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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 기병 검술 찌르기 vs 베기

ㅇㅇ(59.2) 2022.04.21 09:27:08
조회 2920 추천 39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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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우사그레 전투에서 세이버에 베여 쓰러진 프랑스 기병의 약 1/3만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반면에 영국 기병은 부상자 대비 전사자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로써 프랑스의 세이버가 우리 것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였다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우리의 검은 베기 성능도 형편없지만 찌르기는 거의 쓸모 없는 수준이었다.

반면에 프랑스의 검은 찌르기에 매우 적합하고, 전체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무기였다.


최근에는 이전 것보다 훨씬 개선된 형태의 검이 영국군 기병대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비록 영국인들은 찌르기보다는 치거나 베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면 그들도 외국 병사들처럼 치명적인 찌르기를 자주 가할 수 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Actions of the British Cavalry", United Service Journal, 1831.)





"과거 후사르들이 착용했던 펠리스 외투는 부당하게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펠리스가 불편하다고 호소한 후사르 장교나 병사는 아무도 없었고, 가장 소리 높여 비판한 이들은 그것을 입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용기병 연대와 소총병 연대의 장교들은 반도 전쟁에서 펠리스를 자주 왼쪽 어깨에 걸치곤 했다.

그런 방식으로 펠리스를 입는 것은 강요되지 않았지만 항상 인기 있는 유행이었다.


워털루 전투에서 한 후사르 장교가 겪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확실히 기병의 좌측면에 일정 수준의 보호를 제공했다.

프랑스 퀴레시어들과의 백병전 도중 그는 좌후방에서 공격을 받았다.

프랑스인의 검은 펠리스를 뚫고 왼팔과 몸통 사이로 지나갔고, 후사르 장교는 즉시 말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적의 얼굴을 강하게 베어 갈랐다."


("The British Cavalry and Its Organization", Colburn’s United Service Magazine, 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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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의 전쟁에서, 키가 6피트 5인치나 되는 허시 비비언 경이 전투 도중 한 프랑스 용기병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해서 한방에 안장 밑으로 때려눕혔다.


적들이 퇴각한 후, 위의 공격을 목격한 장교들 중 한 명이 용기병의 시신을 찾아서 허시 경이 얼마나 큰 칼자국을 냈는지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사람은 별로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는 타격과 낙마의 충격으로 기절했지만, 세이버의 칼날은 두꺼운 천으로 만든 군복을 절단하지 못했다.


(Capt. Henry Curling, “The Curiosities of War,” Colburn’s United Service Magazine, 1845.)





"검은 기병의 최우선 무기이며, 적절하게 사용될 경우 인간의 손에 들린 무기 중 가장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므로, 절대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된다.


검의 품질에 대해서는 프랑스군이 어느 정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들의 용기병들의 검은 꽤 쓸만한 무기였다.


반면에 영국군의 세이버는 전부 고물이었고, 경기병 세이버는 특히 상태가 심각했다.

균형이 안 맞고 칼자루를 잡는 느낌이 불편했는데, 이는 검으로서 최악의 단점이었다."


(Lt. Col. J. Mitchell, "Thoughts on Tactics", 1838.)





"혼전(melee)이 시작되면, 영국군 기병대는 공격적이지만 위태로우며, 찌르기보다는 베기를 선호하고, 적들의 얼굴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베기 공격들을 가한다."


(General Foy, "Histoire de la Guerre de la Peninsule",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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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로 베인 상처는 총탄에 맞은 부상에 비교했을 때 열 개 중 아홉 개는 경상에 불과하다."


(Capt. Moyle Sherer, "Recollections of the Peninsula", 1824.)





"저명한 프랑스 군의관인 J. B. 파르와스는 세이버로 머리를 베여서 두개골과 두뇌 상단 일부가 잘려나간 22명의 프랑스 군인들의 사례를 들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결국에는 죽었다."


(Prof. Samuel Cooper, “Wounds of the Brain,” London Medical and Surgical Journal, 1834.)





"찌르기만 할 수 있는 검이 정말로 전투에서 유용할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찌르기가 더 치명적인 공격이기는 하지만, 베기가 더 많은 적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812년 4월 11일 에스트레마두라주 예레나 근처에서 있었던 우리 기병대와 프랑스 기병대 사이의 전투에서 아주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다.


양측을 합쳐 약 1900자루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적군은 약 12명이 죽고 128명이 포로로 잡혔는데, 포로들은 거의 전부 베기 공격에 당해서 부상을 입었다.


아군은 9명이 죽고 4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전사자는 전부 찌르기에 당했고 부상자는 대부분 베기 공격에 당했다.


이 전투의 사례를 보면, 찌르기에 당한 상처는 대부분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베기가 더 많은 병사를 무력화시켰다.


(Lt. Col. John Luard, "A History of the Dress of the British Soldier", 1852.)





