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일반] 지금 독붕이 심정을 대변해주는 수필.txt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68.126) 2025.03.26 23:02:42
조회 1907 추천 24 댓글 11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885fa11d02831640a502277a2524bd91d2fbe7a130831e5fa3708200962d90d854b570ee884e38a5f865253754e3bb3675ceb73e7185d43536b9ad0c037049a



그건 바로 시와서 '봄은 깊어'에 나오는 '마쓰네 도요조'의 나의 색비름...







나의 색비름
마쓰네 도요조



"작년 가을, 뜰 한구석을 꾸민 것은 잿날 때 묘목으로 몇 그루 사 온 색비름이었다. 그 씨앗이 어쩌다 땅에 떨어졌는지, 올해는 저 혼자 뜰이며 밭이며 가리지 않고 온통 싹을 틔웠다. 소엽맥문동이 핀 섬돌 옆에도 퍼고, 가지발에도 군데군데 피고, 담장 옆에도 길가에도 피었다.

이 풀은 얼핏 작은 잡풀처럼 보이기도 해서, 들을 밟고 지나가는 나막신에 자칫 어린 생명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일구어 놓은 땅에 두세 치나 되는 싹을 하나하나 조심조심 옮겨 심는다. 이파리 하나라도 벌레 먹은 혼적이 보이면 또 그만큼 잎이 새로 난다. 하나둘 잎이 마르면, 뿌리쪽을 다져 주고 거름도 뿌려 준다. 햇별이 너무 뜨거울 때는 못쓰게 된 우산을 씨위 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물을 뿌려 주었는지 모른다. ...... 이렇게 둘봐 주는 것은 분주한 머릿속이 지쳐 갈 때쯤인데, 어설프게 피로한 때는 이 작은 풀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더 깊어 갔다.

종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잎 전체가 붉은색이고. 또 하나는 파란색 잎에 가운데만 선홍색이다. 이걸 두 군데로 나눠 심었는데 한쪽은 한곳에 몰아 심어 숲처럼 만들고,또 한쪽은 띄엄띄엄 심어 정원처럽 만들었다. 그래서 두 가지 모습 다 즐기려고 했다. 양쪽 다 쑥쑥 잘 자라서, 가장 키가 큰 것은 허리, 배꼽까지 오더니 나중에는 가슴께까지 자랐다. 야아, 올해 색비름 자란 것 좀 봐, 하고 혼자 속으로 뿌듯해했다. 때로는 멀리 있는 친구에게 소식을 전해 그 성장을 자랑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이충난간에 기대 내려다보면서 혼자 시를 읊으며 즐거위한다.

여기까지
색비름 자라거라
이층 위 난간

나는 옛날부터 색비름을 정말 좋아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그것을 뜰에 심었다. 그리고 작년에 꽃이 다 질 때쯤, 마음에 드는 좋은 꽃씨를 모아 두려고 마음먹었지만, 일이 바빠 그만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참새들에게 쪼아 먹허게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올해도 잿날에 씨앗을사 오긴 했지만 영 시원찮아서 기운이 빠져 있는데, 이렇게 많은 싹이 저절로 자라났으니 그 기쁨은 더더욱 각별했다. 그런 까닭에 안 그래도 좋아하는 색비름을 마치 사랑하는 자식이나 연인처럼 아끼고 돌보았더니, 그 모습이 주변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애절하여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비친 모양이다. 아아, 색비름, 나의 색비름은 역시 나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그렇게 나는 그 싹의 성장에 눈물이 어릴 만큼 환희를 느꼈다.

나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저절로 싹을 틔워 어엿하게 자라나는 나의 색비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숙모 한 명은 "나한테도 꼭 두세 그루 나눠 줘" 하고 말했다. 어떤 친구는 "왜 그런지 난 올해 하나도 안 폈는데. 그럼 나한테도 좀 줘" 하고 말했다. 그 밖에도 여러 사람이 원해서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에 올 때 가져오지" 하고 가는 곳마다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색비름은 쉰 그루쯤 쑥쑥 자라서, 작은 것도 거의 다섯 치나 되고, 가장 큰 것은 내 눈높이까지 왔다. 작년에 나쓰메 소세키 선생에게 색비름을 그려 달라고부타한 적이 있는데. 그매 선생은 키가 큰 꽃을 종이 한가득 그리고, 그 옆에 달필로 큼직하게 글을 써 주셨다.


색비름이여
키가 다섯 치나
자라났구나


내 마음은 이 시와 똑같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나의 진심을 색비름에게 전하며 가운을 맞이하려고 할 즈음이었다.

