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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 1200-1350년 잉글랜드 지방 영주들의 역할과 권력

prevo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4 20: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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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의 영주들이 영지를 철저하게 통제했다는 인상을 가지기는 쉽다.

특히 영지 관리에 대해 다룬 당시의 문헌들에서 영주들의 통제력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다.

1240년경에 링컨 여백작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받았다: '영주는 신하들에게, 하느님께 반하는 명령이 아닌 한 모든 명령을 충실하고,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도처에 반복해서 강조해야 한다.'

1270년대의 또 다른 현명한 조언가는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앞서 말한 원칙들을 지킨다면, 어떤 영주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고도 명예와 권력과 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베일리프(bailiff)와 리브(reeve)들이 작성한 더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감사 기록과 회계 기록들은 농작물을 기르는 경작지, 양떼와 소떼를 기르는 목초지, 연료와 목재를 생산하는 삼림지로 구성된 잘 조직된 장원들을 보여준다.

영주들은 자신들의 직영지를 대부분 경작지와 목초지로 이용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나 과시적인 이유 때문에 정원, 사냥터, 양어장, 토끼 사육장도 만들었다.


영주들의 장원이 관리되는 방식은 대개 같은 학교와 같은 교과서에서 교육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문서 양식은 표준화되어 있었고, 따라서 감사나 회계에 관한 기록은 잉글랜드 전체에서 거의 동일했다.

하지만 사용되는 농법은 다양했고, 파종할 작물이나 사육할 가축을 고를 때 영주들은 현지 관리인들의 판단을 존중했다.

이미 시도되고 검증된 방법을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많은 장원에서 관리인들이 새 경작지를 개간하고, 지력 향상을 위해 이회토나 콩을 사용하고, 새로운 윤작법을 도입하고, 새로운 헛간과 방앗간을 건설하는 일에 전념했다.

수도원에서는 관리직을 맡은 수사들이 농사일에 관한 결정을 내렸고, 식료품 관리인(cellarer) 같은 중요한 직책을 맡은 수사들이 수도원 장원을 방문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평의원들(fellows)이 가을 수확에 참석할 정도로 농업에 관여했다.


영주들은 이익을 계산하고 영지의 관료들의 능력에 대한 판단을 내림으로써 중앙의 통제력을 유지했다.

시장에 팔아서 이익을 얻기 위해 그들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작물의 생산량을 늘렸다.




대부분의 장원 수입은 영주 직영지가 아니라 소작지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엘리 주교는 1298-9년에 지대와 법정 수익(벌금이나 수수료)으로 2100파운드를 벌었고, 직영지의 농업 수익으로 1400파운드를 벌었다.


영주들이 소작농들에 대해 가진 영향력은 단순히 지대와 부담금을 징수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들은 자유민인 이웃들과 달리 유언을 남기거나 소작지를 전대(轉貸)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 농노들의 결혼과 이주를 통제할 권리를 주장했다.


영주들은 시장을 조종했다.


농노소작지의 매매는 영주의 법정에서 성사되어야 했고, 세금을 내야 했다.


영주들은 지역에서 가장 큰 고용주라는 자신들의 위치를 이용해서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금 지대에 대한 영주들의 선호는 소작농들로 하여금 농작물 중 많은 양을 시장에 팔거나, 시장 상황에 맞게 농작물의 종류와 양을 조정하도록 유도했다.


그들은 곡물의 공급이 증가하고 가격이 하락하는 9-12월 사이에 소작농들에게 현금 지대를 낼 것을 요구함으로써 곡물 시장을 왜곡시켰고, 다시 가격이 상승할 때 직영지에서 수확한 곡물을 팔았다.


영주들 중 일부는 양모 무역에서 중간 상인 역할을 했고, 지역 소작농들에게서 양모를 구입해서 도매상에게 대량으로 팔았다.


그들은 왕으로부터 시장 헌장을 받아내고 영지에 자치도시(borough)를 설립함으로써 시장이 언제, 어디서 열릴 것인지를 결정했다.

그러면 영지 내의 맥주 판매세와 농노들의 가축 판매세에 더해서 시장 이용료가 영주의 수입에 추가되었다.




소작농들의 소작지는 여러 가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소작인들은 영주의 허가 없이 나무를 벨 수 없었고,

영주에게서 시설을 보수하라는 명령을 받을 수 있고,

자신들의 가축이 영주의 직영지에 떨어뜨린 배설물을 빼앗길 수 있었다.

목초지나 숲을 이용할 권리의 대가로 추가적인 지대를 요구받을 수도 있었다.

