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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21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21 16: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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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진엔딩을 안 읽고 통합외전부터 읽는 사람은 이것도 읽는 편이 좋을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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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Sin makes its own hell (1)


어느 병원 응급실을 가로지르며 한 여자가 나타났다. 바쁘게 움직이던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여자는 콧잔등 위를 전부 가리는 가면, 목티와 트렌치코트, 검은색 스타킹과 어그부츠로 입술과 턱, 새카맣고 긴 장발 외엔 신체적 특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자는 환자들 사이를 지나 어느 남학생이 쓰러져 누운 곳에 당도했다. 그 옆에는 정장을 입은 신사가 앉아있었는데, 여자가 손을 뻗어 신사의 어깨를 잡아채 돌리고, 곧바로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당신!”


“단단히 흥분했군.”


“목숨에 지장은 없을 거랬잖아!”


여자가 소리치자 주위 전등이 깜빡이며 모든 기계가 일시에 오작동했다. 몇 환자가 신음하며 죽어갔지만, 의료진은 공기를 짓누르는 무거운 압박감에 숨만 간신히 내쉬는 게 고작이었다.


“지장이야 없지. 네가 앞으로 잘 해낸다면.”


“네가 알려준 방식은 분명 이렇지 않았어.”


여자는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몰아붙였다. 여자 주위의 형광등 몇 개가 부풀어 오르더니 깨졌다. 그러나 유리 파편은 날아가다가 공중에 정지했다. 빛이 꺼지며 찾아온 어둠 역시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며 멈춰선 사람들을 툭툭 건드렸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두지. 이 남자의 운명을 조사해봤거든.”


“뭐라고?”


유리 조각들이 압축되며 날카로운 비수로 변했다. 어둠은 사방으로 뻗어갔고, 어둠에 닿은 형광등들은 일제히 부풀어 올라 깨져, 똑같이 비수로 압축됐다.


“유감스럽게도 너와 달리 네 동생은 선택받은 것 같더군.”


“……그게 무슨 말이야.”


이미 어둠에 완전히 휩싸인 주위 사람들은 비명도 못 지른 채 삼켜져 사라졌다. 그럴수록 여자의 가면 너머로 스멀거리는 어둠이 점차 가면 아래로 미세하게 뻗쳤다. 신사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긴. 네 동생은 카코토피아 이후로도 살아있을 거란 얘기지.”


“그건 나로 인해서인가?”


여자는 조용히 물었다. 어느새 병원 응급실은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 흉내였다. 의사도, 간호사도, 하물며 환자조차도. 이곳에 진짜 인간은 여자 옆에 쓰러져 누운 남학생뿐이었다. 여자 자신조차도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로선 답할 수 없는 영역이군.”


신사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여자는 멱살을 풀고 신사를 놔줬다. 어둠이 걷히며 깨졌던 형광등이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기계가 돌아오고, 빛이 들어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여자가 가면을 고쳐 쓰며 말했다. 신사는 비죽 웃더니 손가락 세 개를 들었다.


“각박나귀꽃 씨앗 3개만 얻어오면 돼. 제물은 어련히 마련하고. 네가 인간 중에선 특별한 위치에 있으니 존중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여신님께 너무 바락바락 대들진 마. 존엄과 존중은 한 끗 차이니 말이지.”


신사는 말을 마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각박나귀꽃은 국립수목원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었다. 임신과 출산을 거친 진짜 아이들을 대가로 얻어낼 수 있는 소원의 씨앗, 각박나귀꽃.


그러나 그 꽃은 국립수목원을 지키는 나무의 여신, 데아 엑스 리그노룸에 의해 존엄해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과거, 여자의 부모님 역시 여자의 오빠를 낫게 하려고 아이를 바쳐 각박나귀꽃의 씨앗을 얻어냈지만, 여신의 분노를 사 존엄해지고 말았다.


여자는 몸을 돌렸다. 씨앗 3개를 얻으려면 제물 3개가 필요했다. 그것도 진짜 아이 셋이 필요했다. 신사는 여자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확실히 넌 걸작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도 무서워질 수 있는 거군.”


“무서워? 무섭다고?”


여자가 고개를 돌려 신사를 쳐다봤다. 가면 너머로 신사와 눈이 마주했다. 다른 누군가가 얼핏 보기에 여자의 가면 너머는 그저 어떤 빛조차 삼키는 어둠만이 서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사는 그 어둠이 가린 본질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욕망만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은 인간의 말로가, 인간이길 포기해가면서 지켜낸 인간의 가치가 어디까지 무너지고 망가지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우리는 그저 기만하고 겁을 줄 뿐이지. 메타포를 보라고. 진짜 악의를 지닌 건 우리가 아닌 너희의 죄다. 등을 아주 살짝 떠밀면,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에 빠지는 건 너희라고.”


