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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문학] 첫 전우애의 추억

ㅇㅇ(49.174) 2023.05.31 23:32:37
조회 8266 추천 114 댓글 19
														



"아쎄이... 원위치!"



그의 불호령에 나는 불과 몇분 전만 해도 들끓던 반감도 잊은채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황급히 기립하여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튕겨져 나가듯 황급히 그의 앞으로 튀어가서 섰다. 그는 노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고 그 추상같은 위용 앞에 나는 흡사 염라대왕 앞에 내던져진 죄인이 되는 듯한 기분마저 드는 것이었다.



"아쎄이, 이것으로 세번째로군. 명심해라, 아쎄이가 흘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좆물 뿐이라고 했을텐데..?"



"........"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채 애꿎은 화장실 바닥의 타일만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흰 타일 사이로 접착처리된 오래된 시멘트들이 쩍쩍 갈라져 금이 가 있었다.



내가 감히 선임의 훈계에 대답하지 않은 데에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 자리하고 있는 알량한 일말의 반감과 자존심에서 기인한 것이 컸다.



'미친 새끼... 흘릴 수 있는게 좆물 뿐이라고?' 



나는 머릿속으로 그가 내뱉은 말을 곱씹으며 실소를 흘렸다. 



미친X이 아닌가 말이다.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에도 물론 이 집단이 가진 악폐습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은 인터넷이나 주위 전역자 형들에게서조차도 듣지 못한 별의별 온갖 부조리와 성추행이 가미된 악습들이 산재해 있었다. 이를테면, 이번처럼 내가 가슴팍을 걷어차인 이유이기도 한, '아쎄이는 좆물만 흘릴 수 있다' 와 같은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싫은 괴상한 부조리와 같은 것 말이다.




야외초소 경계근무를 서는 밤이 되노라면 누구나 추억의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가 되는 법이다. 여느 때라면 쏜살같이 지나갔을 한시간 반이라는 근무시간도 이때만큼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함께 근무에 투입된 사수가 망을 잘보라는 협박과 함께 먼저 초소 바닥에 주저앉아 골아 떨어지노라면 나는 오롯이 홀로 남아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여행을 떠나곤 했다.



진아, 최근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내 여친, 아니 이제는 전 여친이겠구나. 그 망할 년을 한없이 원망하면서도 또 그 원망의 깊이만큼이나 미련 또한 깊고 컸기에 오늘도 나는 홀로 그 냉정한 년과의 즐거웠던 과거의 나날들을 회상하며 홀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씁쓸함이란 놈이 제멋대로 어느새 처량함과 슬픔으로 승화해버리는 바람에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란 녀석이 방정 맞게도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온갖 부조리와 악습으로 점철된 이 해병대에 몸을 담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내게 있어서 그녀는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버팀목으로서 이 냉혹한 군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였기에 그 상실감과 실연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이젠 내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라는 극한의 고립감과 외로움이 시시각각 나를 옥죄어 오는 듯한 기분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금 갑갑해진 가슴 한 켠을 부여잡고 근무가 끝나 내무반으로 복귀하였으나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함께 근무 투입되었던 사수는 나의 뺨에 말라붙어 있는 눈물의 흔적과 붉어진 눈시울을 미처 발견 못했지만 박철곤 해병, 그의 각잡힌 팔각모의 각만큼이나 날카로운 그의 눈썰미만큼은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박철곤. 그는 소대 내 최고 선임 중 하나로 나같은 아쎄이가 감히 말조차도 섞을 수도 없는 까마득한 짬밥 차이를 가진 선임 해병이었기에 나는 그와 몇번 말을 섞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소대 내에서는 다소 대하기 어렵고 두려운 인물로 뭇 해병들 사이에서 평이 자자했는데 이유인즉슨 그가 모두의 두려움을 사는데에는 비단 그의 다부진 체격과 전신을 장식하고 있는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정작 그의 이름을 떨치게 했던 주된 요인은 바로 그가 가진 능력이었다. 


그와 함께 근무에 투입되거나 혹은 그에 대해 좀 더 깊게 경험해본 다른 동기들이나 혹은 윗 기수 선임 해병들의 경험담에 따르면 그는 흡사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나오는 악역 주인공인 한스 란다와 같이 냉철하고도 차분한 어조로 상대방의 속내를 읽어내거나 통찰해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고도의 독심술로 무장한 사람이기에 그의 앞에 서게 되면 흡사 발가 벗겨져서 그의 앞에 내동댕이 쳐진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는 어떠한 거짓도 통하지 않을 듯한 착각마저 든다는 것이었는데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그리 믿지는 않았다. 물론,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배포와 자신감이기도 했으리라.