"근위 기병 연대는 몇 차례 훌륭한 돌격을 가했고, 노련한 병사들답게 평정심을 가지고 방어가 약한 부분을 수색해서 칼끝이 들어갈 수 있는 갑옷 틈새들을 찌르며 퀴레시어들을 제압했다."


("Letters of Colonel Sir Augustus Simon Frazer",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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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칼끝으로 찌르기만 했다.


반대로 영국군은 항상 3인치 너비의 칼날로 베기만 했고, 그렇게 가한 스무 번의 공격 중 열아홉 번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의 성공이 일으킨 결과는 끔찍했다.

팔 하나가 단칼에 잘려 나가는 광경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Lt. Col. D. C. Parquin, 20th Chasseurs a Cheval, "Memoires de Parquin", 1911.)





"프랑스 기병의 베기는 영국 기병의 찌르기만큼 형편없기 때문에, 양측 모두 자신들에게 가장 편한 공격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


보나파르트 제국 군대의 수석 군의관이었던 무슈 라리는 자신의 매우 흥미로운 저작에서, 반도 전쟁에서 영국 기병대의 세이버에 베여서 생긴 심각한 상처들을 여러 번 강조한다.


크게 휘둘러 베는 공격은 충분히 민첩하지 못한 동작으로 수행해도 적에게 어느 정도 유효한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찌르기는 민첩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막아낸 적에게 반격의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공격자 스스로 완전히 균형을 잃고 안장에서 떨어질 위험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볼 때, 우리 기병대가 베기 훈련에 계속 오랜 시간을 투자한 것은, 그리고 특히 그 훈련의 많은 부분에 찌르기의 원리를 결합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Revised Movements of the Cavalry", United Service Journal,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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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6월 19일, 기병대 사이에 소규모 교전이 벌어졌다.


거기서 한 영국 기병이 등자를 딛고 높이 선 채 한 프랑스 기병장교를 검으로 베려고 했다.


프랑스인이 먼저 그의 겨드랑이를 찔러서 칼날이 몸을 꿰뚫었지만, 영국인은 동작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검을 내리찍어서 프랑스인의 뇌를 잘라냈으며, 둘 다 동시에 쓰러져 죽었다."


("The British Cavalry and Its Organization", Colburn’s United Service Magazine, 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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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존 무어 경을 만났고, 그의 부관으로서 임무를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세이버를 사려고 했는데, 존 경은 그보다는 길고 날카로운 양날검을 사라고 조언했다.


그가 설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대령 시절 코르시카에 있는 칼비 요새를 공격했을 때, 방벽의 돌파구를 타고 올라가던 중, 그곳을 방어하고 있던 프랑스 척탄병 한 명이 그를 총검으로 찌르려 했다.

존 경은 그를 검으로 찌르는 것만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고, 곧바로 그렇게 해서 그를 죽였다.

만약 그때 들고 있었던 것이 긴 검이 아니라 세이버였다면 그는 척탄병의 몸통을 깊게 찌를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말한 대로 긴 검을 구입했다.


훗날 나도 그처럼 요새 공격 부대를 지휘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존 무어 경이 강요받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검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그는 사람의 몸에 박힌 검을 당겨 뽑을 때의 끔찍한 느낌을 절대 잊을 수 없으며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고 말했었다."


("The Early Military Life of General Sir George T. Napier",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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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캄포 마요르에서 프랑스군 대령과 우리 제16경용기병 연대의 하사 사이의 교전이 있었다.


그 하사는 대령의 바로 앞에서 프랑스 퀴레시어 한 명을 죽였다.


화가 난 대령은 하사를 공격해서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하사는 훌륭한 검객이고, 큰 부상을 입지도 않았기 때문에, 검을 능숙하게 휘둘러서 대령이 쓴 황동 투구의 잠금쇠를 단칼에 잘라냈다.


그러자 투구가 벗겨졌고, 바로 이어진 무시무시한 백핸드 타격이 대령의 귀 윗부분의 두개골을 베어 갈랐다.


나는 그가 죽은 지 몇 분이 지난 다음 시신을 처음 보았는데, 뇌가 흘러나와서 그 자리에 텅 빈 구멍만 남아 있었다.


나중에 그 대령이 프랑스의 후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John Spencer Cooper, "Rough Notes of Seven Campaigns", 1869.)





"나는 해리(헨리 윌슨 이병)가 한 프랑스 용기병과 일대일로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는 훌륭한 기술과 용기로 상대와 공격을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한 프랑스 장교가 가엾은 해리에게 찌르기를 가했고, 성공적으로 칼끝을 몸통 깊숙이 찔러넣었다.


나는 윌슨이 그 순간에 즉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극기로 전방의 적을 주시하고, 등자를 딛고 선 채, 강한 일격을 가해서 용기병의 황동 투구와 그 아래의 두개골을 동시에 갈랐다.


그것은 내가 평생 본 것 중 가장 엄청난 타격이었다.

