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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25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28 21: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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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1)


“들어갑니다.”


“네, 조심하셔야 합니다.”


130번 조사관, 이름은 진소연. 땅끝마을의 대저택에서 마지막 조사를 시작한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고 비밀통로로 몸을 던졌다. 몸이 완전히 통로 너머로 들어가자, 열렸던 통로는 빠르게 닫혔다.


“와, 진짜 어둡네. 비밀통로면 그래도 촛불 같은 으스스한 조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촛불은 좀 그렇긴 해. 매번 갈아줄 것도 아닌데 불을 켜둘 수도 없고. 아니, 근데 여긴 초자연현상이잖아. 영원히 불타는 촛불 만드는 게 어렵나?”


소연은 곧바로 마지막으로 충전해뒀던 핸드폰 전원을 켰다. 다행히 빛이 주위를 밝혔다. 잘 정비된 땅굴이었지만, 지지대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소연이 들어왔던 곳은 어느샌가 단단히 굳은 흙으로 막혔고, 나아갈 길은 빛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했다.


“이건 또 대저택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으로 이어지는 건가? 진짜 복잡하게 꼬아놨네. 하여간 초자연현상은 이런 식으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에 도가 텄다니까. 그냥 깔끔하게 쓱싹 하면 어디 덧나냐고. 사디스트들이 따로 없다니까. 나 같은 유능하고 멋진 조사관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소연이 통로를 걷는 동안, 그녀를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얼굴이 반쯤 어둠에 가려져 콧잔등 아래의 하관만 보이는 여자였고, 하나는 파란 눈의 외국인 남자였다.


“She does talk a lot.”


남자가 그리 말하자, 여자가 답했다.


“그래서 쟤가 맞죠?”


“Oh, absolutely. That’s her. No doubt about it.”


“그럼 가죠.”


여자가 움직였다. 여자에게 지형은 무의미했다. 여자와 남자는 줄곧 땅속에서 소연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만 취했을 뿐, 초자연현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근데 핸드폰 전력 소모도 한계가 있고 보조배터리도 그렇게 넉넉하게 충전한 건 아닌데 이대로 계속 끝없이 가기만 하면 어떡하지? 어떤 초자연현상은 30분 동안 말도 없이 걸어야 다음 단계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런 끔찍한 곳은 아니라서 다행인가? 하긴, 대저택의 괴물도 침묵을 쫓아와서 다행이었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소음을 쫓았으면 나는 10분도 못 버티고 죽었을 거야. 묘하게 운이 따라주는 것 같은데, 진짜 나 뭐 있는 거 아니야?”


“맞아, 정답이야.”


“왁! 깜짝아!!!”


여자가 벽의 얇디얇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자, 소연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핸드폰은 땅에 떨어져 바닥을 비추는 바람에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소연은 여자의 형상을 똑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얼굴의 반쪽이 보이지 않는 기이한 여자였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똑같이 어둠 속에서도 또렷한 형상을 가진 남자가 똑같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소연은 이미 놀랐기 때문인지 그저 넋 놓고 쳐다볼 뿐이었다.


“You see that? Not even a blink.”


남자가 소연을 가리키며 여자에게 말하자, 여자는 귀찮다는 듯 답했다.


“그야 제가 먼저 나왔으니까요, 댄.”


“Maybe the real issue is your face.”


댄이라 불린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여자는 못 들은 체했다.


소연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여자는 아무리 봐도 기괴한 초자연현상이 분명했고, 남자는 생김새나, 영어나, 외국인이 분명했다.


“다, 당신들은…….”


“아, 소개가 늦었네. 난 김민지, 초자연현상에 가까운 인간이고, 이쪽은 댄, 네 선배격 존재야.”


민지가 댄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민지의 말을 들은 댄은 잠깐 눈을 굴리더니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That’s the best you could do for an introduction?”


“한국말 못하면 가만히 있던가요.”


민지의 핀잔에 댄은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물러섰다. 소연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댄이 하는 말은 전혀 못 알아들었지만, 민지가 하는 말로도 대충 어떤 뉘앙스인지 알아들었다.


“여긴 너무 어둡지?”


민지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위의 어둠이 순식간에 민지에게 빨려 들어가며 밝아졌다.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원근감이 소연을 덮쳤다. 소연은 마치 명암을 덜 넣은 캔버스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초자연현상처리반의 조사관…… 아니던가?”


“마, 맞는데요?”


