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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E급길드 37화

타미(183.96) 2025.07.29 04: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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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페안에서의 회식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어느덧 음식보단 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하나둘씩 취기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길드장인 이고설도 어느새 소주와 맥주를 몇병이나 비웠지만 술이 강한 체질인지 멀쩡했으며 미성년자인 안시열이 술을 마시나 안마시나 눈을 부라리며 지켜보던 부길드장 안성지도 어느새 술잔을 하나둘씩 들이키다보니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시열은 그틈을 놓치지 않고 비싼 와인한병을 들고 중세귀족처럼 고상하게 와인을 음미하고 있었지만 어린 길드원들은 딱히 시열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성지는 취기때문인지 점점 이고설의 곁에 다가왔고 이고설이 성지의 행동에 당황하며 제지를 해보려고 했지만 여자는 건들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다가오는걸 막지 못했다. 성지는 드물게 이고설의 귓가로 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채 속삭였다.


"길드장님.. 이제 얘기해 주세요.."


"무, 무얼?"


이고설은 성지가 뭘 얘기해 달라는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그때 와인을 홀짝이는 시열이 보이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려고 시열이 술을 마신다고 알려주려다..


"체렉길드의 체렉이.. 무슨 뜻이죠?"


라는 말에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그, 그건 좋은 뜻이야. 자세한 것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러자 성지는 취기로 요염하게 보이는 눈매로 자신의 폰을 보여주었다.


"거짓..말.. 길드장님은 거짓말.. 잘 못하자나요.."


성지의 폰에는 키릴문자로 체렉에 대한 발음이 적혀져 있었다. 


"뭐가.. '써겄'다는.. 거예요..?"


성지는 기어코 스스로 길드명의 의미를 해외사이트를 통해 찾은것 같았다. 그러자 이고설은 할수없이 길드명을 지은 유래에 대해 이실직고해야만 했다.


"그게 우리길드 첫 레이드때.."


이고설이 길드의 첫 의뢰로 3군데의 E급던전을 클리어하는 의뢰를 받았을때 홀로 클리어한 던전에서 발견한 부패능력을 지닌 흙에 대해 알려주었다.


"기자들 인터뷰때 갑자기 생각난게 그거다보니까 타타르어로 이름을 짓게 되었어.."


"그런뜻이었어요?!"


이고설이 길드원들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길드원들이 주변에 모여 있었다. 전부터 썸타는 듯한 이고설과 성지를 봐왔던 길드원들은 성지가 취기에 길드장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혹시 고백을 시도하는게 아닐까하는 희박한 가능성에 제대로 들어보려고 전부 모여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지 수거팀과 프리헌터들은 술과 음식에 빠져 있어서 체렉길드쪽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 그게.."


이고설은 가뜩이나 밑바닥등급인 길드인데 길드명까지 영 안 좋은 것이라서 화가 나거나 실망하는 길드원들이 있을까하여 얼굴들을 살펴봤지만 경인기를 제외하면 실망하는 길드원들은 의외로 없었다. 그 와중에 시열은 성지 바로 뒤에서 겁도 없이 와인잔을 들고 홀짝였다.


"길드장님이 혼자서 클리어한 던전의 특징에서 떠올린 것이잖아요. 승리의 징표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면 나쁠게 없죠."


시열의 말처럼 악의적인 이유로 지은 것은 아니라서 길드원들이 화가 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길드소속인데도 길드명의 뜻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답답하게 여겨왔다.


"솔직하게 말해서 하급길드인 우리에게 길드명뜻도 안 좋은 것이면 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어. 뜻을 알려주지 않은건 미안하다."


그때 녹차를 마시고 있던 영희가 다가와 이고설에게 말을 전했다.


"썩었다는 뜻은 우리식으로 다르게 해석하면 '고였다.'라는 뜻이 되지 않나요? 원래 뜻은 안 좋아도 게임같은데서 강자들을 지칭하는 표현인데요?"


그러자 시열을 비롯한 전투계열 길드원들의 머릿속에선 한가지 단어가 공통적으로 떠올랐다.


'고인물'


영희도 모두의 머릿속을 읽었는지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길드특성상 모두 E급이지만 여타 E급들에 비해서는 기본능력이 좋잖아요. 길드장님은 검술실력과 경험이 말그대로 고인물같이 깊게 쌓인것 같고 부길드장님도 뇌전을 이용한 검술실력도 상당해서 마력의 한계이상으로 실력을 발휘하고 시열이형도 상당한 검술에 용맹성도 갖추고 계시잖아요. 수진씨..도 나이에 비해 곡사가 가능한 활솜씨를 지니셨고 인기형은 상당한 완력과 경험을 가졌고 용찬형은 아직 실력과 경험은 미숙해도 창술에 대한 재능과 가능성이 풍부하죠. 모두 마력수치만 낮을 뿐이지 경험과 정신력, 경륜등은 상급헌터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것 같아요."


영희는 전투계열 동료들의 능력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성지는 아까 길드장님이 말한 영희의 깊이 있는 경력이 무엇인지 알것 같았다. 전투계열 길드원들은 새삼 영희의 평가에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지만 시열이만은 당연한 소리로 여기며 와인을 모두 털어넣고 와인잔에 남은 향을 음미했다. 


