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설은 마수들을 유인해 서로 싸우게 한 다음, 각개격파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도 남은 마수들을 마저 처리할수는 있는진 모르겠지만 후속으로 올 헌터팀에게 도움이 되어줄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이 싸우는동안 보스일지 모르는 그것을 처치하거나 약화시켜야 하는건 분명해 보였다. 마법사들중엔 빛계열이 힐러만큼이나 드물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어서 고은성만이 처치하는 중임을 맡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리자드맨은 딱히 부족이 달라도 다투거나 하는건 없는것 같아. 그리고 유인작전의 특성상 골렘은 못 부를것 같고."
일종의 유기질로 마수들을 유도하는 것이기에 냄새를 못 맡는 골렘은 유인할수 없었다. 마치 지능게임처럼 신중하게 마수들끼리 다툼을 벌이도록 해야 했는데 그동안 일행들이 숨을 곳이 필요했다. 1층은 광장처럼 넓었고 기둥도 여러개로 받치고 있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숨기 어려웠다. 특히 경인기처럼 덩치가 큰 사람은 기둥하나로도 숨을수 없었고 몇몇 보이는 폐감옥들은 문짝도 없고 보여진 상태라서 상급어쎄신이 아니면 숨어있을수도 없었다. 이고설은 천장을 바라보다가 틈새로 인해 상층부가 보이는 구멍을 발견했다.
"우린 위로 올라가 숨기로 한다."
감옥형 던전의 상층부에는 '그것'의 존재가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엔 은성이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적어도 수백마리나 되는 마수들에게 둘러쌓이는 것보단 나았기 때문이다.
"타당하긴 한데 여긴 올라가는 계단이 안 보이는걸?"
경찬헌터의 말에 모두 주변을 살펴보자 인공적인 건물임에도 상층부로 가려면 있어야할 계단이 보이지 않아 다들 당황했다. 그때 영희가..
"혹시 올라가는 계단이 밖에 있는게 아닐까요? 건물중에는 그런 방식인 곳도 있던데요?"
라고 말하자 이고설은 영희의 말에 다같이 밖에서 계단을 찾아보기로 했다. 워낙 어두워서 밤눈에 익숙해도 다같이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정도였고 '그것'이 나타나진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여성헌터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긴장하며 동행했다. 선두엔 상대적으로 밤눈이 좋고 기감이 예리한 이고설과 영희가 앞장섰고 무리의 가운데에선 고은성이 외부에선 보기 힘들정도의 희미한 빛을 발현해 최소한 움직이는 곳의 윤곽을 알아보게 했다.
'이렇게 어두운 던전에 와본 것은 오랜만인것 같아. 물론 곤충들의 동굴은 제외하고 말야.'
곤충을 싫어하는 이고설이었지만 이상하게 거미와 지네는 절지류에 속해서인지 잘 싸우긴 했다. 물론 어두운 던전이 곤충동굴이 확실하고 혼자일때는 죽어라 게이트밖으로 달려서 도망친 일도 제법 있었다. 적어도 여기선 그놈을 제외하면 싸울만한 마수들이 있어서 어둡더라도 두렵진 않았다.
"뒤쪽에 계단이 있었네요? 아마 상층부가 감옥을 관리하는 곳이라서 죄수들이 탈출해도 위로 못오게 하는것 같아요."
영희가 건물의 제일 먼저 뒤쪽에 있는 계단을 발견하였다. 계단은 사선으로 올라가 상층으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상츤은 감옥이 아니었는지 밖에서 올라가는 계단은 그것뿐이었다.
"제가 제일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이고설은 영희를 뒤로 물러나게 한 후에 프리헌터의 탱커인 반노진과 방패를 든 정철우를 후방에 두었고 바로 뒤에는 고은성을 배치한채 계단위로 올라갔다.
'방패를 들긴 했지만 내가 탱커역할을 해야 하다니..'
짐꾼전문인 철우는 자신의 덩치가 크고 '그것'을 은성에게서 막아내려면 영희의 기술보다는 물리적인 방어가 효과적이라서 자신이 뽑힌 것은 알고 있었다. 짐을 드는 역할만 하고 싶었지만 동료들을 지켜야할 의무때문에 길드장님의 지시를 따르고는 있었지만 다행히도 상층에 올라갈때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맹수처럼 사냥감을 먹고 배가 부른게 아닐까요?"
철우가 이고설에게 얘기해보자 그도 철우의 말에 수긍했다. 굉장히 요상하긴 했지만 D급의 마수가 상위랭크인 헌터의 마나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면 배가 부른 상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마수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작전을 펼칠 여유는 있는 셈이다. 이고설은 은성에게 빛을 더 밝혀보라고 지시하자 등불정도는 아니지만 야광에 가까운 빛만으로도 상층부의 바닥이 보였고 그곳에서 아까 보았던 틈새를 발견할수 있었다.
"여기 2층부분은 부엌이나 조리기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리실이나 식당으로 사용된 공간같네요?"