프랑스인의 머리는 정수리에서 턱까지 쪼개졌고, 공격자와 희생자 모두 동시에 쓰러져 죽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윌슨이 달성한 위업에 놀란 그 프랑스 장교는 나중에 그 황동 투구를 조사했는데, 마치 투구가 아니라 순무를 썬 것처럼 우그러진 자국 없이 깔끔하게 잘린 것으로 밝혀졌다.


("Reminiscences of a Light Dragoon", United Service Journal,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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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나는 전위대를 이끌고 살라망카에 진입했다.

그리고 도시가 보이는 위치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두 정찰부대가 상호동의하에 멈춰서 구경하는 동안 한 어린 프랑스 장교와 일대일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프랑스 장교는 내가 탄 말의 우월함을 알고 훌륭한 책략과 기술을 발휘했다.

즉, 그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방어를 굳힌 채 내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고, 나는 그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그는 내 말의 머리를 몇 차례 베었고, 결국에는 왼손에 쥔 고삐와 함께 검지를 베었는데, 두꺼운 장갑 덕분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지는 않았지만 관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가 마무리 공격을 하려는 순간, 나는 기습적으로 찌르기를 가했고, 그는 비틀거리며 황급히 도망쳤다.


그때는 그저 가벼운 부상을 입혔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백기를 들려 보낸 사절을 통해 그가 맞은 찌르기가 명치를 관통한 치명상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이 어린 장교의 신사적이고 품위 있는 태도에 감탄했기 때문에 이 소식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내 생각에 그는 군인으로서의 통과의례로 결투를 원한, 그리고 동료들에게 요구받은 소년에 불과했다.

처음 실전에 참가한 프랑스 장교들이 보통 그러듯이.


나는 이 결투 내내, 마치 우리가 검격이 아니라 악수를 교환하고 있는 것처럼 내게 정중하게 말을 걸면서 그가 보인 쾌활하고 매력적인 표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왼손 검지에 입은 상처 때문에 몇 주 동안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커다란 불행이었다.

밤마다 숙영지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이다."


(Col. Henry Blackburne Hamilton, "Historical Record of the 14th Hussars",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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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우리는 우세한 병력을 가진 적 기병대와 마주쳤고, 그들을 피해 도망치면서 작은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 추격해온 적군이 도강을 마칠 때까지 준비를 갖추고 기다렸다가, 우측에서 중대들을 연쇄적으로 투입하면서 공격을 가했다.


먼저 돌격한 1중대와 2중대는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격퇴당했고, 이어서 내가 3중대를 이끌고 돌격했으나, 검에 찔려 오른쪽 허리부터 배꼽까지 6인치 정도 깊이로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었다.

내가 먼저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자세로 상대의 머리를 강하게 타격했지만, 황동 투구에 부딪힌 세이버가 두 동강이 나는 바람에 적의 반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것이다.


옆구리에서 검이 뽑혀 나갈 때 내가 비틀거리며 몸을 숙이자, 상대는 곧바로 칼끝을 조금 당겨 뺐다가 내 가슴 가운데를 찔렀다.


이후 나는 반쯤 기절한 채로, 내가 가장 신뢰하는 고참병의 도움을 받아서 전장을 벗어났다.


그 역시 부상을 입었지만, 자신은 배를 얕게 찔렸을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검(우리와 싸운 기병대는 곧은 검을 가진 퀴레시어였다)의 찌르기로 입은 치명상의 한 유형이었고, 그 불쌍한 친구는 나를 전장 밖으로 인도하다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피를 토하더니 쓰러져 죽었다."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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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12월 13일] 우리 여단의 지휘관이자 내 친구인 허시 비비언 경은 내게 명예를 얻을 기회를 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특별히 선발된 기병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돌격해서 아스파렝 마을을 점령한 적들을 몰아낼 것을 내게 명령했다.


이에 따라 13일 이른 아침, 나는 부하들과 함께 마을 쪽으로 내려와서 지원부대인 반편된 중대와 합류했고, 마을 진입로의 좁은 다리 건너에 배치된 제13샤쇠르 연대와 제2후사르 연대의 기병들을 발견했다.


나는 즉시, 후방의 지원부대가 들을 수 있도록 나팔수에게 지시해 '돌격'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선두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진격했다.


하지만 다리가 너무 좁아서 나와 사우스웰 중위(내가 직접 선발한 훌륭한 장교)와 당번병 이렇게 세 사람만이 한 번에 건널 수 있었고, 우리가 다리를 건너자마자 권총과 카빈 일제 사격이 우리를 맞이했다.


사우스웰은 타고 있던 말이 총탄에 맞아 죽으면서 낙마했고, 나와 당번병 두 사람만이 적들과 교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번병도 고삐를 잡은 왼손이 반쯤 잘려 나가는 부상을 입은 뒤 몸통을 깊게 찔려 쓰러지는 바람에 나 혼자 적들 사이에 남겨지게 되었다.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베기와 찌르기 공격들을 가능한 한 방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살라망카 전투에서 찌르기에 몸통을 꿰뚫리는 부상을 입은 뒤로 마드리드에서 만든 물소 가죽 흉갑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약 11번의 찌르기 중 단 3개만이 내게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하나는 목을 스쳤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 엉덩이 옆을 찔렀으며, 세 번째는 허벅지를 찔렀다.

