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인천공항-
"일, 일본인이시라고요?"
공항직원은 일본인이라면서 누가 봐도 미국인을 연상시키는 카우보이 복장을 한 동양인아가씨였기에 하도 당황해서 일본어로 물어보는게 아니라 한국어로 물어볼 정도였다.
"맞,습니다. 이름에 적힌 대로 '오가와 에이코' 본인입니다."
공항직원은 실수로 한국어로 말하자 같은 한국어로 유창하게 대답하는 일본인(?) 아가씨에 더 놀라며 말을 하지 못했다.
"어..? 어..?"
그리고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카우보이복장의 아가씨뒤로 비슷한 복장의 여성들이 더 있었고 서양인도 포함된데다 같은 일행인지는 모르지만 해군복 같은 것을 입은 훤칠한 아가씨도 대기중이었다. 눈앞의 아가씨도 키는 컸고 나이도 20대 중반으로 나왔지만 여고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국적은 일본으로 되어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가야 놀라지 않는 일이 생기지?!'
직원은 꼼꼼한 체크를 해야 하는데 넋이 반은 나간 상태라서 제대로 된 심사를 하지 못하고 우루루 들여보낼 판이었다. 그러다 눈앞의 아가씨의 허리춤에 대놓고 권총이 보이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들었다.
"총! 그거 총이죠?!"
오가와 에이코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이건 마수사냥용이라서 괜찮아요. 국제총기협회와 헌터협회의 허가서도 있고요."
직원은 오가와 아가씨의 마수사냥이라는 말에 그제서야 이들이 길드에 속한 헌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 헌터증."
일본에선 마이넘버라고 불리는 민증도 제대로 들고 다니지 않다보니 헌터증도 두고 올 뻔했지만 모처럼의 해외여행이라서 자신이 전원의 헌터증을 챙겨왔다.
"웨스턴레이디 길드의 길드마스터..? 오가와 에이코 A급?!"
아무리 헌터라고 하지만 던전레이드나 던전브레이크가 일어난게 아니면 함부로 무기를 들고 다닐수 없었지만 오가와는 여행중에 만일 벌어지는 마수와의 전투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갖지 않고 마수에 대한 위협이 생기면 조건없이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무기를 휴대하고 들어올수 있었다.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뒤로 뭔가 더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입국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위에서도 연락해보니 문제없다고 보내줄수 밖에 없었다.
"아, 여행목적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관광이요!"
오가와는 직원에게 손을 흔들며 마침내 안으로 들어왔고 사람들은 코스프레 행사를 하는줄 알고 사진을 찍었다. 오가와는 내친김에 카우보이복장을 한 길드원들을 모두 불러 사람들과 함께 서비스로 사진을 찍어주는등 인기와 인지도를 높혔다.
-오케이목장 스테이크집-
밖에서도 자주 검을 차고 다니는 자신이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총은 들고 다닌 적은 없었던 이고설은 외국인 아가씨들이 전원 총을 갖고 있어서 긴장하고 있었다. 모두들 나쁜 느낌은 없어서 아마 마수들을 상대할때만 쓰는 무기겠지만..
"주인아저씨, 저 아저씨가 먹는 것으로 하나주세요. 무츠=상은?"
"오가와=상, 와타시와 더치페이,"
서로 복장이나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오가와라 불리는 아가씨가 사주겠다는데도 무츠라는 아가씨는 직접 메뉴판을 들고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가와 아가씨가 말하는게 잘 들렸다?
"아가씨, 한국어 잘하시네요?"
주문할때 자연스레 유창한 한국어로 주문해서인지 이고설은 일본말이 유창하게 들리는 것으로 착각했다.
"동료중에 한국인이 있어서요."
오가와는 서양인동료들 세명에겐 보통크기의 스테이크를 사주는 것으로 주문을 끝냈다. 그중 한명은 힐러로 보이는데 의사가운을 모델로 한 로브를 입고 있어서 눈에 더 띄었다.
"혹시 길드분들이십니까?"
