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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러시아의 만남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선 정벌...뭐 대부분 싱붕이들이라면 알만한 내용일꺼임효종때 청나라 요청으로 군대를 보내서 러시아인들과 싸웠다인데..이때 싸웠던 사람들은 카자크인이었고, 이들과의 인연은 사실 이때 끝난게 아니었음 아니, 더 큰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음 카자크는 원래 남러시아 초원지대에서 살던 반독립 무장 집단으로, 러시아 제국은 이들에게 자치권과 토지를 주는 대신 새로 정복한 변경 지역의 수비를 맡겼음 제국이 영토를 넓힐 때마다 가장 먼저 가서 정착하고 경비를 서는 일종의 선봉대 역할을 했는데,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되었으니 카자크가 두만강 맞은편에 주둔하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겪는 충격이었음함경도 북부, 특히 경흥 쪽은 그냥 변방 끝이 아니라 러시아 쪽 세력하고 바로 닿는 접경 최전선이 되어 버렸음 함경도 북부의 산림이 울창했기 때문에 카자크들은 조선 쪽으로 건너와 나무를 베고 사냥을 했음 그들에게는 그저 강 건너 산에 자원이 많으니 가져다 쓴다는 정도의 인식이었겠지만, 조선에게는 명백한 영토 침범이었음 벌목과 사냥만 한게 아니라 카자크들은 함경도 주민들에게 접근하여 모피, 소금, 철제품 같은 것을 가져와 식량이나 가축과 바꾸려 했고, 때로는 총을 쏘며 강을 건너오기도 했음 실제 침공 의도였는지 시위 성격이었는지는 불분명했지만, 화승총이 전부인 조선 변방 수비대가 소총으로 무장한 기마병을 마주했을 때 느꼈을 공포는 충분히 알만함 러시아는 1864년부터 경흥에 사람을 보내 통상을 요구했고, 1865년과 1866년에도 계속 국경을 넘어와 압박했으며, 1866년 12월에는 수십 명 규모의 코사크 기마대가 경흥부에 와서 교역을 요구했음 이쯤 되면 함경도 입장에선 북쪽 국경 너머에 이상한 유목민이 있다 수준이 아니라, 말 타고 문서 들고 와서 거래하자고 요구하는 위험 세력이 된 거임이때 마투닌이라는 인물이 이끌고 와서 통상 문제와 연해주 방면으로의 조선인 이민 문제까지 꺼냈음 심지어 강화도조약의 내막을 물으며 러시아와의 통상조약 가능성도 타진했는데, 이에 대해 경흥부사는 우리는 변경만 지킬 뿐 외교의 법은 없다는 식으로 거절했음 사실이기도 하고.. 함경도에서 카자크 접촉은 단순한 군사충돌이 아니라 국경, 외교, 통상, 주민 이동이 한데 엉킨 접경정치였음현실적인 문제 다른것도 있었음 함경도 사람이 먹고살려고 두만강을 넘는 문제였음 함경도 북부 주민들은 러시아와 정식으로 접경하기 전부터 그 일대를 춘경추귀(봄에 가서 농사짓고 가을에 돌아옴) 식으로 왕래하고 있었음 그러니까 두만강 북쪽 세계가 완전히 낯선 외국이 아니라, 이미 생업권이 겹치던 장소였는데860년 이후 국경선이 딱 그어지자, 원래 흐릿하던 생활권이 하루아침에 국경 바깥이 되어 버렸고,여기에 함경도 쪽 흉년과 경제난, 러시아의 노동력 수요가 겹치면서 월경 이주가 급증했음 1869년 전후 대략 함경도 주민 수천 명이 러시아 극동으로 넘어갔고, 1870년 연해주 한인 수가 8,400명에 달했다는 자료도 있음1869년의 경흥협상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벌어졌음 경흥에서 조선과 러시아 지방 당국이 만나서, 함경도 주민의 러시아 이주를 막고 이미 넘어간 사람도 돌려보내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정작 그 주민들은 돌아가면 처형될 수 있다며 귀국을 거부했음 결국 협상은 큰 실효를 못 거두었고, 이후에도 조선인의 러시아 이주는 