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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BMP-2

벹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4.28 13: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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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의 BMP-2

길고 고통스러운 탄생 끝에 오브젝트 675(이후 BMP-2)는 결국 1970년대 말 부터 제식 배치되었다. 1977년 시험생산형이 KMZ에서 생산되었고 1979년 675로 무장한 첫 부대가 탄생하여 시험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이 부대는 14 근위 전차 사단의 343 근위 전차 연대였는데 이들은 테스트를 통해 소련군에 보급할 훈련 노하우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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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P-2


이 차량은 6개월간의 길고 험한 시험을 거쳤는데 우크라이나부터 북 오세티아의 카프카스 산맥도 갔고 그루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투르크메니스탄도 갔다. 결국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까지 갔다. 이들은 카라쿰 사막을 지나기도 했다. 시험은 가혹했다. 승무원들은 -20도에서 +40도의 기온변하를 겪었고 사막부터 산악, 러시아의 광활한 미개척 지대를 포함하여 모든 장소와 온도에서 사격시험이 이뤄졌다. 이들을 따르는 군의 수송차량에는 병사들만 있었던게 아닌데 KMZ의 기술자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만약 이 시험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대량양산 단계에서 문제를 수정하기 위해 따라온 것이었다. GBTU는 신이나서 이 차량이 모든 극한조건에서 완벽한 작전수행 능력을 갖췄다며 발표했다. 하지만 아무리 675가 효과적으로 모든 시험에서 합격했다 해도 소련의 주력 IFV는 여전히 BMP-1이었고 BMP-2가 소련시대에 소련군에 의해 실전을 치룬 것은 아프가니스탄이 전부였다.


아프간에서 BMP-1의 배치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BMP-1은 보병지원 용도로 쓰기에는 화력이 너무 부족했고 장갑 역시 너무 얇았다. 이 두 단점은 승무원과 병사들이 차량 안에서 죽는 주 이유가 되었고 소련은 이 전장에서 사용하기 더 좋은 차량을 보내야겠다고 판단하여 1980년 초에 20대의 675를 아프간으로 보냈다. 675는 저공의 헬기를 공격 할 것을 목표로 꽤나 고각으로 올라가는 기관포를 갖췄고 이 장점은 산악지역에서 매우 효율적이었다. 또한 30mm 기관포는 아프간 전장에서 73mm포 보다 훨신 효과적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새 군용 차량을 생산하고 배치 할 때, 특히 평화시에는 항상 그렇듯 생산, 배치 지연 문제가 생겼다. 단 한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해냈다. 아프간에서 소련이 겪고 있는 이같은 상황에 소련군 대장 미하일 자이제프는 1980년 4월, 화를 참지 못하고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쳐들어가서 보고를 했다. 이 보고는 '이보시오! 아프간에서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어이없이 죽는지 아시오? 빨리 신무기를 만들어 보내시오!' 라는 내용이었고 소련 정치인들은 첨부된 생존자와 사망자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아프간에서 유독 생존률이 높은 차량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675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 회의 직후 한밤 중에 BMP-2를 생산하는 KMZ의 감독관은 끝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소리에 잠에서 깨어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는데 KMZ는 지금부터 총력전 상황의 전시와 동등한 수준으로 공장을 돌려야 하며 앞으로 상황해제 까지 휴가는 없으며 모든 자원과 부품은 최우선으로 지급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그 어떤 불만이나 태만도 전시 사보타지 시도로 고려할테니 조용히 일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괴상한 상황에 힘입어 BMP-2는 빠르게 대량생산 될 수 있었다.



아프간전의 경험

최중요이자 최우선인 목표는 675를 가능한 빠르게 아프간에 대량으로 투입하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이미 대량생산이 시작되고 심지어 일선 병력들의 최우선 배치 차량이 되었음에도 오브젝트 675는 여전히 675였다. 이 차량이 BMP-2로 명명되는 것은 1980년 8월이었다. 이 차량의 실전투입이 정식으로 결정된 것은 1980년 10월이었는데 이미 이 시점에서는 수 십여 대의 차량이 아프간에서 전투 중이었다. 이 기간동안 30mm 기관포를 선택했던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 입증되었다. 30mm포는 저강도 분쟁에서 매우 효과적인 화력지원을 할 수 있었으며 고각사격 능력은 항공기를 잡을 때 외에도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자헤딘의 대전차무기인 RPG나 밀란 등에 파괴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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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P-2