성지가 조금의 여유를 찾았는지 주변의 환경에 호기심을 보였다. 분명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싸구려는 죄수들에게 보내고 고급스러운 것은 관리자에게 보내졌을 것이다. 이고설은 지구밖의 문명의 흔적에 대해 관심이 생겼지만 안전한 상황은 아니어서 깊게 신경쓸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수진이가 떠올랐다.
"수진아, 혹시 종이와 펜은 갖고 있니?"
"네."
"그렇다면.."
카메라를 갖고 와도 쓸수없는 곳이 던전이기에 이고설은 수진이에게 이곳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했고 철우는 지구외의 식기등이 신기해서 가방안에 몇가지를 넣고 있었다. 그렇게 이곳의 탐사를 끝낸후 이고설은 노계순에게 바람계열 마법으로 인간의 냄새를 마수들이 있는 곳으로 날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려울 일 아닙네다."
노계순은 희미한 바람이 자신의 몸을 감싸며 지나가게 한 다음, 먼저 고블린이 있는 지하입구로 보냈다. 강한 바람은 아니었지만 체취를 전달하는데는 문제없었다.
"저는 북에서 이쪽으로 오면서도 비누로도 씻은 적이 없어서 제 냄새가 잘 날아갈 겁네다."
그녀의 말에 이고설은 잠시 뻘쭘해 하다가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떨었다.
'물로만 씻었는데 향기가 난다고? 그렇다면 그 향기는?!'
특수한 향수인줄 알았는데 젊은 여성의 체취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여자에게 굉장히 약했던 이고설은 여성의 체취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니, 저 양반이 나하고 10년간 있었으면서 아직도 여자에게 면역이 안되었냐?'
성지는 저번 트록큰길드를 방문할때 여자들만 있었다고 자신의 뒤에 숨어 있었던 길드장님을 한심하게 여겼다. 지금은 자신하고 있을때 손만 안 잡았을뿐 상당히 가까이 있게 되어서 괜찮아진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여성동료와 있을때도 생리라는 단어에 기겁한 것이 떠올라서 지금까지 그에 관련된 말을 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났다.
'다큰 아저씨가 요정이야? 뭐야?'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고설이 왜 저러나 걱정되었고 오직 영희만이 눈치를 챘는지 얼굴이 빨개진 것을 성지는 볼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계순의 체취를 실은 바람이 잠들어 있던 홉고블린들의 코를 자극하자 자신들의 악취와 다른, 향내와 맛있는 음식냄새에 모두들 눈이 떠졌다. 드디어 이곳에 먹을수 있는, 그것도 맛있는 것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크르륵!"
"크큭,"
홉고블린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가장 약한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1층으로 향하고 있을때 노계순은 다시 한번 자신의 체취를 실은 바람을 리자드맨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러자 하룻동안 굶주려 있던 그들의 눈이 떠지며 그들도 조심스럽게 1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두 세력의 리자드맨중 가장 숫자가 많은 녹색 리자드맨들이었다. 절묘하게 유도한 덕분인지 홉고블린, 리자드맨 두세력은 거의 동시에 1층으로 모이면서 마주치게 되었다.
"슈까?"
리자드맨들은 분명히 맛있는 냄새가 났는데 눈앞엔 냄새나는 고블린들만 보이자 의아했지만 무리중 가장 똑똑해서 대장을 맡은 리자드맨이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저놈들이 맛난 냄새로 우리들을 유인한 것이군. 우리보다 나약하면서도 감히 이길수 있다고 여긴 것인가?'
홉고블린들은 50마리도 되지 않은 적은 숫자여서 금새 늘어난 수백마리의 리자드맨들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혹시 자신들을 이곳으로 오게끔 유인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홉고블린들은 숫자는 적어도 전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예인데다 지하로 도망칠 생각도 없이 모두 용맹했다.
"슈까아!"
"쑤까!"
리자드맨들이 본때를 보일겸 맛없지만 홉고블린들을 식사거리로 삼으려고 달려들자 철제무기를 든 홉고블린들도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고설은 리자드맨이 러시아어 욕인 '수까'를 외치는 것이 여전히 신기했다.
"저놈들은 뭔 언어가 욕이냐? 홉고블린들이 전멸할것 같지만 홉고블린들이 힘내줘야겠다."
가능하면 비등한 세력끼리 맞부딪치며 양쪽의 숫자가 줄어들길 바랬지만 생각보다 홉고블린들과 리자드맨의 격차는 컸다. 그래도 홉고블린들의 무장이나 용맹함은 좋은것 같아서 주변의 헌터들은 전쟁영화를 보듯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생각외로 홉고블린들이 무척이나 잘 싸웠다.
"키야악!"
"쑤까아!"
'챙! 깡!'
홉고블린들의 칼과 리자드맨의 손톱이 맞부딪치면서 대등하게 싸우다 본능적인지 홉고블린들이 전술을 펼치면서 전방과 후방을 교대하며 리자드맨을 상대했다. 그 과정에서 10여마리가 전사했지만 리자드맨을 30마리나 쓰러뜨리고 다수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래도 숫자는 압도적이라서 홉고블린들의 패배는 확정적일 것이다.
"리자드맨들에게 둘러쌓였으니 후퇴도 힘들겠군.. 지원을 보내야겠어."
