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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아이젠슈타인 호의 탈출 1장 (2) - [죽음의 군주]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9.02 22: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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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장은 그리 주목을 받을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곳은 그저 인듀어런스 호의 선체 앞쪽에 자리 잡고 있는 텅 빈 직사각형 공간에 불과했으며, 집회장의 한쪽 모서리는 뻥 뚫려 있어, 살인적인 진공 공간을 막아주고 있는 두 개의 타원형 강화 유리벽을 통해 별들을 내다볼 수도 있었다. 창문들에는 반쯤 닫힌 통풍용 셔터가 달려 있었으며, 전함 인근의 성운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이 셔터를 통해 들어오며 어슴푸레한 백색 빛의 줄무늬들을 그리고 있었다.


 집회장의 천장은 아치형으로써, 그것은 전함의 철제 흉곽을 구성하는 주요 활대들이 한 데 모여 리벳이 박힌 강철판과 맞물림으로써 생겨난 구조물이었다. 집회장에는 의자나 사람이 쉴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 공간에 그따위 것들은 필요가 없었다. 그곳은 장황한 토의가 벌어지거나 계획이 세워지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무뚝뚝한 명령이 떨어지고, 지령이 주어지며, 전투 계획들이 신속하게 정렬되는 곳이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장식물이란 금속 들보들에 매달려 있는 몇 안 되는 전투용 군기들뿐이었다.


 장내에는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대들보를 구성하는 흉곽들 사이의 공간에 생겨난 구석진 공간들은 깊숙히 들어가 있어, 먹물처럼 검은 그림자가 져있었다. 장내의 조명들은 황색과 백색이 섞인 바르바루스의 높은 태양을 본따 음푹 함몰되어 있었다. 집회장의 정중앙에는 홀로리튬 수조가 축을 따라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으며, 수조 안에서는 푸른색을 띈 희미한 입방체 하나가 표류하고 있었다. 기계교의 아뎁트들은 수조 아래에 있는 원반 모양의 프로젝터 장치 주위에서 서로의 주위로 궤도를 그리며 똑딱똑딱 경쾌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서 손 한 뼘 길이보다 더 멀어지지는 않았다. 가로는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어쩌면 저 아뎁트들이 이곳에 모인 전사들 사이로 감히 다가가기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전투 중대장 가로는 주변을 둘러보며, 해군의 고위 장교들과 전단에 속해 있는 전 우주선들로부터 뽑혀 나온 대표자들의 면면을 눈여겨보았다. 엄해 보이는 얼굴에 한껏 긴장해있는 여성인 인듀어런스 호의 함장은 가로와 눈이 마주치자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가로는 그녀에게 마주 인사하고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테메테르가 가로의 어깨 가까이로 얼굴을 가져다대고는 속삭였다. "그룰고르는 어디에 있는 거죠?"


 "저기 있네." 가로가 턱짓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타이폰과 함께 있어."


 "아하." 테메테르가 짐짓 점잔빼며 말했다. "그거 놀랍지도 않군요."


 데스 가드 군단 1중대와 2중대의 두 중대장들은 가까이 붙어 서로 의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중얼거리는 말소리는 나지막하게 조절되어 있어, 다른 아스타르테스들의 예민한 감각으로도 그 말뜻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가로는 그룰고르가 자신들이 집회장에 도착한 것을 눈치 채고는, 평소에 그러했듯이 자신들을 무시해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그들을 맞이하지 않는 것이 그의 예의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룰고르가 당신의 친구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군요. 안 그래요?" 그 모습을 본 테메테르 역시 조심스레 말했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말이죠."


 가로는 아주 약간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런 일은 내 방식이 아니라서. 우리가 진급하는 것은 남들의 호의를 샀기 때문이 아니잖나. 우리가 치르고 있는 것은 성전이지 인기도 콘테스트가 아니야."


 테메테르는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이야 그렇게 생각하겠죠. 전 엄청 인기 좋다고요."


