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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문학] 동행 - 下

ㅇㅇ(49.174) 2022.08.08 00: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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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는 말이오, 선임들한테 두들겨 맞는게 당연하게 여겼던 때인기라. 그라이 후임들이 선임들한테 발로 걷어차이고 주먹으로 머리통을 두들겨 맞아도 아무 소리 못했제. 그땐 왜 그리 미련하게 두들겨 맞고 살았는지 참.."



노인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투가 마음에 안든다느니, 눈을 이상하게 뜨고 쳐다본다느니, 표정을 관리 못한다느니, 아이고마... 별의별 이유로 허구헌 날 두들겨 맞고 살았으니 말도 몬하제! 어디 그 뿐인가, 한창 고간이 벌떡벌떡 설 사내놈들을 한 곳에 몰아 넣어두니 그걸 못참는 놈들도 많았제. 그라이 툭하면 얼굴 반반하게 생긴 후임 놈들한테로 눈길이 갔을끼라. 내야 뭐 그리 잘난 얼굴은 아니었으니 다행히 피해갔다만은, 내 동기 몇 놈은 사실상 선임 놈들 수청을 들었지."



전방을 주시하며 담담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눈은 그리 달갑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헤집고 있는 듯 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요. 저 때도 그런 부대 내 부조리나 폭력이라던지, 그리고 성추행도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사유랑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사유로 말이죠."



황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노인은 의아하다는 듯 황룡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니, 선상님 때도 그랬다고예? 아니 선상님 연배가 정확히 우예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래도 내 나이가 올해로 예순 둘이고 내 때야 워낙 군대가 무식하던 시절인지라 그랬다 쳐도 선상님 때도 그렇게 아들을 줘패고 만지고 그랬다는 뜻인교?"



"네, 뭐... 선생님 때보다야 좀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그런 부조리가 완전히 없던 때는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의외라는 노인의 표정을 보며 황룡은 자신의 현역시절을 떠올렸다. 이제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도 않는 선임들의 폭력과 부조리, 그리고 그 악행의 피해자이자 자신의 동기였던 근출. 그리고 그로 인하여 벌어진 일련의 비정상적인 참사들. 황룡보다 근 20년을 앞서 군 생활을 겪은 노인이 들려주는 당시의 부조리와 폭력은 그 당시에 근출과 같은 존재가 근 20년을 앞서 등장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황룡 시절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허 참, 별일이구먼. 그마이 세월이 흐르면서 경제가 성장합네, 국민소득이 몇 만불을 돌파합네 같은 별 지랄들을 해쌓아도 군대는 별반 나아지는게 없구만. 암만 이것저것 개선한다 고치겠다 지랄들을 해도 여전히 그 모양 그 꼬라지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군대라고 하는 집단의 특수성이자 불변성이 아닐까요. 그래도 대를 걸치며 차차 나아지겠지요. 선생님 때보단 저 때가, 그리고 저 때 보다는 제 자식놈들이 들어갈 때는 아무래도 더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기야 하겠지만은... 근데 뭐... 선상님 얘기 들어보이 내 때랑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나아진건지 그대로인지 참 애매하구만."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핸들을 우측으로 돌렸다. 밖에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알갱이가 굵지는 않은 것을 보니 진눈깨비였다. 그것들은 차창에 후두둑 부딪히며 부질없이 사그라지거나 와이퍼에 맥없이 쓸려 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웬 눈이 오는기고... 다음 날 아침에 길 얼어뿌면 안되는데."



노인은 중얼거리며 핸들을 만지작거렸다. 네비게이션에 표시된 성남까지의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쯤. 진눈깨비가 불쾌하게 흩날리는 날인 탓일까. 도로변에는 사람 한명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차는 신호등 정지 신호를 받아 멈추었다. 모두가 씁쓸한 뒷맛 만을 남긴 마지막 대화 때문인지 노인과 황룡의 시선은 연신 앞 유리로 흘러내리고 있는 진눈깨비만을 쫓고 있었다.



"뭐고, 손님이네."



이윽고 침묵을 깬 노인이 말에 황룡은 노인의 시선을 따라 보자 인도변에 우산을 쓴 한 사내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까의 황룡처럼 엄동설한에 애타게 콜 택시를 부르다가 마침 운좋게 택시를 발견 했는듯, 사내의 손짓은 절박해 보였다.



"날도 춥고 눈까지 내리는 날에 딱해보이는데... 선생님만 괜찮으시믄 합승시킬까예?"



"아, 예. 그럼요. 전 괜찮습니다. 같이 태우시죠."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마냥 반색하며 노인은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자 호쾌하게 엑셀을 밟았고 이내 비상등을 켜고 사내가 서있는 인도변에 멈추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노인이 조수석 차창 너머로 물었다. 이제 20대 초 쯤 되었을까, 한껏 조수석 쪽으로 머리를 들이댄 사내는 아직 앳된 청년이었다.



"수원까지 가는데, 합승 가능할까요?"



"수원이믄... 방향은 같네! 네, 가능합니데이, 어서 타이소!"



사내는 반색하며 뒷문을 열고 올라탔다. 사내의 옷은 흠뻑 젖어있었다. 그리고 젖은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하, 추운데다 택시조차도 안잡혀서 죽는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여기 계신 선상님도 그 짝처럼 길가에서 서있다가 겨우 얻어타셨는데, 운이 좋으시네예!"