계속되었음 쉽게 말해 함경도 주민 입장에선 카자크와 러시아 세력이 단순한 적군만은 아니었고, 어떤 경우엔 국가가 못 주는 생존 공간을 주는 타자이기도 했던 거임 씁쓸한 이야기이지 조선 조정은 이 상황 앞에서 거의 속수무책이었음 카자크를 군사적으로 막자니 화력 차이가 너무 컸고, 외교적으로 항의하자니 러시아와 공식 외교 관계 자체가 없었으며, 주민들의 월경을 막자니 그것은 굶어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었음 18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함경도 관찰사들이 올린 장계에는 해마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었고.. 러시아인이 또 강을 넘었다, 백성들이 몰래 강을 건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답답한 상황이 결국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으로 이어졌음 조선이 러시아와 공식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개화의 흐름 때문이기도 했지만, 함경도 국경에서 벌어지는 현실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임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1888년의 조러육로통상조약으로 이어짐 이 조약은 군사동맹 같은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두만강 국경지대 무역을 제도화한 상업 조약이었는데, 여기서 핵심 중 하나가 경흥 개방이었음 러시아는 국경선에서 100리 자유무역지대, 월경민의 러시아 국적 인정, 내지 통상권 같은 걸 요구했고, 협상 끝에 경흥을 무역 거점으로 열고 러시아인이 그 주변 100리 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 경흥에 부영사관 설치 문제까지 포함되었으니, 이쯤 되면 함경도 북부는 그냥 북방 변이 아니라 러시아와 조선 접경경제의 관문이 된 거임교과서에서 조러수호통상조약은 한 줄짜리 사건으로 배우고 지나가지만, 그 한 줄 뒤에는 수 년에 걸쳐 함경도 국경에서 카자크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음 서울의 조정이 서양을 먼 곳의 일로 여기고 있을 때, 함경도 주민들은 이미 매일 강 건너에서 서양의 무력을 눈으로 보고 있었고 말야 조선이 근대 세계와 만난 현장은 제물포나 부산만이 아니라, 두만강 변의 추운 마을이기도 했던 것임
작성자 : ㅇㅇ고정닉
지리산 둘레길 절대 하지 마라 종주 후기 1,2
난 귀찮은거 존나 싫어해서 원래 이런거 안 쓰는 사람임 진짜 사진도 잘 안 찍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쓰는 이유는혹시라도 지리산 둘레길? 하고 병신같은 생각을 하는인간들에게 시간을 아끼게 해주려고 자료를 남기는목적으로 글을 씀이때까진 좋았음 여행의 시작인데 날씨도 좋아?기분 개좋지여기 역 다들 익숙하지?난 천왕봉 5번 가본 사람이고 지리산을 참 좋아함그래서 이번엔 지리산둘레길을 해보자 하고오게 된거임 이때까지도 좋았음지리산을 몇번을 와봤는데 화엄사를 못와봤음이번에 둘레길하면서 가보자 생각했는데 가보니홍매화 사진전때문에 다들 눈돌아서 저거 찍고 있더라상금이 천이래참고로 화엄사는 둘레길 코스에 없음(뒤에서 후술함)따로 빠져서 들렸다가 돌아와야됨근데 이새끼 면상 보면서 부터 좆같음이 슬슬 올라옴화엄사 박물관에 있는건데 아무나 가져가라고 책 가따놓은거다른건 그나마 이해가 되는데 뭔 시발 정치인 자서전?