이고설은 홉고블린들에게 도움을 줄 요량으로 수진이에게 시켜 골렘이 있는 곳으로 화살을 쏘게 했다. 그러자 수진이는 애기살을 쏘기 위한 통아를 시위에 매기면서 근처에서 주운 뾰족한 돌조각에 마력을 넣은후 통아에 담아 발사했다.
'슁~!'
'팅~!'
돌조각은 계단입구에 맞아 튕기며 절묘하게 입구안으로 들어가 잠들어있는 돌골렘을을 깨웠고 윗층에서의 소란으로 인해 하나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쿵! 쿵!'
홉고블린과 리자드맨들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느라 돌골렘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홉고블린들과 리자드맨이 교환대비 5:10에 가깝게 죽어나가자 서로가 동족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었던 것이다.
"?"
돌골렘들은 두세력이 왜 싸우고 있는진 모르지만 잠을 깨운 대가로 응징을 해주기로 하였다. 돌골렘들은 몸을 수그리면서 동글하게 말더니 그대로 암석이 굴러가듯이 데굴데굴굴러가면서 리자드맨들을 덮쳤다.
'쾅!'
'퍼걱!'
돌골렘들의 급습에 수십마리의 리자드맨이 튕겨지거나 으깨지면서 죽어나갔고 이 때문에 리자드맨의 대장은 후방에 있는 100여마리를 돌골렘에게 보내 상대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날카로운 손톱으로는 돌골렘들에게 흠집만 낼뿐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자 녹색리자드맨 특유의 산성액을 입으로 뿜어내면서 간신히 돌골렘12마리를 쓰러뜨릴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삼파전이 되면서 난전이 되어 뒤엉키자 리자드맨들은 숫자의 우위가 오히려 악영향이 되고 말았고 산성액을 남발하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는등 혼전이 되었다. 이때 노계순이 다른 세력의 리자드맨이 있는 곳으로 바람을 보내 유도시키자 청색리자드맨들이 곧 올라왔는데 갑자기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올라왔다가 친척인 부족이 어려움(?)을 당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주저하고 있었다. 색깔은 달라도 같은 종족이라 크게 다툰적은 없었지만 자신들보다 숫자가 많다고 기싸움같은 것을 몇번 하기는 해서 도와주는 것도 망설여졌다. 그때 녹색리자드맨중 하나가 돌골렘에게 산성액을 토한다는 것이 청색리자드맨에게 산성액이 향하자 몇마리가 산성액에 맞아 큰부상을 입고 말았다.
"수까앗!"
지금까지 같은 리자드맨이라서 다툰 적도 없었는데도 산성액에 공격을 당하자 화가난 청색리자드맨들이 공격에 나서면서 수라도를 방불케하는 대난전이 되고 말았다. 청색리자드맨들에겐 입으로 뱉는 산성액공격을 당한다는 것은 단순한 부상을 입는 것뿐만이 아니라 치욕적인 모욕을 의미하기도 해서 더이상 동족으로 보지 않았다. 녹색리자드맨들은 상황을 몰라서 친척들이 갑자기 공격을 하자 당황했고 청색리자드맨의 숫자도 제법 되어서 피해는 빠르게 커졌다. 4종족의 대난전은 돌골렘들이 전멸되고 녹색리자드맨의 대장이 청색리자드맨의 대장과 눈빛으로 교환하여 몸추기로 할때 홉고블린들이 부상과 피로로 지쳐 쓰러지자 비로소 소강상태에 빠졌다.
'대체 우리들이 왜 싸운 것인지? 분명 맛있는 냄새때문에 올라왔는데?'
녹색리자드맨의 대장이 의구심을 품을때 청색리자드맨의 대장도 똑같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여기엔 동족과 적들의 피비린내와 악취로 가득할뿐, 음식냄새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층부에 있을 '그것'은 불길한 마력과 악취로만 가득한 존재였다. 그때 녹색리자드맨이 천장에서 아까 맡았던 냄새와 비슷한 것이 희미하게 느껴져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들을 발견했다.
"쑤까아아앗!"
던전에 오면서 한번도 같이 다닌적 없었던 두 리자드맨부족은 자세하게 생각할 지능은 없어도 상층의 인간들때문에 이런 사단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알아챈 것이 아니라해도 인간들을 본 이상 본능적으로 죽여야 했다.
"쟤네들 말투가 러시아욕설같네? 쑤까블리얏! xxx! xxx!"