노인은 껄껄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고 사내도 빙그레 웃었다.



"아이고 마, 오늘은 운이 좋네, 장거리 손님도 두 분이나 타시고 그 중 한 분은 또 해병대 전우이시고 말이지."



노인이 기분 좋다는 듯 웃자 황룡도 피식 웃음 지었다.



"그러게요, 저도 간만에 옛날 군대 얘기 나오니 그 때 시절도 생각나고 재밌네요. 이래서 남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할 때 가장 공감되고 재미있는 주제들 중에 군대 이야기만한게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인은 미소를 띈 채 고개를 끄덕이며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뒷자석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손님은 군대 다녀 오셨는교?"



"아, 네. 다녀왔습니다."



아직 개운치 않은 뒷맛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전의 옛 추억을 일깨워 그 시절의 여운이 남았던 것인지 노인은 여전히 군대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듯한 눈치였다.



"아, 그래예? 혹시 어디 다녀오셨는교?"



"아... 저는 해병대 나왔습니다."



"하이고, 이게 웬일이고, 참말인교?"



격하게 반기는 노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황룡도 내심 놀라움이 일었다. 세월이 흐른 탓에 이제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던 황룡이었지만 그래도 우연히 동행하게된 인연치고는 특이하다 싶은 우연이긴 했다.



"혹시 어디서 복무하셨는교?"



"저는 포항에 있었습니다만..."



사내의 말에 노인은 황룡을 반갑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황룡도 포항 출신이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혹시 자신이 있던 그 부대일까. 아니, 이제는 근 20년 전의 일인지라 그 부대는 어쩌면 사라지고 없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시, 6974부대이세요? 저도 그 부대 출신이라서요."



황룡은 고개를 돌려 내심 반가운 눈치로 물었다. 사내는 뜻밖의 만남에 어안이벙벙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그 역시도 전우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해병 출신이 맞는 것일까, 이내 그 역시도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6974 부대 출신입니다. XXXX기입니다!"



"아, 반가워요. 저는 OOOO기에요."



"네, 반갑습니다! 선배님!"



"아이고, 선배님은 무슨..."



전역하면서 더는 빨간 명찰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지 않던 황룡이었으나 태생을 속일 수는 없는 듯 했다. 막상 자신의 후배를 만나니 반가움이 일면서 비록 그와는 근 20년의 시간이라는 긴 간극이 있다고는 하나 그에게 최근의 6974 부대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싶어지는 황룡이었다. 부대의 위치는 여전한지, 인근의 군장점은 그대로 있는지. 외출을 갈 때마다 복귀 전에 꼭 들려 저녁을 때우고 가던 순대국밥집은 건재한지. 그리고, 예전처럼 근출과 같은 존재는 없는 것인지.



"거기서 복무할 때 부대는 어땠나요? 저 때는 아무래도 시설이나 그런게 좀 열악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좀 나아졌었겠죠?"



물론 황룡의 현역시절에는 시설의 열악함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정작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현역시절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풀어놓을 수도 없는 법이었기에 에둘러 묻는 황룡이었다.



"아, 예. 시설은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제가 입대하기 몇년 전부터 미군 병영시설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면서 전부 다 신식 막사시설로 바꾸고 고쳤는지라..."



사내의 말에 황룡은 흉물을 연상케 하는 그 시절의 해병성채를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감옥이요, 지옥이었지만 전역 후 십수년이 흐르면서 이제는 그저 하나의 과거가 되어버린지 오래였기에 이제는 그냥 쓴 웃음 한번 지어보이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는 하나의 추억이 된 터였다.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사라졌다는 말에 그 추억 한 조각마저 깨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 한 켠이 아려오는 듯 했다.


그러나, 부조리와 악행으로 점철된 피조물이자 그 당시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었던 부대의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 흉물은 그 외관과는 별개로 부대 내 악습을 철폐한다라는 상징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응당 철거되고 사라져야 할 존재였으리라.



"그랬군요... 하긴, 시간이 지나면서 시설이든 뭐든, 좀 더 나아지는게 맞는거겠지."



황룡은 씁쓸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고 다시금 제 정신으로 돌아온 근출. 그리고 그에 기인하여 시작된 부대의 정상화와 부조리와 악습의 철폐선언. 그것은 근출과 황룡이 떠나면서 후임들에게 쥐어준 마지막 선물이자 속죄였다.



그러나 사내는 회한에 젖어 과거를 회상하는 까마득한 선배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는 듯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근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부대도 곧 해체된다고 합니다만.."



그 말에 황룡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서 포항 해병대 선후배 간의 정다운 대화를 흐뭇한 미소로 듣고 있던 노인도 놀란 눈으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



"아 그게, 저 때는 아니고 제가 전역하고 그 ◆ 기수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나서요... 들어보니 어느 후임병이 평소 자기를 괴롭히던 선임병들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데... 사실 저 때도 그런 악습은 심했고 또 제 선임들 말로도 예전부터 되게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쌓이고 쌓이다가 이번 사건이 크게 한번 터지는 바람에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서 결국 국방부에서 그 부대는 해체하는 걸로 조치했다고 합니다..."



"......."



황룡과 노인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진눈깨비가 세차게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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