조수(鳥獸) 특권이 영주에게 있다면 작은 동물이나 새를 사냥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죽은 남편의 소작지를 상속받은 과부는 재혼을 강요받을 수 있었다.

방앗간 이용료가 부과되었고, 빵가마를 소유할 권리도 영주가 독점하고 있을 수 있었다.


영주들은 사법권을 통해 영지의 법과 질서를 주재했다.

그들은 경범죄를 저지른 농노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지역 교회의 후원자로서 그들은 지역 성직자를 임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주로서 상당한 액수의 지대를 부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에이커당 8펜스 이상의 지대를 부과할 수 있었고,

새로운 소작인이 소작지를 상속받았을 때, 많으면 에이커당 2실링에 달하는 차지취득세를 요구할 수 있었다.

반대로 새로운 영주나 여자 영주가 취임했을 때도 승인세를 부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추가 부담금, 특히 차지취득세는 13세기에 들어 증가하기 시작한 토지 수요를 반영했다.

이것 때문에 소작농들은 잉여금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거나, 더 나쁘면 많은 액수의 빚을 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약적 농업의 시대인 13세기 후반에도 대부분의 영주 직영지의 크기는 200에이커 정도에 불과했으며,

장원의 전체 경작지 중 대략 1/4에서 1/5 정도를 차지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소, 양, 돼지도 소작농의 소유였다.

가구당 많아야 소 3-4마리, 양 30마리 정도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소작농 가구의 숫자는 거의 100만에 달했던 반면 영주 직영지는 약 2만 개에 불과했다.

14세기 초 양모 무역이 절정에 달했을 때, 매년 수출되는 양 천만 마리 분량의 양모 중에서 3/4은 소작농 가정에서 생산되었다.


아마나 삼 같은 상품작물은 소작농들의 텃밭에서 주로 생산되었고 영주 직영지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도시에 집중된 과일, 채소, 꿀, 겨자, 가금류와 달걀, 버터와 치즈에 대한 수요는 소작농 집안의 여성들에 의해 충족되었다.


영주 직영지에서도 돼지를 많이 길렀지만, 베이컨 공급의 대부분을 책임진 것은 소작농들이었다.


14세기에는 영주 직영지의 젖소들을 한 마리당 연 3-6실링을 받고 소작농들에게 임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곡물의 경우에도, 부유한 소작농들이 시장에 판매하는 곡물이 영주 직영지에서 판매하는 곡물보다 더 많았다.

영주 직영지에서 수확한 곡물 중 많은 양이 하인들과 가축을 먹이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영주들은 장원을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통제하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영주들이 농노들을 지배하기 위해 주장한 권리와 농노들의 실제 생활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농노들은 토지를 축적하고, 농산물을 팔아서 이익을 얻었으며, 영주에게 대항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조직할 수 있었다.


많은 수의 소작농들이 법적으로 자유인이었고, 이들은 대부분의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이주 금지와 같은 제약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거나 자주 면제되었다.


농노들조차 면제받곤 했던 노동지대는 13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빈도가 줄어들었고, 1300년경에는 농노들에게 강제로 부과된 노역이 영주 직영지에서 행해진 노동의 8%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중세 초기부터 영주들이 곡물 도정을 위한 물레방아 사용을 활성화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방앗간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도정한 곡물 중 일부를 직접 가져가는 곡물세의 형태든 아니면 방앗간을 방앗간 주인에게 임대하고 임대료를 받는 형태든 간에, 중세 후기의 많은 영주들에게 상당한 수입을 보상으로 안겼다.


13세기부터 많은 장원에서 방앗간 수입이 전체 수입의 5%에 달했고,

북부 지방에서는 10% 이상이 될 수 있었다.

경솔하게도 고정된 임대료를 받기로 계약하고 방앗간을 임대했던 영주들은 방앗간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의 높은 방앗간 수입이 소작인들에게 자신이 소유한 방앗간에서 곡물을 도정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영주의 권리에 기반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로 세인트올번스와 사이렌세스터의 경우와 같이, 영주의 관료들이 소작인들의 맷돌을 압수해서 부순 유명한 사례들이 있다.


소작농들은 자기 집에서 직접 곡물을 도정하거나, 더 가깝고 시설이 좋으며 이용료가 낮은 다른 영주의 방앗간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자주 빠졌다.

영주들은 자신의 방앗간을 이용하지 않은 소작인들에게 벌금을 부과함으로써 이용을 강제할 수 있었지만, 적발과 처벌은 어렵고 복잡했다.

