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의 철권통치도 막을 내리고 우리가 '자유' 를 가져다 준지도 어언 9년이 흘렀지만 이 가련한 나라, 이라크에서는 여전히 폭음과 총성이 멎을 날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20XX년, 이라크의 바그다드로부터 서쪽으로 26마일 정도 떨어진 팔루자라고 하는 어느 도시의 미 해병 주둔군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비록 나는 후세인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이라크 전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으나 그 당시 직접 자유의 투사가 되어 활약하였던 고참 해병들은 역사의 한 증인으로서 그 당시의 무용담을 즐겨 말하며 직접 이라크 국민들에게 자유를 선사해준 그 시절의 영광과 명예를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전후 폐허의 무질서 속에서 등장하여 난립한 이슬람 테러조직들과 군벌들에 대해서는 유난히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사생아들을 소탕하고 뒷처리 하는 것은 나와 같이 한걸음 늦게 이라크에 파병온 후배 해병들의 몫이었다.
이라크의 심장부인 바그다드로부터 멀어질수록 신생 이라크 정부와 이를 보조하는 우리 미군의 통치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고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한 여러 핵심 대도시들을 제외하면 그 외의 지역들은 우리를 적대하며 광신으로 무장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들의 세상이었기에 급선무는 병력을 지속 투입하여 하나씩 이 '우범지대' 를 하루 빨리 정상화하고 무너진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이었다. 그리고 바그다드에 주둔하는 미 해병 X사단에서 치안유지 임무를 맡고 있던 내가 복무한지 고작 두 달여만에 팔루자로 배치 받게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것이다.
팔루자의 외곽에 위치한 미 해병 🌕사단의 모 대대로 배치받아 무더운 사막을 가로지르며 줄지어 달리는 험비들의 안에는 나와 같이 신규 배치되는 신병들이 여럿 타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이 부대 배치를 받은 인원은 나를 포함한 총 30여명이었고 그 중에 내가 타고 있던 험비 안에는 우리의 인솔 자격으로 온 잭슨(Jackson) 상병이 함께 탑승해 있었다.
"긴장들 풀라구, 신병들. 너희는 어디 죽으러 가는게 아니니까."
눈 밑의 깊게 패인 흉터가 인상적이었던 잭슨 상병은 실제 총탄이 빗발치는 곳으로 간다라는 긴장 탓에 유난히 굳어있는 우리의 표정을 보며 낄낄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수도인 바그다드 시내의 중심부에 위치한 시장이나 거리를 순찰하는 비교적 조용하고 평화롭던 임무를 맡았던 우리들도 익히 바그다드 외 타 주둔부대가 겪는 일들, 이를 테면 테러조직과의 교전, 포로참수, 자살폭탄 테러, IED테러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에 팔루자로 가까워질수록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던 터였다.
"하지만 말야, 나라면 '팔루자의 유령' 만큼은 조심하겠어. 그 잔혹한 'Asshole' 은 인정사정 없으니 말이야."
잭슨 해병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해리(Harry) 상병의 말에 껌을 씹으며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던 잭슨 해병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었다.
"팔루자의 유령이 무엇이죠?"
어느 동화 속 이야기에서나 나올법한 표현에 순간 나는 실소가 터져나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물었고 해리 해병과 잭슨 해병은 잠시 서로를 말없이 응시하였고 이윽고 해리 해병이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녀석의 정체는 일단 우리도 몰라. 다만 녀석은 저 밖에 득실거리는 무자헤딘과 같은 이슬람 광신도들을 주로 목표로 해서 해치우고 다니지. 그렇다고 해서 그 녀석이 우리의 아군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돼. 간혹 녀석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아군의 시체도 몇 번 발견된 적이 있으니 말이야. 이렇게만 들으면 대체 '팔루자의 유령' 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과연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해 의심을 품겠지. 우리도 처음 그런 유형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신나간 녀석이 전사한 이라크 테러분자놈의 시체에 분풀이 했을거라고만 생각했지. 그러나, 그런 유형의 시체가 거듭 발견되면서 우리는 그것의 실체를 확신하게 되었던 거야."
그는 유난히 '그런 유형' 이라는 표현에 힘을 싣어 말하고 있었다.
"그런 유형이라는 것이 어떤 유형이었던거죠?"
내 옆에 앉아있던 제임스(James) 일병이 묻자 잭슨 해병은 씹고 있던 껌을 밖으로 뱉고는 차마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해리 해병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녀석은 희생자의 머리를 참수했을 뿐만 아니라 특이하게도 희생자의 성기를 도려낸 상태였어. 그리고 옷은 전부다 벗겨진 상태였지. 거기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간혹 머리를 남겨둔 시체들한테는 긴 꼬챙이 같은 것을 이용해 희생자의 항문으로 찔러넣어 입으로까지 관통시켜서 보란 듯이 전시해두었던 거야. 마치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루마니아의 블라드 3세가 즐겨하던 '꼬챙이 형' 처럼 말이야!"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비롯한 신병들은 말없이 서로를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어느 기괴한 살인사건의 살해수법을 연상케하는 이 기괴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을 것이며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혹시 이 고참해병들이 우리에게 겁을 주거나 놀리려고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사뭇 진지해 보이는 이 두 고참해병들의 표정과 눈에서 우리는 이들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음... 근데 무자헤딘 놈들만 그렇게 처치하는게 아니고 간혹 우리 아군도 그렇게 당한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 녀석은 대체 뭐죠? 이 전쟁과는 무관한 제3의 세력인가요? 아니면 그냥 어느 경쟁 테러조직이 저지른 짓이 아닐까요? 이슬람의 교리는 분파 별로 나뉘고 또 그에 따라 적대하기도 하잖아요?"
마른 침만 삼키던 제임스 이병의 합리적인 추론이 곁들여진 질문을 던지자 해리 해병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조직이 아닌 '개인' 의 짓이라고 생각해. 왜냐면 그동안 당해온 시체들을 놓고 볼때 머리나 성기와 같이 잘라낸 형태나 방식을 보면 모두가 거의 동일한 수준이야. 아무리 한 무리의 집단이 일사불란하게 이를 한다고 해도 분명 개개인마다의 차이가 있을텐데 검시관들도 이를 모두가 동일한 인물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했거든. 나도 도대체 어떻게 개인이 홀로 한 분대 규모의 인원을 격파하고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
"자자, 그 쯤하지 해리. 신병녀석들에게 처음부터 그런 얘기해서 이로울 건 없어. 그냥 어느 정신병자놈의 소행이야. 이제 곧 팔루자에 도착하니 다들 군장이랑 장비 챙기라고"
숨죽이고 듣고 있는 우리의 표정을 보며 옆에서 말없이 듣고만 있던 잭슨해병이 신물이 난다는 듯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제지하였고 그렇게 우리를 태운 험비는 사막 먼지를 거칠게 가르며 팔루자로 향하고 있었다.
- 中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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