이고설은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마수들과 싸우게 되었지만 리자드맨들의 말투가 독특해서 혹시나 알아들을까하여 러시아욕설 아는 것을 몇개 쏟아내봤다. 애들도 있었지만 욕이라는 것은 알아들을수 있어야 의미있는 것이기에 개의친 않았다. 리자드맨들은 난데없이 자신들의 언어와 비슷한 말이 들리자 당황하다가 자신들의 말을 사용한다고 해도 인간들을 죽이라는 본능때문에 공격을 시작했다. 이미 저들때문에 동족들의 피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그때 녹색리자드맨들이 산성액을 천장으로 토해내자 헌터들이 재빨리 피하면서 산성액이 닿지는 않았지만 천장의 일부가 녹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천장이 모두 녹아 없어지겠지만 무한정으로 산성액을 뱉는 것은 아니었는지 더는 공격이 들어오지 않았다. 청색리자드맨의 대장이 녹색리자드맨과 자신의 부족에게 밖으로 나가도록 고개짓으로 유도하자 리자드맨은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 인간들을 몰살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소수만 남은 홉고블린들이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고 이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할때 남채영과 수진이의 화살이 날아왔다. 지하에 숨어있던 마수들이 전부 1층에 있을때 제거해둬야 했기 때문에 원거리공격을 할수 있는 두명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력화살과 물리화살을 쏘며 11마리의 홉고블린들을 쓰러뜨렸다. 그럼에도 4마리가 남자, 이고설이 올라오는 리자드맨들에 대비하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기둥을 타고 내려가 생존한 나머지 홉고블린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키엑!"
"컥!"
홉고블린들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죽어서인지 고통보다 원통한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고 리자드맨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서인지 1층으로 내려온 이고설을 발견한 마수는 없었다.
"모두 전투에 대비해! 우리가 올라온 계단을 곧 발견할거야!"
성지의 말에 경찬헌터와 시열이가 계단입구쪽으로 달려갔고 창을 든 용찬이 후방에서 따라와 엄호할 준비를 했다. 리자드맨들은 건물주변을 돌면서 올라갈 곳을 찾다가 계단을 발견하자, 계단뿐만 아니라 난간도 붙잡으면서 올라가려고 했다. 이에 가장 랭크가 높은 경찬 헌터와 무장이 잘된 시열이 최전방에서 리자드맨들을 상대할 준비를 할때 성지와 은성이 상층부에서 불길한 마력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했다.
'그, 그것이다!'
은성은 이제 자신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알고는 아티팩트인 램프를 들어 마법을 발현할 준비를 했을때 마수들의 주검들이 매달린 그림자가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는 리자드맨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샤아악!"
"캬학! 칵?"
수십마리의 리자드맨들이 어둠에 덮쳐지면서 마력과 생명력이 말라가면서 죽어갔고 경찬과 시열은 눈에 띄지 않게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은성이 일행들중 가장 앞에 서 있으면서 램프를 들었다. 한편 이고설은 1층에서 그림자가 리자드맨들을 덮치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주변에 있는 감옥안으로 들어가 엎드리며 몸을 낮췄다. 모두들 '그것'의 눈에 띄지않기 위해 리자드맨들의 비명소리외엔 어떤 상황인지 알수 없었지만 비명소리가 차츰 줄어들면서 전멸하고 있다는 것은 알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청색리자드맨이 반이나 생명력을 빨린 상태에서도 1층까지 기어가 살아남는데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엎드려 있는 리자드맨들과 눈이 마주쳤다. 원래 같으면 본능적으로 눈앞의 인간을 공격해야 했지만 기력을 잃은데다 '그것'에 대한 공포로 서로가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자 이고설이 손가락으로 감옥을 가리키며 그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위기의 상황에는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말처럼 리자드맨들은 어떻게든 기어서 이고설이 지시하는대로 감옥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이 1층으로 도망친 리자드맨을 발견하자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두마리중 한마리가 간신히 감옥안으로 들어갔을때 다른 한마리는 입구에 닿기 직전에 그것에게 잡혀, 얼마 안남은 생명력을 빨리며 즉사하고 말았다. 감옥에 들어간 리자드맨은 청색리자드맨 특유의 냉기를 뿜으면서 떨고 있었고 감옥문이 있는것도 아니라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순 없었다. 그래서 동료처럼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때 '그것'은 감옥안에 들어간 리자드맨을 한참 보더니 다시 1층으로 나간후 상층부로 날아가며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휴우.."
"슈.."
이고설과 리자드맨이 같은 심정으로 한숨을 쉬며 안도하자 다시 서로가 눈을 마주쳤지만 리자드맨은 기력도 없는데다 자신을 구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인간을 죽이라는 본능에도 눈앞의 인간을 공격할수 없었다.
"길드장님? 괜찮아요?"
성지가 조심스럽게 1층을 향해 외치자 이고설은 틈새를 향해 모습을 보이면서 무사하다는 것을 알렸다.
"난 괜찮아. 다시 올라갈게."
이고설은 다시 밖으로 나가면 공격당할수 있어서 기둥을 타고 점프하는 방식으로 다시 넓어진 틈새구멍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왔다.
"다행이네요. 근데 저 리자드맨은 살아있는것 같은데?"
"그냥 냅둬. 기력이 빨려서인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이고설은 우연찮게 같이 살아남은 동료로서 리자드맨을 처치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수진과 남채영에게 계속 두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보스 하나만 남은 '그것'을 처리할 방도를 모두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처음엔 대충 던전안 상황만 보려고 했는데 의도찮게 클리어직전까지 왔어. 아까 그놈의 행동으로 볼때 이 감옥의 간수인것 같아."