그날 아침에 수령해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잉글랜드발 편지 뭉치가 없었다면 아마도 마지막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칼끝이 종이들을 뚫고 허벅지를 1/4인치 정도 관통했는데, 내 짐작으로는 대퇴 동맥에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만든 일격은 머리에 맞은 세이버 타격이었다.

세이버 칼날이 이마를 내리찍고, 투구의 차양이 구부러지면서 코를 짓눌러 반쯤 부러트렸으며, 그 뒤로 정신이 혼미해서 몸을 온전히 가눌 수 없었다.


나는 항복하려 했지만, 사소한 문제 하나 때문에 불필요하게 더 긴 시간 동안 공격을 당해야 했다.

돌격을 명령하기 전에 비단으로 된 피탈방지끈으로 칼자루를 오른손에 단단히 감아둔 바람에, 머리를 강하게 맞고 나서도 검을 손에서 놓지 못한 것이 적들에게는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는 의사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 프랑스인이 공이를 당긴 권총을 겨누고 내 머리를 날려버리기 직전, 나는 가까스로 '항복합니다!(Je me rends!)' 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을 회복했다.


나는 말을 조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장에 묶인 채 후방으로 끌려갔고, 바로 이때쯤 허시 비비언 경과 그가 지휘하는 여단 전체가 나를 구하기 위해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이날 내 말은 머리를 깊이 베였지만 대단히 용감하게 싸웠다.

그녀는 말 그대로 뒷다리로 선 자세에서 앞다리로 적들을 걷어찼다.


나는 그녀를 돌려받기 위해 막대한 몸값을 제안했지만, 누가 봐도 순종 아라비아 혈통임을 모를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거부당하고 내 말은 프랑스 제국 종축장으로 보내졌다."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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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발음과 함께 몇 발의 총알 소리가 내 귀를 스쳐 지나갔다.


공터를 둘러싼 그다지 멀지 않은 숲에 정찰병들이 매복해 있었고, 그곳에서 젊은 영국군 경보병 장교가 조랑말을 속보로 몰고 나오면서 이렇게 외쳤다. '멈추십시오, 프랑스인. 전 당신과 일대일 결투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공갈에 어울릴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아군 전초기지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 영국인은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지만 처음에는 무시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이렇게 외쳤다. '군복을 보면 원수의 참모가 분명해. 어서 이리 오렴. 그렇지 않으면 마세나나 네의 똘마니가 나랑 눈도 못 마주치고 꽁무니를 뺐다고 런던 신문에 실을 거니까!'


나는 그것이 심각한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더 이상 이 무례한 도발을 참고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검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그러나 대결을 시작하기 직전, 숲속에서 영국 후사르 두 명이 내 퇴로를 끊기 위해 달려 나왔다.


나는 함정에 빠졌고, 최대한 열심히 저항하는 것만이 한순간의 실수로 포로가 되는 불명예로부터 나 자신을 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영국 장교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칼날이 내 뺨에 길게 베인 상처를 냈지만, 그 대신 나는 그의 목에 칼끝을 박아넣었다.

그 불한당은 내 몸에 튈 정도로 많은 피를 뿜으며 안장에서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후사르 두 명은 내 온몸에, 주로 머리를 노리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단 몇 초 사이에 내 샤코, 지갑, 펠리스 외투가 걸레짝이 되었지만,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두 후사르 중 나이가 많은 쪽인,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참병이 결국 칼끝을 내 오른쪽 옆구리에 1인치 넘게 찔러넣었다.


이에 나는 격렬한 백핸드 타격으로 보답했고, 내 칼날이 이빨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의 입을 귀까지 찢어버렸다.


고참병은 황급히 도망쳤는데, 그가 젊은 쪽보다 더 강하고 용감했기 때문에 나한테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나와 단둘이 대치하게 된 젊은 후사르는 잠시 망설였다.

우리는 말의 머리가 서로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도망쳤다가는 등을 찔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정찰병들이 나를 도우러 오는 것을 보고 결정을 내렸지만, 내 검을 피하지는 못했다.

내가 몇 걸음 뒤쫓으며 분노를 실은 칼날로 어깨를 찌르자, 그는 속도를 높여서 더 멀리 도망쳤다.


이 싸움은 내가 글로 묘사한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곧 정찰병들이 나를 돕기 위해 급히 달려왔다.


실제로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옆구리의 상처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기절할 지경이었고, 그들이 나를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안장 위에 앉아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대로 복귀한 직후, 마세나가 내 손을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잘했군. 참 잘했어! 영관급 장교가 전방에서 싸움을 하시다니.'