거대한 불이 휩쓸었다.

"시들고 마른 건 불에 탄다 해도, 생생히 살아 있는 이
작고 사랑스럽고 가련한 것이 어떻게...."
반평생을 써 온 작품 대부분이 불에 타는 것도 애통한 줄 모르고, 나는 그렇게 어리석게 중얼거렸다. 하기는 집들도 사라지고, 동네도 마을도 사라지고, 도시조차 대부분사라지지 않았는가.

그때, 나는 불길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정든 이중으로 올라갔다. 깜깜한 집 안을 희미한 등불에 비추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전부 정이 든 물건이라 이것도 저것도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새삼 솟구쳤다. 분명 아직 몇몇 물건은 들고 나갈 여유가 있었고. 꼭 가져가야 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먹었어, 그냥 단념하자, 지금은 마지막 작별을 할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온 힘을 눈에, 눈 밑바닥에 있는 마음의 눈에 담고, 10년 가까이 살던 집과 그동안의 온갖 추억들에 잠깐이라도 충실하려고 애를 썼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밖을 내다보니, 입구 잎 다락방 너머로 불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타거라, 이 서재에는 불이 붙지 말아라, 그런 생각을 하며 작은 창 덧문을 꼭 닫았다. 아래층에서 어머니가 거실을 한번 돌아보고 툇마루로 나가 뜰로 내려가려고 할 때. 머리 위 상인방에 매달아 놓은 바구니 안에서 방울벌레가 깊어 가는 초가을 밤을 고요히 노래하고 있었다. '어찌 이 생명을 불태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내보내 주려고 하다가, 꺼내 준들 어차피 살 수 없을 텐데, 이 기구한 운명이여, 차라리 정든 이 집과 함께 날 대신해 죽어 주렴, 하고 그대로 두고 나왔다.

뜰은 집채 높이로 덮쳐 오는 불길에서 떨어져 있어 아직도 깜깜했다. 그 깜깜한 속, 그곳, 그곳에는 '나의 색비름'이 새벽이 되면 내가 뿌려 줄 물을 기다리며 지금은 조용히 밤이슬의 은해를 받으며 잡들어 있다. 집 안을 한 바퀴 비취본 등불을 나는 도저히 뜰 쪽으로 돌릴 수가 있었다. 그토록 아끼던 사랑스러운 그들에게 마지막 눈길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아아, 그걸 본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색비름'이 지금도 잿더미 아래에 그때 그대로 살아서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나의 색비름'이 내 영원한, 내 마음속 눈물이 샘솟는 바닥에서."

(1941년)







마음으로 키운 색비름을 잃어버린것에 대한 작가의 감상과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도 등장하는(작가 중학교 선생님이 소세키 선생님이란다) 평범한 수필 아니냐고 하겠지만...


참고로 현재 독붕이의 상황은...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885fa11d02831640a502277a2524bd91d2fbe7a130831e5fa3708200962d90d854b570ee884e38a5f85530e2e186ab2335ceb73e7185dccfa0b04e12f430604



글쓴이의 심정이 어떤지 확 느껴짐... 모두가 슬프고 침울하다...