소연은 말을 더듬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를 덤덤하게 쳐다보는 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 선배격 존재라는 건 무슨 뜻이죠? 저분도 조사관이라는 거예요? 그럼 외국에도 초자연현상처리반이 있었다는 게 진짜였어요? 하지만 저는 벽 통과 못 하는데요?”


“Can you tell her to shut up?”


댄이 결국 못 참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간단한 영어였기에 소연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입술을 말아 넣고 입을 다물었다. 댄은 만족스럽다는 듯 소연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천천히 설명해줄 거야. 그전에 네 존재부터 자각해야겠지만.”


민지는 소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소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고통이나 어떤 충격이 있으리라 생각한 것과 달리, 어떤 느낌도 없자 소연은 슬며시 눈을 떴다.


민지의 팔은 소연의 머릿속으로 유령처럼 통과해 휘저었다. 소연은 시각적인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간신히 소리 내는 걸 참았다. 소연은 여전히 아무런 느낌도 없어서 뭘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됐다. 이젠 널 똑바로 인식할 수 있을 거야.”


“네? 이게요? 그래봤자 제가 가짜라는 사실 외엔…… 어?”


“She knows.”


댄이 읊조렸다. 소연은 자기가 내뱉은 말에 충격받아 자기 손을 들여다봤다. 그림자가 하나도 없는 손은 역시 이질감이 충만했다. 이것이 가짜였다. 소연은 자기 얼굴을 더듬었다. 이것도 가짜였다.


“말도 안 돼…….”


진소연이란 이름, 과거, 취향, 그 모든 게 부여받은 가짜였다. 무엇 하나 진실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은 놀라우리만치 덤덤하게 알고 있었다.


소연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민지와 댄은 덤덤하게 지켜봤다. 소연은 민지와 댄을 올려다봤다.


“당신들은 뭐죠? 뭔데 제게 이러는 거죠?”


“뭐긴 뭐겠어.”


민지는 무릎을 굽혀 소연과 눈높이를 맞췄다. 소연은 어둠에 뒤덮인 민지의 얼굴 반쪽을 들여다봤다. 어째서인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본질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다. 두려웠으나 친숙했고, 파괴적이었으나 안락했다.


“초자연현상처리반의 죄를 심판할 자들이지.”


“당사의 죄요?”


“그래,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아주 큰 죄를 지었어.”


민지는 손가락을 들어 소연을 가리켰다. 소연은 숨을 죽였다. 가짜 인간, 초자연현상처리반의 목적, 조사관 제도, 그 모든 게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했다. 소연은 아연실색했다.


“저는 있어선 안 될 존재였다는 건가요?”


“하지만 넌 이렇게 존재하고 있지.”


소연은 이를 갈았다. 그동안 숱하게 거쳤던 초자연현상, 그리고 땅끝마을. 그 모든 순간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고, 두렵지 않았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본래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니.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자 피어나는 건 분노였고, 치욕이었다.


“그럼 따져야죠! 조사관들에게도 당연히 알리고요! 이런 일이 용납되어선 안 되잖아요!”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그걸 그들이 하게 내버려 둘까?”


“그건…….”


“좀 전까지 통신했던 연결담당자를 떠올려 봐. 어떤 사람이었지? 그 사람에게 이 모든 게 가짜였냐고 따지면, 뭐라고 답할 것 같아?”


“…….”


소연은 침묵했다.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했었다. 땅끝마을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연결담당자와 떠들며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인간을 구하기 위해 헌신했던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연도 알았다.


연결담당자는 자신과 같은 조사관을 이미 수백, 수천 명을 접했고,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걸.


그런 그들이 정녕 조사관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가짜란 사실을 모르고도 그럴 수 있는 걸까? 소연은 확신하지 못했다. 흔들렸다. 의심의 씨앗은 그녀의 과거를 천천히 뒤집어 쏟아버렸다.


“거기에 우리는 초자연현상이지. 당연한 얘기지만, 초자연현상처리반은 우리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거야. 당연하겠지. 초자연현상의 얘기를 왜 귀담아듣겠어? 안 그래?”


민지가 소연에게 달콤하게 속삭였다. 소연은 대답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던 댄은 혼자 중얼거렸다.


“So…… it’s done.”


“자, 내 손을 잡아.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고, 천천히 고민해봐. 하지만 답은 빠르게 내려야 할 거야. 이 세상엔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민지가 일어나며 소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연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녀는 실소하며 민지의 손을 잡았다.


“하,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지셔야죠. 갑시다, 당신네 빌어먹을 심판이 뭔지 들어나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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