그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내가 이유를 말하자 그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더 호전적인 성격인 네는 자신의 사병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외쳤다. '내가 마르보 너의 입장에 있었어도 틀림없이 같은 행동을 했을 거야!'


뺨에 입은 검상은 별로 심하지 않아서 한달 만에 다 나았다.

하지만 오른쪽 옆구리에 당한 찌르기는 심각했으며, 긴 후퇴 작전 동안 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Arthur John Butler, "Memoirs of Baron de Marbot", 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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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이 총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로버트는 두 발로 걸어다니면서 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 장교 3명이 일시에 그를 공격했지만, 이 용감한 대령은 노련한 용기병이자 훌륭한 검객이었다.


그는 프랑스 장교 한 명을 일격에 베어 넘긴 다음, 그 프랑스인의 검을 왼손에 들고 나머지 두 명을 공격했다.


두 번째 장교가 탄 말의 다리를 베어서 쓰러트리고 나자, 마지막 남은 한 명은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Lt. Col. Charles Cadell, "Narrative of the Campaigns of the Twenty-Eighth Regiment", 1835.)





"억스브리지 백작은 워털루 전투에서 자신의 부관인 호레이스 시모어의 전공을 목격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는데, 그가 주장하기를, 워털루에서의 마지막 격전에서, 호레이스는 자신이 평소 극찬하던 프랑스식 검술을 모방해 긴 검을 들고 돌격해서 6-7명의 퀴레시어를 차례대로 칼끝으로 찔러 낙마시켰다고 한다.


한 돌격에서, 백작은 호레이스가 밀집한 기병 진형의 정중앙으로 돌격해서, 자신이 탄 말의 무게와 힘, 손에 든 긴 찌르기용 검, 그리고 자신의 완력으로 대열을 뚫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전장에 깔린 연기에 몸을 숨긴 채 그는 다시 말머리를 돌렸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시 돌격해서 적진을 뚫고 돌아왔다고 한다."


(Rev. Julian Charles Young, "A Memoir", 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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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위 기병 한 명이 퀴레시어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불리한 전투를 용감하게 수행했고, 1-2분만에 치명적인 목 찌르기로 한 명을 해치웠다.


남은 한 명과의 대결은 약 5분 동안 계속되었으며, 결국 근위 기병이 백핸드 베기로 상대의 목을 머리 위에 쓴 투구와 함께 날려 보냈다.

말이 안장 위에 똑바로 앉은 머리 없는 기수를 태운 채 달려 나가는 동안, 잘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Recollections of Military Service", 1845.)





"샤쇠르 여단 하나가 우리에게 정면으로 돌격했다.


얼마 뒤 우리는 서로 뒤섞여 싸웠다.


나는 적들 중 한 명의 얼굴을 베어서 뒤로 물러나게 했지만, 곧바로 다른 적에게 다리를 깊게 찔렸기 때문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다시 또 다른 창기병이 달려들면서 가한 찌르기를 받아쳤으나, 그는 계속 강하게 몸을 부딪혀와서 내 말을 거의 쓰러뜨릴 뻔했다.


나는 고삐를 놓은 왼손으로 그의 허리띠를 붙잡은 채 오른손에 쥔 칼자루로 입술을 찍어서 이빨을 몇 개 부숴버렸고, 그가 뒤로 물러나자 마자 칼끝을 가슴에 꽂아 넣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내 머리를 샤코가 벗겨져 나갈 정도로 강하게 베었고, 나는 빠르게 말을 몰아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러자 두 명의 기병이 전속력으로 추격해 왔다.

나는 큰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했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난폭하게 말의 배에 박차를 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기병 중 더 좋은 말을 가진 쪽이 가까이 따라붙어서 내 등에 검을 휘둘렀다.


그 공격을 쳐내자 다음에는 찌르기를 가했고, 그 순간 나는 말머리를 돌리면서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러 그의 이마를 깊게 베었다.


그사이 다른 기병이 측면으로 붙어서 방어할 수 없는 위치에서 날 찌르려 했지만, 마침 한 아군 보병이 기적적으로 그를 쏴 죽였다.


내가 입은 상처들을 검사한 군의관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상처에 붕대를 감자마자 다시 안장에 올라탔다."


(Q.M. Sgt. Thomas Crawford, 12th Light Dragoons, "Life and Adventures of Thomas Crawford",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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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일대일 대결에서 총검이 검보다 유리하다는 인식이 만연하며, 군인들 사이에서도 다소 존재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일말의 관심을 줄 가치도 없을 만큼 완전히 잘못됐고, 이를 지지하는 명확하게 정의된 과학적 원리나 경험적인 실험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문 검객이 아닌 군인들이 머스킷총과 총검으로 무장한 대등하거나 더 많은 적을 물리친 증명된 사례들은 수천 건은 기록돼 있다.


특정 상황에서 랜스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백병전에서 검을 상대로는 완전히 무가치하다.


총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머스킷총은 무게 때문에 백병전에서 다루기 어렵다.