이고설이 드물게 여성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분명 마력의 기운을 볼때 길드마스터일게 확실한 이 아가씨의 앳되게 생긴 얼굴을 보면 예나와 수진이가 생각나서인지 말을 거는게 가능했다. 그리고 왠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근한 느낌도 들어서 벌써부터 호감이 생기는것 같았다.
"아저씨도 한국말 잘 하시네요? 네. 저희들은 일본의 길드인 '웨스턴레이디'소속이예요. 미리 말씀하는데 미서부가 아니라 서일본출신들이 많아서 그렇게 지은거예요."
동료중에 한국인이 있다고 해도 받침이나 '어'발음도 문제없이 잘해서 아마 이 아가씨본연의 재능같았다.
"아저씨도 마력이 느껴지는데 헌터인가요?"
오가와는 약한 마력이 느껴져서 E급임을 짐작했지만 굳이 등급을 얘기하는 무례는 하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약소하지만 길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와~! 나처럼 길드마스터인 거네요?!"
오가와는 이렇게 약한 마력의 헌터도 길드마스터가 될수 있는 것에 신기해 했다. 아마 수완이 좋아서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이제서야 이고설에게서 느껴지는 오랜 경륜과 생사를 여러번 넘나든 강인한 육체가 옷의 겉부분에서 드러나는걸 확인했다.
"네. 그렇습니다.."
"오가와=상!"
그때 무츠가 오가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서면서 필요이상의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 그녀는 오가와가 생김새만큼이나 일본인같지 않게 구는 것에 항상 못마땅했다.
"옙!"
이고설은 일어선 무츠의 허리춤에 달린 기병도를 보면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 칼, 미국의 세이버인 M1840 맞죠?"
무츠는 한국어를 알아들을수는 있어서-사실 발음때문에 한국어말은 안하는- 자신의 세이버를 보다가 알아보는 이고설에게 신기한 눈빛을 보냈다. 이고설은 아예 영어로 무츠에게 자신도 동유럽계통의 세이버인 샤쉬카를 주무기로 쓰고 미국의 세이버동호회에도 가입했다고 알려주자 뜻밖에도 약간 발음이 서툴지만 무츠라는 아가씨에게서 영어가 흘러나왔다.
"실례지만 아이디를 알수 있겠습니까?(영어)"
무츠의 말에 이고설은 원래 이름인 이고쇼르라고 철자까지 알려주자 무츠는 아이디를 보고 제법 유명한 동호원이라며 기뻐했다.
"저는 이름을 따서 mutsu라고 아이디를 지었습니다. 저처럼 세이버를 사용하시다니 훌륭하시군요.(영어)"
이고설도 국내에선 거의 자신만 세이버계통의 검을 사용하는것 같아서 동포를 만난것 같았다. 그때 오가와가 끼어들었다.
"얘는 검을 사용하지만 마법계예요. 등급은 C급,"
"오가와=상!"
뭣 때문인지 무츠는 마법계면서 전투계로 보이려고 하는것 같은데 이고설은 그녀의 모습에 뇌전마법을 사용하면서 검을 휘두르는 성지가 생각났다.
"우선 네분의 스테이크가 먼저 나왔습니다. 계산은 따로 했지만 동료분 맞으시죠?"
"예스."
"예스."
"하이,"
서양쪽 아가씨들 두명은 레어스테이크를 받아들였고 다른 한명은 미디엄, 무츠는 웰던으로 받았다. 이고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직 자신의 스테이크가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고는 식사를 재개했다.
"생각해보니까 양이 엄청 많네요? 그게 전부 들어가나요? 단백질은 하루 적정량만 먹어야 효과적이라는데?"
무츠는 계속 옆자리를 기웃거리는 오가와를 보면서 또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식사중엔 오로지 식사만 하는 철칙이 있어서 '다 먹고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노려봤다.
'저 아가씨, 성지하고 비슷하네?'
이고설은 호기심많은 오가와의 질문에 전혀 개념치 않으며 답해주었다. 그러면서 소극적인 일본인과 확실히 틀리다는걸 느꼈다.
