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야, 그동안 수고 많았다."
중대장의 어조는 무미건조했다.
"네.. 감사합니다."
A는 차분하다 못해 무심함마저 느껴지는 중대장의 표정에서 그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필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존재를 어떻게든 자신의 눈 앞에서 치우고 싶었으리라. 더구나 차가운 은빛 금속테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중대장의 냉기어린 시선 앞에 내던져진 A는 저도 모르게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이따 사열대에서 대대장님께 전역신고 하고 바로 나가면 된다."
사뭇 사무적인 어조였다. 마치 AI 로봇이 입력된 알고리즘에 따라 읊는 듯한 중대장의 뉘앙스에 A는 예상했던 일이었음에도 다시금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자각하게 되었다.
하기사, 자신으로 인하여 온 대대가 떠들썩하지 않았던가. 새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뼈저리다 못해 아려왔던 자각은 사단 본부에서 급파된 헌병대의 거칠었던 손아귀의 힘에서도 아닌, 군사법원에서 울리던 의사봉의 소리도 아닌, 영창의 쇠창살을 한껏 움켜쥐었던 그 날의 차디찬 감촉에서 비롯되었다.
"이만 할 말 없으면 나가자."
중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헤지고 헤진 전투화코만 바라보는 A를 외면 하듯 먼저 일어섰다. 마치 가뜩이나 2평도 채 안되는 이 좁디 좁은 중대장실에서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 조차 몹시 불쾌하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A는 말없이 그런 중대장을 따라 일어서 그와 함께 중대 상황실로 나갔다.
상황실에서는 중대 행정계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고 이제 얼굴이나 몇번 보게된 신임 소대장과 부소대장은 어색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A를 발견하고는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A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행정계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A를 의식하고 힐끗거리며 보내는 불편하고도 어색한 시선을 뒤로 한채 A는 중대장을 뒤따라 중대 건물을 빠져나왔다.
한창 부대 환경미화라는 명목으로 조성된 화단 주변에는 A의 후임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중대장이 다가가자 후임들은 이내 거수경례를 올려 붙였고 중대장은 말없이 고개만 까딱 거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고 있는 A를 발견한 후임들은 이내 표정이 굳어지며 말없이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그들은 필시 오늘이 A의 전역날임을 알고 있을 터였지만 그들로부터는 축하인사는커녕 꼬박 만창을 살고 부대로 복귀한 이후 이래 어느 누구로부터도 어떠한 말도 건네받지 못했던 A였다. 그런 마당에 전역 축하인사란 사치이자 택도 없는 희망에 가깝다라는 것은 A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대대의 사열대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A의 앞에 대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또한 A의 '대소동' 으로 인하여 부임해온 얼굴 몇번 본적 없는 신임 대대장이었다. 그랬던만큼 A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았으리라. 그 또한 중대장만큼이나 이 '폭탄 덩어리' 를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부대에서 배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터.
"음, 그래. A야. 비록 군생활 마지막에는 안좋은 일이 있었어도 어찌 되었건 전역은 전역이지.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앞서 중대장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어투였다. 그는 어색하게 코를 킁킁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뭐... 나가서는 모쪼록 그런 짓은 하지 않기를 바라고, 웬만하면 B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서 진정어린 사과라도 하길 바란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대대장이 할 말은 여기까지다. 그럼, 잘 가거라."
고개를 쳐박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A의 모습은 분명 대대장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해병의 모습에 한참 못미치는 것이었으나 이 날만큼은 예외였다. 한시라도 이 폭탄을 내보내고 싶었을테니까.
사열대에서 위병소까지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A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자신이 B에게 가해온 주먹질, 발길질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발길질을 가해왔던 어느 날, 그날도 B의 복부로 내지른 발길질에 B는 배를 움켜쥐고 신음을 내며 쓰러졌고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누적된 복부의 구타로 인하여 내장이 파열되었다던 B는 그날로 응급실로 실려가 수술을 받았고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A는 그동안 가해오며 누적된 폭력 횟수만큼이나 쌓이고 많았던 후임들의 사단 헌병대에 대한 빗발치는 읍소를 그대로 감당해야 했다.
B의 부모님은 물론 수사관들이 보는 앞에서 사건 재연을 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B 부모님의 노기 어린 욕설과 눈물로 얼룩진 곡소리를 들으며 아직까지 실감이 안나 얼이 빠져있던 A는 새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섬뜩하리만큼 깨닫게 되었다. 의식이 없다던 B, 그리고 들끓는 사회의 여론, 눈물로서 선처를 바라던 A의 부모님. 이 모든 것은 현실이었고 시시각각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모든 것을 살갗으로 체감한 이래로 A는 가슴 한 켠에 여전히 남아있는 섬뜩함을 느끼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는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범죄자라는 낙인은 이제 더는 상상의 영역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이로 인해 그리던 전역 후의 자신의 장밋빛 미래, 이를테면 대학 생활, 취직에도 영향이 갈 것은 자명했다. 이를 떠올리노라면 자던 와중에도 등에 소름이 오소소하고 돋으며 잠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새우기를 여러 날, 영창 출소를 하루 앞둔 날에 B의 의식이 되돌아 왔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질이 가감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수사 도중 받은 사이코패스 검사의 판정결과가 증명이라도 해주듯 A는 그저 B가 죽지 않아 그나마 자신이 살인자의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게 되었다라는 점에 안심했다. 이를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 것일까?
이제 사회에서 내색만 하지 않는다면 A는 아무 일 없었다라는 듯이 평범한 나날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이윽고 위병소에 다다른 A는 말없이 부대의 정문을 훑어보았다. 다행히도 불명예제대는 면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끼며 A는 힘찬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앞으로 그에게 펼쳐질 정상적인 삶과 장밋빛 미래를 향하여!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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