대신 지레힘(leverage)이 매우 크지만, 앞으로 길게 뻗은 자세에서는 나무지팡이로 살짝 치는 것만으로도 총검을 멀리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총을 쥔 양손이 검의 베기에 노출되며, 이는 자신이 실력 있는 검객을 상대하고 있음을 아는 상대의 마음에 반드시 두려움을, 아니면 적어도 압박감을 일으킨다.


검으로 총검의 찌르기를 쳐내는 순간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한 손으로 머스킷총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처럼 적들이 스스로 총검으로 달려들지 않는 한 총검으로 적을 공격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머스킷총을 든 사람의 양 손은 검객의 좋은 목표가 되고, 아무리 용감한 군인이라도 그 중 하나만 베이면 완전히 무력해진다.


검객은 세 종류의 패리와 그외의 여러 기술들로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는 검, 총검, 또는 랜스의 찌르기를 방어할 수 있다.


(Capt. Matthew J. O’Rourke, "A New System of Sword Exercise", 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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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의 공격거리가 더 길지만, 검은 기동성에서 이점을 가진다.


총검사(bayoneteer)는 주로 티에르스(tierce)나 콰르트(quarte) 자세로 교전하며, 이 자세에서 정면 찌르기, 데가주망(dégagement: 검을 상대 검에서 떼어내기), 페인트 찌르기 후 데가주망, 또는 페인트 데가주망을 할 수 있다.


검사는 프리므(prime) 자세에서 상단의 정면 찌르기와 데가주망을 쳐낼 것이며, 스콩드(seconde) 자세에서 모든 하단 공격을 쳐낼 것이다.

하지만 가슴 찌르기를 방어하기 위해 티에르스나 콰르트 자세를 사용한다면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반격이 가능하다.


총검사는 말을 타지 않은 검사를 상대할 때, 총검으로 찌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검사의 몸의 여러 부위를 지속적으로 위협해서 그를 방어에만 집중하게 만드려 할 것이다.


반면에 검사는 총검으로 찌를 수 있는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서 왼손으로 소총을 잡아 누른 채 총검사를 마음대로 요리하려 할 것이다.


말을 탄 검사를 상대하는 총검사는 기병의 오른손에 든 검이 닿기 어려운 좌측에서 공격하려 할 것이다.


창기병을 상대하는 총검사는 오른쪽에서 공격하면서 랜스의 공격 범위 안쪽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다."


(“Fencing,” New International Encyclopedia, 1903.)





"랜스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특히 돌격에서.


하지만 나는 숙련된 검객이 그 이후의 백병전에서 빠르고 능숙한 방어술로 랜스의 공격거리 안으로 들어가서 창기병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전에서의 경험으로 배웠다."


(Alexander Tolmer, former lance corporal, Os Lanceiros da Rainha in Portugal, "Reminiscences",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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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검처럼 기병에게 효과적인 무기가 맞는지는 의심스럽다.

추격전에서 랜스의 가치는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백병전에서는 세이버가 더 우수하고 편리한 무기다.


수틀레지(Sutlej) 전역에서, 시크교도 보병대에 돌격한 제16창기병 연대는 랜스에 찔린 직후 반격을 가한 시크교도들의 검에 팔을 베여서 큰 부상을 입었다고 보고되었다."


(Maj. Gen. G. E. Voyle & Capt. G. de Saint-Clair-Stevenson, "A Military Dictionary," 1876.)





"인도에서 많은 기병장교들은 랜스가 기병에게 좋은 무기가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시크교도들은 창에 찔린 직후 반격을 가해서 창기병이 세이버를 뽑아들기도 전에 그를 베어 죽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Capt. W. W. W. Humbley, 9th Lancers, "Journal of a Cavalry Officer", 1854.)





"칠리안왈라에서 시크교도 보병 한 명이 창기병 세 명을 물리쳤다.


그는 방패로 찌르기를 방어하고, 랜스의 공격거리 안으로 뛰어들어서 털와르(tulwar)로 기수를 베거나 창대를 조각냈다.


제9창기병 연대의 랜스는 시크교도들의 방패와 갑옷과 누비옷 앞에 거의 무력했고, 많은 찌르기가 그것들을 관통하는 데 실패했다."


(Lt. Edward Joseph Thackwell, "Narrative of the Second Sikh War",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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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창기병 연대의 피츠제럴드라는 병사가 시크교도 전사(Akalie) 한 명을 창으로 찔렀지만, 그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계속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반격을 가했고, 두 번째 공격을 당하고 나서야 쓰러졌다."


("Indian News", 1849.)





"창이 적의 몸을 깊게 관통하면 창대가 부러지거나, 바로 무력화되지 않은 적에게 반격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실제로 여러 번 목격되었다."


(Winston L. Spencer Churchill, "The Story of the Malakand Field Force", 1898.)





"카데 계곡에서, 제9창기병 연대의 한 병사가 랜스로 아프가니스탄인 전사를 찔렀다.