이 씹새끼를 싫어하는 이유는이 시발련은 난 대구 살지도 않는데 존나게 문자질함 차단안하고 문자올때마다 선거 말아먹으라고항상 저주함 암튼 이 좆같은 새끼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데이후부터 좆같은 지리산 걸레길의 시작임시간 순서대로 쓸까하다 여행기도 아니고 그냥 좆같으니까 가지말라는 포인트만 정리할까함1. 이 좆같은 지리산 둘레길은 관리를 안함 길을 못찾음이런게 개 많음 부숴지고 망가진게진심 하도 많아서 다 사진은 못찍고방향 잘못 알려주게 틀어지거나 헷갈리는부분만 찍은거임문제는 저게 방치된지 몇년 된거임유튜브에 트레킹가이더라고 유튜버가 있음그 양반 영상을 걷기 전날 보고 잤었음다음 날 직접 걸어보면 그 양반이 4년전에 올렸던 영상에망가진 이정표가 고대로 있음 관리가 제대로 안되있음그리고 굉장히 이용자에게 불친절함님들같으면 길이 어딘거 같음?저 공장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지?저 공장으로 들어가는거 맞음 ㅋㅋ저렇게 비상식적인 길이면 표식이라도 해놓지 그런것도 없음이것도 둘중 어디로 올라갈거 같음?이런게 엄청많음이런거 만날때 마다 카맵켜서 확인해야됨...아 우선 끊음 날려먹을까봐 우선 2부로- 지리산 둘레길 절대 하지 마라 종주 후기 2이 시발길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길 관리임 낙엽때문에 미끄러운건 그러려니함 근데 이런게 많음사람들이 이제 안 찾으니까 관리자체가 진심 안되는게느껴짐 길막 나무들도 존나 많음 그리고 또 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임도길임임도길 비중이 너무 높음 트레킹 분위기도 안나고 바닥이 공구리 포장도로라 진심 하루 걷고 나면발바닥이랑 무릎이 너무 아픔그냥 평탄하면 낫지이런식으로 내려버림진짜 말도 안되는 경사로 올리거나 내리면 발바닥에 부담이 너무 심해짐 나중엔 너무 아파서 길 사이드에 솔잎들이 쌓이게 되잖아?그거 찾아서 밟으면서 내려갔음미끄러워서 위험한거 알면서도 아파서 어쩔수가 없었음그리고 둘레길이 좆같은건 그냥 임도 등산로 임도 등산로임이 둘레길은 2트를 허락을 안하는 개념임난 둘레길 보면서 유명한 지리산 컨텐츠를 볼수 있을줄 알았음근데 코스에 없음..이 지도만 봐도 쌍계사가 있고스티커 붙인쪽이 화개장터임 저기는 인간적으로 지리산둘레길이면 코스에 끼워넣어야지화엄사도 그렇고 청학동도 그렇고 죄다 코스에 없음산을 내려가서 평지가면 죽는 병에 걸렸나봄임도 등산로 임도 등산로 만 뺑뺑이 돌림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젠 위험함둘레길 설계자체가 저 따구니 2트뛰는 사람은 없고가지말라고 말리는 나같은 사람만 있는데 저게 계속 흥하겠나사람이 주니 관리도 안되고 쉼터도 없음지금은 둘레길 도는 코스 상권다 뒤져서 쉼터 다 닫음물떨어졌을때 일박이일 할머니 가게가서 물 사면 되겠다계획하고 갔는데모든 쉼터가 다 닫아서 물을 15시간이상 못먹은적도있었음 함양에서 산청넘어가는 고개였는데거기서 시골 아저씨 겨우만나서 물 구걸해서 겨우 살았음또 원부춘 뒷산은 관리가 개판이라서 길을 잃고야간 산행도 했음둘레길이라 거기 주민분들에겐 뒷산이니 그분들 흔적이 있어서길이 여기 저기 퍼져있는걸로 보임근데 표식이 없어서 산에서 길을 잃음 이때는 진심 봉크 올뻔해서 산에서누텔라 들고 다니던거 퍼먹음겨우 내려와서 이날은 죽다 살아났다 생각에백패킹 생각도 못하고 원부춘마을 숙소에 전화했는데시발ㅋㅋㅋ 벗꽃축제 때문에 숙소가 없어ㅋㅋ 풀부킹...어두워서 텐트는 못치겠고마을회관 현관에서 매트깔고 도둑 노숙함 탈수올거 같아서 마을회관 화장실물 받아서 마시고진짜 이날은 위험했음이젠 둘레길 관리가 안되서 위험한거 맞음무조건 하지 말길참고로 유일하게 즐거웠던 기억남원 추어탕 맛있더라?금계 도착전에 산에서 곰이랑 같이 잔 날이거 두개는 꽤 즐거웠음나머지는 개 씹똥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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