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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김애란 플로우차트 - 21세기 한국문학(1)

용승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05 20:59:51
조회 1372 추천 44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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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롤랑 바르트는 인간의 언어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를 둘러싼 환경이 사실상 언어를 결정짓는다고 보았지요. 그가 텍스트(text)라는 단어에서 직물(texture)이라는 단어를 연상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가 지지하고자 했던 언어는 주변 환경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던 언어가 아니었지요. 그런 언어는 저자의 개성을 말소시키니까요('저자의 죽음'). 대신 그는 기자처럼 객관적이기 그지없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영도의 글쓰기').

 뭐, 어찌되었든 바르트의 통찰이 옳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의 언어에는 그 사람의 일생이 들어 있다고. 그렇다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두고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김애란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도입부만 봐도 그렇습니다. "어릴 때 온종일 말을 줍고 다녔다. 엄마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종알대며 주위를 어지럽혔다." 서술자는 언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타자를 배우죠. "이제 나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거의 다 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부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바람이라 칭할 때, 네 개의 방위가 아닌 천 개의 풍향을 상상하는 것. 배신이라 말할 때, 지는 해를 따라 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쫓아가보는 것. 당신이라 부를 때, 눈 덮인 크레바스처럼 깊이를 은닉한 평편함을 헤아리는 것."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2. 명랑한 아이 - 『달려라, 아비』

 어린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언어는 부모의 언어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슬픔도 부모의 슬픔이겠지요. 『달려라, 아비』에서 주된 서술자로 설정된 어린 아이는 도시 변두리를 맴도는 편부모 가정의 슬픔을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가 그렇고, 대표작인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소설집은 활달한 정서로 가득차 있습니다. 서술자로 설정된 어린 아이가 때묻지 않은 명랑한 상상력으로 누추한 생을 반짝이는 생으로 바꿔놓기 때문이지요. 「달려라, 아비」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어머니는 "박봉, 여자 기사에 대한 불신, 취객의 희롱"으로 힘들어하는 택시 기사이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 도망간 몹쓸 사람입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 특유의 환상을 펼치며 그들을 위로하려 합니다. "언제나 눈부신 땡볕 아래서 뛰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워드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3. 쓸쓸한 스무 살 -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는 어린 아이이기에 대면한 가족사적 결핍과 주변부적 삶을 어린 아이이기에 가능한 상상력으로 극복하는 소설집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에 갓 진입하는 스무 살이 서술자라면 어떤 소설집이 나올까요.

 『침이 고인다』를 채우고 있는 정서는 쓸쓸함입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스무 살과 실제 현실의 스무 살이 현저하게 다를 때 발생하는 쓸쓸함 말입니다. 소설집에서 가장 앞에 배치된 「도도한 하루」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서울권 대학에 합격"한 서술자의 삶은 "차압 딱지"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신입생 환영회 때 부를 노래만 연습하고 있었"을 만큼 서술자는 사회의 궤도에 오르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던 지라 더욱 극심한 공허감을 느끼게 되지요.

게다가 스무 살에겐 어린 아이 특유의 환상이 없습니다. 『달려라, 아비』처럼 비극적인 상황을 희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도도한 하루」의 서술자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대신 스무 살 특유의 낭만으로 최대한 덤덤하게 말해보려 하지요. 냉혹한 현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면서도 거기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하나 둘 손끝에서 돋아나는 음표들"이 "천천히 날아올라 어우러졌다 사라"지는 광경은 그것의 극치이지요.

 여담으로,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앞두고 이 소설집을 읽었습니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 같은 소설을 읽으며 여러 암울한 망상을 하기도 했지요. 그래서일까요. 저에게 김애란의 베스트는 『침이 고인다』입니다. 이만큼 몰입해서 읽은 적이 별로 없거든요.


 4. 명랑한 아이와 쓸쓸한 스무 살이 만났을 때 - 『두근두근 내 인생』

 『두근두근 내 인생』은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가 "겹치고 어긋나고 어그러져" "폭발 직전의 우주가스처럼 아스라이 출렁이는" 소설입니다. 아름이의 이야기는 『달려라, 아비』를 연상시키고, 아름이 부모의 이야기는 『침이 고인다』를 연상시키지요. 때문에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서는 뭐라 덧붙이기가 힘드네요. 이미 앞에서 전부 말해버렸거든요.

 아,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소설이라는 점만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독자를 웃겼다가 울리는 소설'이라며 호평하는 사람도 많고, 'K-신파의 반복'이라며 악평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저의 경우에는…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김애란에 입문했기에 처음에는 호였는데, 『달려라, 아비』나 『침이 고인다』를 모두 읽고 나니 불호가 되었습니다.


 5. 우울한 서른 살 - 『비행운』

 『달려라, 아비』나 『침이 고인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개 김애란의 문학을 '자기 위로'로 규정합니다.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는 하나도 가지지 않은 채 적당히 타인의 슬픔에 곡비처럼 맞장구만 친다는 것이지요. 대개 이런 논리는 한국문학 전반을 향한 비판으로 나아가고는 하는데… 이것까지 말하면 밑도끝도 없이 길어지니까 『비행운』에서 김애란의 문학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달려라, 아비』나 『침이 고인다』에서 서술자는 환상이나 낭만에 의탁하여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행운』에서 어느덧 서른에 가까워진 서술자는 더 이상 그러지 않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요. 사회 생활을 하면서 체념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일까요? 「서른」에서 서술자는 다단계에 갖다바친 자신의 청춘을 두고 어떠한 문학적 휘장도 드리우지 않습니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도 마찬가지고요. (덧붙여 『바깥은 여름』에 실린 「언어의 미래」에서 김애란은 드디어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낸 원인을 찾아낸 다음 맹렬하게 질타하기 시작합니다.)


 6. 어느새 부모 - 『바깥은 여름』

 명랑한 아이와 쓸쓸한 스무 살과 우울한 서른 살을 지나, 김애란의 서술자는 마침내 부모가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처럼 배우자를 잃은 슬픔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가리는 손」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자라지 않는 아이에 대해 말하기도 하지요.

 무엇보다도, 김애란의 서술자는 4월 16일에 대해 말합니다. 「입동」. 도배라는 행위를 통해 애도의 의미를 묻지요. 한국문학에 딱히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이 소설만큼은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니까요.


 7. 나가며

 대산문화재단은 "우리 문학계에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대학생 특유의 패기 있고 실험정신 넘치는 작품을 발굴하"기 위하여 2002년에 대산대학문학상을 제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애란은 역사적인 첫 수상자가 되지요. 21세기의 한국문학에서 그녀가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예지한 것마냥 말입니다.

 발표한 소설이 그리 많지 않기에 또 유려한 문체를 가지고 있기에 저는 한국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가장 먼저 김애란을 권하고 싶네요.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p.s 아마 다음 내용은 김훈이나 윤고은, 혹은 황병승이나 김경주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p.s.2 생각나는 대로 가볍게 쓴 글이다 보니 논리적으로 매끄럽지 않다는 점 이해해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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