"그래. 그렇다면 체렉의 뜻은 고인물이라고 지칭하기로 하자.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모인 김에 아직 얘기한적이 없는 길드의 규칙에 대해 알려주겠다."


이고설은 영희의 배려깊은 설명에 기뻐하면서도 그동안 헌터들에게 반감을 가질지도 몰라서 알려줄수 없었던 길드의 규정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했다. 특히 지금처럼 길드원들 반수가 술이 들어간 시점이라면,


"먼저 헌터로 각성하면서 생각해 봤는데 헌터들은 마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운명때문인지 강한 마수와 마주친게 아니면 살생을 한적이 없다고 해도 거리낌없이 마수와 싸우고 죽일수 있는 본능이 심어지는것 같다."


이고설의 말에 길드원들은 뭔가 확답을 내리진 못할것 같은 답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우린 헌터이면서도 기본은 인간이고 인간성을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한다. 그렇기에.."


이고설은 주변에 모인 길드원들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일 마수들에게 가족이 발견된다면 손대지 않는다. 아직 여성형 마수나 마수의 아이등은 이상하게 발견되지 않았지만 인간형이든간에 여자와 아이들은 손대지 않는다. 물론 우리 등급으로는 배부른 소리고 지키기 어려울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길드의 첫번째 원칙이다. 논리적으로 얘기하자면 동료를 마수로 보는 최면공격에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리고 두번째는 길드원들과의 다툼이나 상처등을 입을수 있겠지만 다시 돌이킬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화해할수 있거나 서로 싸우다 다치더라도 원상태로 회복할수 있어야 한다."


길드원들 대부분은 첫번째 규칙에서 생각지도 못한 내용을 듣게 되었다. 마수는 무조건 퇴치하는 헌터의 특성상 이단으로 여길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이미 길드장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상태이고 오히려 그의 품성답다는 생각에 첫번째 규칙을 지키기로 했다.


"세번째는 이미 얘기한 것이지만 길드에 가입한후 자신이 선택한 장비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잃어버리거나 파는 일은 없도록 한다. 새로 살수는 있겠지만 창고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템들은 A급헌터정도로 일해야 구할수 있는 것들이다. 아마 파는 행위도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이니까 어지간하면 평생동안 사용하길 바란다."


이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할 정도로 중요한 장비들이라서 판다는 생각을 지닌 길드원들이 없었다. 마지막에 길드장이 경고한 것처럼 사기를 당하거나 강탈당한 위험성도 있으니까, E급들에겐 생명과도 같은 장비들을 다른이들에게 얼마를 받든 건네줄 생각도 없을 것이다.


"네번째는 어떤 수익이든 레이드에서의 활약관계없이 길드원들이 모두 정확하게 나누는 것이다. 계산하기 어려우면 길드장의 몫을 떼어서라도 나눈다. 영희씨는 오늘 들어왔기 때문에 레이드에서 얻은 수익으로 배분해 드리겠습니다."


영희가 조용히 끄덕이자 이고설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섯번째는 길드원들의 전원 생존이다. 게이트를 닫는 일이 헌터들로서 가장 큰 역할이긴 하지만 우리 길드는 길드원들의 생존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물과 식량은 항상 챙기고 일격에 살해당할수 있는 마수들은 피한다. 물론 길드원들의 생존만큼 주변 사람들의 생존도 중요시한다. 상황에 따라 터무니없는 규칙일수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을 우선시한다."


소리를 친건 아니었지만 다섯번째 규칙에서 이고설의 어조에 힘이 깊이 들어가 있었다. 젊거나 미성년자들, 특히 여자애들도 있어서 이미 젊은 동료들의 대학살을 지켜본적이 있었던 이고설은 최우선시로 지켜야할 규칙이었다. 설사 몇년전에 나타난 S급 마수인 카미쉬같은 마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살아남도록 노력해야 했다.


"우선은 이렇게 다섯가지의 규칙으로 만들어 놓았다. 향후에 추가될수 있겠지만 이 정도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지와 인기는 마지막 규칙에서 이고설이 여전히 그때 동료들 대다수가 마수하나에 학살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 사건은 자신들에게도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대부분 A급, B급으로 이루어진 동료들을 싸우기 어려운 지형이었다지만 마수 한마리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고 말았지..'


성지는 E급인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을 파티의 일원으로 받아준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성지양. 성지양은 지휘를 잘하니까 E급이라도 전장에서 활약할수 있을거야.'


'성지씨, 펜싱기술이 좋아보이는데 저한테도 가르쳐 주실래요? 저 레이피어를 사용하는데 검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마력만으로는 수월하게 싸우기 쉽지 않네요.'


'동생. 언니로서 얘기하는데 이고쇼르씨 옆에 바짝 붙어 있어야 할거야. 너에겐 가장 안전한 자리니까. 그리고 이고쇼르씨를 지탱해줘.'


수년이 지났지만 어제와 같이 그들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계속 떠올랐다. 만일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그들과 함께 길드를 창설했을지도 몰랐다.