 "자네가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나도 한 점 의심이 없다네."


 가로 일행이 다가오자 타이폰과 그룰고르는 무뚝뚝히 서로에게서 떨어진 뒤, 몸을 돌려 자신들의 동료들에게로 합류하였다. 제 1중대의 주인이자 프라이마크의 오른팔인 데스 가드 군단의 최선임 중대장은 강철 색깔 터미네이터 아머를 입고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이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한 데 묶인 검은 머리칼은 그의 어깨 위로 흩트려져 있었고, 그의 수염 난 얼굴은 그가 입고 있는 갑주의 묵직한 사각형 머리덮개로 그 윤곽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타이폰의 헬멧은 그의 팔에 단단히 끼워져 있었는데, 그 헬멧의 이마 부분에는 한 자루의 뿔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어떤 감정을 마음속에 품고 있던지 타이폰은 그것을 잘 숨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두 눈 주위에 진 짜증으로 인한 주름살은 완전히 감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테메테르. 가로." 타이폰은 침착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견주어보듯 훑어보며,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최선임 중대장의 날카로운 시선에 테메테르가 가져다 준 편안한 분위기는 그 즉시 증발해 사라져버렸다. 가로는 타이폰의 칠흑 같은 두 눈 뒤편에 숨어 있는 노기에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었다. 타이폰은 아직까지도 막판에 조르갈 공습 작전의 지휘권을 강탈당한 데에 분개하고 있었다.


 "그룰고르와 나는 공격 계획에 생긴 변화에 대하여 논의를 좀 하고 있었네." 타이폰이 이어서 말했다.


 "변화라고요?" 테메테르가 되물었다. "전 그런 말은 듣지"


 "그래서 지금 듣고 있잖나." 그룰고르가 조소하는 듯한 기색과 함꼐 말했다. 이그나티우스 그룰고르-Ignatius Grulgor는 가로와는 은하계 반대편에 있는 행성에서 자라났지만, 그럼에도 그는 머리칼 없는 대머리부터 기념비처럼 새긴 흉터들까지 가로와 비슷한 행동거지와 육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로가 금욕적이고 계산적인 것에 비해, 그룰고르는 언제나 거만하게 굴며, 그냥 말을 하는 대신에 호통을 치고, 심사숙고를 해보는 대신에 남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굴고는 하였다. "제 4중대는 보틀 월드의 전초 병력에게 보딩 작전을 가하는 데에 재배치될 걸세."


 테메테르는 노기를 감추고 고개를 숙였다. 가로는 자신의 전우가 이번 임무에서 더 위대한 공적들을 함께하는 것을 거부당한 것에 분노를 느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프라이마크께서 원하신다면야." 테메테르는 고개를 들어 그룰고르와 시선을 마주쳤다. "제가 사전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사령관님이겠지." 그룰고르는 씹어 내뱉듯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나를 일컬을 때는 내 직함을 따라 부르도록, 테메테르 중대장."


 테메테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 사령관님. 물론 그래야지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가끔씩 전통에 대한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 빠져나가 버리곤 해서 말입니다."


 가로는 그룰고르의 입가가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다른 모든 레기오네스 아스타르테스들과 마찬가지로 데스 가드 군단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기벽과 관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지휘 체계와 서열 관계에 있어서 데스 가드 군단은 다른 많은 형제 군단들과는 달랐다. 전통적으로 ⅩⅣ군단은 7개 대중대보다 더 많은 부대를 결코 만들지 않았지만, 그 대신 데스 가드 군단의 대중대는 스페이스 울프 군단이나 블러드 엔젤 군단 등의 다른 아스타르테스 부대들보다 월씬 더 많은 인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많은 군단들이 전통적으로 제 1중대의 지휘관에게 최선임 중대장-First Captain이라는 경칭을 수여하는 데에 비하여, 데스 가드 군단은 각각 2중대와 7중대의 지휘관들에게 두 개의 특별한 칭호를 추가로 더 수여하고는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룰고르와 테메테르는 서로 동등한 관계였지만, 그룰고르는 본인이 그러기를 원한다면 가로가 전투 중대장-Battle-Captain이라고 불리듯이, 본인도 사령관-Commander라는 직함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가로가 알고 있기로 그의 특수한 호칭의 근본은 통합전쟁 시기로 거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 호칭은 당시 황제가 ⅩⅣ군단의 한 지휘관을 특별히 구별하여 그에게 친히 하사하여준 것이었다. 가로는 자신이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레 여겼다.