"제가 육식동물형이라서 그렇습니다. 고기를 밥처럼 먹죠."
과장은 아니었다. 어릴때부터 고향땅이 고기위주로 먹는 지역이었지만 순수하게 야채나 소스없이 고기만 먹는 일이 많아 부모님들이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오히려 정상으로 나왔었다. 이후 유라시아를 횡단했을때도 불을 못 구해서 생고기를 뜯으며 여행했을때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헤에..? 정말 그런 체질이 있었네?"
그때 주인이 마침내 이고설이 먹는 크기의 스테이크를 다 구웠는지 나무밑둥만한 것을 가져왔다.
"여기요. 아가씨가 다 먹을수 있을까 모르겠네? 남으면 포장도 됩니다."
"네. 혹시 위스키도 있나요?"
"있죠."
오가와는 처음엔 말그대로 아가씨처럼 스테이크 일부를 썰어서 먹다가 위스키가 나오자 병째로 들이키고 나선 무슨 바바리안처럼 뜯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무츠는 빨리 먹고 한소리하려는지 식사속도가 빨라졌다.
"우걱! 우걱!"
예전에 지인이 보여준 일본만화에 나왔던 대식가처럼 이 아가씨는 술이 들어가자 폭식, 말그대로 폭력적인 식사를 하였고 A급에 걸맞게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저작(咀嚼)하여 먹자마자 삼키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빠르게 스테이크를 해치워 나가고 있었다. 이고설도 절반 가까이 해치우고 있었지만 늦게 먹기 시작한 오가와는 어느새 한점만 남길 정도로 그 큰 것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것이다. 일행들은 아직 반이나 남아있었다.
"앙~"
마지막 남은 한점은 간식을 먹듯이 귀엽게 입에 넣은 오가와는 주인장을 극찬했다.
"잘먹었습니다. '미서부지역'에서 먹던 맛 그대로네요."
더이상의 손님이 없어서인지 여유가 생긴 주인은 아예 오가와가 있는 곳으로 나와 그녀와 직접 대화를 나눴다.
"감사합니다. 이 메뉴는 양때문인지 원래 한달에 한번 나가기도 힘든 것인데 하루에 두개나 나가니 기분이 좋네요. 원래 미서부지역에서 일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테이크를 배운후 캘리포니아에서 식당을 열었죠. 그러다가 7년전 '카미쉬'가 나타난 재앙적인 사건때문에 기적적으로 살아난후 한국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재미교포였던 주인장은 미서부를 초토화시킨 S급마수 카미쉬의 등장에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그 때문에 미정부로부터 생존특혜로 받은 지원금을 받아 한국으로 와서 다시 그곳 분위기의 식당을 연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고설은 낙천적인 성격인 오가와가 '카미쉬'라는 단어에 굉장히 짧게 흠칫 놀란 것을 발견했다. 그후로도 밝은 표정을 유지했지만 처음으로 가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느새 식사를 끝내고 오가와에게 한소리 하려던 무츠도 카미쉬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침묵했다.
"혹시 미서부에 가보셨다면 영어도 가능하시겠네요?(영어)"
주인장이 갑자기 오가와에게 영어로 대답하자 그녀도 영어로 답했다.
"삼촌이 그쪽에 살아서 배웠어요. 몇년전에는 거기서 바케로(카우보이)일도 했고요.(영어)"
"저처럼 남부쪽 영어를 쓰시는군요. 미국영어가 대부분 그렇지만요.(영어)"
이고설은 자신이 배운 영어도 남부쪽이었는지 알아들을수 있었다. '뷰됸니의 아이들'에 있을때 기마술을 가르쳐준 교관이 미국에도 갔다왔다는 것이 기억났었다. 소련시절이라서 어떻게 갔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인연(inren)인데 서비스로 아이스크림은 어떠신지요?(영어)"
주인장이 일본인손님이어서인지 인연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면서 후식을 가져올지 물었다. 영어엔 인연을 뜻하는 통합적인 단어가 없어서인것 같았다.