이고설은 '죄수'가 감옥안에 있는 것을 보고 해치지 않은 그것의 행동과 상층부쪽에 감옥의 관리자가 있었던 방이 있었을 것을 유추해 봤을때 생전에 간수였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동패턴을 보면 마수라는 죄수들이 감옥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순간에 나타나는것 같았다.
"그럼 누군가 밖에서 그것이 나오도록 유도한 다음에 제 마법으로 공격해야겠네요."
고은성이 상황을 파악한 상태에서 말하자 모두가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미끼는 내가 맡을게. 우리들중에선 내가 제일 빠르니까,"
이고설이 자신을 가르키며 그렇게 말했다. 단순한 오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궁수계열과 어쎄신계열일지 모르는 영희보다도 가장 빠른 사람이 자신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지는 걱정하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상급던전에서 싸워온 길드장의 모습과 그것의 속도를 비교하면 이고설이 더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반대할수는 없었다.
"우선 물 가진 사람? 저녁때 먹은게 여기서 다 꺼지네."
철우가 미리 준비해둔 물병을 건네자 이고설은 3분의 1만 마시고 철우에게 돌려주었다. 빠르게 움직일땐 위장이 무겁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던전의 마수들은 의외로 순조롭게 해결된 상황이니까 전원 밖으로 나가면서 게이트쪽으로 사력을 다해 뛴다. 그때 그놈이 나타나면 내가 미끼역할을 하는 동안에 은성군이 빛마법으로 일격에 공격하는 작전을 펼친다.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이고설의 말에 경찬헌터와 영희가 대답했다.
"마냥 피할수 없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으니 내가 엄호하겠네. 그놈은 마수들의 시신들을 육신으로 삼는것 같으니까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긴 할걸세."
"저는 만일의 경우가 발생할때 방패로 막겠습니다."
그리고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시열이가 앞으로 나서면서 자신도 참여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이곳에 오면서 마수들과의 전투로 제대로 치루지 못했기에 뭐라도 베어야 직성이 풀렸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일이기에 이에 걸맞는 활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고설은 세사람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승낙했다. '그놈'이 위험한 존재이긴 하지만 이들도 상당한 베테랑이기에 어떻게든 자기몸을 지켜낼 것이다. 특히 겉으로 보면 가장 걱정되는 영희는 자신이 귀하게 대하는만큼 별일 없을 것이라 여겼다.
"수진양은 물리화살이니까 마지막까지 쏘지 말고 아예 그놈의 생김새를 그리는데 집중해줘라. 채영씨도 필요한 만큼만 엄호사격을 해주시면 됩니다. 저놈은 빛속성이외의 마력을 에너지로 흡수할수 있는것 같으니까요."
팀내 두명뿐인 궁수들이 그의 말에 끄덕이자 작전이 시작되었다. 팀원중에서 철우와 프리헌터의 탱커가 먼저 앞장서서 게이트쪽으로 달렸고 그 다음으로 노계순과 예나, 그리고 용찬과 인기가 따라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중간엔 성지와 두 궁수들이 따라갔고 남은 인원이 천천히 내려가면서 그것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대비를 취했다. 성지와 궁수들을 제외하면 다들 게이트에 가까이 가면서 주공격대들이 감옥밖에서 전투에 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에 예나는 라틴어로 사악한 것을 쫓는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응? 힐러가 마법도 가능했나?'
노계순은 예나의 기도가 상징적인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만 귀엽게 재잘대는 기도문에 왠지 안정감이 드는 느낌이었다. 용찬과 인기,철우와 프리탱커는 비전투원들을 지키면서 건물의 위쪽을 긴장감을 지니며 바라보다가 예나의 기도소리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온다."
리더인 이고설이 상층부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자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상층부의 통로를 지나 마수들의 사체로 뒤덮힌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_________'
소리는 나지 않지만 기운으로 이루어진 포효가 주변에 메아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간수'가 감옥을 빠져나온 죄인들을 다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만으로도 전부 전투준비자세를 하거나 자신의 장비를 굳세게 잡으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고설만은 아직 검을 뽑지도 않으면서 꼿꼿이 선채 '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특정한 약점'엔 상당히 겁을 집어먹는 일이 많았지만 그외는 대범하게 움직이는 성격인데다 간수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한 것도 있었다. 수진은 던전보스인 그것이 나타나자마자 두려움을 이기려고 맹렬하게 그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다들 산개하게, 리더가 상대하는 순간에 우리들이 나설 틈을 찾는 것이야. 은성이도 가능하면 후방으로,"
경찬헌터가 지시를 내리자 이고설의 주변은 충분히 넓어지며 공간이 생겨났다. 그때 '간수'는 가장 먼저 눈에 띈 이고설을 덮치려 했다.
'쾅!'