 "우리 군단의 전통은 곧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일세." 가로가 나지막히 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전통을 따르는 것은 올바르고도 응당한 것이지."


 "어쩌면 그것도 적당히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지." 타이폰이 가로의 말을 정정하였다. "이제는 먼지가 되어버린 과거의 규칙들에 너무 편협하게 매달려서는 안 될 것이네."


 "그 말대로일세." 그룰고르가 덧붙여 말했다.


 "아하." 테메테르가 말했다. "그래서, 이그나티우스. 당신은 한편으로는 전통을 따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을 배격하시는 겁니까?"

 

 "오랜 방식들은 그것들이 그 목적에 부응하는 한은 올바르고 응당한 것일세." 그룰고르는 가로를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자네가 데리고 다니는 그 애완 노예도 바로 그 전통이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관습도 있는 법이야."


 "미안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네, 사령관." 가로가 대답하였다. "내 허스칼은 나의 시종무관으로서 완벽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그룰고르는 콧방귀를 뀌었다. "허. 나도 이전에는 그 노예란 것들을 둔 적이 있었네. 아마 어느 얼음 위성에선가 잃어버렸던 것 같은데. 거기서 얼어 죽어버렸었지. 나약하고도 조그만 것 같으니라고." 그룰고르는 시선을 돌렸다. "이 대화가 내게 그때의 감회를 떠올리게 하는군, 가로."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룰고르, 자네의 그 말에는 그것들이 받아 마땅할 만큼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지." 가로가 말했다. 황금빛을 발하는 형체가 한 줄기 빛으로 그의 눈을 끌자, 가로는 그룰고르와의 대화를 중단하였다.


 테메테르는 가로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보고는 가로의 갑옷 견갑을 툭툭 두 번 두들겼다. "제가 모타리온 전하께 동행이 있으시다고 말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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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렙은 가로의 칼을 덮고 있던 녹색 벨벳 덮개를 깔끔한 사각형으로 접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장비실의 후미진 지하실 속에는 가로 중대장의 무기들과 전투 장비들이 갈고리와 철망으로 짜인 선반들에 걸린 채 칼렙의 주위에 정렬되어 있었다. 한쪽 벽 위에는 칼렙의 주인의 볼터의 형상을 따 은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주형이 강철 스파이크들 위에 올려져 있었다. 주형은 윤기가 없어질 때까지 잘 닦여 있었고, 주형의 황동 세공은 바이오룸 야명주의 창백한 빛 아래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허스칼 칼렙은 덮개 천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은 뒤, 손을 마주 쥐고 꽉 비틀며 생각에 잠겼다. 프라이마크가 자신이 있는 곳 바로 몇 층 위의 상부 갑판에 있다는 생각이 그의 정신을 갉아대고 있는 탓에 칼렙은 제대로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칼렙은 고개를 들어 강철 천장을 올려다보며, 만일 인듀어런스 호가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면 자신이 무엇을 볼 수 있었을 지를 상상해보았다. 모타리온이 정말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둠과 냉기를 뿜어낼까? 자신처럼 하찮은 인간이 죽음의 군주를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보면서, 정말 자신의 심장이 멎어버리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노예인 그는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었고, 그로 인해 정신이 산만해진 그는 자신의 평소 업무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다. 모타리온은 황제 그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황제.... 황제는....