"좋아요.(영어)"
오가와는 모국어보다 남부영어를 쓰는 것을 즐겼는지 영어를 주로 쓰는것 같았다. 주인장이 곧 아이스크림을 가져오자 이고설에게도 하나 놓아주었다.
"전 안 시켰는데요?"
"서비스입니다. 그리고 아까 들어보니 헌터이신것 같은데 사람들을 지켜주는 분이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마침 스테이크도 비운 상태라 홍차를 주문하려는데 커피밖에 안 보여서 아메리카노로 시켰다.
"네. 그럼 아메리카노 한잔,"
이고설은 주인장의 모습이 사라질때 푸념을 놓았다.
"이놈의 나라는 차를 마시기 힘들어. 홍차한잔이 그렇게 귀한가?"
오가와는 뱃속이 벌써 꺼졌는지 아이스크림을 맹렬하게 먹으면서 이고설에게 물었다.
"홍차를 좋아하는걸 보니 러시아같은데서 귀화하셨나봐요?"
오가와는 영국쪽보다는 중앙아시아쪽 외모라 그렇게 물어보았다. 무츠는 이번에도 식사할땐 식사만 하는 원칙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엔 테클을 걸수 없었다.
"카자흐,몽골,러시아와 만나는 부분에 있는 공화국에서 살다가 왔습니다. 조상님은 한국분들이었다고 하고요."
이고설은 조상이 독립운동하다가 만주,러시아로 거쳐 중앙아시아쪽으로 갔다가 부모님대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일본과 관련된 독립운동에 대한 것을 설명했는데도 일본인인 그녀는 그닥 불쾌감이나 꺼리는 느낌이 없었다.
'그나저나 성지말고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해 본 여성은 어머니밖엔 없었는데..?'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어서일까? 아니면 털털한 성격때문인 것인지 그녀와 대화할때는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제외하고 이것저것 들려주었다. 이미 친구처럼 대화하자 무츠는 상대방도 불편한 기색은 아니라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 안 시켰는데?'
"서비스입니다."
주인장은 같은 카우보이복장에 미서부에서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오가와의 동료들까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스테이크를 제외한 모든걸 무료서비스로 제공했다.
"이쪽분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단한 모험을 하셨더군요. 이거 인연인가 봅니다. 혹시 길드를 이끄시나요?"
이고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길드를 이끈다고 말해주었다.
"얼마전에 체렉이라는 이름의 길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C급던전에 도전하죠."
주인장은 왠지 어디선가 체렉이라는 이름을 들어본것 같아서 갸웃했고 오가와는 길드장인 이고설의 마력이 약해서 약한 헌터들에겐 C급던전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큰 모험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E급인 동료들이 제법있었지만 B급인 동료도 많아서 C급은 어렵지 않게 클리어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길드장이 E급이라면 길드원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꽤 험난할 것이다. C급던전은 하급과 상위랭커의 분기점이라고 볼수도 있었으니,
"클리어보다는 경험위주라서 길드 두군데와 연합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고설은 자신의 길드만으로 C급에 도전하는줄 알고 서둘러 해명했다. 물론 자신의 길드만으로도 가능성이 있겠지만 협회에선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때 의사복장을 한 사람과 무츠를 제외한 오가와의 동료들이 이고설에게 다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인장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손님들의 식기를 걷어서 정리하느라 다가가진 못했다.
"한국에서 말을 타고 활약하는 헌터는 처음 봐요. 저는 미국에서 서부재건때 말을 탄 적이 있었는데.(영어)"
무츠라는 여성만큼 키가 크고 활발한 서양인 아가씨가 어느새 이고설앞에 다가왔다. 식사도 끝냈고 이고설이 영어를 할줄 알아서인지 대화를 나눠보려는것 같았다. 이고설은 오가와때와 다르게 이 아가씨에게 여러가지로 압박감을 느끼자 입조차 열지 못했다.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바바라 스탠리라고 해요. 미국 아이다호 출신인데 지금은 길드때문에 일본국적이죠.(영어)"
"...."
그때 바바라보다 차분한 분위기에 흑발이어서인지 동양인 혼혈로 보이는 아가씨도 다가왔다.