추천 비추천

24

고정닉 1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3004 설문 소속 연예인 논란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은 소속사는? 운영자 25/04/21 - -
599520 공지 독서 마이너 갤러리 추천 도서 목록 [23] 퀸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2.28 78526 54
681928 공지 정치/정치글 떡밥 굴리지 말아주세요 [10] 퀸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12.04 4305 14
710152 공지 신문고입니다. [6] ㅇㅇ(118.235) 25.03.31 828 0
259313 공지 [필독] 독갤사용설명서 (공지 및 운영 원칙)  [7] ㅇㅇ(223.39) 21.04.05 50983 82
247207 공지 독서 마이너 갤러리 정보글 모음 [8] 정보글(203.255) 21.03.01 177089 76
680440 공지 셀털(나이, 거주지 언급) 관련 안내글 [16] 맥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11.28 5060 27
95230 공지 독린이를 영입하기 위해서 작성한 글 [63] 닥닥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1.10 183979 476
590988 공지 셀털,개똥철학,일기장 경고없이 6시간~1일 차단하겠음. [142] 포크너붐은온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1.27 18376 188
644781 공지 독갤장터 재개 및 규정 안내(8/12 19:25 2차 수정) Nightfal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8.12 4732 20
459728 공지 독서 갤러리 내 홍보에 관한 공지(2022.11.23) [1] ㅇㅇ(104.28) 22.11.23 19045 7
715254 질문/ 이거 한승원 아제아제 바라아제 맞음? [2] ㅇㅇ(115.138) 00:29 50 0
715253 일반 님들 그리스신화 하나도 모르는데 뭐부터 읽어야함?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9 31 0
715252 일반 올해 문학 독서 입문했는데 취향 분석과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3] 손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9 49 0
715251 일반 독서를 하면서 햄준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6 33 0
715250 일반 건축 책 추천좀요! [1] ㅇㅇ(223.39) 00:14 27 0
715248 일반 요즘은 사람들 종이책 잘 안 읽고 웹소설 많이 읽는거 같은데 [3] ㅇㅇ(203.251) 00:12 40 0
715246 감상 스포)찬란한 연방의 신화학자에 대해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53 1
715245 질문/ 혹시 지피티 가이드 같은 책 추천해줄 수 있나?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74 0
715242 일반 이거살까요 ㅇㅇ(222.108) 04.24 59 0
715240 대회/ 제6회 독서 마이너 갤러리 만화 리뷰 대회 투표!!!!!!! [10] nagarebosh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107 3
715239 일반 어떻게 사람 이름이 ㅇㅇ(183.103) 04.24 64 0
715238 일반 지하로부터 수기 원래 책이 짧음? [3] ㅇㅇ(203.251) 04.24 96 0
715237 일반 맑은 글귀 모음 ㅇㅇ(1.237) 04.24 23 0
715236 질문/ 제인 오스틴 소설중에 등장인물 적은거 있음? ㅇㅇ(211.246) 04.24 30 0
715235 일반 도끼 전집 살 가치있냐? [9] ㅇㅇ(117.111) 04.24 201 0
715234 일반 인디언 이 미친새끼들 [3] ㅇㅇ(183.103) 04.24 108 0
715233 일반 오늘 산 책 [3] nagarebosh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113 1
715232 일반 빛과 실 ㅇㅇ(211.235) 04.24 70 0
715231 감상 스포)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2] Aftn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63 2
715230 일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난이도 어떰?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115 0
715229 일반 돈키호테 다 읽었다. 오블리가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49 1
715228 감상 스포)이해조의 <자유종> 충격적이네....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58 0
715226 일반 고흐를 모델로한 소설이 있을까? ㅇㅇ(116.37) 04.24 30 0
715223 일반 기독교 플로우차트 있니? [8] 히헷(121.130) 04.24 118 0
715221 일반 GPT가 미시마는 싫다고 하네요 [2] 독갤빌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139 1
715220 질문/ 일본 소설가랑 소설 좀 추천 해주셈 [4] ㅇㅇ(223.39) 04.24 78 0
715218 일반 독서 습관도 어릴때부터 만드는게 중요한거 같음 [3] ㅇㅇ(118.235) 04.24 107 1
715217 일반 글쓴거 평가 부탁드려요 - 군주론 읽고 [6] ㅇㅇ(180.70) 04.24 97 0
715216 질문/ 이북리더기가 눈건강과는 관련 있는거임? [2] ㅇㅇ(175.193) 04.24 83 0
715215 일반 마음 보고있는데 편지 길이 실화임?? [1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179 0
715214 일반 필링 그레이트 강박장애 치료요소도 들어가 있나요?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53 0
715213 일반 갤주 사랑의 갈증 어떰? [2] 야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82 0
715212 일반 불안의 책 읽고 있는데 끝까지 이런 템포임? [6] 진짜귀여운다람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119 0
715211 일반 하루키의 노르웨이숲은 약간 외딴섬 바이브가 아닌가 [2] ㅇㅇ(125.133) 04.24 94 0
714983 일반 [월간독갤] 투고하면 버거가 나온다고!!! [13] 창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3 779 13
710966 일반 월간독갤에서 "찐따"를 주제로 한 투고를 받습니다 [23] 창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3 6166 23
702694 대회/ 제6회 독갤 만화 리뷰 대회 개최!!!!!!!!!! [35] nagarebosh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7 14304 34
714933 건의/ 오늘 아주 지랄났네 [29] 포크너붐은온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3 2449 30
715209 질문/ 폭풍의 언덕 재밌음? [4] ㅇㅅㅋ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4 96 0
715208 일반 오만과편견 민음사 vs 을유 뭐로읽을까 [1] ㅇㅇ(211.184) 04.24 75 0
뉴스 ‘맘모스’ 아역 출신 소피 니웨이드 사망, 향년 24세…”트라우마로 고통” 디시트렌드 04.2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