-체렉길드사무소-


밤중까지 이어진 회식자리가 파장하고 길드원들이 다시 길드로 돌아왔을때 영희는 바로 아랫동네에서 살기 때문에 한씨가 데려다 주기로 했다. 각자 숙소로 돌아갔을때 성지는 이고설이 마굿간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들이 먹을 것이나 물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할일이 더 있는것 같았다. 어쩌면 밤인사를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지는 이고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까 취해 있었을때 사실 체렉이라는 뜻을 물어보러 간 것은 아니었다. 이미 뜻은 알아낸지 오래라서 가까이 다가갈 핑계였을 뿐이었지만 무엇때문에 새삼스레 가까이 다가갔는지 자신도 알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길드장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본적은 처음이었다. 그외는 등짝을 때릴때나 가까이 갔지만 귓가로 다가갈때까지 다가가본 것은 처음인것 같았다. 그가 여전히 여자들을 어려워 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와 같이 다녀왔음에도 자신에게 주춤대는 모습에 뭔가 말하려는걸 포기한것 같았다.


"하아.. 내가 길드장님에게 뭘 원하는 것이지?"


그녀는 처음 이고설을 만났을때 이고설아저씨라고 얘기한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순간 그러한 단순한 호칭도 어려워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호칭도 없이 대화한 적이 여러번이었다가 길드가 설립되고 비로소 길드장님이라는 부를수 있는 호칭이 생겨서 좋았다. 그리고 길드에 소속된 만큼 전보다 자주 같이 다닐수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웅~'


진동으로 해둔 성지의 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보낸 문자였다.


[성지야. 다음에 시간되니?]


문자를 보내는 성지를 뒤로 한채, 이고설은 마굿간에 있는 네마리의 말들을 살펴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얌전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애들이다.


"내가 왜 얘네들을 가축처럼 여겼지?"


이고설은 네마리의 말들을 데려온후 이 애들이 말치고는 너무 얌전해서 처음엔 편했다가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아주 가끔 경마장을 빌려서 뛰게 했을때 이 아이들이 예상보다 굳센 인내심으로 버텨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자신은 이 아이들을 이곳에 가둬둔채 데리고 있었다.


"너희들도 우리 길드원인데 말이야."


마력측정기에서 기적적으로 헌터로 각성한 시점에서 동물로 대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고설은 마굿간의 문을 전부 풀어주었다. 사람과 다를바없이 똑똑한 애들이고 닉스가 인솔을 잘해 줄 것이라서 풀어놓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자 말들은 자연스럽게 마굿간안을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마음껏 달리게는 못 해주겠지만 어디든 움직일수 있게 해줄게."


"푸릉,"


닉스는 이고설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세마리의 말들을 인솔하여 길드밖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밤중이라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 인근 동네사람들이 이곳에서 말을 키우는 것은 알고 있어서 놀라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잘 갔다와."


이고설은 그렇게 간단하게 배웅을 하면서도 아까 성지가 취한 얼굴로 자신에게 바짝 다가온 것이 떠올라서 지금도 흠칫했다. 갓 스물살때부터 지금까지 따라오며 수많은 레이드를 경험한 오랜 전우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사실상 30대로 접어드는 성지를 볼때마다 자신때문에 그녀의 청춘을 헛되이 날려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헌터로서의 삶을 좋아했고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으며 마검사에 걸맞는 전투도 많이 치뤄서 아무 무의미하다고 볼수 없었다. 하지만 근래 길드로서의 결속으로도 성지가 멀어지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해-


거대한 쌍동여객선이 서해의 영해부근에서 멈췄을때 여객선의 틈으로 중국의 핵잠수함이 조용히 부상을 하였다. 그리고 한때 핵미사일들을 발사했을 발사구들을 모두 열자 커다란 유리막속에서 잠들어 있는 거대한 뱀이 보였다. 핵잠수함은 135m의 길이인 큰 잠수함이었지만 순양함크기인 쌍동선형태의 여객선은 더 크기가 커서 핵잠수함을 가릴수 있었고 쌍동사이의 천장이 열리면서 객실로 사용되었을 부분에는 큰 공간이 있었다. 여객선의 기중기가 어렵지 않게 유리관안의 뱀을 끌어올리고 있을때 마지막까지 뱀을 잠재우던 마법사들의 주문이 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객선에서 대기중인 베리타스길드의 마법사들이 수면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할때 목성회의 길드마스터인 명진철이 그들을 제지했다.


"이제 저 뱀은 마수가 아니라 우리길드의 손님일세.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그리고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게 해야지."


거대한 뱀을 감싸온 수면마법이 그친지 얼마되지 않아 뱀의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마력저항이나 크기, 발산하는 마력으로 봐서 거의 A급에 가까운 마수였다.


"그래. 내가 너의 주인이다. 그리고 너는 우리길드의 마스코트가 되면서 힘을 강화시켜줄 존재인 것이다."


명진철의 눈이 뱀과 마주쳤다. 뱀은 저 작고 자신과 마력수치가 엇비슷한 인간이 절대 얕볼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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