"전 미첼 스미스.. 와이오밍주 라코타족 출신입니다.(영어)"
"예.."
인디언출신이라 동양인에 가까운 외모같았다. 바바라와 미첼은 오가와 에이코와 다르게 총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긴 가방을 각자 갖고 있어서 소총을 사용하는것 같았다.
"난 안젤라 버튼, 미네소타주 노먼카운티출신이고 다른 애들처럼 국적은 일본이야.(영어)"
"예.."
의사복장을 한 아가씨는 자기소개시간이 되는것 같아서 간단하게만 소개를 하고 끝냈다. 그녀의 허리춤엔 총이 착용되었는데 총구가 가는걸보니 무기보다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짧은 소개를 했지만 굉장히 드물다는 녹안을 갖고 있어서 이고설의 뇌리에 남았다. 그때 무츠도 벌떡 일어서더니 군인처럼 경례하듯이 자기소개를 했다. 다만 거수는 안하고 서양식처럼 가슴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소개했다.
"저는 웨스.. 아니 길드의 부길드마스터인 야마모토 무츠라고 합니다. 길드마스터와는 같은 야마구치현 출신이고 시모노세키시에서 태어났습니다.(일본어) 자, 잘,부탁드리무.. 드림니다.."
"예, 옙!"
일본어를 알아듣는 눈치라서 자국어로 소개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한국어발음을 어느 정도로는 정확하게 발음하며 소개를 했다. 이고설은 군인같은 분위기여서 그런지 무츠는 여자라고 꺼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성씨는 들었겠지만 정식으로 이름을 소개하겠습니다. 웨스턴레이디길드의 길드마스터 오가와 에이코입니다. 무츠=상이 말했듯이 야마구치현 출신이고 히카리시에서 태어났죠."
오가와는 같은 길드장끼리여서 그런지 서양식으로 카우보이 모자를 왼손으로 벗고 배에 오른손을 가져다대는 방식으로 정중하게 인사했다.
"예, 예.. 저는 이고설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오기 전엔 이고쇼르로 불렸죠."
이후 이고설은 한국어와 영어, 조금 알고 있는 일본어까지 총동원해서 외국길드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푸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에이코가 쓰고 있는 모자는 서부에서 카우보이로 일했던 삼촌이 남긴 선물이라고 알려주었고 카우보이모자 특유의 구겨진 부분은 오랫동안 손으로 잡고 벗을때 나오는 형태라고 알려주었다. 그만큼 오랫동안 쓴 모자라는 뜻이다. 무츠와는 어릴때 우연히 시모노세키시와 히카리시를 서로 오가다 만난후 친해졌고-오가와 기준으로- 둘다 20대에 헌터로 각성한 후엔 길드를 세우게 되었는데 오가와는 카우보이컨셉으로 하려고 했고 무츠는 이곳이 일본지역인데다 전통적이어야 한다며 구일본군과 전국시대의 일본군컨셉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서로 알력을 내세우다가 두 컨셉이 반반섞인 괴상한 길드가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공통점은 길드원 전원이 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무츠는 다른 일본길드들처럼 고리타분해서 자위대보다도 더 군대같이 만들려고 해요. 자유롭게 해줘야 능수능란하게 싸울수 있는데."
"마수들과의 전투는 장난이 아닙니다. 전열을 완벽하게 재정비하지 않으면 위기에 빠질수 있습니다!(일본어)"
이후 외국출신 아가씨들도 이야기를 했는데 카미쉬때문에 고향을 잃거나 서부컨셉으로 길드를 만든다는 오가와의 적극적인 홍보때문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외국출신들이 흥미가 생겨 찾아왔다고 한다. 미국은 S급만해도 몇백명이고 상급헌터들도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서 B급인 자신들은 외국으로 가야 헌터대접을 받는다고 알려주었다.
"진짜로 서부분위기의 길드를 만들려고 하니까 주변의 일본길드에선 나라망신이라며 텃세를 부리기도 했어요. 이걸 일본어로 무라하치라고 하나?"