1332년 서퍽주 월샴르윌로우즈에서 8명의 소작인이 영주의 방앗간을 이용하지 않은 대가로 3-6펜스의 벌금을 부과받았을 때 소작농들은 집단행동을 벌였다.

새로운 영주인 휴 드 색샴이 취임한 첫 해였으므로, 그가 소작인들에게 영지의 주인은 자신임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 8년 동안 법정 기록에 다른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소작농들의 투쟁이 성공했거나 영주가 기강을 잡으려는 시도를 포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주들이 이웃한 영지의 소작인들을 자기 방앗간에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영주들 간의 경쟁을 암시한다.


영주들이 자치도시를 설립하거나 새로운 농경지를 개간했을 때, 도시나 마을에 새로 온 입주자들은 다른 영지에서 온 사람들일 수 있었다.

귀족들 간의 연대 의식이 이렇게 느슨할 경우 영지민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1348년 이전에는 영지에서 도망친 농노들이 영주에게 추격당하는 일이 드물었다.

토지 수요가 너무 많아서 손쉽게 새로운 소작인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노의 아들과 딸들 중 일부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해도, 노동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엄격하게 금지할 필요가 없었다.


국가 정부는 영주들이 도망친 농노들을 추격하는 것을 거의 돕지 않았다.

오히려 국왕은 영주들의 권력에 제한을 가하고, 그들로부터 자유민 소작농들을 보호하며, 소작농들의 재산의 일부를 세금으로 가져가는 또 다른 경쟁자로 간주될 수 있었다.




자신의 영지와 영지민들에 대한 영주들의 통제력은 소작인들에 대한 행정적 의존에 의해서도 제한되었다.


장원은 리브(reeve), 울타리 관리인(hayward), 농장 관리인(granger)직을 맡은 소작농들이 없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지 법정은 십호반장(chief pledge)들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기능했다.

소송은 배심원들에 의해 판결되었고,

벌금은 벌금선정인(affeerer)들에 의해 책정되었고,

돈은 수금인(beadle)들에 의해 수금되었다.

계약은 보증인 역할을 맡은 소작농들이 보증했다.


이 소작농 출신 영지 관료들은 신사들을 카운티 정부의 관료직으로 이끌었던 것과 유사한 여러 가지 이유들에 의해 그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중 일부는, 특히 농노 출신인 리브들의 경우, 직책을 맡도록 강요당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료들은 경제적 이익 또는 마을 공동체 내의 지위, 권위,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과 결합된 의무감에 의해서 직무를 수행했다.


영주들은 현지인 관료들의 지역에 대한 지식, 그리고 지대를 지불하거나 부역에 동원되도록 이웃들을 설득하고 회유하는 능력에서 이득을 얻었다.

관료들이 외지인이었다면 영주들은 훨씬 더 강한 반발에 직면했을 것이다.


단점은 의욕이 부족한 아마추어 공무원들의 비효율성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정해진 방식을 유지하기가 더 쉬웠다.

개중에 가장 의욕적인 관료들조차 마지못해 꾸물거리면서 일을 처리하고, 영주가 지나치게 압박하면 마을 공동체 내의 지위, 조직력, 법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영주에게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례가 더비셔주 미클오버에서 있었다. 미클오버의 리브였던 헨리의 아들 니콜라스는 1280년 영주인 버튼 수도원장에 대항하는 집단행동을 이끌었고, 영주의 대응을 막기 위해 국왕 법정과 영장을 이용하는 행동력을 발휘했다.


영주들은 자신이 사법권과 징수권 등의 권리를 가졌음을 과시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소작농들을 조종하고, 회유하고, 압박하는 것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세의 영주들은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토대로 소작농들의 수입을 착취해서 부를 쌓았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영주들은 실제로 이것을 시도했지만, 효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글래스턴베리 대수도원이나 윈체스터 주교의 예처럼 장원의 농노들을 효과적으로 착취한 사례들도 있었다.

이 농노들은 많은 현금 지대와 노동 지대를 지불했고, 13세기 후반에는 30에이커 소작지를 상속받기 위해 20파운드 이상의 차지취득세를 내야 했다.

여기서 생긴 빚을 갚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반대되는, 소작농들이 영주에게 고작 몇 실링에 불과한 고정된 지대를 지불하거나, 차지취득세는 에이커당 1실링, 즉 30에이커 소작지가 1파운드 10실링에 불과했던 동시대의 사례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참고: Christopher Dyer, An Age of Transition?: Economy and Society in England in the Later Middle 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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