“그런 얘기는 관심 없어.”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신사는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그리고 여자가 제물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 그것을 생각하며 숨죽여 웃었다.



***



하원 시간을 넘기면 추가 근무의 시작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 유치원에선 적극적으로 연장 보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었다. 당연히 그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건 교사들의 몫이었다.


“애들아, 가는 애들에게 인사하자. 잘 가, 애들아!”


“잘 가, 애들아!”


“다들 인사 잘했어요! 이제 다시 들어가서 책 읽자!”


하영은 막내 교사로 미혼에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연장 보육 프로그램의 주 담당 교사로 선정되었다. 당연하지만 보조 교사로 임명된 두 명의 선배는 이런저런 핑계로 빠지기 일쑤라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건 하영 혼자의 몫이었다.


“후, 잠깐 숨 좀 돌리고 도시락 체크할까…….”


연장 보육은 하원 시간인 6시부터 8시까지 진행됐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통솔하고 교육하는 건 담당 교사의 재량에 맡겨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치하듯 2시간을 보내면 학부모들의 원망은 물론이고 온갖 민원을 받게 되기 때문에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도시락이었는데, 연장 보육 프로그램에 배정된 예산이 많지 않아 예산 대부분은 아이들 도시락 주문에 소진됐다.


“박하영 선생님!”


“예서야? 무슨 일이니?”


“준하가 저기 바깥에 어떤 여자가 왔대요!”


“어떤 여자? 학부모신가?”


간혹 야간에 남는 아이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와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기에, 하영은 서둘러 바깥에 나갔다. 하지만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량한 바람만이 하영을 스치듯 지나갔다.


“예서야. 대체 누가 있다는…….”


하영은 뒤를 돌아봤다가 흠칫 놀랐다. 기묘한 정적, 불현듯 덮치는 불안. 하영은 유리문에 못 보던 낙서를 발견했다.


Nest nests next to nest


“준서가 낙서했나? 아니, 그래도 이건 영어인데…….”


이곳은 사립 유치원이 아니었다. 영어는 학부모들의 원성에 못 이겨 알파벳 정도는 가르쳤지만, 국경단절이 심화돼 미국과도 완전히 끊긴 이후론 가르친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아이들이 유치원에서만 모든 걸 배우는 건 아니었다. 하원 시간이 빠른 아이들은 그 시간에 유치원이 아닌 다른 학원에 다녔었다. 하지만 지금 연장 보육에 남은 아이들은 유치원 교육이 전부고, 기껏해야 집에서 TV 프로그램, 핸드폰, 인터넷으로 영어 매체를 접하는 게 고작이었다.


즉, 이 문장은 아이가 낙서한 게 아니었다.


하영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초자연현상이 분명했다. 그러자 하영의 몸이 하영의 의식보다 먼저 움직였다. 문을 벌컥 열고, 곧바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애들아, 괜찮니?”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깔끔하게 정리된 유치원 햇님방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마치 아침에 출근하고 햇님방 문을 열 때처럼, 누구도 침범한 적 없는 고요함만이 방 안을 감돌았다.


“애들아?”


하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 순간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었다. 스케치북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하영의 시선도 그리로 향했다. 펄럭이다가 멈춘 스케치북엔 무언가 적혀 있었다.


하영은 천천히 다가가 스케치북에 쓰인 것을 읽었다.


Nest nests next to nest


하영은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지만, 어디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디에도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유치원에 홀로 남은 것 같았다.


“준서야! 예서야! 하준아! 민지야! 창준아!”


하영은 열심히 애들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이 자주 숨던 곳,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는 곳,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던 곳, 교무실, 비품 창고, 본교 초등학교와 이어지는 복도까지.


그 전부를 뒤져봐도 사람의 그림자 한 톨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가버린 거야.”


하영은 두려워 떨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본인은 무사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간 다음날 출근이 뒤집힐 게 분명했고, 아이들 역시 걱정됐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식으로 공간이 분리되는 초자연현상이라면, 아이들은 의외로 무사할지 몰랐다. 아이들을 노린 게 아니라, 자신을 노린 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복도에서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유치원으로 향하는 유리문은 새빨갛게 물든 채 물들지 않는 빈 여백이 글자의 형상을 띠었다.


Next nest is here


새빨갛게 물든 것은 어느새 흘러내려 글자를 지워버렸다. 하영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떨어진 것일지 몰랐다. 유리문이 스스로 열리며, 그 너머의 풍경을 보인 순간,


하영은 본인이 죽는 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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