마수들의 시체더미가 땅바닥에 박는 충격으로 썩은 살점과 뼈등이 터지고 부러졌지만 '간수'의 망집때문인지 떨어져나가는 것은 없었다. 투석기의 폭격같은 속도로 낙하했지만 이고설은 어렵지 않게 피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브르를 뽑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령같은 것을 상대하는 것이어서인지 정교회에서 쓰이는 고대슬라브어로 기도문을 외우며 간수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주변의 동료들은 도와주고 싶었지만 간수의 특이성때문에 자리를 지키며 전투자세를 취해야 했고 그러면서도 파고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고설은 제대로 그것의 존재를 볼수 있게 되자 던전보스들이 대다수 던전의 등급보다 한등급 높듯이 C급정도의 마수라는 것을 알수 있었고 그것도 최상급의 마력을 지녔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이러한 존재는 물리공격이 통하지 않지만 마수들의 시신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칠수는 있는 상태라 에너지를 흡수당하지 않으려도 상당히 빠른 검격을 얕게 넣기 시작했다.
'퍽! 퍼퍽!'
물리적으로 건들수 있는 부분은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고설은 저 마수들의 주검으로 덮혀 있는 것이 아마 빛을 막기 위한 일종의 망토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하자 점차 검격을 빠르게 휘두르면서 겉부분을 갈아버리듯이 베어냈다. 때문에 아직 형태를 지닌 마수들의 주검이 벗겨지면서 눈알이나 내장등 징그럽고 끔찍한 부위가 쏟아져 나오자 전투경험이 꽤 있는 수진과 성지,채영이 구토가 나올 정도였지만 이고설은 개의치 않고 마수들의 주검들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가죽과 쏟아지는 내장까지는 망집으로 주워담을수 없었는지 조금씩 면적이 줄어드는것 같을때 간수의 물리적인 공격이 시작되어 주검으로 된 망토를 휘둘렀지만 이고설은 충분히 피할수 있는 속도였다.
"저놈의 겉에 두른 주검들을 공격해야해! 그래야 은성군의 빛마법이 통할수 있어! 몸에 닿거나 둘러쌓이지 않게 조심해!"
이고설이 주변의 동료들에게 해법을 찾아낸듯 알려주자 구경만 해야했던 전투원인 동료들은 드디어 싸울수 있게 되자 간수에게 달려들었다. 경찬헌터가 드디어 쌍검을 뽑아 마치 춤을 추듯이 회전하며 검을 휘두르자 그라인더날같이 주검으로 된 망토를 이고설보다 상당히 벗겨내었다. 간수와 비슷한 C급이기에 데미지가 더 들어간 것이다. 시열도 간혹 튀어나온 뼈나 길게 나온 몸통을 베면서 성과를 보이자 간수는 몸을 크게 돌면서 주검들의 뼈나 발톱만 절묘하게 발사했다. 경찬헌터는 아예 피해버렸고 시열은 검으로 막으면서 몸통부분은 갑옷의 방어력에 맡기는 식으로 버텨냈고 이고설은 아예 사각지대로 피해있었다. 그때 공격을 할수 없어서 방어만 가능했던 영희에게 다량의 파편이 날아오자 밖에서 임시로 만든 뚜껑방패를 이용해 절묘하게 비껴가게 하는 식으로 전부 쳐내었다. 극상의 기술로 받아넘겼지만 뚜껑이 마정석으로 만든 것이 아닌 평범한 철이어서인지 파편이 약간 스친것만으로도 부서져 버리자 본격적으로 몸통에 묶은 자신의 버클러방패 두개를 꺼내었다. 전원 무사한 상황이 되자 채영이 벽을 딛고 점프하면서 간수의 머리부분일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 강력한 마력화살을 발사했다. E급의 마력화살이었지만 주검으로 된 망토의 틈사이로 절묘하게 들어가면서 맞추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마력진동이 일어나면서 맞혔다는 것은 알았지만 데미지를 준것 같지는 않았고 채영의 마력화살이 빨려들어간 느낌이었다.
"역시 빛속성이 아니면 안되겠네. 마법계열은 은성군빼고 공격중지! 수진이도 공격하지마!"
이때 인기는 전투에 나선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의 괴력으로 저 주검들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괜히 저놈에게 기력을 흡수당하면 더 악화가 되니까 나설수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감옥던전의 1층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간수는 이고설일행과 전투중이었고 자발적으로 감옥안으로 들어가기에 막을 이유는 없어서 이고설일행들을 공격하는데 집중했다. 인기는 1층안으로 들어가면서 여기저기를 쳐다보다가 흠집이 많은 기둥을 발견했다. 그 과정에서 감옥안에서 탈진한 리자드맨을 보았지만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서 무시하곤 다 부서져가는 기둥을 붙잡아 힘을 주었다.
"끄응차!"
전봇대굵기의 기둥이었지만 굉장히 단단한 것으로 만들어서인지 수많은 흠집과 풍화에도 무너지니 않았던 기둥이 건틀릿의 능력으로 C급의 괴력을 발휘하는 인기의 힘에 기둥이 뽑히기 시작했다. 상당히 높은 감옥던전의 1층답게 기둥도 길었는데 인기는 그걸 들고 간수에게 달려갔고 리자드맨은 인기의 괴력에 놀라 좀더 감옥안으로 기어갔다.
"이야아아아아아!"
인기가 기둥을 뽑아 들고 감옥밖을 나오자마자 간수를 향해 기둥을 엄청난 힘과 스피드로 휘두르니까 야구방망이에 맞은 공처럼 몸통이 크게 휘어지면서 마수들의 주검들이 크게 튀어나갔다.