바바라의 말대로 일본적이지 않는 길드는 그나마 길드의 절반이 무츠의 양도하에 뭔가 일본적인 분위기가 되면서 왕따같은 것을 덜 당했다고 한다.
'의도치않게 다국적인 모습이 된 우리길드는 별로 욕을 먹는 일이 없었는데? 사무라이컨셉인 시열이도 악플달린적은 없는것 같고.'
이고설은 시열이가 아예 끝까지 뇌절에 가까운 컨셉이라서 욕을 먹지 않는다는것을 몰랐다. 그리고 대부분은 시열이를 일본인으로 알고 있었다.
"뭐 우리집 재산이 많아서 그걸로 버티긴 했지만 총으로 된 마수전용 무기는 진짜 비쌌더라고요. 마력도 일정이상 높아야 했고,"
오가와가 그렇게 길드초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날 미국의 총기협회에서 연줄이 닿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총기협회에서 지원을 해주면서 하급헌터들도 총을 사용할수 있게 기술개발도 해줘서 결국엔 총기위주의 길드로 만들수 있었어요."
한때 미정부를 뒤흔들기도 했던 총기협회는 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마수들이 나타나면서 속절없이 무너졌고 다시 헌터들에 의해 냉병기위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어떻게든 마수에게도 총이 통하도록 연구를 하던 총기협회는 끝내 마수용 총을 만들었는데 가성비가 총기시대 초창기보다도 극악했다. 마수용 총을 사용하려면 최소 B급인 마력을 지녀야 했고 총탄대신으로 사용되는 마나석의 소모도 심했으며 총열을 만들때 쓰이는 마정석도 최소 고가여야 했다. 한자루의 총이 과거의 미사일 한발 수준과 맞먹다보니 차라리 검을 휘두르고 활을 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중화기역할을 해주자 굳이 현대무기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각고의 노력끝에 단 한번뿐이지만 E급들도 사용할수 있는 총을 개발하게 되었죠."
총기협회에선 일본에서 희귀한 카우보이컨셉의 길드가 있다는 것에 감탄했으며 아예 오가와의 소원대로 모두가 총으로 무장할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차츰 양산화되어 가성비를 높히고 일본의 유일한 총기위주의 길드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며 홍보용으로 쓸 생각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E급인 동료들은 단한발이라도 마수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수 있게 되었죠."
이고설은 자신처럼 E급들을 생각해주는 오가와가 마음에 들었다. 아마 총기위주의 전략으로 가는 것도 약한 헌터들이 무력하게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인것 같았다.
"그럼 길드원들도 많다는 것인데 다섯분만 한국에 관광하러 오신건가요?"
이고설이 물어보자 오가와는 고개를 저었다.
"no, no, 모처럼의 해외여행이라서 끝까지 안 가겠다는 사무직들을 제외한 전원이 왔어요. 아마 각자 돌아다니면서 식당이나 숙소를 알아서 찾으며 관광하고 있겠죠."
오가와는 삼촌으로부터 배운 자유와 스스로의 의지, 그리고 자율화등을 길드원들에게도 가르쳐 주었다. 항상 소극적으로, 그리고 위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는 일본인특유의 습성으로는 던전에서의 생존률을 떨어뜨릴수 있어서이다. 외국출신들은 괜찮지만 일본출신들은 소수를 제외하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선 각자가 알아서 행동하게 두었다.
"지정된 시간에 모이고 게이트나 마수를 발견하면 연락주기로 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이고설은 문득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왠지 편안한 느낌의 오가와가 아니면 물어볼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길드명을 보니까 전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것 같네요..? 이번 C급던전에 합류하는 길드중엔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곳도 있긴 합니다만.."
오가와는 뒤늦게 눈치챈 이고설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텐데도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왠지 연애경험도 전혀 없어 보였다.
"다른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역사속에 등장한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해적이야기처럼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길드를 만들고 싶어서예요. 그래도 길드원중엔 기혼자도 있고 연애는 자유랍니다."
