죽이는’ 부류에 해당하는 것들이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자기모순과 죄의식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인류의 자멸기관이다.”


성진의 말에 해경은 잠시 해괴함을 느꼈다.


“잠시만, 이해가 안 돼요. 사람이 품고 있는 죄의식이 튀어나와서 사람을 죽인다고요? 왜요?”


“네가 근래 했던 질문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을 하는군. 초자연현상 앞에 ‘왜’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성진은 차갑게 답했다. 비꼬는 의도조차 느껴지지 않는 냉정한 답이었다. 해경은 유구무언이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성진은 말을 이었다.


“자유란 건 허상에 불과해. 우리는 자유를 제한하는 데 익숙하고, 제한받는 데 익숙하다. 초자연현상이 부자유하다고 해봤자, 이미 동생에 얽매인 너보다 부자유하진 않을 거다.”


“그건…….”


“외근부를 그만두면 정식으로 퇴사를 신청하면 된다. 내가 전에 줬던 열쇠를 통해 신전에 출입하면 어디에 뭘 제출하면 될지 알게 될 거야.”


“입막음이라던가, 그런 건 없는 거죠?”


“글쎄, 퇴사 의사를 밝히던 놈은 너 말고도 여럿 있었지만, 실제로 퇴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어서 말이야. 외근부에 일하면 죽거나, 타락하거나. 둘 중 하나거든.”


“…….”


해경은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건넜다고 생각했다. V.ANK를 찾아 외근부에 입사할 때만 해도, 본래 이름 대신 차해경이란 이름을 받을 때만 해도 그 생각은 변치 않을 것 같았었다.


그런데 지금 해경이 품는 흔들림은, 번뇌는 어쩌면 몸이 너무 깨끗해진 탓일지 몰랐다. 돌이킬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런 가능성에 홀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센터에서처럼.


“눈빛이 돌아왔군.”


해경을 주시하던 성진이 말했다. 해경은 숨을 고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제겐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 말에 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외근부에 입사한 놈들은 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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