다른 말로 하자면 BMP-1의 결점 중 하나가 BMP-2에 그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BMP-2는 BMP-1과 마찬가지로 장갑이 얇았고 장갑 업그레이드는 불가능했는데 왜냐면 장갑을 늘리면 더 무거워지고 그러면 수륙양용 기능의 사용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연히 내륙국인 아프간에서 수 할 일은 없었고 일선 병사들은 장갑을 더 달아달라 외쳤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BMP-2의 주 목표를 독일에서 대규모 도하가 포함된 전면공격으로 나토를 박살내는 것이라 여겼고 BMP-2의 장갑 업그레이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병사들은 살기 위해 아프간에서는 단점밖에 없는 경장갑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했고, 용접이나 볼트, 너트를 통해 차량에 철판 같은걸 막 달아대고 쓸모없는 수륙양용 장치는 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추어였고 이들의 개조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1981년 이 모습을 보고 있던 KMZ 관계자들은 장성들에게 제식 장갑 강화 키트를 제안했는데 이 장갑키트를 장착한 차량이 BMP-2D이다. 이 차량은 공수부대에게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BMP-1에 비해서도 뒤떨어지는 성능의 BMD-1을 대체하게 되었다.


BMP-2의 두번째 단점은 지뢰에 너무 약하다는 점이었다. 지뢰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죽은 뒤, 소련 병사들이 장갑차 안 보다는 상대적으로 지뢰에 안전한 장갑차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MT-10 지뢰지대 개척기를 개발하여 일부 차량에 장착해보기도 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진 못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BMP-2는 BMP-1에 비하면 훨씬 효과적이었다. 우선 포신의 고각사격이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높은 산악지역에서 기습을 당해도 포를 올려서 대응 할 수 있었다. BMP-2가 배치되기 전까지 무자헤딘들은 소련 장갑차의 반격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BMP-2 배치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 상황은 BMP-2가 배치되기 전까지는 잘 알려진 대로 ZSU-23-4 쉴카 자주대공포를 대지지원 용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었지만 쉴카는 심지어 소총에도 무력화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BMP-2는 아니었다. 이 측면에서 BMP-2는 이전보다 확실히 진보된 병기였다.


아프간전이 끝나고, BMP-2들은 소련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하지만 BMP-2는 소련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BMP-2가 대중에게 실물공개된 것은 1982년 7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사회주의 혁명 기념식 퍼레이드에서 였는데 바로 다음 해인 1983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첫 차량을 받고는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포드폴리안스키 스트로야니 뎃타 공장에서 344대의 차량을 생산하게 된다. 인도도 1985년부터 BMP-2를 '사럇'라는 제식명의 기본형과 다른 계열차량(장갑 구호차, 기술자차량, 자주대공미사일차량)을 1200대 이상 라이센스 생산한다. 전통적인 소련 무기 주수입국인 이라크나 이란, 시리아, 쿠웨이트 및 타국도 BMP-2를 구매했다. 종합적으로 이 차량은 30여개국에 팔리게 된다.


소련이 멸망한 이후에도 BMP-2는 계속 임무를 이어가 신뢰성 좋고 터프하며 유지가 간편하여 많은 군대가 BMP-2를 선호하게 되며 아프간전을 이어 체첸전에도 사용된다. 특히 이 간단한 유지관리가 BMP-2를 구매한 국가들, 특히 징집병 위주의 국가들이 이 차량에 만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여전히 많은 회사들(각 국 제작사들을 포함하여)이 BMP-2의 현대화 개량형을 제안하고 있어 보통 이 개량은 새 엔진, 새 FCS 추가적인 장갑(특히 머 성작 방호력 강화용)으로 구성되게 된다.


아프간에서 BMP-2를 사용하며 얻은 전훈은 기관포를 장착한 경장갑 차량이 저강도 분쟁에서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였다. 지난 20년 간 전장의 본성이 많이 변했지만 BMP-2는 여전히 전장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러시아 및 친러 국가의 주장갑차로 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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