 "칼렙."


 칼렙은 몸을 돌려 하쿠르를 마주보았다. 노련한 고참병인 하쿠르는 그 허스칼을 그에게 주어진 이름 그대로 불러주는 몇 안 되는 아스타르테스들 중 한 명이었다. "예, 주인님?"


  "네 작업에 집중하거라." 하쿠르는 칼렙이 쳐다보고 있던 천장을 향해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프라이마크께서는 강철 너머도 꿰뚫어보실 수 있으시다."

 

 노예 칼렙은 간신히 약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몸을 숙여 절하였다. 칼렙은 손질용 천과 납빛 광택제가 담긴 양철 깡통을 집어 들었다. 하쿠르의 무관심한 시선 아래에서 칼렙은 지하실 중앙으로 걸어가, 그곳에 놓여 있던 세라마이트와 황동으로 만들어진 무거운 흉갑을 붙잡고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것은 가로가 오직 전투시에나 공식 행사에서만 착용하는 의전용 갑옷의 일부였다. 흉갑 위에는 전투 중대장의 명예 계급장과 함께 황동을 독수리 모양으로 조각해 만든 장식용 외장이 붙어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부리가 활처럼 굽은 독수리 조각은 마치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와 비슷하게, 흉갑의 뒷면에는 두 번째 독수리가 붙어 있었다. 두 번째 독수리는 아스타르테스들의 파워 아머의 백팩 위로 흉갑을 걸칠 시 어깨로부터 모습을 드러내어 머리 보호개가 되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이 흉갑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조각된 독수리들이 황제의 아퀼라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류제국의 상징인 독수리가 과거에 눈을 감은 머리와 미래를 바라보는 머리,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전투 중대장의 독수리들은 오직 하나의 머리만을 가지고 있었다. 칼렙은 그 독수리들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들은 오직 미래만 바라본다는 것이리라고 상상하며, 어쩌면 그것들이 치명적인 흉탄이 날아들거나 끔찍한 칼날이 떨어지기 전에 그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부적이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언젠가 그가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었을 때, 그는 가로의 부하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았었다. 후에 서전트 하쿠르는 그에게 그와 같은 생각은 황제의 대성전에 나서는 전함에는 존재해선 안 될 미신이라고 말해주었었다. "우리가 치르는 전쟁은 차가운 진리의 빛으로 신화와 거짓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신화를 퍼트리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 고참병은 흉갑의 독수리들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이것들은 그저 생명 없는 황동일 뿐, 그 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저 살과 뼈에 불과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칼렙은 그의 손이 그의 목에 둘러진 사슬에 달린 황동 성상으로 향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누구도 볼 수 없도록 그의 튜닉의 소매 안쪽에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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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인물은 거의 확실하게 여성이었다. 나긋나긋하고 균형 잡힌 몸매 위에 반짝이는 뱀 가죽 같은 빽빽한 사슬 갑옷을 코트처럼 덮고 있었고, 굴곡진 황금 판갑은 마치 여성의 보디스(bodice)와도 같았다. 얼굴을 반쯤 덮는 마스크는 그녀의 목과 우아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로는 때로 아스타르테스가 아닌 인간들의 나이를 측정하는 것을 어려워하고는 했지만, 그는 그 여성이 태양계의 연력으로 30세를 넘기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하였다. 보라색과 검정색이 섞인 그녀의 머리카락은 상처 하나 없는 두피 위로 상투가 틀어져 있었고, 그녀의 머리에는 그저 피처럼 붉은 아퀼라 문신이 하나 새겨져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여성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가로가 그 여성에게 관심을 집중한 진짜 이유는 그녀가 집회장의 강철 바닥 위를 아무런 소리도 없이 걸어 다니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그 여성이 그림자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스타르테스인 그조차도 아마 그 여성이 프로젝터가 투영하는 정교하고 세밀한 이미지, 홀로-고스트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아멘데라 켄델-Amendera Kendel." 타이폰이 아주 약간이지만 혐오감 어린 기색을 내보이며 말하였다. "위치시커-Witchseeker로군."