아무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야음을 틈타 나는 미처 다 토해내지 못한 설움을 배설하고자 화장실로 향했으나 얄궂게도 거기서 그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평소 그가 가진 명성에 걸맞게 이미 내가 화장실로 올 것이라 읽어내고 먼저 와있었으리라. 



그리고 앞서 상술한 바와 같이 그에게 눈물의 흔적을 발각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무려 세번째였기에 냉철하다는 박철곤 해병, 그도 이젠 인내심의 바닥을 보였는지 그는 나의 뺨에 메말라 붙어있는 눈물의 흔적을 재확인 하듯 다시금 보고는 이내 짐작하였다는 듯 아무 일갈이나 호통 없이 대뜸 나의 가슴팍에 발길질을 해버렸고 어찌나 세게 얻어 맞았는지 화장실 밖으로 나가 떨어진 나에게 그는 차가운 어조로 즉시 원위치 할 것을 명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 선임들의 부조리나 성추행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기에 나는 말없이 뻗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쎄이, 외로운가?"



여전히 잔재해있는 반감과 그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굳어진 표정의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박철곤 해병이 입을 열자 뜻밖의 질문에 나는 내심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 부드러워진 듯한 그의 어조 때문인지 매섭기만 하던 그의 눈빛도 한결 누그러진 듯한 모양새였다.


그나저나 나의 외로움을 어찌 알았을까, 과연 독심술의 대가 다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날 전화기를 부여잡고 진아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매달리던 나를 목격하고는 현재 내 눈물의 의미를 유추해냈을지도 모른다. 



".....예, 그렇습니다."



어차피 까발려졌다는 심정에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박철곤 해병은 한걸음 내게 다가와 우뚝 서고는 내 뺨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투박하고도 거칠지만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며 주춤거렸다. 냉철함으로 가득한 그로부터는 평소 느껴볼 수 없던 온정의 손길 때문이었을까. 



"아쎄이, 왜 아쎄이들은 좆물만 흘려야 하는지 아는가? 아직 싸제의 물이 덜 빠진 아쎄이들은 비유하자면 병아리들과도 같다. 아직은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고 나약하며 외로움을 잘 타기에 누군가의 보호와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보호와 사랑이란, 이 해병대에서는 선임의 후임에 대한 보호, 후임의 선임에 대한 존경을 뜻하며 궁극적으로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전우애를 통해서만 얻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우애의 산물이자 결실인 좆물만이 너희를 병아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병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하고 잠시 말을 멈춘 박철곤 해병은 별안간 입고 있던 각개빤스를 내렸다. 한껏 45도 각도로 우뚝 솟은 그의 포신이 영롱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태에 나 역시 조용하고도 수줍은 그의 구애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얼굴이 뜨거워지는 듯하였고 박철곤 해병 또한 얼굴에 가벼운 홍조를 띄고 있는 듯하였다.



"비록 첫 전우애를 하사받는 아쎄이에게는 해병대의 오랜 전통에 따라 선임이 먼저 주입하는 것이 원칙이나 오늘만큼은 예외로 해주도록 하겠다. 아쎄이! 탈의를 실시한다!"




아아, 전우애라니. 오늘 비로소 내 군 생활의 첫 전우애를 하게 되는 것인가. 화장실의 전등을 등지고 서있기 때문일까, 후광이 드리우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그의 황홀한 육체와 포신에 이끌리듯 나는 발걸음을 옮겨 그 즉시 행정반으로 튀어가 꾸벅꾸벅 졸고 있던 당직사관인 소대장을 거칠게 흔들어 깨웠고 박철곤 해병이 늘어놓은 개소리들을 토씨 하나 안빠뜨리고 소상히 고하자 못들을 것을 듣기라도 한 듯 잠이 달아난 듯한 표정의 소대장은 분기탱천하여 즉시 화장실로 성난 발걸음을 옮기니, 전라의 박철곤 해병이 우람한 포신을 자랑하며 멀뚱히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소대장님께서는 호랑이처럼 달려가 박철곤 해병의 가슴팍을 걷어차고 귀싸대기를 올려붙이시니 그 모습이 여간 기합이 아니셨다! 또한 최고 선임님이셨으나 기수열외 당하셨던 황룡 해병님께서도 뜻밖의 야간 소동에 놀라 웅성대는 뭇 해병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시어 몸소 그간에 있던 소대 내 온갖 부조리와 폐습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시자 그 모습이 오늘만큼은 여간 기합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박철곤 해병을 비롯한 부조리 행위 가해자로 지목된 중대 內 69명의 선임들이 줄줄이 영창으로 끌려가니, 이로서 해병대에도 진정한 평화가 도래했음이라!



라이라이 차차차!!


헤이 빠빠리빠!!


브라보, 브라보!! 해!병!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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