'꽝!'
"홈런이다!"
인기가 어처구니없는 힘으로 간수를 날려버리자 용찬까지 합세해 모든 전투원들이 주검들을 베고 짓이기면서 주검으로 된 망토를 벗겨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건틀릿만의 힘은 아닌것 같은데 정말로 힘이 세군. 인기야,"
"괜히 매일 운동한 것이 아닙니다! 형님, 아니 길드장님!"
E급으로 측정될때부터 D급에 가까워지려고 거의 초인적으로 단련한 인기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을 보여준 것이다. 간수는 주검망토가 절반가까이 사라졌고 멀리서 은성의 빛마법이 점차 강해지는걸 느끼자 오로지 눈엣가시같은 이고설을 먼저 공격했다. 덩어리에 가까운 주검망토가 대부분 사라지자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는데 D급어쎄신에 가까운 속도여서 이고설의 초인적인 속도와 판단력으로 간신히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은성이 빼고 모두들 최대한 흩어져!"
전투원들은 주검망토가 벗겨지면서 상당히 빠른 속도를 내고 있는 간수를 보자 완전히 주검망토를 벗길수가 없었고 리더의 말이라 재빨리 뒤로 피해있었다. 그리고 이고설은 교묘하게 은성이 있는 쪽으로 간수를 유도하면서 어렵사리 공격을 피해갔다. 사람으로 치면 목덜미부분에만 남아있는 주검망토를 은성에게 가까이 온 순간에 사브르로 여러번 베어 마침내 모두 벗겨내자 그것의 속도는 C급어쎄신수준으로 갑자기 빨라졌다. 이고설은 이제 피하기 힘들어지면서 도박을 걸기 시작했다. 이고설이 남은 힘을 쏟아부으며 점프하면서 간수의 머리부분일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 사브르를 꽂아넣었다.
"은성아! 지금이야!"
원래라면 물리적으로 베거나 꽂을수 없었지만 사브르는 꽂히듯이 멈춰있었다. 그 이유는 간수가 이고설의 멱살을 잡은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력과 생명력이 뽑혀나가는 느낌이 들때 은성이 든 램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나왔다. 레이저빔같은 것을 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빛마법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둠으로 되어 있는 간수에게 큰 타격을 주는듯 했다. 그림자간수는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어두운 몸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는데 이고설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도망가지 않게 생명력이 뽑혀나가면서도 머리라고 짐작되는 부분에 오른손을 넣어 쥐었다.
"어딜 도망가! 응..?!"
머리부분이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자 엄청난 속도로 기억인지 환상인지 모를것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감옥던전이 폐허가 되기전부터의 모습부터 인간을 닮은 종족인 죄수들이 감옥에 갇혀있는 모습들, 그리고 생전의 간수라고 짐작되는 자의 뒷모습등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식사를 하다가 밖에서 이변이 발생하는 것을 느끼곤 나가봤는데 하늘에 마치 게이트같은 거대한 구멍이 열리면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는 영상이었다.
[....왕국 ...감옥의 관리인인.. 나는.. 그것으로부터 대처해.. 싸우기 시작..했다..]
언어인지 보이지않는 자막인지 모를 내용들이 이고설의 머리에 들어왔다. 이 감옥의 주인이 있던 세계는 어느정도의 군사력을 지녔는지는 모르나, 외부의 침공자들에 맞서서 싸웠고 이렇게 패배의 대가를 치룬 것으로 보였다. 그 세계는 지구와 같은 각성자들이 부족했는지 지구처럼 막아내지 못했거나 게이트에서 나온 적들이 상당히 강했던것 같았다. 이고설은 알고 싶다는 욕구와 호기심때문에 생명력이 고갈되어가는 고통을 잊어가며 버텨왔지만 어느새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대는.. 지켜..내길..]
"길드장님!"
"길드장님! 조금만 버티세요!"
정신을 잃었어도 성지의 목소리와 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예나의 힐이 최대한 발현되자 말라가던 생명력을 되찾은것 같았다.
"정신이 드셨어! 얼른 물을!"
성지가 직접 이고설의 머리를 무릎에 앉히곤 물을 마시게 하자 물이 왜 생명을 상징하는지 이고설은 이해할것 같았다.
"우린 먼저 길드장님을 데리고 갈게! 다른분들하고 길드원들은 마정석같은거 조금만 챙기고 나와야해!"
인기가 이고설을 업고 성지와 함께 게이트밖으로 나가려는 동안 체렉길드와 프리헌터들은 기왕 던전안에 들어온 김에 돈이 될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D급마수들이 수백마리나 죽어나가서인지 D급마정석들도 상당히 쏟아져 나왔고 철우는 곡갱이를 들고 쓰러진 골렘을 부수면서 마정석과 돌조각들을 얻고 있었다. 그러다 감옥안에서 계속 쓰러진 리자드맨을 보자 전투나 살생엔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이라서 일이 끝난후엔 물통 하나만 던져주고 서둘러 나왔다. 다 죽어가도 D급마수이기에 물을 마시고나면 다시 움직일수 있기 때문이다.