하지만 그는 마치 뱀장어처럼 몸을 비틀며 가까이 접근해서, 왼손으로 창을 움켜쥔 채 칼을 휘둘러 창기병의 손과 단단한 창대를 마치 나뭇가지처럼 베어버렸다.


그 병사는 살아남았지만 오른손가락을 전부 잃었다."


(Howard Hensman, "The Afghan War of 1879-80", 1882.)





"벵갈 창기병 중 한 명이 랜스로 파탄인 병사를 찔렀지만, 너무 깊이 박히는 바람에 다시 빼내지 못하고 창을 버렸다.


그 파탄인은 스스로 창을 뽑아서 내던지고는, 근처의 다른 기병에게 달려들어서 그가 탄 말을 검으로 베었다.


다음으로 그는 제11 뱅갈 창기병 연대의 한 장교를 공격했고, 장교는 권총으로 그의 머리를 맞혔다."


("The Risings on the North-West Frontier", 1898.)





"많은 창기병들이 카와심(Kawasim: 페르시아만의 아랍인)을 찌른 직후 오른팔을 잃었다."


(Capt. Sir Richard F. Burton, “The Sentiment of the Sword,” The Field, 1910.)





"랜스는 혼전(melee)에서 쓸모가 없다.


말이 멈춰서서 밀고 나가는 힘이 사라지는 순간 랜스의 위력도 사라진다.


알리왈에서 제16창기병 연대는 시크교도의 방진 안으로 침투했으나, 이어진 혼전에서 이 용감한 전사들이 손에 든 검으로 창기병들을 공격해서 쓰러뜨리는 동안 창기병들은 그들에게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


2차 시크 전쟁에서, 나는 시크교도들이 몸에 걸친 숄 때문에 많은 창기병들이 창날을 적의 몸통 안으로 찔러넣는 데 실패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단순히 숄 때문이 아니다.

랜스로 관통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말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빠른 속도에서 랜스는 무엇이든 관통할 수 있지만, 보통의 속도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걷거나 멈춰있는 상태에서는 완전히 무력하며, 상대가 매우 쉽게 찌르기를 쳐내거나 창대를 왼손으로 붙잡을 수 있다.


랜스가 검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라는 진술의 진실성은 그것이 어떤 검과 비교되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 유럽의 기병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검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랜스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튀르크인의 시미터, 또는 마라타인, 시크교도, 체르케스인의 검과 비교한다면 랜스는 상대적으로 덜 치명적인 무기에 불과하다.


랜스가 정말로 좋은 무기라면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 무기에 커다란 신뢰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지만, 전투에서 창기병들이 자주 랜스를 버리고 검을 뽑아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만나본 시크 전쟁 참전자 창기병들 중에 근접전에서 랜스가 방해만 되는 쓸모없는 무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Capt. L. E. Nolan, 15th Hussars, "Cavalry",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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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을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무기로 선언한다.


어느정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검객은 어렵지 않게 찌르기를 쳐낼 것이고, 그 즉시 상대는 그의 손아귀에 놓일 것이다."


(Dr. P. B. Lord, "A Memoir", 1839.)





"세포이 보병들, 특히 아우드인들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고 활발했고, 우리 기병들의 추격을 받으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곤 했다.

그리고 기병이 위나 옆으로 지나가는 순간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시미터를 위로 휘둘렀고, 이 방법으로 말이나 기수에게 자주 심한 부상을 입혔다.


과거 제11후사르 연대 소속으로 발라클라바 돌격에도 참가했었던 기병 피터 윌킨은 러크나우에서의 전투에서 이런 공격에 당해서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다.

검이 부츠를 깔끔하게 절단하고 발볼에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들 몇 사람도 그와 비슷한 부상을 입었다."


(Col. Francis Cornwallis Maude, "Memories of the Mutiny", 1894.)





"반란군은 검을 휘두르기 불편한 자세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도 두꺼운 가죽 네다섯 장을 뚫고 한 달 동안 걸을 수 없게 만드는 부상을 입혔다."


(Maj. Gen. Sir Thomas Seaton, "From Cadet to Colonel", 1866.)





"1879-80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적들은 우리 기병들이 돌격해올 때 바로 바닥에 드러누운 다음 그 위로 지나가는 기병들을 큰 칼로 올려베어서 자주 말과 기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세이버의 칼날은 그들의 몸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창기병들은 그들을 간단하게 처리했고, 적들은 보병을 상대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무기들의 여왕인 랜스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배웠다."


(Lt. Col. P. Neville, “Cavalry Armament,” Journal of the United Service Institution of India, 1896.)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죽은 척하면서 바닥에 누워있다가, 기병대가 그들 위로 지나갈 때 갑자기 일어나면서 털와르로 말의 다리를 베는 고약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 창기병들은 적진에 돌격하다가 이런 방식으로 많은 군마를 잃었다."