 테메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톰 대거 카드레-Storm Dagger cadre 소속이죠. 그녀는 침묵의 자매단-Silent Sisterhood의 대표와 함께 이곳으로 찾아왔습니다. 분명 인장관 각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것이겠죠."


 그룰고르가 경멸하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곳에 사이커 따위는 없어. 저 계집들이 곧 있을 전투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지?"


 "테라의 섭정께는 분명 그분만이 아시는 이유들이 계시겠지." 타이폰이 넌지시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어조는 그 이유가 무엇이던지 그가 그것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긴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가로는 위치시커가 집회장 안을 궤도를 그리며 빙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켄델의 첩보능력이란 훌륭한 것이었다. 그녀는 눈에 뻔히 보이는 상태에서도 비밀스레 움직이며, 거의 무작위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은 방식으로 해군 장교들 주위를 지나다녔지만, 잘 훈련된 가로의 감각은 그녀의 움직임이 무작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켄델은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집회장 내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분류하며, 그 정보들을 이후의 재조사를 위해 보존해두고 있었다. 아스타르테스 가로는 그 모습이 마치 정찰병과도 같다고 생각하였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전장을 조사하고, 약점과 목표물을 수색하는. 가로는 이전까지 침묵의 자매들과 단 한 번도 마주쳐본 적이 없었고, 그는 오직 그녀들이 제국을 위해 복무하며 세운 위업들에 대해서만 들어보았을 뿐이었다.


 가로는 그녀들의 조직명이 아주 잘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켄델은 마치 무덤 위로 부는 바람처럼 조용하였고, 그녀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간 순간, 가로는 어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거나 잠시 동안 정신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위치시커가 자신의 주변에 필멸자 인간들을 멈칫거리게 만드는 투명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로는 켄델이 집회장의 입구 곁을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도중, 해치의 양편에 서있는 두 거대한 인물들의 몸 위로 황동과 강철이 번쩍이는 광채를 보고는 거기에 시선을 빼앗겼다. 훌륭하게 주조된, 가슴팍이 두툼한 갑옷을 입고 있는 그들은 타이폰보다도 더 키가 컸으며, 서로 똑같이 생긴 두 파수병들은 데스 가드 군단의 정예 전사들을 상징하는 병기인 배틀-사이드들을 교차하여 강철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오직 프라이마크에게 개인적인 총애를 받는 소수의 전사들만이 저 유물 병기들을 보유하도록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병기들은 맨리퍼-Manreaper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그것들은 모타리온이 어릴 적 가지고 싸웠다는 평범한 농부의 추수용 낫과 같은 형상으로 주조된 것들이었다. 최선임 중대장 타이폰 역시 그것들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가로는 파수병들이 지닌 두 자루 낫의 칼날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즉시 알아보았다.


 "데스슈라우드-Deathshroud." 가로가 중얼거렸다. 저 두 아스타르테스들은 프라이마크의 개인 호위병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오직 모타리온에게만 자신들의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 운명이었다. 그 때문에 전해지기를, 데스슈라우드의 전사들은 군단의 간부들과 일반 전사들 중에서 비밀리에 프라이마크에 의해 선택된 뒤, 그들이 전사하였다고 기록된다고들 한다. 그들은 모타리온의 이름 없는 수호자들이며, 그들의 군주의 곁에서 49걸음 이상 떨어지는 것을 결코 허락받지 못하였다. 자신이 데스슈라우드가 집회장 안에 들어왔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가로는 오싹함을 느꼈다.


 "만일 저들이 이곳에 있다면, 그럼 우리의 주인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거지?" 그룰고르가 물었다.