"길드장님이 잡지 말라고는 했는데 저대로 둬도 괜찮나요?"
용찬이 철우에게 묻자
"어차피 게이트도 닫힐건데 놔두죠. 마정석이나 부산물도 제법 얻기도 했고.. 굳이 죽이기는 좀.."
철우와 용찬이 리자드맨을 바라보자 리자드맨을 물통을 뜯어 물을 허겁지겁 마시고는 일어설수 있게 되자 자신이 있던 지하로 다시 들어갔다. 인간을 공격하라는 본능보다도 본연의 생존본능을 우선시한 것이다.
"대충 다 챙겼으니까 나가자고요!"
남채영이 그렇게 소리친후 일행과 함께 게이트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던전도 무너질 기미가 보였고 던전의 어둠은 계속 되어서 은성이 지속적으로 빛을 밝히며 던전을 비추면서 동료들을 게이트까지 안내했다. 프리헌터들과 길드가 모은 마정석등의 부산물등은 철우의 리어카에 가득 담겨있어서 무척 무거웠기에 힘이 약한 영희를 제외한 길드원들이 끌고 가야했다. 그때 게이트에서 경찬헌터가 돌아와 리어카를 끄는데 합류했다.
"남의 리어카까지 빌려서 담았는데 도와주지도 않다니, 요새 젊은이들은.."
경찬헌터의 말을 들었는지 뒤늦게 프리헌터들도 돌아와 리어카를 끌고 게이트밖으로 나가자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의 환성이 울려퍼졌다.
"게이트클리어다!"
"C급 한명만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E급이었는데 클리어했네?"
"계속 기다리길 잘했어! 축하해요!"
"빛의 마법이 있어야 보스를 잡을수 있다더니 저 꼬마마법사가 해냈네? E급이라도 빛마법이기만 하면 되는건가?"
밖에서 대기하던 E랜드의 힐러가 이고설을 응급치료하고 있었는데 외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서 힐로는 한계가 있다고 알려주었고 뒤늦게서야 헌터협회에서 사람이 왔다.
"협회에서 왔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신 것은 축하하지만 협회의 허락이 있기 전에, 그것도 무모하게 E급위주로 던전에 들어가셨다니 규정위반입니다."
한눈에 봐도 깐깐하게 생긴 협회직원이었다. 협회에선 던전이 새로 발견되었을때 허락없이 들어가거나 클리어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며 체렉길드에 제재를 걸려고 했을때 이고설이 힘겹게 일어나 그와 이야기하기로 했다.
"맞는 말입니다만, 저흰 특수한 길드라서 C급이하던전은 길드가 창설된지 1년동안 협회의 허락없이 들어가거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어 있습니다."
이고설은 던전안에서의 상황도 특수했다면서 여타 동굴-마수만 있는 던전과는 다르게 다른 세계의 문명흔적도 발견되었다는등의 중요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협회직원은 체렉길드에 대한 것을 살펴보자 이고설의 말대로 되어있어서 제재는 없던 것으로 했다. 그때 E랜드길드소속의 리더는 비용이나 조건없이 C급이하의 던전에 들어갈수 있다는 소리를 듣자 부러워하려다가 체렉길드가 전원 E급으로 되어있다는 정보로 인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던전클리어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흰 여기서 물러나겠습니다. 나중에 또 만날때가 있다면.."
E랜드길드원들이 수확도 없이 사라졌고 이고설도 간단한 조서를 끝내자 협회직원은 다음 근무지를 향해 떠났다. 체렉길드와 프리헌터들은 리어카를 저녁식사를 한 인도요리집의 지하주차장을 빌려 그곳에서 부산물들을 나누기로 했다.
"여러가지 일이 많았지만 협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고설은 체렉길드가 얻은 마정석 대부분을 프리헌터들에게 넘겼고 무게가 나가는 골렘조각이나 부엌에서 발견한 주방도구등은 길드에서 챙기기로 했다.
"우리들이 도움을 많이 받았지. 그럼 또 나중에 보세."
프리헌터들은 식당에서 자루나 봉지를 빌려 마정석들을 담은후 체렉길드와 헤어졌다. 경찬헌터를 제외하면 같은 E급들이어서인지 다들 동료의식이 생긴것 같았다.
"이렇게 끝날줄은 몰랐지만 엉겁결에 D급던전클리어에 또 성공했네."
"그렇네요. 하도 깜깜한 곳에 있어서 잠을 제대로 잘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럴땐 밝은 분위기의 영화를 보는게 좋아."
성지는 여전히 무드와 벽을 쌓은 이고설의 말에 콧웃음을 치며 수확물들을 정리하러 떠났다. 이고설은 투구를 벗기 시작한 안시열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걸쳤다.
"생일날인데 고생많았어."
시열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사에겐 전투가 큰 선물입니다. 마음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열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식당밖으로 먼저 나가기 시작했다.
'쟤는 마수들이 출몰 안했으면 뭐하면서 살았을지 궁금해..'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들이 출몰하는 시대가 되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기를 겪고 불행해졌지만 저렇게 자신의 세상을 찾은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는것 같다고 이고설은 생각했다. 거기엔 자신도 포함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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