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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다시 맑음 소녀가 돼야 하는 거야?#2

ㅇㅇ(211.200) 2019.11.05 20:28:55
조회 3266 추천 52 댓글 28
														

전편 링크 : https://gall.dcinside.com/m/weatherbaby/4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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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스가 씨가 시선을 올리며 내 부탁에 반응했다.


여긴 유한회사 K&A 플래닝.


호다카가 그 사건 전까지 근무하던 직장이다.


영세 기업이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에 번듯한 맨션 4층에 자리 잡은 것을 보면 나름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지만.


“지금 뭐라고 했나, 소녀?”


“‘맑음 소녀’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해준 그 신사가 어딘지 알려주세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부탁했다. 내 뒤에선 수상한 약장사를 보는 시선으로 수군대는 직원 둘이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스가 씨는 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꺼냈다.


“거긴 뭐 하러?”


“물어볼 게 있어요.”


“맑음 소녀에 대해서?”


“네.”


“하아…….”


더부룩한 턱수염을 만지면서 연기를 한 모금 내뿜던 그 아저씨는,


“말했잖아. 저번에 우리가 듣고 온 이야기가 전부라고.”


여전히 잡상인 대하는 말투로 저리 가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싫은 건 아닐 것이다. 마지막 의뢰가 끝나고 해맑게 웃으며 헤어진 기억이 생생한데.


그럼 뭐가 아저씨를 진절머리 나게 만드는 걸까?


“하지만 더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갑자기 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뭐?”


갑갑한 마음에 직설적으로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사무실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뉴스에 나오던 그 빛줄기들, 거기에 닿은 사람들이 소멸해요! 제가 눈앞에서 똑똑히 봤어요!”


“저기, 소녀.”


스가 씨가 내 다급한 외침을 끊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흔들었다.


“우리 잡지 독자층의 수요에는 딱 맞는 도시 전설이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


“왜요?”


“기억 안 나? 나 얼마 전에 호다카 녀석 때문에 쇠고랑 찼잖아.”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수면 위로 올랐는지 온몸을 부르르 떠는 아저씨.


“다행히 빨간 줄 안 그이고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이제 너희들처럼 학생증도 안 나온 애들을 상대할 땐 몸을 사려야 돼. 그런 일이 또 꼬였다간 우리 회사 이미지에도 타격이 커. 뭐, 그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스가 씨는 호다카와 만난 걸 후회하시나요?”


기습적인 질문에 스가 씨는 말문이 막혀 머리를 긁적였다.


“곤란하게 어려운 질문을 하는구먼. 글쎄, 녀석 덕분에 얼마간 편했던 건 사실이니까.”


“저한테는 은인이에요. 이런 일을 방조했다간 호다카한테도 죄를 짓는 꼴이에요. 이런 식으로 살라고 저를 구해준 게 아니니까요.”


“그래? 그런 은인에게 삼 년이 지나도록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이번엔 내 말문이 막혔다.


“저, 저는 폰이 없어서…….”


“그래? 기껏 다니게 된 학교에서 친구도 못 사귀었나? 그럼 내가 빌려주지.”


갑자기 스가 씨는 상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8번을 꾹 누르면 녀석한테 간다. 간만에 회포나 나누라고.”


“…….”


나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서 폰을 받아들었다.


호다카는 아직 보호 관찰 기간이다. 집이 있는 섬에 사실상 갇히다시피 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나를 대신해서 스가 씨를 설득해줄 수는 있다.


호다카라면 믿어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해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줄 것이다.


세상 그 누가 내 말을 부정해도 적어도 호다카만은.


하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폰을 다시 스가 씨의 손에 내밀었다.


“……괜찮아요.”


“왜?”


“이건 호다카에게 예의가 아니에요.”


“걘 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안달일 텐데?”


“그래서 더더욱이요.”


“하아, 애들은 어렵다, 어려워.”


스가 씨는 난감한 기색으로 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손등에 턱을 괸 채 본론으로 돌아왔다.


“애초에 그렇게 사람들이 슥슥 사라지면 뉴스에 보도가 됐겠지, 안 그래?”


맞는 이야기다.


화면에 비친 빛줄기는 한둘이 아니었다.


거기에 닿는 사람들이 족족 자취를 감췄다면 벌써 삼 년째 지속되는 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게 보도가 났겠지. 한두 명도 아닐 텐데.