("Fighting Around Cabul", Our Chronicle, 1877.)





"제11 벵갈 창기병 연대의 보일 대령은 한 전투에서 자신이 지휘한 90명의 창기병들 중 23명이 전투 도중 창대가 검에 베여서 잘려나갔다고 말했다.


이 23명은 권총이나 검이 없었다면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Col. F. J. Graves, "Cavalry Equipment", Journal of the Royal United Service Institution, 1890.)





"제29창기병 연대의 미들턴 대위는 한 원주민이 휘두른 날카로운 털와르에 창대가 베여서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는 단단한 대나무의 끝부분을 그것을 스스로 뾰족하게 잘라낸 사람의 몸통에 찔러넣었다!"


(Maj. Gen. T. Bland Strange, "Gunner Jingo’s Jubilee", 1893.)





"근접전에서 랜스는 털와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Maj. E. S. May, "Achievements of Field Artillery", Minutes of Proceedings of the Royal Artillery Institution, 1893.)





"랜스는 아무리 용맹한 기병의 손에 들려 있더라도 날카로운 다마스쿠스 시미터를 이길 수 없다."


(Sir Archibald Alison, "History of Europe", 1854.)





"우리의 검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으로 벨 수 없다는 것이다.

전날 밤에 특별히 공들여서 칼날을 갈지 않는 한 무슨 수를 써도 벨 수 없다.

일반적으로 베기 공격은 열 번 시도하면 아홉 번은 실패한다.

이것은 크림전쟁의 사례처럼, 전투에 나가서 어떻게든 적을 베어넘기려고 온갖 방식으로 칼을 휘두르다 보면 누구든 금방 알게 되는 사실이다.


내가 우리 기병대의 검술 훈련에 대해서 늘 하는 말은 베기는 그만두고 찌르기나 하라는 것이다. 한두 번의 전역에 참전해본, 충분히 실리적인 사람이라면 찌르기가 베기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양손검을 사용하는데, 우리가 그런 검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난 무조건 베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두 번 휘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콜트 리볼버의 작은 탄환과 지나친 관통력에 관련된 일로, 한 일본인이 콜트 리볼버로 가슴에 두 방을 맞은 채 검을 휘둘러서 두 사람을 살해한 적이 있었다.

희생자 중 한 명은 열여섯 곳을 베였는데 하나하나가 전부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건 내가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다."


("On Military Equipment", Journal of the Royal United Service Institution, 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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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지휘관들의 보편적인 의견은 근접전에서 길고 무거운 랜스를 다루기 불편한 반면 검과 털와르는 다루기 쉽고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전장에서 강철을 부딪혀본 모든 기병들은 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원주민 전사들은 일대일 결투에서든 단체 전투에서든 자신의 털와르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리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털와르와 그들의 고유의 기술인 당겨베기로, 상대가 검을 들고 있든 랜스를 들고 있든 상관 없이 세상의 모든 기병을 대적할 수 있다고 믿는다."


("The Armament of British Cavalry", United Service Magazine, 1898.)





"아시아의 전사들은 항상 근접 전투를 선호하고, 검과 단검을 들고 적들과 싸우는 것에서 충족감을 느낀다.


이는 타타르 남쪽에 사는 동방인들의 본성이며, 과거의 예니체리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영국의 세포이들은 총검보다 검을 선호하고 그것으로 총검을 든 적들을 수차례 물리쳤다.


1773년, 로힐라인들은 검을 들고 돌격해서 왼손으로 머스킷총을 붙잡아 치우고 오른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여러 대대를 괴멸시켰다.

아크레에서 있었던 한 전투에서 튀르크인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프랑스군을 제압했다."


(Col. G. Fitzclarence, "Memoir", Naval and Military Magazine, 1828.)





"로힐라인들은 검을 손에 든 채 돌격했고, 왼손으로 우리 병사들의 총검을 붙잡아 치우면서 오른손으로 브로드소드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했다."


(Lt. Col. Richard Scott, "Campaigns in India", Naval and Military Magazine, 1828.)





"아프가니스탄인들은 맹렬하게 돌격하여,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검과 놀라운 힘으로 좌우를 베었다."


(Capt. Henry Havelock, "Narrative of the War in Affghanistan", 1840.)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은 모두 정교하고 잘 단련된 세이버를 휴대한다.

파탄인들은 3피트 길이의 칼을 소지한다.


세이버를 손에 든 아프가니스탄 보병의 돌격은 웅장하다.

전사들은 근육이 발달돼 있고, 활발하고, 용맹하며, 무기도 훌륭하기 때문에, 좋은 지휘 아래 정연하게 돌격해서 적진에 근접하는 데 성공하면 머스킷총과 총검으로 무장한 군대를 압도한다."


("Who Are The Afghans?", Dublin Monthly Magazine,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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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무기다.


이들이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Shemshiri adam est(이 남자는 검객이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이다."


(Gen. J. P. Ferrier, "History of the Afghans",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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