 타이폰의 입술 위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차가운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분께서는 지금껏 내내 이곳에 계셨다네."


 집회장에서 멀찍히 떨어진 한쪽 구석에서 높은 그림자 하나가 타원형 창문들 옆의 어스름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내었다. 한결 같은 걸음소리가 바닥의 철판 위를 가로지르자,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매 발걸음이 떨어질 때마다 멀찍이서 강철 창대의 밑동이 바닥을 두들기며 내는 묵직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해군의 일반 장교들 중 여럿이 홀로리튬 수조로부터 물러섰고, 가로의 근육은 긴장으로 수축되었다.


 메리카-Merica옛 우르쉬-Old Ursh, 그리고 오세아니아-Oseania 등의 민족 국가들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테라의 먼지 낀 전설들 중에는, 막 죽음을 맞이한 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오는, 어둠 속을 거니는 이에 대한 신화가 있었다. 그는 해골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밭에서 밀을 탈곡하듯이 예리하게 욱신으로부터 영혼을 추수하는 화신(化身)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저 설화에 불과하며 미신적이고 겁 많은 자들의 억측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 그 민간전승의 발원지로부터 10억 광년은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그 존재의 거울상 그 자체가 해빙과도 같은 회색 망토 아래에 키 크고 수척한 모습을 가린 채, 인듀어런스 호의 어스름으로부터 몸을 일으켰다.


 모타리온은 걸음을 멈추고 바닥의 철판 위에 자신의 맨리퍼의 밑동을 대었다. 그의 낫의 길이는 프라이마크 본인보다도 머리 하나만큼이나 더 길었다. 오직 데스슈라우드들만이 제자리에 우뚝 선 채로 서있었다. 집회장 내의 다른 모든 이들은 인간과 아스타르테스를 막론하고 양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타리온이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빈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망토가 스르륵 갈라졌다. "일어나라." 모타리온이 말했다.


 그의 목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묵직한 목깃으로부터 드러난 창백하고 터럭 없는 얼굴과는 달리, 프라이마크의 목소리는 낮고도 굳건하였다. 모타리온의 갑주의 목 보조기로부터 하얀 연기 다발들이 구불구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바르바루스 행성의 대기 중의 가스들로부터 채취한 미약들이 담겨 있었다. 가로는 모타리온의 갑주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기의 냄새를 맡았다. 그 즉시, 그의 감각에 담긴 기억이 그를 치사성의 하늘에 구름이 뒤덮인 험상궂은 행성으로 되돌려보내주었다.


 집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여전히 회장 내는 프라이마크 모타리온이 지배하고 있었다. 회색 망토 아래 가려져 있는 모타리온은 마치 번쩍이는 황동과 도색되지 않은 강철로 몸을 뒤덮고 있는 기사와도 같았다. 데스 가드 군단의 상징인 해골과 별을 그린 장식용 문장이 그의 흉갑과 허리춤에서 그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모타리온의 허리는 일반적인 아스타르테스들의 가슴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로는 셴롱식으로 특별히 설계된 수공예 에너지 피스톨, 랜턴-Lantern이 드럼통 모양의 홀스터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해골 문장들 외에 모타리온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장식품이라고는 줄에 매인 둥그런 황동 향로들뿐이었다. 이것들 역시 프라이마크가 자라난 고향 행성의 고기압권의 유독성 대기로부터 추출한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가로가 듣기로는, 모타리온은 이따금씩 훌륭한 포도주를 맛보는 감식가처럼 그 가스들을 시음하거나, 적들을 질식시켜 죽어가도록 만들기 위해 전투 중에 그것들을 마치 수류탄처럼 번갈아가며 투척하고는 한다고 하였다.


 모타리온의 호박색 두 눈이 장내를 응시하자, 가로 전투 중대장은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군이자 지휘관이 말을 하기 시작하자, 침묵이 장내에 떨어져 내렸다.



찐따쉑이 분위기만 오지게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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