그런데 소름끼칠 만큼 조용하다.


“아무튼 괜히 다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이만 집으로 돌아가. 차비 정도는 줄 테니까.”


그때였다.


“케이 짱, 서프라이즈!”


“아?”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이 노크도 없이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노출이 심한 의상, 눈가의 눈물점, 유려하고 기다란 흑발.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맑음 소녀의 비밀을 전해준 장본인.


나츠미 씨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자랑하러 왔지롱!”


“자랑?”


“있지, 있지! 드디어 제1지망 직장 면접을 통과했단 말씀!”


“네 제1지망이 한두 군데냐? 다 합치면 도쿄 직장 전체의 절반은 나올 텐데. 어디?”


“있지, 그게……!”


들뜬 표정으로 스가 씨에게 바싹 접근하던 나츠미 씨는,


“어라, 히나 짱?”


“아, 안녕하세요.”


몇 템포는 늦게 내 존재를 눈치 채고 두 손을 꼭 잡았다.


“세상에, 히나 짱이 케이 짱 회사를 먼저 찾아오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뭐래, 스물일곱 애송이가.”


“시끄러워, 아저씨. 아무튼 반가워!”


“아, 아하하. 감사합니다.”


어째 이분과 만나면 항상 그때의 공원과 분위기가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런 성격이 참 부럽다.


“그런데 무슨 일로 왔어? 혹시 내가 올 걸 미리 알고 찾아온 거? 그럼 이번엔 맑음 소녀 대신 전파 소녀? 초 굉장한데! 부럽다, 여고생은.”


“아, 아뇨. 그게…….”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웃으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나츠미 씨는 눈에 힘을 주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다행이야, 내 말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호다카뿐은 아니었구나.


“엄청나다!”


“그, 그렇죠?”


“케이 짱 기삿거리 주려고 디테일하게 목격담까지 만들어온 거야? 배려심 좀 봐!”


“…….”


그리워, 호다카.


“아무튼 그 신사 구경하고 싶다는 게 요지야?”


“네, 혹시 데려가주실 수 있나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고 부탁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흔쾌히 수락이 떨어졌다.


“그러지 뭐!”


“정말요?!”


“이제 케이 짱한테 손 안 벌려도 되고, 어엿하게 자리도 잡을 수 있게 됐으니까! 기분이지 뭐! 스쿠터도 괜찮아?”


“네!”


“자, 가자고!"


그러자 명랑하게 손짓하는 나츠미 씨를 스가 씨가 불러 세웠다.


“잠깐.”


“왜?”


“또 그때처럼 일 커지면 어쩌려고 그러냐? 애들은 사소한 사건의 덩치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특히 이 녀석들은.”


“상관없잖아? 지금은 호다카 군도 없고.”


“그래도…….”


“자, 히나 짱!”


나츠미 씨가 갑자기 손바닥을 펴서 내게 내밀었다.


“여기에 엄지 꾹!”


“네, 네.”


나는 엉겁결에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나츠미 씨는 불길하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스가 씨에게 그 손바닥을 내보였다.


“각서까지 받았어, 됐지?”


“아무 내용도 안 보이는데.”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거든?”


“거참, 장단 맞춰주기도 귀찮구먼. 무슨 내용인데?”


“‘만에 하나 사고를 치면, 저 아마노 히나는 모든 책임을 지고 모리시마 호다카 군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 도장 꽝!”


“네, 네?!”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이 정도 결단이면 믿어볼 만하지 않아, 케이 짱?”


“아이고, 모르겠다. 알아서들 해. 대신 또 그 형사 씨가 언성 높이면 나는 빼줘라. 간섭 하나도 안 했으니까.”


스가 씨는 귀찮은 파리 쫓아내려는 듯이 저리 가라는 손짓을 했다.





“자, 잠깐만요!”


나는 스쿠터 뒷자리에 몸을 내맡긴 채 얼굴을 붉히고 소리쳤다.


급한 경사 때문에 튀어오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나츠미 씨의 허리를 붙잡게 된다.


“데려다주시는 건 고마운데 그 각서 이야기는……!”


“히나 짱, 진지한 성격이구나?”


“…….”


나, 그때 장난한 거 벌 받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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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루 2편씩만 올려야지.


재밌게들 읽어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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