오가와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연애자유인데도 남자들을 못 구해서인지 기혼자인 한명을 제외하면 남자친구가 있는 길드원들을 보지 못했다. 무츠는 그 이유를 여자들만 모아두니까 다카라즈카극단처럼 함부로 연애를 해선 안되는 것으로 여기는 길드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쓸데없이 난잡한 연애는 군기를 흐트리니까 내가 주도하여 막지만,'
무츠는 그러한 사실을 굳이 길드마스터에게 전하지 않았다. 마스터 본인도 솔로로 지내는데 누가 누굴 생각하는 것인지?
"저는 마스터만 있으면 충분해서 괜찮아요. 일본어로 이모우토(여동생) 같거든요.(영어)"
바바라가 뒤에서 에이코를 껴안으며 볼을 부벼댔다.
"...."
어느새 밤9시가 된 것을 식당시계로 알게 된 이고설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관광객들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얘기해 본것은 고향에서 말을 태워주는 일을 했을때가 전부였던것 같았다. 그때 오가와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
악수를 뜻하는 것은 알지만 새삼스레 여자손을 잡게 되는 상황에 어정쩡하게 손을 내밀었던 이고설의 손을 오가와가 콱하고 붙잡으며 흔들었다.
"다시 만날수 있게 되길 빌어요. 그리고 이번 레이드에 참가하는 모든 분들도 무사히 돌아오시길,"
진심어린 말에 이고설의 긴장이 풀리며 그도 오가와에게 화답했다.
"오가와씨의 길드원들도 항상 몸조심하며 건승하시길 빕니다."
그때 오가와의 폰에서 문자가 들어왔다. 오가와는 그 뜻의 의미를 알았다.
"길드원이 있는 근방에 게이트가 열렸나봐요."
오가와가 문자를 확인하려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남부근에 게이트브레이크직전인 B급 게이트가 발견되었나봐요! 주인아저씨,"
오가와가 얼른 계산하고 게이트로 향하려는데 이고설이 제지했다.
"모처럼의 인연이니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무츠씨도요."
"그래도.."
오가와는 문자로 길드원 전원에게 게이트가 발견된 지도와 어셈블이라는 영어단어를 문자를 보내면서 망설였다.
"다음에 만나면 대접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가와는 가게의 메모지를 뜯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자신의 폰번호를 보여주고 일행과 함께 나섰다.
"꼭 저장해두세요!"
상위랭커답게 워낙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제서야 주인장이 나타났다.
"어? 아가씨들이 다들 어디가셨지? 무전취식인가? 상관없지만,"
이고설은 주인장의 오해를 풀기 위해 재빨리 대답했다.
"게이트브레이크가 생겨서 먼저 출동하셨습니다. 계산은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먹는것만큼이나 통이 큰 분이시군요. 다음에도 방문해 주십시요."
이고설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식당을 나왔다. 오랜만에 고기중심으로 잘 먹었고 좋은 인연도 만난 날이었다. B급게이트라서 무기도 없는 자신이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만 이고설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강남의 상황을 살펴봤는데 기자들이 금새 강남의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알려왔다.
[속보! 게이트브레이크직전인 게이트를 발견!]
[현재 외국출신의 헌터들이 입구에서 대기중!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헌터스길드원들은 아직 도착하기 먼듯.]
[헌터협회에서 마침 협회근처의 외국헌터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여 헬기를 타고 이동중.]
헬기를 타고 이동중이라는 속보기사가 뜬 덕분인지 갑자기 헬기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B급게이트라고 하면 어지간한 헌터들로는 감당할수가 없어서 적어도 길드소속인 헌터들이 나서야 할것이다. 헌터들의 정보에 대해 잘아는 사이트에서 보니까 헌터스길드의 주력들이 강북쪽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작년에 새로 길드에 들어온 한국의 9번째 S급헌터인 차해인은 갑자기 레드게이트에 갇혀서 강남쪽으로 도움을 줄 헌터들이 부족하다고 알렸다.
"이렇게 되면 진짜 '웨스턴레이디'길드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네.."
현장에 방문하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적어도 능력있는 길드로 보이기도 해서 그분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건투를,'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